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트는 이단을 좋아함. 고백도 했었음. 이단은 그런 브랜트를 정중하게 거절했고, 브랜트는 알았다고 그렇게 돌아섬. 팀 내에서 문제 일으킬만한 건 만들지 않겠다고 평소와 다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괜찮아보이네, 할 뿐 별 다른 마음은 없었음.
벤지는 브랜트를 좋아함.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음. 이단에게 한 번 고백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준 것도 자신이고, 고민상담은 물론이고 조언까지 열심히 해줬음. 브랜트를 좋아하니까, 브랜트가 이단이랑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단이 거절을 한 거지. 그 뒤로 벤지는 뒤에서 브랜트를 많이 챙겨줬음. 보나마나 브랜트는 여전히 이단을 좋아하고 있을거고, 포기하지도 못하겠지. 그렇지만 거절당했으니 더 나서지는 못할 거고. 그게 그냥 다 안쓰러워 보였음. 솔직히 자기 아니면 챙겨줄 사람도 없고, 브랜트 성격에 열심히 곪고 곪기다 썩어문드러질 거 같아서 그게 걱정인 것. 그래서 굳이 식사 안하겠다는 브랜트 데려다가 밥도 먹여주고, 기분전환 하자고 드라이브 가자 그러고 브랜트를 열심히 챙겨줬음.
브랜트는 벤지의 마음을 모르지 않음. 알고 있으나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거야. 언제 한번은 술을 잔뜩 마시고는 벤지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음.
"넌 내가 이단을 좋아하는데, 그래도 날 그렇게 챙겨줄 마음이 들어?"
"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아니잖아."
"벤지."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내가 이렇게 한다고 네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야. ...후,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는 널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강요는 안 해. 네가 이단에게 네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바보네."
"누가 누구한테 바보라는 거야? 그럼 넌 이 세상 제일 가는 멍청이야."
브랜트는 그런 벤지가 너무 고마웠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 벤지는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었음.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는 이상 다른 애인을 만날 일은 없었고 - 그게 자신이 아니더라도 - 결과적으로 브랜트의 옆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벤지였음. 이단은 현장일로 바빴으니까. 벤지도 물론 현장요원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브랜트의 보조 및 팀 내의 서포트 역할을 하기로 했지. 그래야 브랜트의 옆에서 브랜트를 지켜볼 수 있으니까.
벤지가 브랜트를 좋아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였음. 그 전에도 호감은 차곡차곡 쌓였겠지. 같은 팀원으로서의 동료애? 같은.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 그 얼굴이, 이단의 존재 하나만으로 표정 변화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는 게 너무 신기했음. 그러다 문득 그게 왜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좋아지게 된 거임. 그러나 벤지는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도, 고백하지도 않았음. 그러나 브랜트는 알겠지. 원래 같은 처지에 놓인 비슷한 사람은 다 알거야.
브랜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이 이단을 대했고, 이단은 그러려니 했을 뿐. 벤지는 그런 이단이 부럽고, 동시에 미웠지.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막상 이단과 브랜트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행인가? 같은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보였지. 그래도 그 모든 걸 다 억누를 수 있을 만큼 브랜트가 좋았음.
근데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잖아. 하루 하루 잘 버티던 브랜트가 어느 날 부터 부쩍 야위어가기 시작하고 술도 많이 마시기 시작했음. 술을 마실 때에는 벤지가 브랜트의 곁에 있어줬고, 벤지는 브랜트가 차라리 이단 욕이라도 하던가 뭐 그러길 바랬음. 그렇지만 브랜트는 아무 말 없이 정말 술만 주구장창 마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마신 거 같아서 벤지가 브랜트를 말리려고 하던 찰나 브랜트의 마음이 둑이 무너지듯 철철 넘쳐 흘렀어. 정말 너무 서럽게 모든 걸 토해내듯 우는데 벤지도 가슴이 먹먹한거야. 정말 너무 아프게 우는 브랜트를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음. 벤지는 차라리 내 마음을 받아주면 좋겠어, 라는 말도 하지 못했지. 이렇게 울 정도로 이단을 좋아하잖아. 브랜트가.
그렇게 떡이 되도록 마신 브랜트를 부축해서 침대에 옮겨 놓는데 일어나려는 벤지를 브랜트가 잡아당기고는 그 위로 올라탔음. 벤지는 그냥 브랜트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음.
