“하랑 군! 학교 늦겠어요!”

  “아이, 알았다고!”

 

  흔히들 말하는 참 좋은 시기,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창창한 고등학교 2학년 17세, 이하랑의 하루는 소란스럽게 시작한다. 이번 기회에 말하는 거지만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12시 이전에 자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며, 하물며 새벽 2시전에는 자라, 라는 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새벽 3시 넘어서까지 잠도 안자며 놀다가 매일 아침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시작하는 고등학생이야 말로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어제 학교에 잔나비라도 깔고 올 걸, 에이씨. 쓸데없는 머리를 굴려가며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간 하랑은 겨우 지각을 면했다. 참으로 아쉬워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여 괜히 괘씸해진 그가 킬킬 거리며 자리에 앉자 흔히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시시콜콜한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야, 오늘 짱깨 한 명 새로 오는 거 아냐?”

  “짱깨?”

  “그래! 왜 저번에 이번 달 안으로 이사회에서 중국어 수업 가르치겠다고 완전 졸리는 연설해댔잖아.”

  “아, 그거 진짜였어? 헛소리 아니고?”

  “그 곰 같은 이사장이 잘도 헛소리를 하겠다.”

  “와, 누가 외국인 아니랄까봐.”

  “곰 같은 교육의 힘이여~!”

 

  한 놈이 이사장의 흉내를 내니 하랑이 배를 움켜쥐며 자지러졌다. 흔히 그 아이들의 입버릇이 그러하듯, 별 뜻 없는 욕설과 함께 하지 말라며 웃는 목소리가 수업 종소리에 묻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첫 교시 수업이 영어수업인데. 마틴은 지각이나 안 했나, 몰라. 하랑은 오늘도 자신의 짜증스러움을 한껏 받아주면서도 자상하게 자신을 깨워주는 다섯 살 연상인 형의 얼굴을 그렸다. 이 학교가 남학교가 아니라 공학이었으면 정말 마틴에게 줄줄이 꿰일 여자애들이 한 트럭으로 실어도 모자랄 텐데. 아니, 사실은 하랑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지만 이미 마틴에게 꿰인 녀석들이 많다고 했다.

 

  종소리가 들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로 들어오는 마틴을 보며 하랑은 자연스레 턱을 괴고는 싱긋 웃었다. 다행이네, 지각은 면한 모양이야.

 

  “마틴쌤! 오늘 오는 짱… 아니 중국어 쌤 누군지 알아요?”

  “아, 네. 오늘 교직원 회의에서 뵀어요. 보자, 우리 반은…. 4교시 수업이네요. 중국어.”

  “여자에요?”

  “아뇨, 아주 잘생긴 남자 선생님이에요.”

 

  마틴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야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아우성을 쳤다. 마틴은 그럴 줄 알았다며 학생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상냥한 미소를 보였다.

 

  “남자가 잘생기면 뭐해, 우린 여자쌤 언제 보나.”

  “꿈 깨, 곰 같은 이사장님이 잘도.”

  “아, 쌤. 그거 알아요? 우리 학교 금녀의 구역이라고 소문 파다하다고요!”

  “왜요? 나이오비 선생님도 계시고, 레나 선생님도 계신데….”

  “품절녀는 당연히 제외죠!”

 

  그제야 아이들이 말한 의미를 파악한 모양인지 마틴은 크게 웃어보았다. 정말 못 말리는 학생들이군요. 마틴의 인기 덕분인지 ‘영어’ 라는 최대 난관의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구열이 꽤나 높은 반 덕에 50분이라는 수업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1교시 영어수업이 끝이 났다. 마틴은 교실을 나가기 전 하랑에게로 와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저녁은 다른 길로 세면 안 돼요.”

  “왜?”

  “중요한 손님이 오시는 날이니까.”

  “릭 아저씨라도 와?”

  “물론 릭 씨도 오고. 곧 알게 될 거에요.”

 

  그럼 이따 집에서 봐요, 하며 교실을 나가는 마틴 덕에 아이들의 시선이 쫙 제게로 쏠린 것을 깨달은 하랑은 그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딱히 하랑은 수업시간에 조는 불량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어서 잘 수 있는 시간은 이 쉬는 시간뿐이었다.

 

  다음 시간은 과학시간이었는데, 어김없이 유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드렉슬러를 보며 하랑은 또 자연스레 턱을 괴었다. 의외로 그런 이야기가 재밌는 모양인지 아이들은 몇 날, 몇 시 어느 나라에서 쏟아진 유성우에 대한 논문을 풀어놓는 드렉슬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사실 속셈은 따로 있는 모양인지 그 집 조카뻘 되는 샬럿이나 학교에 데려오라고 조르다 날아온 창 모양 분필에 맞아 기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분필 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교내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로라스 선생님뿐이려나.

