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하다 한들, 서로의 앞에서 웃옷을 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임무 중에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가 종종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매우 거리낌없이 행동하였으나 단 한 사람, 브랜트만은 유독 그 분위기에 섞이는 것을 꺼려했다. 천하의 윌리엄 브랜트가 낯을 가리나, 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큼. 


벤지는 처음 이단의 벗은 몸을 보고 온 날 '이 세상은 불공평해'라며 하루종일 불만에 가득차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벤지에게서 들은 묘사는 대략 이렇다. 신이 있다면 이단 헌트라는 조각상을 잘 빚어 놓았단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어떠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피조물이라나 뭐라나. 하긴. 브랜트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벤지는 봤다.


"...브랜트?"

"...봤어?"


벤지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이 들었다. 으슬으슬할 정도로 브랜트의 목소리는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브랜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비밀이다."

"어, 어."


브랜트는 꽤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탈의실을 나섰고, 벤지는 자신이 본 게 헛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벤지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벤지는 지금 당장에라도 본부를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생겼는가. 벤지는 브랜트가 왜 다른 사람들과 탈의실을 같이 쓰기 꺼려하는 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게 숨길 정도의 일인가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날, 무심코 데이터베이스에 돌린 브랜트의 것은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랜트의 등, 정확히는 날개뼈에서부터 골반까지 화려한 날개를 가진 독수리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한 쪽 날개는 접은 채, 다른 쪽 날개를 펼친 독수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평소의 브랜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가 현장에서 총을 갈길때와는 흡사한 형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독수리 문신이 뜻하는 것에 아주 큰 의미가 있었는데, 한 때 엄청난 조직력을 자랑하던 마피아 집단의 상징이었다. 


벤지는 브랜트가 그 집단에 속해있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브랜트는 지금 IMF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요원이 아닌가. 그런 그가, 한 때 뒷세계의 대표적인 선두 주자 집단의 일원이었다니. 사람에게는 누구나 과거가 있는 법이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벤지는 브랜트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조직은 악명높기로 유명한 폭력적인 조직이었다. 마피아보다는 살인청부조직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오고 갈 만큼. 그러나 섣불리 그것을 물어볼만한 재주는 없었다. 브랜트는 그 사실 자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듯 했으니 말이다. 음, 아마도.





"벤지가 거기서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걱정 마, 벤지라면 아무한테도 말 안할테니까."


이단의 손이 닿은 등이 화끈하게만 느껴졌다. 장난스럽게 셔츠 사이로 파고든 손은 퍽, 뜨거웠다. 브랜트는 꽤나 짖궂게 웃고 있는 이단의 입꼬리를 일부러 손으로 쭉 잡아 올렸다. 그 잘생긴 얼굴이 약간 우스워지는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너무 신경쓰지마, 브랜트."

"그래도."


브랜트는 자신의 등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한 마리의 독수리를 꽤나 못마땅해했다. 브랜트가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적, 억지로 새겨진 문신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비슷한 것이었다. 몸집이 더 커지고, 근육이 붙어 우스꽝스러워질 줄 알았던 독수리는 되려 더 사나워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브랜트는 애써 그 문신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았다. 이단이 그것을 꽤 마음에 들어했기에. 지금도 꼭 기회만 되면 그 문신 위에 입을 맞추는 이단을 보며 악취미라 놀린 적도 있지만 브랜트는 진심으로 싫다며 이단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나도 할까?"


뜬금없는 이단의 말에 브랜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막으려 하지 않았다. 이단 헌트와 문신이라. 진짜 안 어울리네. 브랜트는 한참을 웃다 겨우겨우 이단의 콧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니, 맨 살이 좋아."


이상하게 네 피부는 부드럽거든. 그것도 신이 주신 선물인가봐? 완벽한 피조물씨. 약간의 비웃음도 섞여 있는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브랜트는 아주 약간, 이단이 재수없게 느껴졌지만, 어쩌랴. 사실인걸. 


"아무튼, 난 마음에 들어."


이단은 늘, 브랜트에게 그렇게 말했다. 매일같이 브랜트의 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럴때마다 브랜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랜트는 그것이 이단의 위로라는 것을 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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