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벤자민 던



1.

며칠전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임무를 모두 마치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 팀은 하나같이 술을 외쳤고 그들은 그렇게 모였다. 정부 기관 요원들의 삶이란 그러했다. 하나같이 목숨을 담보로 일을 시작하여 끝마치고는 그간의 고통과 비명을 잊기 위해 부러 더 몸부림친다.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귓가에서 폭탄이 터지기 3초 전의 타이머가 울리고 있는 것 같았고, 가끔 꿈에서는 자신이 쏴 죽인 놈이 나타나 깜짝깜짝 놀래키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이를 잊어버리고자, 무사히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축하하고자 그들은 술잔을 부딪힌다. 비록 내일 써야하는 시말서나 보고서가 산더미 같이 쌓여있어도, 당장 다음 임무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다트 게임에서 진 사람이 술 값 내기!"
"감당할 수 있겠어요? 벤지가 가장 많이 마셨는데?"
"나는 내일 비번이거든!"

그러자 헛웃음을 터트리며 브랜트가 비웃었다. 네가 비번이면, 나는 탈주 요원이게? 벤지는 브랜트의 앞에 가득 쌓여있는 술병을 모른채 했다. 그는 저래봬도 주량이 상당했다. 아마 당장 내일 그를 기다릴 시말서와 보고서를 위해서라도 모른척 해야만 했다. 벤지는 저 멀리 보이는 다트게임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가 그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IMF의 요원들에게 다트 게임을 하자고 하는거야? 하하하. 벤지도 능청스럽게 따라 웃어보인다. 벤지는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존심이 조금 높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하자는 거지. 그렇게 웃는 걸 보니 다들 사격실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좋아요, 하죠. 정중앙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요원 실격이라구요."

뭐야, 세게 나오네. 당당하게 자리에서 이러난 제인은 가게 주인에게 다트 게임의 대한 비용을 우선 계산하고는 핀을 들었다. 술을 아무리 마셨어도, 누가 뭐래도 그들은 공식 정부 기관의 요원이었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핀을 던진 제인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쉽게 가운데에 꽂히는 다트핀을 보며 펍의 사람들이 박수를 칠 정도였다. 벤지의 예상은 기가막히게 들어맞았다. 그 다음으로 핀을 던진 주자는 이단이었는데 그는 아예 세개를 동시에 던졌다. 이런 미친. 벤지는 욕을 뱉었고, 브랜트는 네가 정녕 인간이 맞느냐, 라는 시선으로 이단을 바라봤지만 이단은 어깨를 으쓱여 볼 뿐이었다. 물론 모든 핀은 중앙에 꽂혔다. 

"예스!"

벤지도 가볍게 다트를 중앙에 다 꽂아두고는 여유롭게 브랜트에게 핀을 넘겼다. 브랜트는 조금 자신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잖아."
"에이, 약한 척 하지 말지 그래! 네가 현장요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게 벌써 몇개월 전의 이야기인줄 알아?"

브랜트는 정말 자신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위치에 서 핀을 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만 안 넘으면 어디서 던지든 자유지?"
"뭐? 그렇기야 하지만... 왜?"

할 말을 마친 브랜트는 다트핀을 들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라고 물으려던 찰나 브랜트가 다트핀을 던졌고, 그 핀은 어마어마한 바람소리와 함께 과녘에 꽂혔다. 

"......"
"......"

방금 뭐가 지나간거지? 총알? 화살? 어안이 벙벙해진 벤지가 과녘과 브랜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단은 조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브랜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러는 너는 나한테 그럴 말 할 처지야? 라고 묻듯이. 결국 그 날 술값은 벤지가 계산하기로 했다.




2.

"미친 거 아니야? 총알이 떨어져?"
"그치만 정말 다 썼다고!"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벤지의 표정과는 다르게 브랜트의 표정은 의외로 침착했다. 그래보여도 사실은 브랜트도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당장 달리는 기차 안, 다리 위에서 한 판 크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단을 돕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격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IMF 이단 헌트의 팀은 <실패, 혹은 요원의 정체 발각시 대통령과 IMF의 국장은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할 것이며...>로 시작되는 지령을 받았고, 턱없이 부족한 지원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고스트 프로토콜보다는 낫잖아. 애써 위로하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는 영혼없이 웃어보였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아쉬운대로 장비 가방을 뒤져보는 벤지에게 브랜트가 소리쳤다.

"활, 활 있어?"
"뭐? 활?"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까먹는 소리야. 벤지는 정말로 어이없다는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지만 브랜트의 표정은 한 없이 진지해보였다. 닥치는 대로 브랜트도 장비 가방에 들러붙어 이러 저러한 장비들을 내던지고있을 때 쯤, 벤지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브랜트를 불렀다.