 

  그리고 이어서 수학시간. 이 학교의 곰 같은 방침에 따르면 수학은 세 명의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홀든 선생님즈였다. 그 주의 수학시간이 어떤 홀든 선생님이냐에 따라 면학 분위기가 바뀌는데 이번 주 수학 시간을 맡은 선생님은 벨져로, 아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하나 둘 쓰러져갔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귀신이었다, 귀신. 조는 학생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큰일 나는 선생님이었다. 오죽하면 이글이 보고 싶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다 들켜 천영섬을 맞은 경우도 허다했다.

 

  3교시가 끝난 뒤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이른 점심시간을 보내고, 학교 옥상에서 낮잠을 자던 하랑은 제 소매를 잡아끄는 령의 기운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교실로 내려갔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 마리의 개… 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강아지인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니 아주 난장판이었다. 열일곱 남학생들의 교실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난장판인지 아주 잘 알 것이다. 얼마나 험한 말뚝 박기를 한 것인지 이러다 자손도 못 보겠다며 우는 놈들 여럿, 보나마나 브뤼노 교감한테 빌려왔을 것이 뻔한 -삐- 같은 잡지. 저 놈들 저러다 타라 선생님한테 걸려 유성낙하 한 번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며, 아이들은 소란스러움을 잠재우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게 중에, 가장 호들갑을 떠는 녀석의 말이 하랑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그 짱깨 내가 봤거든? 근데 완전 포스 쩔어. 갑빠가, 어우.”

  “진짜? 다이무스 선생님보다?”

  “장난 아니라니까! 거기다 중국에서 무술 전공했대. 덤비면 척살 당할지도 몰라. 거기다 우리말 완전 잘함. 마틴쌤이랑 얘기하는 거 봤는데 둘이 친한가봐. 그 쌤 웃는 것도 봄! 아, 솔직히 같은 남자가 봐도 좀 멋있더라.”

  “헐.”

 

  다이무스 선생님과 견줄 정도의 덩치, 중국에서 무술 전공. 우리말을 참 잘하며 마틴과 친한 듯 얘기할 수 있는 중국 남자. 하랑은 무의식적으로 욕을 뱉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는 마틴의 말. ‘중요한 손님.’

  이윽고 교실 문이 열리며 오늘의 기대주, 중국어 수업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 하랑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모든 아이들이 하랑을 쳐다봤지만 하랑은 교실 안으로 들어온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업 시작했다, 앉아라. 이하랑.”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마틴한테 못 들었나? 오늘부터 이 학교 중국어 수업을 가르치게 된 티엔 정, 이라고 한다. 다들 잘 부탁하지.”

 

  하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틴이 그렇게 싫어하는 별명 - 그래도 릭 아저씨는 심심찮게 부르더라. - 인 마틴 챌피그를 학교에 확 퍼트려버릴까, 라는 계획을 짰다. 물론 그랬다가는 한동안은 평안한 생활은 꿈도 꿀 수 없겠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자리에 계속 서 있던 하랑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분한 것인지 이상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하랑을 보며 근처에 앉은 아이들이 어디 아프냐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어떻게 수업이 끝나는 지도 모르게 폭풍 같은 50분이 지나고 티엔이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실을 나가자 아까와 같이 하랑에게로 수많은 시선이 쏠렸다.

 

  “야, 너 저 짱깨 알아?”

  “…알아.”

  “너 이사장 아들이냐? 뭐 이렇게 쌤들이랑 잘 알아? 아, 참. 마틴 선생님과는 아예 같이 살고 있다며.”

  “몰라, 대답해 줄 기운 없어.”

 

  하랑은 오늘만은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서 푹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렴풋이 하랑의 머릿속에 티엔과 마지막으로 봤던 날 밤이 그려졌다. 개 같은 짱깨새끼. 하랑은 결국 답답한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봤자 갈 곳이 딱히 없어서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양호실로 왔다. 양호 선생님은 어딜 가고 없는 모양인지, 다들 본체 아니냐며 놀리는 선글라스만이 책상이 놓여있었다. 하랑은 흰 침대로 기어들어가 잔뜩 몸을 웅크리고는 잠을 청했다.

