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단브랜





오늘은 좀 늦네. 브랜트는 들여다보던 서류를 내려놓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뻑뻑해진 두 눈을 비비며 하품을 내뱉는 품이 하루이틀의 것이 아니란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이단을 생각하며 브랜트는 소파에 몸을 뉘였다. 어느샌가 집에 하나뿐인 침대는 이단과 고양이 한 마리의 차지가 되었으니, 브랜트는 무심코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자 쥐도새도 모르게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온 몸뚱아리가 배 위로 앉는 것을 보며 브랜트는 신음했다.


"이봐, 넌 이제 그렇게 가벼운 꼬맹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폴짝폴짝 뛰어오르다 내가 내장 파열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야옹. 그러거나 말거나. 꼭 그렇게 대답하는 것 같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브랜트였지만, 어쩌랴. 로이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도도한 고양이다. 그래, 내가 네 집사지. 길쭉한 팔 다리를 쭉 뻗고 자신의 배 위에서 잠을 청하는 로이의 몸을 토닥, 토닥 두드려주었다. 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표정에 브랜트가 웃으며 말했다.


"안 와서 섭섭해?"


...야옹. 풉, 이상하리만치 긴 침묵에 이어진 의기소침한 목소리에 방심하고 있던 브랜트는 그대로 참지 못하고 로이의 면전에 대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새 그렇게 정이 들었구나. 그러자 그런 브랜트의 모습이 불만이라는 듯 앞발로 브랜트의 입을 꾹 막아버리는 로이를 보며 브랜트는 부드럽게 로이의 머리와 목을 쓰다듬었다. 로이에게 그렇게 물어놓고, 막상 대답을 하고 싶은 것은 브랜트 본인이었다. 응, 그래. 섭섭하네. 딱히 이단에게 항상 이 집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 적도, 그러겠노라 약속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할때면 언제든지 브랜트의 집으로 찾아올 수 있었고, 브랜트 또한 얼마든지 그에게 문을 열어줄 수 있었다. 대부분 이단이 브랜트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브랜트는 단 한번도 이단에게 집 비밀번호를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다. 

이제 슬슬 한계다. 내일도 가면 헌리가 눈을 부릅뜨고 그의 팀이 저지른 일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으면 브랜트는 맞장구를 치며, 그러게요. 그 인간이 또 왜 그럴까요, 하면서 위장약과 소화제를 한웅큼 그의 손에 쥐어주어야 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자신까지 동태눈을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그 사람좋은 IMF 국장도 폭발해버릴지 모른다.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숨을 고르는 로이를 보며 브랜트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철컥,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로이가 재빨리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워낙 이런 일이 자주 있어, 이 시간이면 이단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로이였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안절부절하며 애달픈 목소리로 울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는 불안감이 브랜트를 덮쳤다. 서둘러 현관으로 나간 브랜트는 자신을 보며 웃으며 인사하는 이단을 보며 말문이 턱 막혔다.


"늦어서 미안해."


얼른 이단의 곁으로 간 브랜트는 이단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더욱 세게 그의 옆구리를 눌렀다. 고통에 잔뜩 일그러진 목소리가 이단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브랜트는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병원 가자."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하나도 없어."

"ID 카드 만드는 데 얼마 안 걸려."

"출근하자마자 헌리한테 불려가게?"


그럼 어떻게 하자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담은 브랜트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몸을 소파쪽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침대는 절대 안 된다고 아우성치는 이단을 차라리 한 대 쥐어박아 기절시키고 나서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브랜트였으나, 평화롭게 해결하기로 했다.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막을 수 있다는 어느 나라의 말도 있으니. 딴 소리지만, 이단 헌트는 정말 끔찍할 만큼 병원을 싫어했다. 그의 몸이 워낙 튼튼한 터라 다른 사람은 당장 중환자실로 달려가야하는 부상에도 그는 꿋꿋하게 모든 상처를 자연적으로 치유되도록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브랜트는 가끔 이러다 정말 그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서 쓰러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를 소파에 앉히고는 따뜻한 물과 수건을 가져와 그의 앞에 앉았다. 그나마 상처가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모두 끝낸 브랜트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감췄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영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하물며, 상대가 이단이라면 더더욱. 나즈막이 한숨을 내쉬는 브랜트는 이단의 것으로 빨갛게 물든 손을 벅벅 닦아냈다. 적당히 우린 보리차를 한 컵 가져다주려 다가가자, 이단은 지금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브랜트를 바라보았다.


"가끔 다쳐도 될 거 같은데?"


허, 기가막혀. 이단은 뻔뻔한 얼굴로 웃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드물게 로이가 발톱도 세우지 않은 채로 얌전히 이단의 옆구리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브랜트는 탁,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물컵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은 피냄새가 싫은거야."


이단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브랜트가 조심스럽게 로이를 안아들고는 어린 아이를 달래듯 어루만졌다. 브랜트는 꼭 엄마가 아이들을 재울 때 들려주는 이야기를 말하듯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 녀석을 처음 만난 날, 음, 한 5개월 전 쯤. 그 날, 나도 너처럼 총에 맞아서 이를 악물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지. 정부 기관 요원들은 하나같이 병원을 안 가는게 관례인가? 뭐, 나도 병원은 싫더라. 아무튼 그렇게 길을 가다가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이 녀석을 발견한거야. 차에 치인건지, 아니면 누구한테 죽도록 맞았는지 이 녀석도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어. 처음엔 죽은 줄 알았지. 그런데 살아있다는 걸 안 순간,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는 사실도 잊고서는 이 녀석을 안고 아무 동물병원이나 쳐들어갔지, 그 새벽에."


브랜트는 그 때 자신이 한 짓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바로 경찰에 신고받아 다음 날 감방에 들어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허벅지에 총을 맞은 채 피투성이의 고양이를 안고서 지금 당장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치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을까. 그러나 인심좋은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진료시간이 끝난지 한참이 지났지만 브랜트에게 병원문을 열어주었고, 브랜트는 그에게 고양이를 안겨주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처음에는 고양이의 피인 줄 알았던 게 알고보니 브랜트의 허벅지에서 나온 피였다는 것을 알아챈 수의사에게 죽도록 혼나고서는 인생 처음으로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푸하, 그게 말이 돼? 사람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게. 마치 술 한잔 걸치고 얘기하듯 호탕한 웃음을 섞어가며 말하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소리내어 웃지 않았다.


"자기 피냄새도 맡기 싫은데, 남의 것을 맡는 기분은 어떻겠어."


그 어느때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브랜트에게, 이단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브랜트는 그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이단은 브랜트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미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집 비밀번호는 7317이야."

"그래."

"무슨 뜻인 줄 알지?"


부드럽게 브랜트의 콧등에 입을 맞춘 이단이 브랜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일 끝나면 꼭 집으로 올게." 


이단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잔잔한 미소를 지은 브랜트는 제 품에 안겨있는 로이의 눈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그거 알아? 네가 우리집으로 들어온지 3개월 만의 첫키스야. 이단은 작게 웃으며 브랜트에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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