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언어로 늘어놓을 자신은 있다. 그럼 분명 모건이 그러니까 네가 연애를 못하는 것이라며 한 소리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럴지도, 항상 부인해왔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아마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그가 알면 아주 박장대소를 하며 자그마치 3년을 놀려먹을만한 짓을, 리드는 하고 있었다.


"리드? 이 시간에 어쩐일로..."
"혹시 괜찮으면 들어가도?"
"그래, 물론이지."


리드는 하치의 집에 들어가면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지 검사받을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허리춤에는 나 좀 보소, 하고 떡하니 총 한자루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에게 위협이 될리 없다고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리드의 기분을 더 좋게 만들었다.


"비오는데 우산도 없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하치는 리드에게 마른 수건을 건네주고는 티포트에 물을 채우고는 전원을 켰다. 리드는 문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그의 카펫을 축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말에 그는 신경쓰지 말라 덧붙였다. 비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리드는 수건을 쥐고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 하치."
"그래."
"사랑의 정의가 뭘까요?"


리드는 자신이 굉장히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한번 뚫린 입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조용히 그의 반응을 기다리다 그가 서로 호감이 있는 사람들끼리 애정을 나누는 것이겠지, 하며 덧붙이자 리드는 두 눈을 깜빡였다.


"-호감이 있는 사람들끼리."
"무슨 문제라도 있어?"
"흔히들 사랑이라하면 남자와 여자, 즉 이성애자들이 서로 호감을 내비치며 애정을 나누고 스킨쉽을 하는 일련의 그 모든 과정을 뜻한다, 라고 말하죠."
"보통은 그렇게 말하겠지만 너와 나는 보통과는 거리가 멀잖아. 당장 내일 우리에게 전달될 사건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이런. 리드는 저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있는 힘껏 꽉 쥐었다. 방금 발언은 상상 이상으로 멋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리드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행동을 멍청하게 반복했다.


"만약 제가, 그러니까 제가..."
"네가, 뭐?"
"사랑을 한다면...그게, 할 수 있다면..."
"리드."
"그러니까 제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보이고 좋아한다 고백하고..."
"스펜서 리드."


따로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리드는 하치가 자신이 하는 말을 도중에 끊는 일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건 비단 하치만이 그러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리드. 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제가..."
"그걸 물으러 여기까지 온 건가? 네가 사랑을 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물으러?"
"아, 아뇨."
"그럼?"
"제가, 그러니까 스펜서 리드라는 사람이..."
"그래, 네가."
"...애런 하치너라는 사람을 사랑해도 괜찮을까요? 할 수 있을까요?"


리드는 할 말을 끝내자마자 자신이 내뱉은 말을 다시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OMG. 가끔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모를때가 많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리드에게 있어 가장 낯설고 무서운 일이었다. 방대한 지식으로 제 감정을 감싸안고 무장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가볼게요, 가봐야겠네요. 리드가 급하게 또 다른 말을 쏟아내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기막히게도 요란한 소리를 내던 티포트의 스위치가 꺼졌다. 물이 다 끓었다는 뜻이었다. 그 소리에 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리드의 손에서 수건을 가져간 하치는 직접 리드의 머리 위에 수건을 얹고는 적당히 긴 그의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냈다.


"물론 할 수 있지."


리드는 자신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분명 그것을 반드시 놓쳤을거라 확신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리드는 자신의 머리를 말리며 희미하게 웃고있는 하치를 보며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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