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임 5 스포 있음





1.

솔로몬 레인이 자유를 되찾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IMF, 특히 이단 헌트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그는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참아내었다.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아무리 해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다. 브랜트의 얼굴은 굉장히 무미건조한 채라, 이단은 그의 생각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브랜트."

"그만."

"......"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거 아니었던가, 미스터 헌트?"


이단은 브랜트가 자신에게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됐다가도 그는 단 한 번에 자신을 타인의 영역으로 내몰았다. 브랜트가 말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이단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브랜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 이단은 그 문제가 레드박스보다 더 풀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2.

한 번 사라져버린 조직을 다시 세우는 것은 여간 쉬운일만은 아니었다. 그 일의 주축이 된 사람은 다름아닌 브랜트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헌리를 보좌해 다시금 IMF를 재건하는데 막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조직을 떠난 유능한 요원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수만건이 넘는 온갖 자료와 서류 정리를 도맡아했으며 벤지와 루터를 주축으로 완벽한 보안 시스템을 이루기 위한 모든 작업을 지휘했다. 한 때 CIA의 국장이었던 헌리도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IMF 재건에 힘썼다. 그리하여 IMF는 사라져버린지 8개월만에 다시금 그 위치를 새길 수 있었다.

그 때쯤, 브랜트는 이미 모든 이들의 신임을 받는 부국장 자리에 올라있었다. 국장인 헌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IMF의 중요 안건과 최고 보안 등급의 정보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벤지는 왠지 모르게 브랜트와의 거리감이 생긴 것 같다며 불만이라며 투덜거렸으나 브랜트는 그 바쁜 와중에도 그들의 팀에게 헌신적이었다. 신디케이트를 확실하게 없애버리기 위한 잔당 소탕의 현장 리더는 이단 헌트였으며, 사령탑은 윌리엄 브랜트였다. 그들은 늘 이러한 구조로 움직였다. 열 번 중 여덟번의 꼴로 브랜트가 이단에게 거친 폭언을 퍼붓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단의 모든 행동에 승인을 내린 것은 브랜트였다. 헌리는 기가 막힐 정도였으나 브랜트를 보며 믿기로 했다.


IMF는 항상 태풍의 눈에 위치해있었다. 아주 좀만 바깥으로 발을 내딛으면 금방이라도 거센 폭풍에 휩쓸리고는 했다. 브랜트는 설마 신디케이트 이후에 뭐 더 얼마나 큰 태풍이 있겠냐고 생각한 자신을 매우 한심하게 여기고 싶었다.


"...솔로몬 레인."


브랜트는 절망했다. 지금의 브랜트에게는 그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빌어먹을. 브랜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이 불합리하고 부정적인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3.

"미쳤어?"


테이블을 내리치며 성을 내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주 태연한 얼굴로 서류를 넘겼다. 그가 들고 있던 서류에는 솔로몬 레인에 관한 모든 프로필이 상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이단은 그런 브랜트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브랜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빼내어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브랜트,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해."

"절박한 상황에는 극단의 조치도 필요한 법이잖아."


브랜트는 그렇게 말하며 부러 이단을 바라보며 비죽였다. 그 시선은 마치 항상 네가 그랬듯 말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니잖아. 얼마든지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이야."

"그건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지금 몇 주 째 계속 허탕만 치고 있다는 거 알아? 그는 신디케이트의 수장이었어. 그러니까 누구보다 신디케이트에 대해 잘 아는 건 레인이야. 그리고 망할, 장부! 계좌만 잔뜩 있는 줄 알았더니 그들의 프로필이나, 아지트의 위치 등 모든 것이 담겨 있었잖아. 그걸 없애버린 건 우리고."


후, 벤지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이단과 브랜트의 눈치를 봤다. 이단의 말도, 브랜트의 말도 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와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벤지 네 탓이 아니니까 혼자 땅 파려고 하지마."


벤지는 브랜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몬 레인에 대한 모든 책임, 권한, 감시는 전부 내가 맡기로 했어. 정해진 구역 이상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못할 거고, 내 목숨도 소중하니까 나를 보좌해줄 현장요원들도 항시 대기하고 있을거야. 그가 현장으로 나설 일은 절대로 없어. 누가 뭐래도, 현장은 오로지 네 거야."

"그가 협력을 할 거라고 생각해?"

"한다고 했어."

"...뭐?"


