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임5 스포
1.
IMF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윌리엄 브랜트는 그 결정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IMF를 유지시키는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든 작전, 모든 지휘권이 CIA로 넘어갔으며, 공식적으로 윌리엄 브랜트는 CIA 소속의 요원이 되었다. 모든 요원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윌리엄 브랜트가 IMF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다수의 요원들은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브랜트가 IMF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모자랐지만, 그가 왜 굳이 그 노력을 들였는가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IMF의 모든 것이 CIA로 일임된 직후 많은 요원들이 사직서를 내거나 권고 사직을 당했다. 브랜트는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해서든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브랜트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이라는 덧없는 희망을 품고서라도 꿋꿋이 버텨야 했다. 그것이 윌리엄 브랜트가 지닌 책임이었고, 브랜트는 그래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위해서. 지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달리고 있을 그를 위해서.
"...어디 있어요?"
그러나, 윌리엄 브랜트도 사람이었다. 브랜트는 몹시 지쳐있었다.
2.
앨런 헌리는 그런 브랜트를 가엽게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그것을 티내려하지 않았다. 그래보여도 브랜트는 꽤나 자신만의 틀이 확고한 사람이었으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헌리는 굳이 브랜트를 낮잡아보지도, 과대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IMF의 윌리엄 브랜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3.
암암리에 윌리엄 브랜트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가 IMF를 존속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렇게 CIA의 밑으로 들어가게 될 줄을 몰랐다고 하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천하의 윌리엄 브랜트가, 라는 말로 시작된 소문은 밑도 끝도 없이 퍼졌다. 이쯤되면 당사자의 귀에 안 들어갈리 없겠지만 브랜트는 그 뜬소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무시해버렸다. 사실은 무시하고 싶었다.
4.
브랜트에 대한 소문은 조금 잠잠해졌다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누가 악의적으로 브랜트의 험담을 퍼트린다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러나 브랜트는 그런 소문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은 모든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며, 요새들어 대부분의 요원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 지 정도는 척하면 척이다. 까라면 까라지. 브랜트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히 해명하고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브랜트는 딱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죽고싶다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목숨을 끊고 싶다, 가 아닌 그냥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다섯시간만이라도 편히 눈을 붙이고 자고 싶다는 뜻이었다. 브랜트는 그럴 정도로 심각하게 피곤했다.
5.
며칠만에 만난 벤지는 온갖 스트레스성 질병을 달고 있었고, 브랜트는 기어코 링거를 맞아야만 했다.
6.
윌리엄 브랜트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인가. 벤지는 브랜트의 인내심이 진작 끊겨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낯짝으로 국장에게 웃어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벤지는 브랜트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이단을 만나기 바로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벤지까지 CIA를 탈주한 마당에 브랜트의 골은 날로 더 깊어만 갔다. 물론 이것에 대해 두 사람을 딱히 탓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번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만 될 수 있다면 두 사람을 진심으로 환영해 줄 의사도 있었다.
"설마 그 두 사람을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거 아냐?"
"아무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지나쳐가는 요원들을 보며 브랜트는 실컷 비웃고 싶었다. 내가 걸리지 않는 이유가 뭔 줄 알아? 너희 조직력이 형편없어서 그래. 국장이라는 사람은 괜찮더만. 물론 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했다가는 그 국장이 자신을 사무실로 부를지도 모르니 브랜트는 잠자코 입을 다물기로 했다.
7.
"미안하지만 나한테 볼일이 없다면 이만-"
"초고속 승진의 비결이 뭡니까, 에이전트 브랜트?"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브랜트는 자신보다 한참은 더 큰 남자를 올려다봤다. 진심으로, 담배가 고프다. 담배를 끊은 지 이제 겨우 3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 담배를 핀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크로아티아 임무 이후로 끊었다.- 이런 꼴이면 정말 한 대 피우고 싶다. 아, 담배. 담배.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그냥요. 당신이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싶어서요."
"용감하네."
"뭐?"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물었다며. IMF 국장 대리였던 사람입니다. 됐습니까? 할 말 없으면 지나가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바쁘거든요. 여기서 다른 요원에게 시비터는 어느 CIA의 요원과는 다르게."
"이게-!"
정말이지, 진부하고 유치한 드라마가 따로 없군. 얼굴 한 방이면 끝나려나. 브랜트는 얼마든지 지금 눈 앞에 있는 요원의 -다리든, 팔이든, 목이든. 그 어느곳이라도- 부러트려줄 능력도, 용의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상한 소문이 퍼지질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용 샌드백이 되는 건 더 이상 사양이었다.
"자네들,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
브랜트는 고민에 빠졌다. 이게 과연 좋은 타이밍일까, 아니면 나쁜 타이밍일까.
8.
무시, 또 무시. 브랜트는 다음생에 부처로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 외에는 모든 것을 무시하며 살았다. 전 IMF의 수석 분석요원이 이젠 CIA 국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느니, 하는 퍽이나 그럴듯한 소문에 브랜트는 헛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이제 나도 슬슬 CIA를 탈주할 때가 온 것 같은데. 브랜트는 꿈과 같은 생각을 하며 오늘도 밀린 서류 더미에 도장을 찍었다. 이단은 여전히 CIA에게 쫓기는 신세였으며 브랜트는 할 수 있는 만큼 이단의 백업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브랜트는 그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불만이라면 딱 하나, 왜 아직도 빌어먹을 이단 헌트가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해서 이 거지같은 곳에, 아직도, 자신을 남겨두고 있는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부탁이니, 나 좀 구해달라고요.