"벤지."
"왜?"
"내가 하자고 하면 할래?"
벤지는 온 몸에 힘이 쫙 다 빠져버렸음. 사실 그건 브랜트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 중 하나였으니까. 자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는 실실 웃는 브랜트의 팔을 잡아 당겨서 순식간에 위치를 역전시킨 벤지는 브랜트의 입술에 그냥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을 뿐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브랜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굴었지만 벤지는 그냥 짧은 입맞춤만 하고는 브랜트의 옆에 드러누웠지. 마치 곰인형을 안듯이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술냄새 너무 많이 난다."
"벤지."
"브랜트."
"응."
"난 너와는 이런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아."
"무슨 관계?"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차라리 그럴바엔 네 연애 상담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베스트 프렌드가 좋아."
브랜트는 그제야 벤지의 품에 안겨서 계속 미안하다 말했음. 브랜트도 그제야 안 거지. 자신이 한 행동은 절대로 벤지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계속 미안하다 말하는 브랜트의 등을 토닥이면서 벤지는 괜찮다고 말했음. 괜찮아, 그러니까 그만 울어. 못생긴 얼굴 더 못 생겨질거야. 그런 말에도 묻어나오는 다정함에 브랜트는 너무 울어서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지.
"넌 왜 나 같은 걸 좋아해서."
"아니, 그건 아니지."
"뭐가?"
"내가 좋아하는 건, 멋지고 섹시하고 일 잘하는 IMF의 수석 분석 요원 윌리엄 브랜트라고. 여기 지금 내 품에서 질질 짜고 있는 울보가 아니라."
벤지의 말에 브랜트는 울음을 그치고는 힘 없이 웃어 보였어. 벤지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지.
브랜트는 그 날 이후로 다시금 일 잘하고 멋있는 IMF의 수석 분석요원의 모습을 되찾았음. 그리고 벤지와 더 돈독한 친구가 되었지. 벤지가 브랜트를 브랜트가 아니라 윌리엄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벤지가 브랜트를 윌리엄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브랜트는 그럴거면 윌리라고 부르지? 할 정도로 농담 따먹기도 잘 하고 여기저기 같이 놀러다니고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처럼 굴었지. 벤지는 그걸로 만족했고, 브랜트도 딱히 아무 말 하지 않았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이단은 둘이 많이 친해졌네, 했을 뿐.
그러다 어쩌다 벤지랑 브랜트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아니냐는 뭐 일종의 루머 비슷한 것이 돌았고, 이단은 그랬지. 잘 어울려. 브랜트는 이단의 말에 내가? 벤지랑? 그러면서도 좋은게 좋은거지, 이런식으로 말했는데 정작 벤지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어.
"웃기지마!"
"...벤지?"
"너는, 너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벤지."
화를 낼듯 말듯 애매한 벤지의 모습에 브랜트가 벤지의 손을 잡았고, 벤지는 겨우겨우 화를 삭혔지만 분이 가시지 않았음. 브랜트는, 널 좋아한다고. 내가 아니라, 이단 헌트. 바로 너 말이야!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 벤지는 이단을 만난이후 처음으로, 이단이 너무 싫었어. 그러나 브랜트를 위해서 그래서는 안됐어. 벤지는 열심히 속으로 화를 삼켰지. 그 때부터 이단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 뒤로 브랜트는 아주 천천히, 서서히 IMF에서 사라져갔으면 좋겠다. 벤지는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 다름아닌 자신이 도운 일이니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브랜트가 IMF를 떠나는 것에 대해 두 팔 들고 반대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브랜트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지. 그렇게 브랜트는 벤지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IMF에서 지워갔어. 부서 이동이라던가, 말이 은퇴지 사실상 탈주나 다름없는 모든 과정을 벤지가 옆에서 도왔고 퇴직금도 일찍 당겨받을 수 있도록 수를 다 써서 브랜트가 IMF를 뜰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주었지. 그리고 사라진 IMF의 수석 분석 요원의 자리를 대신할 분석 요원이 팀에 배정되었을 때 이단은 벤지에게 브랜트의 행방을 물었지만 벤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음.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며. 그건 브랜트의 부탁이었고, 벤지의 진심이었음.
