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튼은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괜찮을 거 같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어떻게든 타워에 기어서라도 올라왔다. 마음같아서야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바로 윗층인 자신의 둥지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꿀같은 단잠 뒤 찾아올 후폭풍이 귀찮았다. 무섭다기 보다는 명백히 귀찮았다.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주제에 어찌나 사람을 그렇게 귀신같이 피곤하게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어찌됐든 꽤 오랜만에 만나는 하나뿐인 연인의 얼굴이니, 바튼은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도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스타크씨."


언제부터인가 스타크의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 바튼을 보며 자비스는 어서 오라며 당연하다는 듯 인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답이 없는 텅 빈 공간을 두리번거리던 바튼이 결국 자비스를 불렀다.


"스타크씨는?"

- 잠시 할 일이 있으시다며 나가셨습니다, sir.


분명 그라면 자신이 오늘 돌아온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냈을텐데. 바튼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있는 뉴욕시의 광활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주먹으로 한 번 치면 와장창 다 부숴져버릴 것 같은 유리벽은 바튼이 그의 집, 그의 타워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바튼이 화살을 박아야 구멍이 뚫릴 정도로 고밀도 강화유리였다.)

기다려볼까, 아니면 그냥 위로 올라갈까. 찾아왔는데 없는 것은 그 쪽이었다고, 나름 변명할 거리도 있으니 위로 올라갈법도 했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지친것도 지친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토니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남아 바튼은 그대로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화살통에 몇개 남아있던 화살들이 서로 부딪히며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언제 온다고 말은 하고 나갔어?"

- 아뇨. 정말 급하시다며 아머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아머를?"


아마 지금 자비스에게 부탁해 최신 뉴스나 sns에 아이언맨을 찾으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바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간단하게, 전화 한 통화면 그가 어디있을지 알 수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바튼은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바쁜 일이라면 바쁜 일일 것이고, 혹시라도 괜한 전화 한통으로 그를 방해하기는 싫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안다면 그런 것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아무때나 전화를 하라는 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럼 난 이만 올라가볼게, 자비스."

- 조금만.

"......?"

- 조금만 기다려보심이 어떠십니까?

"이미 한계라고. 나 정말 피곤해."

- 제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검색해서 들려드릴까요?


자비스의 말에 바튼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급박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자신의 착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은, 먼저 기다려볼까. 바튼은 스스로가 무정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토니 스타크의 눈에 클린트 바튼은 조금 무덤덤한 인간이라는 결론이 지어진 것 같았다.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해 평소에도 몇 배는 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정표현을 하는 토니가 딱히 싫은 것은 아니라 그냥 지켜만 봤을 뿐이었다. 

언젠가 토니가 녹화해 둔 쉴드 내부의 동영상을 보면서 바튼은 새삼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꼭,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정말 어린애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퓨리한테 들키면 이번에야 말로 호되게 욕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아니, 아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비스. 10분 안에 안 튀어오면 나 정말 그냥 간다 그래. 아니, 아니지. 어디서 듣고 있으면 빨리 튀어오라고요."

- 흠, 미안해. 레골라스. 나 정말 방금까지 바빴어.


바튼은 씰룩이는 입가를 주제할 수가 없었다. 대체 수년간 훈련 받으며 스파이를 해온 사람은 어디 갔나, 할 정도였다. 바튼은 천천히 일부러 뜸을 들이며 뒤를 돌았다.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저를 놀래켜주려나. 그렇게 뒤를 돌아본 바튼은 자신이 그렇게나 좋아라 하는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공중에 떠 있는 아이언맨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하얀 색으로 뒤덮여진 아머를 입고 있는 아이언맨은 바튼에게 있어 가히 환상종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눈부셨다. 눈에 훤히 보일정도로 감정을 내비치는 바튼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스타크는 얼른 손짓 하나로 유리창을 제끼고는 자신의 타워로 들어왔다.


- 어서 오십시오, 스타크 씨.

"그래, 아빠 왔다. 나 어때, 자비스?"

- 멋지십니다.

"레골라스는? 어때? 내가 좀 멋있어?"

"이게, 대체..."

"너한테 보여주려고. 오늘 돌아온다길래 부랴부랴 도색 좀 하고 왔어."


새하얀 아머를 뒤집어 쓰고 있는 스타크는 바튼의 눈에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스타크는 가끔 그럴 때 바튼이 토니 스타크를 보고 있는 건지, 아이언맨을 보고 있는건지 아주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뿐인 연인이 마냥 아이같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결혼식때는 새하얀 옷을 입어야하잖아?"

"네?"

"그러니까, 너랑 나."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과 그를 번갈아 가리키는 토니를 보며 바튼은 결국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스타크는 자신에게 꽤나 깜찍한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기함을 칠 표현까지 들먹일 정도로, 바튼의 눈에 토니 스타크의 행동은 정말, 며칠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축에 속하는 애정표현이었다. 바튼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평소대로 팔을 부여잡으며 소름이 돋았다며 장난스럽게 그의 팔을 칠 것인가, 아니면-


"좋아요, 하죠."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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