이번에야말로 이단은 솟구치는 화를 참지 않았다. 브랜트의 손에서 거칠게 서류를 빼낸 이단은 그대로 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클립이 빠지면서 바닥에 흩뿌려지는 하얀 용지들을 보며 브랜트는 초지일관 무표정으로 이단을 마주봤다.


"그 녀석이랑 만나고 왔다고."

"그래."

"그걸 나한테는 말하지도 않았고."

"네가 이럴 줄 알았으니까."

"윌리엄 브랜트!!"


이단의 노성에 브랜트는 숨기지 않고 가볍지 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스터 헌트. 부국장의 권한으로 말하는데 그만 물러나."

"...!"

"현장에서는 네가 보스일지 몰라도, 여기선 내가 네 보스야.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물러나."


그러나 브랜트 또한 그 방법까지는 쓰기 싫었다는 듯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서류들을 주워담았다. 이단은 브랜트가 모든 서류를 다 주울 때 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 여기서 다 끝난거야.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도록 해. 최고 보안등급의 범죄자가 제한적이지만 자유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우리와 국장님이 전부여야만 할 거야. 내가 무슨 말 하는 지 알지?"


브랜트는 옅게 웃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4.

아무것도 없이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만 있는 방 안에서 솔로몬 레인을 기다리고 있던 브랜트는 숨통이 죄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날카로운 물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흡사 이단 헌트와 비슷한 사내였다. 손에 집히는 것이 있다면 뭐든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감이 몰려온 터라 벌써부터 온몸이 피곤했다. 그러나 브랜트는 자신의 상태를 절대로 그에게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방심할 수 없는 남자다. 그러나 브랜트는 애석하게도 그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이게 누구신가."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겠군요, 반갑습니다."


레인은 그런 브랜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프로답게 구는 것은 좋지만 그냥 솔직하게 행동하는 게 더 편하지 않은가, 부국장?"

"어쩌겠어. 보는 눈이 많으니 익숙해져 버린 것을."


브랜트의 얼굴에 한 순간 스친 수심을 레인은 모른척 해주기로 했다. 그게 그에 대해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으니. 


"자네의 판단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브랜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레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로몬 레인의 표정은 그 누구도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주눅 들 브랜트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브랜트에게 있어 이 선택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이 큰 선택이었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도 물론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유리 상자에 갇혀서 잠드는 걸로 끝나지 않을거야."


브랜트의 말에 레인이 미소 지었다. 브랜트는 그 미소를 애써 무시했다.





5.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솔로몬 레인이 무척이나 협조적으로 군다는 것이었다. 브랜트가 레인을 꺼내왔을 때부터 IMF는 한시적 최고 위험등급 보안 상태에 머물러야만 했다. 브랜트가 레인에게 건 협상 조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국장인 헌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설마하니 레인에게 완전한 자유를 약속했을까. IMF의 모두가 브랜트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단은 굳게 닫힌 보안문 앞에 섰다. 바로 이 문 너머로 브랜트와 레인이 한 공간에 숨쉬고 있었다. 문 앞에는 만약을 대비한 요원이 서넛은 배치되어 있었고 이단이 알고 있기로는 안에도 그 정도의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단은 순간적으로 곤란해하는 요원들의 표정을 잡아내었다. 설마, 아니겠지. 이단은 당장 그 문을 열라 소리쳤고, 그들은 이단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3중으로 걸려있는 보안장치를 이단 헌트의 이름으로 해지를 하고서야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단은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란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온 이단을 보며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브랜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레인의 것으로 보이는 자켓을 덮고서. 이단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레인과 브랜트를 번갈아봤다. 


"대체 사람을 얼마나 굴려먹으면 이러겠나."


이단은 마치 레인이 자신을 향해 비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성큼성큼 브랜트에게 다가간 이단은 다짜고짜 브랜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브랜트는 자신의 팔을 부숴지도록 쥐고 있는 이단의 모습에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단, 윽, 이거 놔! 진짜 부러지겠다고!"

"너는, 대체...!!"


바닥에 떨어지는 레인의 자켓을 보며 브랜트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단은 서둘러 브랜트를 데리고는 방 안에서 빠져 나갔다. 두 사람이 빠져나갈 때까지 레인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방을 나가는 이단과 눈이 마주친 레인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자켓을 주워들었다. 자신을 잡았던 날, 그 날 보다 더한 살기에 레인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등골이 다 서늘할 지경이었다.


