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레미즈 필모 형제썰. 브랜트/바튼 쌍둥이

- 답 없는 크로스오버






1.

모든 임무가 끝나고 공식적으로 자유가 된 바튼은 오랜만에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뉴욕 시에서 가장 높게 솟아오른 빌딩의 끝자락은 바튼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런 자신의 취향을 아는 그가, 부러 이런식으로 건물을 설계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이 조금 덜 피곤하기 위해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지. 이곳은 애지중지하는 활도 없이 완벽한 비무장 - 발목과 허리춤에 찬 칼들은 제외하기로 하자. -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바튼은 진심으로 자비스가 존경스러웠다. 덧붙여서 토니도 조금, 아주 약간.


"...윌?"


소란스러운 뉴욕의 출근길, 바튼은 이 곳에 있을리 없는 사람의 등장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2.

"여기는 어쩐일이야?"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쳐들어온 브랜트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바튼뿐만이 아니었다. 아머를 손보고 있던 토니도 브랜트가 왔다는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윗층으로 올라와서는 아주 반가운 기색으로 브랜트를 맞이했다. 브랜트는 그런 토니의 친절을 매우 고마워하며 타워로 들어섰다. 한 박스나 되어보이는 짐 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제발, 부탁이야."

"윌, 그니까 대체-"

"망할 IMF, 반드시 이번 날 내로 사직서를 던지고 올거야."


평소의 브랜트라면 잘 쓰지 않는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들으며 바튼은 브랜트가 또 즉발성 IMF 스트레스 증후군을 달고 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사실 브랜트가 이러는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항상 브랜트는 IMF에게 뒷통수를 당하거나 - 흔한 말로, 다 된 밥에 시말서 뿌리기 등이 있다. - 심각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졌을 때 등 제 성격상 도저히 혼자 끌어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어벤져스 타워에 급습을 시도한다. 물론 바튼은 단 한번도 그런 브랜트를 거절하거나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일지 몰라도 바튼은 그가 이렇게 타워로 와주는 것이 차라리 속이 더 편했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 누구인지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으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바튼의 예상 외 였던 것은, 토니도 그런 브랜트를 반겨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바튼의 입장에서 자신의 연인이 제 가족을 잘 돌봐준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으니 불만은 없었지만 말이다.


"항상 그렇게 말하고 못하잖아."

"......"


브랜트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토니를 올려다봤고 그제야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바튼의 뒤로 숨었다.


"또?"

"아니, 그냥."

"날 속일 생각하지마, 윌. 벌써 전화왔거든."

"대체 네 번호는 어떻게 아는 건데?!"

"네 말마따나 '이단 헌트'라며, 그래서 그런가보지.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토니, 제 개인 전화 네트워크망은 자비스가 담당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거야 그렇지. 안 그래도 저번에 한 번 뚫렸다고 그래서 한 층 더 업그레이드를 해놨는데- 모르긴 몰라도 정말 독한 사람인가봐. 자비스가 이 정도로 애를 먹을 줄은 몰랐어."

"그 인간이 또 러시아든 영국이든 위성 하나 골라잡아다가 쓰고 있겠죠."


어쨌든 난 안 갈거야, 정당하게 휴가도 받고 온 참이라고, 하며 브랜트가 던진 서류 조각을 들어올린 토니가 무슨 말을 또 하려던 찰나 바튼이 토니의 입을 손으로 눌렀다. 서류에는 떡하니 부적합 사인이 찍혀있었으나 브랜트는 현실을 무시한 채 인지능력이 바닥이 되어 있었고, 바튼은 그런 브랜트를 가여이 여겼다. 토니는 어깨를 으쓱여볼 뿐이었다.





3.

바튼은 꽤 오랜만에 입어보는 완벽한 수트 차림이 어색하기만 했다. 오랜만이라며 드레스룸에 쳐들어와 대체 언제 마련한 건지 모르는 제 몸에 딱 맞는 맞춤 정장들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코디를 해준 토니가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매줄 때 쯤 온전히 정신이 돌아온 바튼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즐거워요?"