 

  티엔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고작 3년 전의 일이었다. 아니, 벌써 3년인가. 그 말은 곧 하랑이 티엔에게 홧김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한 것이 벌써 3년이나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어쩌면 그냥 머리도 다 크지 않은 어린아이의 치기로 끝을 낼 수 있었겠으나, 티엔은 하랑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달 쯤, 사귀기도 했었다. 티엔이 하랑에게 얼마나 껄끄러운 사람인지는 이 말로 종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했던 사람. 지금도 좋아하냐, 라고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는데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 사람.

  그렇게 첫 사랑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티엔은 하랑의 곁을 떠났다. 무슨 이유였더라. 잘 기억도 안 난다. 하랑에게 있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티엔이 말도 없이 떠났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연상의 연인에게 버려졌다는 것이 고작 열 넷 밖에 안 됐던 어린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알기나 할까. 하랑은 티엔이 떠났다는 말을 전해줬던 마틴의 얼굴을 아직까지도 기억했다. 설마 몰랐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던 그 얼굴.

 

  그 뒤로 3년간, 하랑의 집에서 ‘티엔’은 금기어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억지로 그의 얼굴을 잊으려 노력했던 하랑이지만 3년이 지난 오늘 그의 얼굴을 다시 봤을 때, 하랑은 그를 잊으려 했던 그 3년이 얼마나 멍청하게 보낸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분위기가, 꽤 달라진 것 같았다. 다행히 잘 먹고 다닌 모양인지 얼굴을 말끔하니 잘난 그대로였고 확실히 3년 전 보다 좀 더 멋있어지고 남자다워졌을까. 그 짧은 시간에 그를 살필 만큼 얼마나 그를 쫓고 있던 건지 깨달은 하랑은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

  가면 간다고, 돌아온다면 돌아온다고 한 마디도 없던 그 남자를 아직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신이.

 

  “땡땡이치는 건가, 못 본 사이에 잔머리만 늘었군.”

  “…….”

  “이하랑.”

  “…꺼져.”

  “하랑아.”

 

  하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을 향해 달렸다. 그래, 네가 안 꺼지면 내가 꺼진다. 슬리퍼가 바닥에 쓸려 나는 거친 소리가 몇 번 나지 않아 하랑은 그대로 다시 제 몸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랑아.”

  “꺼져! 꺼지라고! 시발, 이제 와서 미안하다, 보고 싶었다. 이딴 소리 지껄일 거면 꺼지라고!!”

  “얼굴 좀 보자.”

 

  그 말에 억지로 이불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하랑이 악에 받쳐 저항했지만 기어코 이불을 벗겨낸 티엔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자 하랑은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복받쳐오는 것 같았다. …존나 잘나긴 잘났네, 짜증나게. 꽤나 붉어진 하랑의 얼굴에 티엔이 묘한 얼굴을 하며 재빨리 침대 옆 커튼을 치고는 하랑에게 키스했다. 헤어지기 전에도 딱히 이런 진한 스킨십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말 그대로 돌 같이 굳은 하랑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뺨을 감싸는 티엔의 두 손에 가만히 자신의 손을 얹었다.

 

  “이제 와서 미안하다는 소리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하구나.”

  “…….”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컸구나, 정말 많이.”

  “…당연하지, 이제 열일곱인데.”

  “그동안 잘 지냈나?”

  “지랄, 말 같은 소리를.”

 

  못 본새 입도 꽤 거칠어졌구나, 하는 티엔의 입을 가만히 손으로 누른 하랑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하며 중얼거렸다. 티엔은 자신의 입을 누른 하랑의 손가락을 살며시 핥았다. 그 생경한 느낌에 하랑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 이거 범죄거든? 나, 아직 열일곱이거든?! 이 나라에서는 적어도 열아홉은 돼야…”

  “…열 넷보다는 낫겠지.”

  “어, 어…?”

  “내가 왜 3년이나 네 곁에서 떠났다고 생각하느냐.”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등에 닿은 침대의 감촉에 하랑은 멀뚱멀뚱 티엔을 바라보았다. 꽤 진중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티엔을 보며 곧, 티엔이 하려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하랑은 얼굴이 폭발하듯 새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으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미친, 짱깨가 뭐라는 거야. 아냐, 몰라! 난 몰라!”

  “이하랑.”

  “아, 몰라, 몰라. 여기 학교야! 학교라고!”

  “그래서?”

 

  특유의 낮고 무거운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하랑은 티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이런 짱깨는 모르는데. 자신이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하랑을 보며, 티엔은 드물게 하랑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천천히 가르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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