브랜트는 도시 외곽,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적당히 넓은 집을 구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신분 세탁이야 껌이고, 그것도 다 벤지가 도와줬고. 아예 벤지가 자기 사촌의 이름으로 집도 구해다주고 계좌도 깨끗하게 세척해주고 모든 걸 다 해줬음. 그리고 그 보상이라고 해야할지 벤지는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나 브랜트에게 올 수 있었고, 브랜트는 그런 벤지를 마다하지 않았음. 오랜만에 만나면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맞이하듯 벤지를 맞아주었고, 이틀 사흘 자고 가도 네 빨래는 네가 네 손으로 하라며 구박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지.
이단은 브랜트를 찾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해도 찾을 수 없었고, 벤지는 능청스럽게 모른다고 했지. 오히려 이제와서 왜 브랜트를 찾는건데? 라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음. 그 때쯤, 브랜트는 이상하게 야위고 말라갔지. 벤지도 이상함을 느꼈을 때 쯤, 브랜트는 고백했음.
"몰라, 무슨 병이래."
"뭐?"
브랜트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으나 벤지는 충격 그 자체였음. 병이라니? 무슨 병? 고칠수는 있대? 이것저것 물어보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는 웃으면서 말했음.
"병원 잘 다니면 고쳐진대."
그래서 내일부터 병원 다녀. 예약도 다 해놨어. 으, 뼈 빠지게 돈 벌어놨더니 병원비로 다 날리게 생겼잖아? 라면서 투덜거리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너무 불안했음. 자기도 같이 병원에 가자는 벤지를 말린 건 브랜트였음. 싫어.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브랜트 때문에 벤지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음.
"진짜 괜찮다니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너한테는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 건강하고 섹시한 모습만 보여줘야지."
벤지는 당장에라도 병원 서버에 접속해서 브랜트의 의료 기록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브랜트랑 약속했음. 나 진짜 거짓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 거짓말 탐지기라도 받을까? 하며 말하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브랜트를 믿기로 했음.
그러나 대부분이 그러하듯, 브랜트는 아주 아픈 병을 가지고 있었음. 병원을 열심히 다니면 나을 수 있는 병이긴 했지만 치료가 너무 힘들고 독한 병이었음. 환자 본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치료 조차도 시도해보기 힘들정도로. 처음에 브랜트는 자기가 그런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지. 브랜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던 일이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이단에게 혐오받는 것. 둘째로는 벤지조차 제 곁에서 사라지는 것. 셋째로는 윌리엄 브랜트가 더 이상 윌리엄 브랜트가 아니게 되는 것.
최근 브랜트는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자신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음. 여전히 이단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벤지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브랜트는 스스로를 경멸하다 싶이 했음. 벤지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최악의 등신이네, 상등신. 브랜트가 벤지에게 말한 것은 거의 다 사실이었으나 완벽하게 고치기 힘들다는 사실은 숨겼지. 그리고 엄청 고통스럽다는 의사의 말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어. 이제까지 벤지는 자기 때문에 얼마나 아팠겠어. 그래서 브랜트는 자기가 벌을 받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이왕이면 포기하지는 말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그렇지만 치료는 정말 너무 아팠고, 이게 병을 낫게 하는건지 병을 더 악화시키는 건지 모를정도였음. 하루 걸러 하루꼴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가 일쑤였고 잠도 많이 설치고. 그리고 기어코 벤지가 병실에 누워있는 브랜트를 발견했을 때, 브랜트는 웃었지. 들켰네.
"미안해."
"......"
"살아보려고, 널 위해서라도 살아보겠다고 노력했는데."
"윌리엄."
"진짜 너무 아프다."
그래도 브랜트는 치료를 계속 하겠다고 했고, 벤지는 매일같이 브랜트와 함께 병원에 왔음.
그러던 어느 날, 미션 때문에 어떻게 해도 브랜트가 있는 병원에 갈 수가 없게 되었음. 벤지는 브랜트에게 전화로 못 가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음. 브랜트는 나 너 없이도 치료 잘 받으러 다녔었거든? 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음. 그렇지만 벤지는 너무 불안한거야. 최근 브랜트의 상태는 좋다고는 절대 말 못하니까. 그리고 그 대화를 이단은 다 듣고 있었어. 전화를 끊은 벤지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단을 보며 말을 삼켰지.
