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어느 날 아침 브랜트는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 2시간도 전에 눈을 뜬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은 모름지기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자는 것이 제일이다. 남은 2시간이라도 더 자기위해 자리에 눕는 브랜트의 팔에 뭔가가 걸려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브랜트는 눈을 비비며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브랜트는 가만히 눈을 꿈뻑꿈뻑 거리며 생각한다. 이 인간이 여기 왜 있더라. 브랜트는 뒤통수마저 잘생겨보이는 이단의 뒷태를 천천히 감상한 후, 그 자리에 누웠다. 아, 참. 내 애인이지, 이단 헌트. 브랜트는 그대로 이단의 허리에 팔을 올리며 그를 꼭 껴안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잠결에 큰 인형을 끌어안듯이. 그러자 그가 부드럽게 브랜트의 팔을 쓰다듬었다. 브랜트는 곧 다시 잠들었다.




2.

"현미는 싫은데."


드물게 이단이 투정을 부린다. 브랜트는 여유롭게 커피를 끓이며 이단의 앞에 시리얼 그릇과 우유를 놓아주었다.


"현미가 건강에 좋아."


적당히 시리얼을 붓고 우유를 따르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무심코 그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3.

"오늘도 놓고 왔어?"


브랜트의 말에 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가지고 다닌 적도 없는 게 사실이지만 브랜트도 그걸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제발 좀 가지고 다녀라. 이단은 브랜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경비를 서고 있는 직원에게 사원증을 내미는 브랜트가 이단을 가르키며, 이 사람은, 아시죠? 하고 물으면 직원은 가볍게 웃어보인다. 하긴 누가 모르겠어. 비아냥이 다분한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다. 어차피 네가 있잖아. 브랜트는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4.

오랜만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셔츠 위로 넥타이를 매주는 손길이 간지럽다. 이단은 충분히 스스로 넥타이를 맬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브랜트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사무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넥타이나 핀을 고르는 눈은 탁월하다. 그저께도 이단의 넥타이는 브랜트가 매주었다. 살짝 아래에서 꼼지락 거리는 그 손가락이 너무 귀여워 무심코 정수리에 입을 맞추다가 목이 졸릴 뻔 했다.


"장소는 가리지, 미스터 헌트?"


싫은데. 그러나 이단은 알았다고 했다.




5.

"가끔 애 같아."


브랜트는 이단의 입술에 묻은 크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주었다. 생긴 거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고급스러운 이름의 원두를 씹어먹게 생겼으면서, 정작 마시는 거라고는 휘핑 크림이 잔뜩 올라간 초코프라페라니. 그것도 갭이라면 갭이지. 브랜트는 이단의 손에 들려 있던 컵을 빼앗아 입에 대보았다. 입을 대자마자 혀가 다 얼얼할 정도로 단맛이 느껴져 금새 이단의 손에 다시 쥐어준다. 

이단은 조심스럽게 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브랜트의 손을 확, 잡아당겼다. 엄지 손가락을 한꺼번에 입 안으로 가져가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가지고 있던 서류 더미로 이단의 머리를 치려다 말았다. 아무도 없으니, 뭐. 


"단 건 기분 좋거든."


그래, 네 표정 정말 좋아보인다. 맞닿은 입술에서 초콜렛 맛이 잔뜩 묻어났다.




6.

늦은 저녁, 브랜트의 기분은 최악이다. 이단은 브랜트의 눈치를 본다. 애초에 브랜트가 국장에게 깨지는 것은 순전히 자신이나 벤지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제껏 브랜트는 진심으로 이단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딱 한번, 이단은 브랜트가 정말, 매우 진심으로 화를 낸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차라리 두바이의 고층 빌딩을 오르는 것을 택할 정도로 무서웠다. 진심이다. 브랜트는 솔직하다. 이단에게는 더더욱 솔직하다. 그리고 너그럽다. 그래서 무척이나 이상적인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대 맞을 것을 각오하고 브랜트의 등 뒤로 가 가볍게 그를 껴안으면 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럼 브랜트의 화가 반은 풀린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나름의 필살기를 쓴다. 브랜트는 간지럼을 유독 잘 타는 타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하지, 마, 푸흐, 으아, 하, 야! 악!"

"네, 네."


브랜트의 몸을 한 번에 안아든 이단은 침대로 뛰어들었다. 크게 한 번 출렁일뿐 끄떡없는 매트리스를 보며 남자 둘의 체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침대를 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 브랜트의 의견이었다. 그는 현명하다. - 브랜트의 머리에 베개를 잘 대어주고는 이단은 천천히 브랜트의 발을 주물러주었다.


"이제 좀 괜찮아?"

"네가 날 집어 던졌을 때부터 괜찮았어."


그래서, 거기 계속 있을거야? 장난스럽게 웃는 브랜트의 얼굴을 보며 이단은 잠시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브랜트는 무척이나 솔직하다. 이단은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7.

브랜트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공과 사는 적절히 구분할 줄 알며, 공적인 일에는 절대로 사적인 일을 개입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브랜트는 이단에게 있어서 최고의 특효약은 순전히 그와 자신의 프라이버시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가 계획대로만 해주면 뭐든 해줄게."

- 뭐든?

"올라타줄까?"


이단 헌트는 절대로 멍청한 남자가 아니다. 브랜트는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려 애썼다.




8.

이단은 서류를 싫어한다. 검은 글씨가 빽빽하게 써 있는 종이뭉치를 싫어했다. 이상하게 서류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사고가 난다. 이단은 쓰라린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이러니까 서류가 싫다.


"어디 아파? 종이에 손을 베이다니."


총알도 피하는 사람이. 브랜트의 말에 이단이 쓰게 웃었다. 그러게나 말이야. 어련히 알아서 아물겠지, 하는 이단의 생각과는 다르게 브랜트는 이단의 손가락을 바로 입에 물었다.


"천하의 이단 헌트가 파상풍에 걸릴일은 없을테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뭐."


찔끔, 나온 피를 싹 핥아주고는 반창고를 붙여주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반창고에는 미키마우스가 알록달록 그려져있었다. 이단은 뒤늦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9.

첩보 요원이, 주말에 맥주를 마시며 보는 첩보 영화란. 브랜트는 영화가 나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단의 눈에는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는 영화라 영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장면에서는 브랜트도 영 미심쩍은 눈초리로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비행기 날개에 매달려?"

"-흠."


이단은 그게 자신이 하게 될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10.

문득, 늦은 밤 이단은 눈을 떴다. 이상한 긴장감이 온 몸을 덮쳤다. 안 좋은 버릇이다. 평화가 찾아오면 이상하게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은 늘 습관처럼 자신을 덮친다. 그녀가 죽기 전 날도 그랬지. 이단은 화사하게 미소짓던 자신의 제자를 떠올렸다. 한참이나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자 브랜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단은 차마 브랜트를 신경써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미안함이 앞섰다. 그러나 브랜트는 이단이 무어라 말을 뱉기도 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단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느리게, 느리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좀 전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불안함이 가시는 것을 느낀다. 


"괜찮아?"


이단은 브랜트의 심장 위에 입을 맞췄다. 아주 잠깐이지만 입술에 맞닿은 피부가 따뜻하다.


"다시 자자."


그 날 아침까지, 이단은 브랜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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