"이, 있어... 활."

진짜 이 조직은 미친 게 분명해. 벤지는 정말 황당하는 얼굴로 장비상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던 활을 바라보았고, 브랜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내가 총은 다뤄봤어도, 활은, 하며 말을 하는 벤지의 손에서 상자를 가져온 브랜트는 아주 능숙한 손길로 활을 고정하고 있던 장치를 전부 해체시키고는 단 한번에 활을 펼쳤다. 고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나무 활이 아닌,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 무기의 모습에 벤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나 이단 헌트나 똑같아."
"그럴리가."

브랜트는 진심으로 질색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보이며 열려있는 문을 통해 활을 겨눴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빨간 불빛이 어느 한 지점에 멈춘 순간, 브랜트의 숨도 멈춘 것 같았다. 벤지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고, 브랜트는 팽팽하게 시위를 당기고 있던 손을 놓았다. 벤지는 태어나서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건 총알이 나가는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더 날카로웠다. 

[화살?]
"터미널에서 만나."
[그래.]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미션은 성공했다. 




3.

브랜트는 정말 유능한 요원이었다. 벤지는 얼마든지 브랜트를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도 현장요원이긴 했지만, 벤지의 앞에는 브랜트와 그 앞에는 이단이 있었다. IMF에 선후배 개념은 희미했다. 직책이 모든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그렇지만 파벌 싸움은 어디에도 있는 법이었다. 브랜트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현장 요원에서 분석 요원으로 전향한 이후에도 현장 요원 부서와 원만한 교류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그의 전화 한 통이면 도움을 줄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건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분석 요원 부서도 마찬가지였다. 벤지는 브랜트가 어떻게 단기간만에 국장을 보좌하는 요원이 될 수 있었는지 실감했다.

"그래도 뭔가 아까운데."
"뭐가?"
"왜 브랜트는 다시 현장일을 하지 않는거야?"
"낭비니까."
"낭비?"

벤지의 술병을 제 것을 부딪힌 브랜트는 병으로 이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장에는 이단이 있잖아. 굳이 나까지 있을 필요 없어. 그럼 이 팀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우는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가장 부족한 부분?"
"계획성, IMF에 대한 배려, 자제성 등등."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냐."

그러나 벤지는 브랜트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모든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브랜트가 컨트롤 타워에서 내려주는 계획을 우선순위로 시작을 하지만 현장은 전적으로 이단의 판단하에 굴러간다. 그런 상황을 모두 지켜보며 분석하고 판단하여 최선의 루트를 당장 내놓는게 브랜트였다. 그리고 벤지는 자신이나 이단이나 서류에는 잼병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 놈의 IMF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그 모든 서류를 책임하에 작성하고 결제를 올리는 것이 브랜트였다. 벤지는 새삼 브랜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단에게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거야?"
"내가?"
"그래. 이단이 이렇게 하자고 하면 모든 사람이 다 yes, 라고 외칠 때 너만 no, 라고 하잖아."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이단이 드물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브랜트는 그런 이단이 못마땅한 듯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그러니까 이 녀석이 더 날뛰는 거 몰라? 해도 적당히 해야지."
"하하, 브랜트는 다섯번 중 한 두번은 일부러 그러기도 해."
"일부러?"
"그래. 이 녀석한테는 no,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럼 약간은 덜 무모해지거든. 그러고보니 그것도 이 팀에는 가장 부족한 거지."

따지고 보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모두가 이단에게 그러라고 할때, 브랜트만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항상 이단은 브랜트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 과정에서 브랜트는 이단에게 더 좋은, 하다못해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주고는 했다. 벤지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턱을 괴고는 이단과 브랜트를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더라?




4.
결론: IMF의 이단 헌트 팀은 귀하가 염려하고 계시는 문제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으며, 팀워크 또한 돈독합니다. 아주 가끔 수석 분석 요원 윌리엄 브랜트를 현장 요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신다면 더 염려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브랜트까지 현장에서 뛰면 이 팀은 무적이거든요! 

하고 :D. 
벤지는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는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후, 벤지의 보고서는 브랜트의 손에 의해 파쇄기 안으로 들어갔다. 벤지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3시간 동안 열심히 쓴 보고서가...!






'A > J. 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단브랜] 가장 간단한 결혼식  (0) 2015.09.08
[퀵바튼] 최고의 실수,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  (0) 2015.09.06
[MI] 2015년 9월 2, 3일 그림로그  (2) 2015.09.04
[이단브랜]  (0) 2015.09.01
[이단브랜]  (2) 201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