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브랜트는, 그런 남자였다. 자신을 위해 혹은 자신을 믿고 있는 그들의 팀원들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단은 그것이 좋은 방향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를 감싸고 있던 것은 위화감이라는 이름 아래 싹을 틔운 불신이었다. 철저하게 온 몸에 가식을 두르고 표정을 만들어내는 사람.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브랜트의 연기에 깜빡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단은 그게 순수하게 자신을 감추기 위해 그가 꾸미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그래야만 했다.
이단 헌트가 목격한 윌리엄 브랜트의 첫번째 살인현장. 이단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 감탄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었다. 경외심, 혹은 동경. 혹은 그 이상의 것들. 이단은 그 날이 되어서 비로소 브랜트가 왜 자신을 연기하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깔끔하게 상대의 목을 그어버리는 행동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자비도 없었다. 아니, 자비는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날이 그리 길지 않은 나이프에 의해 동강나는 남자의 목을 보며 이단은 살풋 미간을 찌푸렸다. 고통을 전혀 느낄 틈도 없었을 것이다. 브랜트는 총보다 날붙이가 달린 것들을 선호했다. 총을 쓰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상대를 한 번에 즉사 시킬 수 있는 위치에 총을 갈겼다. 까딱 잘못하면 브랜트가 살생을 즐기는 이미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정교했으며, 정확했다. 똥도 뭣도 구분하지 못하고 무작정 돌진하는 초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비교하는 것부터가 그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었다.
두 동강이 나버린 목과 몸통을, 그리고 브랜트를 번갈아 보다 이단은 그의 옷 어디에도 피 한방울 튀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이단이 순수하게 놀라워할 때 쯤, 그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는 마치 비명소리와도 같았다.
"Fuck, 튀었잖아."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현장을 처리해놓은 주제에 발을 헛딛어 바지자락에 튀어버린 피를 보며 성질을 내는 브랜트를 바라보며 이단은 코웃음 쳤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도 이미 정상인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났겠지만, 아무튼 그 때 만큼 브랜트가 인간다워 보인 적은 없었을 거라 확신했다. 이단은 순수하게, 가식도 뭣도 두르지 않은 브랜트를 발견한 사실에 감격스러워 했다.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달래듯, 이단은 브랜트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브랜트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이단을 바라보았다.
"장난해? 바지에 튀었다니까."
그러나 이단은 아무 말 없이 브랜트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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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가 총에 맞았다. 벤지는 어엿한 현장 요원이었으며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요원이었다. 그러나 이단과 브랜트는 벤지의 부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제 팀원은 한 명도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벤지를 쏜 남자를 브랜트가 잡았다. 이단은 마치 보면 안되는 것을 본 사람처럼 서둘러 제인과 벤지를 옆 방으로 쫓아내었다. 제인은 항의했지만 이단은 절대로 제인을 그 방으로 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순전히 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브랜트를 위해서였다. 이제껏 숨겨놓은 것을 들키기에는 브랜트가 지금까지 해온것이 너무 많았다. 걱정말라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 이단은 남자의 머리끄댕이를 쥐고 방을 걸어다니는 브랜트를 보며 숨을 삼켰다. 브랜트, 나도 비위가 그렇게 막 좋은 건 아닌데. 이단의 불만에 브랜트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브랜트는 이미 이단에게 제 모든것을 들켰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부터 이단을 막 대하기 시작했다. 이단은 그 날, 처음으로 브랜트가 제 편임에 안심했다. 무척이나.
평소의 단정함과는 거리가 먼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물병을 건넸다. 처참해져버린 남자의 몸뚱이를 구두굽으로 툭툭 치던 브랜트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새끼가, 벤지를 쐈는데. 이단은 브랜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브랜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나 레지던트까지 했었는데. 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사람의 신체를 잘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브랜트는 자켓 주머니에 있던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단은 브랜트가 흡연을 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됐어?"