"오, 우리 매가 말하는 '즐겁다'의 사전적 의미가 지금 공식적으로 휴가를 받아 그 기간 동안 온전히 내 것이 될 매 한 마리를 어디인지도 모르는 새장에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내 기분을 말하는 건가?"


넥타이를 다 매주고도 한참이나 바튼이 입은 정장 위로 손을 떼지 못하는 토니를 보며 바튼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요."

"언제쯤 우리 허니가 믿어줄까?"

"이 일 끝나고 나면요. 당신만 괜찮다면 윌한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싶은데요. 그 때 까지만 날 다른 사람한테 빌려주겠어요?"

"싫다고 하고 싶어."

"토니, 제 휴가는 앞으로 사흘이나 더 남았어요."


살며시 토니의 손을 들어올려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자 하는 수 없다는 듯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토니를 보며 바튼도 고개를 끄덕였다.





4.

"-그래서."


벤지는 황당한 얼굴로 브랜트와 얼굴이 똑같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플갱어라고 해도 믿을 수준으로 똑 닮은 것이, 정말이지 참으로 놀라웠다. 제인도 마찬가지였는지 쉽게 남자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윌이 쓰러졌어요. 누구 때문인지는 말 하지 않아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니 생략합시다."

"...괜찮아?"

"지금쯤 약 먹고 누워있을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었는데, 차라리 이 일을 끝마쳐주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습니다."

"지금 어디있는데?"

"안 가르쳐줘도 스스로 알아낼테지만 찾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세요, 미스터 헌트."


미묘하게 서로 칼날이 오고 가는 듯한 등골이 싸한 기분에 벤지는 적응하는 데 한참이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브랜트와 똑같은 얼굴로 저렇게 날카롭게 얘기하는 걸 듣다가는 정말 쫄려서 심장마비가 올지도 몰라. 이단은 이단대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호칭이 조금 거슬리는 듯 했다. 이래저래 쌍둥이의 힘은 위대했다고 할 수 있었다.


"클린트 바튼입니다. 클린트 브랜트라고도 하지만 그냥 바튼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제 이름에서 비롯된 그 이상의 질문은 저와 윌의 사적인 영역이니 넘어가주시길 바랍니다."

"좋아, 찾아가지 않는다고 약속할테니까 어디있는지라도 알려줘."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정한 어투로 말하는 이단을 보며 바튼은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타워에 있습니다. 스타크 타워요."

"스타크...? 토니 스타크?"

"다른 말로는 어벤져스 타워라고 하니, 얼씬도 하지 마십쇼."


어벤... 뭐? 벤지는 윌리엄 브랜트의 신상파일을 뒤지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5.

우리가 지금까지 정말, 매우, 아주 많이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와줘, 브랜트. 

이러다 IMF 날아갈 거 같아!!!!





6.

브랜트는 자신의 이마에서부터 전신으로 쫙 퍼지는 서늘한 감촉에 반짝, 눈을 떴다. 갑자기 눈을 마주친게 꽤 어색한 모양인지 토니가 헛기침을 하며 브랜트의 이마에 올려져 있던 수건을 거둬냈다.


"...고맙네요, 미스터 스타크."

"그냥 토니라고 불러. 그 얼굴로 그렇게 부르면 괜히 거리감 생긴 거 같단 말야."


토니의 말에 브랜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고마워요."

"네가 오늘처럼 타워에 찾아오는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거 말고."

"그럼?"

"좋아보여서요, 두 사람."


아, 이번엔 좀 부끄러워하는 거 같다. 브랜트는 즉각적인 토니의 반응에 몹시 즐거워하는 듯 했다. 내심 한편으로 바튼이 아주 약간 부러워졌다. 


"너도 좋아져야지."

"저요?"

"그 남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는 건 아닐 거 아냐."

"당신 눈에는 그렇게 보여요?"

"조금은."


