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해야 할까봐요."
나 지쳤어, 진심으로 외치는 바튼을 보며 그 자리에 바튼과 같이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논제에 대한 반응 A가 터져나왔을 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청스럽게 대구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다들 놀라서, 혹은 할 말을 잃어버려서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바튼은 시원찮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응 한 번 시원찮네. 아무튼 진짜로요. 그간 고마웠어요."
그제서야 그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나타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꽤 그녀 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차마 다른 사람들 눈 앞이라 더 친근하고 날카롭게 캐묻지는 못하겠는지, 아니면 말을 고르는 건지 한참을 바튼의 손목을 꼭 붙잡은채로 가만히 눈을 마주치는 나타샤를 보며 바튼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나타샤가 바튼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벌써부터 어두웠다.
"클린트, 요원을 그만둔다는 건-"
"나를 이 세상에서 지우는 거지. 나도 알아, 냇."
"......"
바튼의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슈퍼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동네 건방진 꼬맹이처럼 음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건 활이랑 눈 뿐인데 사실 얼마전부터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 같아. 흐릿해졌어. 그래서 느낀거야. 이제 이 몸은 한계구나, 하고."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임무 중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스티브마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때때로 그는 능청스러움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토니와 아주 가끔 견줄 정도의 능청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지만, 이럴 때는 정말 칼같은 남자가 되어버리곤 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쏘는 화살과 같은 남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번에 날아가 그대로 꽂혀버리는, 그런 사람.
그 동안 고마웠다며, 이제 등 뒤를 더 조심하라며 시시콜콜 바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던 나타샤는 건너편에 앉아있는 토니를 바라보았다. 뭘 그리 골똘히 고민하는지 평소의 그였다면 벌써부터 레골라스가 은퇴라니, 하며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던져야 할텐데. 토니, 당신은 뭐 할 말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으며 덥석 클린트를 끌어안은 나타샤는 진심으로 서운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은 해줄 줄 알았는데."
"미안해, 냇. 진심으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지난번에 화살 한 번 빗 맞춘 것도 못 본 척해줬잖아."
자신의 또 한번, 움찔거리는 스티브의 어깨를 모르는 척 바튼은 되려 자신의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어디서 살지는 정했나?"
"뭐... 이 타워보다는 아니지만 적당히 좋은 곳에서 잘 살겠죠."
바튼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건 이후로 어쩌다보니 스타크 타워에 - 이제는 어벤져스 타워가 되어버린 - 자신의 공간을 배정받아 얹혀 살고 있는 처지가 되어있던 터라 정이 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번은 더 손에 꼽을 정도로 부숴졌다 다시 완벽하게 복원되는 참 대단한 건물이라며 농담처럼 던지곤 했던 게 벌써 몇년 전의 일이라니.
"물건은 알아서 다 치울테니까 그냥-"
"냅 둬."
그제야 처음으로 이 곳에 들어오고 난 후 입을 여는 토니의 첫 마디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되물었다.
"몇 개 있지도 않은 물건 그냥 냅두라고.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게."
"토니, 전-"
전, 지금 당신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채로 바튼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 스타크는, 웃고 있지 않았다.
고된 임무를 마치고 둥지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져 버린 바튼은 차마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한 두번 당한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참 세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임무는 정말, 더럽게 힘들고 짜증나고 신물이 난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수도 없는 것이 임무다. 아까부터 코 끝을 간지럽히는 알싸한 향이, 자신의 피인지 누구의 피인지 모르는 것의 냄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씻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감기려 드는 눈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또, 냇한테 잔소리 한 번 거하게 듣게 생겼군.
그리고 어쩌면, 오늘 이 타워에 그가 없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벤져스 타워에 얹혀 살고 있는 어벤져들 중 가장 만만하고 쉬워보이는 상대가 저인 모양이었는지 이 타워의 주인이자,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 따라올 사람이 없는 억만장자인 토니 스타크는 뺀질나게 제 둥지에 발을 들였다. 본디 짐승이라는 생물이 자신의 거처에 발을 들이는 타인을 좋아라 하는 생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튼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이 바튼의 둥지이기 이전에 그의 타워이니 그를 바로 내쫓지 못하는 것은 저의 미련함 때문이니라.
어느새 머릿속을 장악한 그의 얼굴에 바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자신과는 단 하나의 접점도 없을 사람이었을텐데. 사실 바튼이 토니를 무척이나 냉담하게 내쳐내지 못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묻어두고 싶기만 한 저 과거의 끄트머리에, 기껏해야 초등학교 졸업반이나 되었을 법한 그 시절에 토니 스타크는 이미 바튼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가 그 때 주었던 몇 십푼의 돈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에 자신은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꽤나 자존심이 상할 법하기도 한데, 바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됐든 살아있게 해준 건 사실이니 말이다.
딱히 그것을 은혜라고 여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삶에 몇 번 없을 재수가 좋았던 날,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 보다 토니에게 자신이 조금은 덜 모질게 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쓸데없이 과거까지 떠올리며 그를 생각했다는 사실에 바튼은 아주 쉽게 제 몸에 이상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피의 주인이 오늘 쓰러트렸던 어떤 놈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었나 보다. 후, 짧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쥐며 제 몸을 일으켜주는 손에 바튼은 깜짝 놀라 바르작거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워, 워. 나야, 나. 토니."
"스타크씨-"
"놀래켜주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냥 자네가 활통도 벗지 않고 침대에 엎어져 있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는, 이런, 무슨 일이 있군."
어느새 짙게 물들어 버린 아이보리색 시트를 바라보며 토니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피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큰일이네요. 시덥잖은 농담을 건네는 자신의 말에도 영 그의 표정은 딱딱하기만 했다.
"스타크씨?"
"빨래는 무슨. 그냥 하나 더 사면 되는거지. 빨리 일어나."
아니, 아니지. 자비스, 의료팀 호출. 당장. 그러자 그의 말에 Yes, sir, 이라 대답한 자비스에 바튼은 뒤늦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렸지만 다 소용없었다.
"스타크씨도 참,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 같습니다."
"너나 나나 냉동실에서 나온 초인은 아니니까."
"......"
"간수 잘 하라는 말이야, 들리나, 바튼?"
어떻게 된게, 당신은 참으로 하나부터 열 까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토니 스타크는 겉보기와는 달리 꽤나 선한 인간에 가까웠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 어설프게 행동하는 것이라 삐딱하게 보이는 것일 뿐. 적어도 바튼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이 알려주니까 아픈 거 같습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그러나?"
"의료팀 오면 불러주세요."
"자면 안 돼, 자지 마."
"안 죽습니다. 엄동설한의 날씨도 아니고 제 방에서."
"안 돼, 그래도 자지 마."
"그럼 무릎이나 빌려주십쇼."
"뭐?"
"베고 있게요."
적당히 농담으로 던진 말에 저 혼자 킬킬 거리며 웃자, 토니는 고약하다며 쓰게 웃었다. 침대 위를 손으로 더듬어 베개를 쥐려고 하자 조심스럽게 제 옆으로 내려앉은 그를 보며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섹시한 걸들에게도 빌려준 적 없는 무릎이라고. 잘 써."
"저 좀 웃어도 됩니까?"
"안 돼, 상처 터져. 웃지 마."
"-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대답과는 다르게 벌써부터 웃음을 참느라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툭, 주먹으로 치는 손길에 바튼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로라 언니는 예뻤지만 순전히 나를 위해 철매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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