얼떨결에 방 밖으로 끌려나온 브랜트는 있는 힘껏 이단의 팔을 뿌리쳤다. 비록 옷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브랜트는 분명 다음날 팔에 멍이 들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브랜트는 쉽게 이단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충분히 그의 화를 살 만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윌리엄 브랜트, 너 진짜 미쳤어? 그 녀석이 누군 줄 알고!!"

"...미안해."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브랜트는 꿋꿋하게 IMF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를 기다리는 일은 많았고, 시간은 적었다. 거기에 솔로몬 레인이라는 아주 막중한 일까지 브랜트의 어깨에 올라와 있으니, 요 며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어도, 이단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한 순간의 방심도 내보이면 안되는 상대 앞에서 잠을 잘 줄이야. 브랜트는 다른 의미로 제 목이 날아가지 않은 사실에 감사했다. 그러나 한 순간, 브랜트는 방 안에 남아있는 레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태연하게 잠든 자신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할수만 있다면 자신을 인질로 잡고 이 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터였을텐데. 


"그만해."

"뭐?"

"이 짓, 뭐든 그만하라고. 다시 레인을 돌려보내!"

"이단!"

"오늘 네가 이러고 있는 꼴을 내가 봤는데 이 일을 계속하게 냅둘거라는 생각이 들어?"


순간 브랜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브랜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런식으로 개입하려는 이단이 못미더웠다. 브랜트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는 것을 몹시도 싫어했다. 그것이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서라면 더더욱. 이제껏 받아왔던 그 어떠한 스트레스보다 이단이 제게 선사한 것이 너무도 커 브랜트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브랜트는 참지 않고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브랜트!"

"내가 그렇게 등신으로 보여? 네가 하라고 하면 하고, 말라면 말아야 하는 네 개냐? 적어도 이단, 난 너를 무슨 일이 있어도 믿었어. 이제껏 단 한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결과를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너는 나에 대한 눈곱만큼의 신뢰도 없어? 내가 너한테는 아무것도 보여줄 능력도, 뭣도 안되는 사람이야?"

"나는 네가-!"

"망할, 이단! 나는 네가 걱정해야할 일곱 살 짜리 어린아이가 아니야!!"


브랜트의 고함에 지나가던 요원들이 하나 둘 그들의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평소 미션을 수행할 때도 브랜트가 이단에게 화를 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나 이처럼 본부 안,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서는 단 한번도 브랜트가 먼저 이단에게 큰 소리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그들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는 꺼내지마."

"......"

"명령이야, 미스터 헌트."





6.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레인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온 브랜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래서, 왜 아무짓도 안 한건데?"

"글쎄. 자네가 조금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르지."

"뭐?"

"말 그대로라네. 이 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은 자네니까."


브랜트는 가만히 레인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그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웠다. 따지고 보면 브랜트는 마지막 남은 실오라기라도 쥐어보고자 레인을 찾아갔었다. 브랜트에게는 그만큼 절실하게 레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단을 위해서. 허탕을 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이단과 벤지가 위험에 노출되는 속도는 급격해졌다. 브랜트는 폭주하는 열차를 멈춰야만 했다. 이 상태가 계속되다가는 이번엔 정말로 이단을 잃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다른 누구에는 절대로 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고, 오로지 브랜트의 마음 속에만 묻어둔 사실이었다. 그런 브랜트를 보며 레인이 내뱉은 첫 마디는 '이단 헌트'를 위해 왔는가, 였다. 브랜트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레인은 그 이상으로는 묻지 않았고 아무런 조건을 내걸지도 않은 상태에서 협력을 수락했다. 브랜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옆에서 지켜보는게 즐거워서 협조하겠다고 했어?"

"이 자리가 특등석이긴 하더군."


레인의 말에 브랜트는 어깨를 으쓱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브랜트는 그가 전 신디케이트의 수장이 아닌 평범한 영국 CIA의 요원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덜 살벌하게, 어쩌면 꽤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잘 보여도 널 완전히 자유롭게 해줄 수는 없어, 레인."

"그건 바라지도 않았네."

"...그래."


브랜트는 레인이 표시해준 지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7.

순조로운 협력 덕에 신디케이트의 잔당 소탕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드물게 이단과 브랜트가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IMF에 퍼졌지만 두 사람은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작전에 임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벤지와 루터만이 살얼음판에서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브랜트의 옆에는 레인이 있었다. 현장에 나가지 않은 벤지는 같은 공간에 레인이 있다는 그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레인이 지시한 루트에는 그들의 적이 있었고 임무는 훨씬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브랜트는 카메라로 전송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끝에는 이단이 서 있었고, 브랜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일만 마무리 되면, 모쪼록 48시간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브랜트의 진입 신호에 맞춰 적의 기지를 급습한 IMF의 임무는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온갖 폭력과 피가 난무하는 카메라 화면에 비위가 상할 법 했지만 브랜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션이 마무리됐음을 알리는 이단의 목소리에 브랜트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브랜트!"