차라리 그랬으면 속이라도 좀 더 좋게요. 브랜트는 살풋 얼굴을 찡그려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수십통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브랜트는 설마, 하는 얼굴로 토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클린트는요?"


토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7.

IMF, 팀 이단 헌트의 임무는 아주 간단했다. 도시 외곽 폐공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테러리스트 집단을 무력으로 와해시키면 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번 작전은 잠입이라던가, 정보를 빼온다거나 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은 필요가 없었고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조용히 처리를 하면 좋겠지만 애초에 이단이 이 팀에 있다는 것으로 조용히 처리하는 것을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인지 미션의 내용은 최대한 '빨리' 적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컨트롤 타워에서 계획서를 잔뜩 늘어놓고 이단과 벤지에게 진입로를 알려줘야 하는 브랜트 대신, 어디서 꺼내온건지 모르는 활을 꺼내들고 전선에 선 바튼을 보며 벤지와 제인은 황당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으나 이단은 꽤 믿음직하다는 얼굴로 바튼을 바라보았다.


미션의 시작을 알리는 폭파음이 들리자마자 소탕 작전은 시작되었고 총소리가 가득한 무법지대에 허공을 가르는 화살의 소리는 퍽, 낯설기만 했다. 벤지는 이번 일만 끝나면 브랜트에게 작살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윌리엄 브랜트의 신상정보 보고서를 꼭 들여다 보겠다고 다짐했다.


이단은 틈만 나면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쩌면 그것 덕분에 더욱 긴장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날아오는 총을 피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지금쯤 상황을 보면서, 여차하면 인이어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지를 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꽤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정말 진심으로 사과 해야겠는걸. 이단은 머릿속으로 잔뜩 성이 난 위장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 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식의 일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듯 행동하는 바튼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움직임에는 한 끗의 오차도 없었으며 그가 쏜 화살은 백발백중을 자랑했다. 이단은 부러 바튼의 곁에 붙어있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단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꿋꿋하게 바튼의 주위를 맴돌았다.


"할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냥."


바튼의 어깨 너머 달려오는 테러리스트의 다리를 맞춘 이단은 별 뜻 없다는 얼굴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너랑 브랜트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조금 불안해서."


이단은 타겟은 보지도 않고 활을 쏘는 바튼을 보며 아주 약간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바튼은 이단의 말을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하지 못했고,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이단을 바라보았다. 바튼이 이해한 절반은 이단이 자신과 브랜트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1차원적으로 아주 당연한 문제였고, 이해하지 못한 절반은 무엇이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수 초 뒤, 바튼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과는 다른 속된 말로 '네가 지금 내 앞에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지 아느냐'와 같은 얼굴을 해보였고 이단은 꼭 브랜트의 앞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윌의 위장에 구멍을 뚫었다, 이겁니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


바튼은 아주 미묘하게 얼굴을 구기며 웃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단은 바튼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아주 잘 알겠다는 뜻으로 바튼이 노리던 타겟을 쓰러트렸다.





8.

본부로 돌아온 이단의 팀을 맞이해준 것은 아이언맨과 함께 날아온 브랜트였다. 벤지는 그간 정말 미안했다며 브랜트에게 사과를 했고, 제인도 마찬가지였다. 브랜트는 아무 말 없이 웃어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또 그럴거잖아. 다 알아. 


"아이언맨이랑 같이 하늘을 나는 기분, 진짜 끝내주더라."


바튼은 드물게 크게 웃어보였다.





9.

"몸은 좀 괜찮아?"

"굉장히 오랜만에 푹 잔 것 같긴 해요."

"식사는?"

"아직."

"그럼 저녁이나 하러 가지. 따뜻한 걸로."


브랜트는 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러냐는 듯한 얼굴로 이단을 바라봤고, 이단은 조심스레 브랜트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말했다.


"네 목소리가 그리웠어."


그 날 만큼은 이단이 - 혹은 바튼이 - 벌여놓은 사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10.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랜트가 또 다시 타워로 찾아왔다. 

바튼에게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타워로 찾아온 브랜트의 옆에는 이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