이단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다음 미션에서 허가 없이 타국의 위성을 사용한다고 해도 웃으며 봐줄 수 있었다. 과연, 다음 미션이라는 게 존재할지조차 의문이었지만.
9.
사고쳤다.
10.
"대체 왜 그런건가, 브랜트."
"......"
"지금까지 잘 무시 했잖아. 자네는 좀 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한 요원인 줄 알고 있었네만."
브랜트는 태연한 얼굴을 하며 엄지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었다. 일종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처사였다. 헌리는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짐짓 엄한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다. 브랜트는 언젠가 헌리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써줍니까? 그거 참 고맙네요. 브랜트는 다소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감싸주실 필요 없습니다."
"에이전트 브랜트."
"위원회 열 거면 여십시오. 손해배상 청구 한다고 하면 하라고 그러십시오. 저라고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습니다."
"이단 헌트 때문인가?"
그래, 그 이름. 이젠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의 이름.
브랜트가 무시할 수 있는 소문의 수준은 어디까지나 브랜트,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브랜트는 심지어 그 철 없는 어른들이 막말로 지껄이는 모든 말을 참고 참으며 견뎠다. 브랜트나 이단, 그의 팀이 얻은 결과는 순전히 운이 아니다. 브랜트는 그것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자신들이 피땀흘려 얻은 그 평화를 순전히 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박한 처사 아닌가.
"그래서 그 이단 헌트는 어디 계시는 건데?"
"애초에 서류나 보고 도장이나 찍으며, 자리나 지키고 있는 당신이 '그' 이단 헌트의 밑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야?"
"다른 방법이 있어? 왜, 이단 헌트 취향이야? 전설적인 요원의 취미 생활이 그런 거야?"
첫째, 이단 헌트가 어디 있는지는 윌리엄 브랜트, 자신이 묻고 싶으며
둘째, 윌리엄 브랜트는 단순히 책상에만 앉아있는 사무요원인 것은 아니며
셋째, 이단 헌트의 취향은 저도 모르며
넷째, 이단 헌트의 취미생활은 접근 금지된 구역에 침입하기, 기분에 따라 위성 골라쓰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배상액을 다섯배로 불리기다, 이 개새끼야.
브랜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요원에게 각각 전치 6주, 7주, 12주의 진단서를 선물해주었다. 그 자리에 막 도착한 헌리는 굉장히 후련하고 깔끔해보이는 브랜트의 얼굴을 보며 기가 막혀 말도 하지 못했다.
11.
윌리엄 브랜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아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 누구도 다시는 브랜트를 서류나 들여다 보는 앉은뱅이 취급하지 않았으며, 그가 어떻게 이단 헌트의 팀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알아서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다른 의미의 소문이 점차 퍼지기 시작했으나, 브랜트는 이번에도 무시하기로 했다. 역시 소문이라는 것은 딱히 믿을 게 못된다. 아, 하나 믿을 건 있다.
이단 헌트는 정말 전설적인 요원이다. 브랜트는 그 소문 하나 만은 착실하게 믿고 있었다.
12.
그럼에도 청문회는 열렸다. 브랜트는 그들의 진단서에 몇 줄 더 추가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뛸듯이 기뻤다. 이단이 공공기물을 하나도 부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13.
청문회는 억소리가 나올 정도로 브랜트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을 변론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그 스스로 준비했으며, 이제껏 윌리엄 브랜트가 받아온 억압과 차별에 대한 문제점등을 역설하며 당당하게 승자가 된 브랜트는 그들의 진단서에 감봉 혹은 강제 부서 이동이라는 문구를 써 넣으며 펜을 던져버렸다.
브랜트가 제시한 자료를 보며 헌리는 혀를 찼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모든 청문회가 끝난 후 헌리는 브랜트의 자료를 토대로 관련된 모든 인물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브랜트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굉장히 오랜만에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헌리는 브랜트를 위해서라도 그 모든 자료를 비공개에 부쳤고 국장의 승인 없이는 열람조차 불가능하도록 설정해놓았다.
14.
두 발 뻗고 자긴 개뿔.
이단 헌트를 찾았다.
15.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후, 벤지는 그간 있었던 일을 우연치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브랜트의 청문회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 애초에 국장의 승인 같은 것이 이들에게 소용이 있을리가 없다는 사실을 헌리는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
그 자리에는 이단 헌트도 함께 있었는데, 벤지는 이것이 아주 크나큰 실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16.
브랜트의 자료에 있던 요원,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죄목이 엄중해 보이는 요원이 한 명 실종처리 되었다.
브랜트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벤지는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러나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17.
모르긴 몰라도 이단 헌트의 취향은 윌리엄 브랜트라는 사실을 브랜트만 모른다. 벤지는 그렇게 기록했다.
18.
IMF는 무사히 재건되었고, 브랜트는 그제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그 날, 그 방 침대 위에 있던 사람은 브랜트 혼자만은 아니었다.
19.
누가 몰라?
20.
모르는 척 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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