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지."
"-뭐가요?"
"왜 아직도 무기를 고르지 않은거니?"
하나뿐인 어머니의 말에 세하는 짐짓,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한참이나 말을 골랐다.
"이유를 말해주기가 곤란한거니?"
"곤란하다기 보다는... 조금 어려워요.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아직 그렇게 파장이 잘 맞는 무기를 본 적도 없고요."
자신의 대답이 딱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어머니는 고민에 잠겨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장이 잘 맞는 무기가 없다는 말은 조금 거짓이 섞인 말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만난 무기들의 대부분이 무리하고 애써 자신과의 파장을 맞추려고 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사신님의 하나뿐인 아들이어서 그러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입 안이 쓰게만 느껴졌다.
세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신전의 주인이자, 모든 장인과 무기들의 선망인 사신님의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 부터 모든 이들에게 관심과 선망을 한꺼번에 받으며 자란탓에, 세하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신전의 깊숙한 곳, 사신의 거처에서 대부분의 시절을 지냈다. 어머니는 그게 조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본인도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계셨던 터라,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었다.
드디어 세하가 18살이 되었을 때, 세하는 스스로 사신전의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나오자마자 한 말이, 스스로의 무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받을 예정이었던 세하는 특별히 사신의 무기인 데스사이즈를 친히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8년 만에 세상에 나온 아들이 나오자마자 한 말이 그것이었으니, 어머니는 기꺼이 그 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언 3개월이 지났으나 데스사이즈의 'ㄷ'는 커녕 평범한 무기 하나 고르지 못한 세하에게 어머니가 한 소리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한 명의 장인에게 맞는 단 하나의 특별한 무기를 찾는 것이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신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음이 맞는 무기만 있어도, 사신은 그들과 영혼의 파장을 맞추는 일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신은 다른 장인들과 다르게 여러 무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신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란 사실을 자신의 아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단순히 첫 무기를 고르는 것이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첫 무기요...?"
"그래. 어떤 무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처음처럼 신중한 것이 없는 법이지. 그리고 처음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것이고."
혼자 무슨 생각을 그리 재밌게 하시는 지,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웃는 어머니를 보며 세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곧 어머니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붉은 글씨가 그려졌다.
"...좌표인가요?"
"찾아가보렴."
"......"
"한 때 나의 무기였던 사내란다."
"어머니, 전-"
"유일하게 나의 무기 중, 데스사이즈로 만들어지지 않은 원석같은 무기지."
사신의 무기면서, 데스사이즈가 되지 않았다고? 세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어머니를 올려다봤지만, 그녀는 그것이 더 재밌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래. 그는 그런 남자야."
"......"
"네가 그를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네게 물려줄 수도 있단다."
세하는 딱히 사신의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방금 어머니의 말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대체 그 남자가 어떤 무기길래 사신인 어머니까지 마다하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얼굴 가득 티가 난 모양인지 그녀가 얼른 세하의 등을 밀어버렸다.
"가, 간다구요. 가요."
"사실 나도 그의 얼굴을 꽤 본지가 오래돼서 말이야. 정 안되면 나한테 인사라도 하라고 데리고 오렴."
"......"
"내가 널 믿지 못하는 건 아니란다, 아들.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돼. 다만, 그 녀석은 좀 고집이 세거든. 벌써 반 세기 동안 새로운 주인을 맞은 적이 없어."
"50년이나요?"
"그는 특별해. 네가 그렇게 질색하는 엑스칼리버만큼이나 특별하지."
엑스칼리버.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세하는 벌써부터 질렸다는 얼굴을 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해했다. 그녀는 세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엑스칼리버와 만났던 사람 중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의 이름은요?"
"-그에겐, 이름이 아주 많아. 나는 그 중에서도 그를 제이라고 부른단다."
어느새 워프를 열어버린 어머니를 돌아보며 세하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두고보세요. 제가 꼭 데려올테니까요."
그녀는 말 없이 웃고 있었다.
"선배!"