"누구야."
"......"
"벤지."
이단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절실함마저 녹아있었지. 벤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이단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음.
"내가, 내가 이번 미션 반드시 성공시켜 보일테니까."
"......"
"윌리엄한테 가. 지금 당장."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은데, 지금 아니면 못볼지도 몰라.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음. 그저 제 손에 쥐어진 벤지의 핸드폰을 꼭 쥐어보일뿐. 그러나 이단은 가지 않았음. 빨리 가라니까!! 소리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말했지.
"브랜트가 기다리는 건 내가 아니야, 그렇지?"
"이단."
"가도 같이 가."
"늦을지도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끝내야지."
죽을힘을 다해서. 이단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고, 벤지는 그런 이단을 보며 자신도 각오를 굳혔음.
"그리고 일을 내팽개치고 갔다가는, 브랜트한테 엄청 깨질거야."
브랜트는 말 그대로 고비를 겪고 있었으나 그래도 어떻게든 그 고비를 넘기고는 병실에서 눈을 떴음.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피투성이의 인간 둘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며 웃었지.
"둘 다 꼴이 그게 뭐야?"
"미안해, 좀 급하게 오느라."
"나도 빨리 씻고 싶은데 냄새나도 좀 봐줘, 윌리엄."
브랜트는 이단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묻지 않았음. 그냥 오른쪽에 있는 이단이랑 왼쪽에 있는 벤지 보면서 실실 웃을 뿐이었음. 그 날 우선은 퇴원 해도 괜찮다는 의사의 허락을 맡고 브랜트는 이단과 벤지와 함께 집으로 왔음. 이단이 브랜트를 업고 가고 벤지가 브랜트의 짐들이랑 진단서, 약 등등을 챙겨서 갔음. 등에 업혀서 가는 브랜트는 거의 잠에 취에 있었고 이단은 너무 가벼운 브랜트의 몸무게에 벤지를 보며 물었음.
"언제부터 이랬어?"
"반 년 전부터."
"너는 그걸 다 알고 있었고."
"너한테는 말하기 싫었어."
"왜, 라고 물어보면 말해줄거야?"
"나는 브랜트를, 브랜트는 너를 좋아하니까."
의외로 털털하게 말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
"내가 이제와서 브랜트를 좋아한다는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아."
"......"
"너나 브랜트나,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래."
벤지는 이단과 브랜트를 번갈아볼 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음. 그 뒤로 브랜트는 이단과 벤지와 함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 벤지는 브랜트에게 네가 이단을 아직도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고 했음.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지. 브랜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 잘했어. 그리고 그런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을 보며 이단이 웃으며 말했지. 밥 먹을 사람? 브랜트, 너는 약 먹어야 하니까 꼭 먹어.
이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 브랜트가 자신을 숨기고 잠적했다는 사실도,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는 것도. 그저 벤지와 함께 묵묵히 브랜트의 곁을 지킬 뿐이었지. 브랜트는 그게 불편하다가도, 이젠 자포자기랄까. 식탁 왼편에 이단이랑 벤지랑 앉아있고 오른편에 자기가 앉아있는 상황이 너무 웃겨서 밥 먹다 말고 킬킬 거리면서 웃었는데, 벤지랑 이단도 따라서 웃었지.
"진짜 이상하다."
"그러게."
"이제 이단이 벤지를 좋아하면 완벽하네?"
"어우, 소름 돋았어."
브랜트는 전과 다르게 자신이 이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꾸밈없이 표현하였고 벤지도 자기가 브랜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지. 굳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도 없고, 외길에 서 있는 느낌도 없이 편안하게. 이단은 점점 더 브랜트에게 헌신하다 싶이 굴었고, 벤지는 그게 싫지 않았음. 원래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던 거니까. 셋이서 밥을 먹는게 익숙해질 무렵 벤지는 천천히 브랜트의 집으로 들이는 발걸음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음. 브랜트의 곁에 이단이 있는데 자기가 그 사이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다급한 얼굴로 이단이 벤지를 붙잡겠지. 빨리 브랜트의 집으로 오라고. 벤지는 브랜트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 건지 급한 마음에 헐레벌떡 달려갔음. 집으로 돌아가니까 브랜트의 얼굴이 정말 말이 아닌거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또 아파? 하니까 브랜트는 아프다고 그러겠지.