다급한 벤지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브랜트는 그것이 마치 환청처럼 들렸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려왔고, 숨이 가빴다. 산소가 부족해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끅끅거리며 우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브랜트는 자신의 등을 두드리며 서류 봉투를 입가에 대주는 레인 덕에 점차 가파른 숨을 차분하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으나 꼼짝도 할 수 없는 브랜트의 몸을 일으킨 것 또한 레인이었다. 


"...고마워."

"자네가 잘못되면 이번에야말로 에이전트 헌트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브랜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인이어에서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꼭 꿈 같았다.





8.

반짝, 브랜트는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눈을 떴다. 전신을 푹신하게 감싸는 시트나 이불의 촉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흉기는, 피곤할 때의 이불이지. 브랜트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도깨비 같이 어마어마한 얼굴을 하고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단과 눈이 마주친 순간 브랜트는 신음했다.


"안녕, 이단."

"......"

"......"

"...그래, 안녕."


브랜트는 지나치게 무거운 이단의 침묵에 가까스로 돌려놓은 호흡이 다시 흐트러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야만 했다. 임무 도중 과호흡으로 인해 혼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실은 브랜트도 많이 당황한 것이 사실이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레인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러나 브랜트는 굳이 이단의 앞에서 그의 이름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단은 레인의 존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그 점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브랜트는 그들이 꺼려했던 인물을 이용했으니 말이다.


"임무 성공, 축하드립니다. 미스터 헌트."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좀 기쁠만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단의 표정은 풀어지는 법이 없었다. 브랜트는 슬슬 자신도 한계가 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럴때는 벤지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랬지만 안타깝게도 벤지는 없었다. 브랜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할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벗어나 저 멀리 보이는 문으로 뛰쳐 나가고 싶었다.


"얘기 들었어."

"무슨-"


레인에게. 이단의 그 한 마디에 브랜트의 심장이 철렁했다. 무슨 얘기를, 아니면 어디까지. 무엇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브랜트는 섣불리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태연한 척 하며 이단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네가 나를 헌트라고 부를 때가 싫어."

"뭐?"

"네가 부국장이니, 국장대리니 하며 나와의 선을 긋는 것도 싫고."

"......"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는 것도, 전부."

"그건-"

"무엇보다 너한테 명령을 들어야 하는 기분은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아."


마지막 말을 마치며 한숨을 내쉬고는 장난스럽게 웃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브랜트는 어디까지 이단의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했다가는 이제껏 묻어두어야만 했던 모든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쏟아져버릴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이단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브랜트의 망설임을 지워버린 것은 이단이었다.


"윌리엄."

"......"

"날 헌트라고 부르지 마."





9.

"어때, 특등석에서 모든 걸 지켜본 느낌이."


레인은 묘하게 날이 서 있는 이단의 목소리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굳이 이단에게 그것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레인은, 신디케이트 완벽 소탕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 형량이 최소 무기에서 유기로 바뀌게 되긴 했지만 평생 살아서 이 곳을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레인은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는 듯 굴었다. 이단은 그런 레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그저 '보는 것을 원했을 뿐'이라는 사실이 이단의 성미를 잔뜩 긁었다.


"너와 엔지니어는 아주 잘 알지만, 그에 대해서는 몰랐으니 순수하게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두게나."

"너와 순수함은 좀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이단은 레인을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으나, 그 시선은 지난 번보다는 훨씬 순한 성질을 띄고 있어 레인은 꽤나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사자를 조련할 줄 아는 조련사라. 그를 다시 봐야겠군."


레인의 말에 이단은 코웃음을 쳤지만 알게 모르게 브랜트가 꽤 많이 레인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잔뜩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봐도 될 것 같은데."

"지나친 소유욕은 좋은게 아니야, 헌트."

"......"

"모쪼록 안부 전해주게나."


이단은 가볍게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인은 그게 명백한 거절의 의사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애초에 이단의 의견은 상관없는 것처럼 굴었다. 


이단은 당장이라도 브랜트에게 찾아가 내일부터라도 레인을 만나러 가는 일을 그만둬 줄 수 없겠냐고 부탁할 셈이었다. 부디 브랜트가 그러겠다, 라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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