오늘도 어김없이, 냐. 모리야마는 자기가 다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는 교실 뒷문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여자아이들을 바글바글 모아와서는 어쩌자는 거냐. 아, 부럽네.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딱 봐도 네가 지금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코보리가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웃지 마, 내가 쓰레기 같아지잖아."
"풉, 아니, 뭐?"
"알긴 아냐?"
"너무한 거 아니야, 카사마츠?"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하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리야마를 거침없이 내치는 것도 벌써 3년째인 터라, 카사마츠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시끄러운 뒷문을 바라보았다.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그러면서도 실실 웃고 있는 바보 같은 얼굴을 - 카사마츠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 하고 있는 후배를 슬슬 빼올까, 하던 찰나 가까스로 스스로 빠져나온 키세가 쏜살같이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달려왔다. 여기까지오면 세이프. 키세는 스스로 오케이 사인을 해보인다. 워낙 카사마츠가 교내에서 엄격하다는 평이 많은 터라, 다들 가까이 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넌 선배, 하면 카사마츠밖에 안 보이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럴리가요!"
"그렇게 주인이 보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쳐다봐도 안 믿기니까 그런 줄 알아.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일이야?"
그 질문에 꼭 무슨일이 있어야만 올 수 있습니까? 하며 천연덕스럽게 구는 후배의 모습을 본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난 터라 카사마츠는 별 대구없이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지를 보며 샤프를 굴렸다. 참 죽이 잘 맞는 건지, 모리야마와 키세는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며칠 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어느새 10분이라는 쉬는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키세가 언젠가부터 자신의 교실에 온 순간부터, 인가.
"그보다, 너 진짜로 우리 교실에 왜 오는 거야? 1학년 교실이랑 3학년 교실은 꽤 멀잖아."
"아, 그, 음-"
갑작스런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키세의 얼굴이 금방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참, 시합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단 말이야. 카사마츠는 쓰게 웃으며 샤프를 내려놓았다.
"딱히 여기 온다고 화를 낸다거나, 혼을 내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귀찮지 않나 싶어서. 잘도 온다고, 너."
"...네가 이해해라, 키세. 이 녀석은 정말 무심하고, 둔한 멍청이니까."
"뭐야?"
둔한 멍청이라니, 카사마츠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졌지만 모리야마는 뻔뻔한 얼굴 그 자체였다. 갑작스럽게 그런 욕을 왜 먹었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은채로, 쉬는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종이 쳤다. 키세의 어깨를 두드리며 얼른 돌아가보라는 답지 않게 다정하게 구는 모리야마를 한 번 쳐다봐주자 자기가 뭘 어쨌냐는 얼굴에 카사마츠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키세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를 발견한 카사마츠가 키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뒷문을에 반 쯤 걸쳐진 키세가 뒤를 돌아봤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습니까?"
"넌 모델이라는 녀석이 그게 뭐냐?"
픽, 웃은 카사마츠가 팔을 뻗어 뻗쳐있던 키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자, 키세는 아주 약간 다리를 굽혔다.
"키는 무식하게 커서는, 짜증나네."
그런 키세의 행동에 꽤나 험악한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웃으며 노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가볍게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이따 보자, 그 말에 키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이야, 이야. 우리의 카사마츠는 정말로 둔한건지, 아니면 선수인지 모리야마는 모르겠습니다, 코보리군."
"뭔 헛소리야, 넌 또. 코보리 좀 그만 괴롭혀."
"시끄러워, 넌 빨리 우리의 모델군 곁으로 가버려."
"뭐? 수업시간 종 쳐서 자기 교실로 돌아간 녀석한테 내가 왜?!"
"...선수는 무슨. 그냥 둔한거지. 됐다, 됐다."
그러면서 휙,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리야마를 보며 카사마츠는 진심으로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녀석 왜 저래?"
"심술 난 건지도 몰라."
"심술? 왜? 누구한테?"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말뜻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코보리에게 모리야마 닮지 마라, 라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카사마츠를 보며 코보리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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