"너 안 오는 날에는 병원 안 갔어."
"미쳤어?!"
벤지는 브랜트와 이단을 번갈아보며 경악에 찬 얼굴로 물었고 이단은 꽤 어두운 얼굴로 벤지를 바라보았음. 저 얼굴은 진짜로 브랜트가 병원에 안 갔다는 소리였음. 벤지는 대체 브랜트가 왜 그런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고, 브랜트는 웃으면서 말했음.
"같이 가자."
"...왜?"
이제 나는 없어도 되잖아. 네 곁에는 이단이 있잖아. 벤지는 브랜트가 자신을 동정하지 않아줬으면 했음. 이제까지 자신이 브랜트에게 쏟은 헌신은, 순전히 브랜트를 좋아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에 보상을 바란 적은 기필코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세 가지가 있어."
"......."
"하나는 이단 헌트에게 경멸 당하는 것. 또 하나는,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것. 마지막 하나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
"윌리엄."
"벤지."
"그래, 말해."
"미안해."
벤지는 브랜트가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게 싫었음. 그럴 때 마다 브랜트의 마음은 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옆에 있어봤자 브랜트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만들었으니까.
"나, 너 많이 좋아해. 진심으로."
브랜트의 말에 벤지는 무심코 이단을 바라보았음. 이단은 웃고 있었고, 브랜트는 벤지를 타박했음.
"내가 너 좋아한다는데 이단은 왜 봐?"
"그, 그렇지만..."
"그래, 맞아. 나 아직 이단'도' 좋아해."
"......"
"최악이지?"
벤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지.
"정말 너 답다."
"그래?"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윌리엄 브랜트다워."
어느것도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런, 점이.
"난 너희 둘 다 좋아."
"아, 소름 돋았어."
벤지의 말에 이단의 표정은 정말 그러기냐며 일그러졌고, 브랜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음. 빨리 병원에 가자는 벤지의 말에 알았다고 말했음.
"오늘 저녁 당번은 네가 해."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래, 알았어."
이단의 등에 업혀서 한 팔로는 이단의 목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벤지의 손을 붙잡고 가는 브랜트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보였지.
트위터에서는 떠든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중심과 오른쪽, 왼쪽 양 날개의 균형이 잘 맞는 삼각관계를 참 좋아한다.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귈 수 있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잘 지내는 그런 그들만의 세상 같은 것.
브랜트를 중심으로 이단과 벤지가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삼각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꼭 이단의 적수일 필요는 없는거니까.
공존의 세상에서는.
브랜트에 대한 독점욕도 물론 있지만, 공생도 충분히 가능한 세 사람이 보고 싶었음.
벤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다정할 거 같다. 남들이 등신같다고 욕하는 다정함이라도. 그 사람이 제일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옳은 길을 제시해주고,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는 가슴 아픈 결과가 되더라도 그렇게 하라고 응원해주는 그런 사람.
벤지와 브랜트 위주라 이단의 감정선이 매우 애매한데, 처음 이단이 브랜트를 거절한 것은 그냥 보통의 평범한 이유임. 이단의 눈에 브랜트는 연애 대상이 아니었음. 그렇다고 지금와서 연애 대상으로 바뀐거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닌것... 그냥 어느 순간 브랜트가 사라지고,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 고백했던 브랜트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브랜트는 절대로 이단에게 제 마음을 강요한 적 없고, 질척거리게 남은 것도 아니고 담백하고 깔끔하게 멀어졌다면 오히려 이단이 다시금 브랜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함. 그리고 실제로 아픈 브랜트를 봤을 때 느꼈겠지. 이대로 끝내면 안된다고. 이게 연애감정이든 아니든 그런 건 하등 상관이 없는거야. 그냥 윌리엄 브랜트 라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 같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더욱 그렇기에 벤지와 공존할 수 있다고 봄.
뭔 속풀이가 이렇게 기냐...
암튼 그렇게 셋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이단브랜벤지 보고 싶다. 브랜트의 병은 앞서 충분히 풀어놨다싶이 충분한 치료를 통해 치료가 가능한 병이니까. 해피엔딩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