"금연한 지 4년?"
빌어먹을, 현장요원은 자기 흔적을 남기면 안된다잖아. 그래서 끊었어. 피투성이가 된 와이셔츠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던 브랜트는 팔을 뻗어 배트의 손잡이를 쥐었다.
"이제와서 말해봤자 네가 믿을 지 모르겠는데."
"뭐가?"
"나 싸이코패스라던가 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언제 너보고 미쳤다고 그랬던가? 별 감흥없는 이단의 대답에 브랜트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브랜트가 베트를 높게 쳐든 순간, 방으로 들어오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드물에 욕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벤지에게로 달려간 이단은 벤지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려주었지만 차마 귀는 막아줄 수 없었다. 브랜트는 베트를 던져버렸고, 이단과 벤지를 지나쳐 밖으로 걸어나갔다. 방 밖에서 대기 중이던 제인의 새된 비명소리를 들으며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벤지는 굳이 이단의 손을 치우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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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트는 미치지 않았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단지, 아무도 몰랐을 뿐.
그가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해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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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트는-
어디까지 했더라. 이단은 눈 앞에 놓여있는 싸늘한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정말 훌륭한 솜씨였다. 뻔뻔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어차피 얻어낼 정보도 없었고, 있다고 해봤자 불지도 않았을 텐데?"
"브랜트."
"이봐, 이단. 너랑 나랑 이러는 거 시간 낭비라는 생각 안 들어? 나 바빠. 오늘도 네가 박살낸 어느 나라의 어느 문화 유산을 어떻게 잘 넘어갈 수 있게 늙은이들을 구워 삶아야 한단 말이야."
이단은 다시금 눈 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는 목 정중앙, 깊숙하게 기도에 찔러진 만년필을 향해. 브랜트는 이단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씨, 진짜 아끼는 건데."
브랜트는 혀를 차며 자켓 안 주머니에 들어있던 다른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주위에 널부러진 아무 종이에 휘갈긴 글을 보며 이단은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 쳤다. [미안한데 만년필 좀 다시 가져다줘 -W. B]
이단은 망설임 없이 이제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목에 꽂혀있던 만년필을 뽑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막혀있던 기도가 뚫리며 피가 솟구쳤다. 브랜트는 진심으로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Shit, 이단. 다 튀잖아."
"바쁘다며, 가져가."
"쓸데없는 곳에서 친절하긴."
"그게 내 장점이거든."
뻔뻔한 얼굴로 말하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다시금 미감을 찌푸렸다. 곧 이단에게서 만년필을 받아든 브랜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만년필을 깨끗하게 닦아내었다.
"그런 너를 위한 선물이야."
깔끔해진 만년필을 이단의 주머니에 꽂아준 브랜트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이단은 자신의 가슴팍에 꽂힌 만년필을 바라보았다. 아끼는 거라며? 이단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단은 싸늘하게 죽어있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미안, 나도 가끔 브랜트를 막지 못할 때가 종종 있어."
마치 이렇게 돼서 참으로 유감이라는 듯 말하는 이단의 귓가로 저 문 너머로 브랜트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안 올거야? 나 먼저 간다! 이단은 만년필을 만지작 거렸다. 그래도, 브랜트잖아. 아프진 않았을 거야, 그렇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애도 아닌 애도를 표하며.
"그보다, 그 손수건 마음에 들어?"
"색이 내 취향이야."
브랜트는 오직 그 손수건으로만 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단은 그럴 때마나 넌지시 브랜트와 손수건을 번갈아 보았다. 그 날 바로 버릴 줄 알았는데. 브랜트는 그럴 때 마다 이단에게 손수건의 색이 자신의 취향이라 대답했다. 이단이 브랜트에게 선물한 손수건의 색은 짙은 남색이었다. 아마도 색이 마음에 든다는 브랜트의 말은 거짓이 아닐것이다.
"하얀색은 싫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