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범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잠을 잘 생각이었던 리드는 뜻밖의 불청객에 모든 계획이 산산이 조각났다. 문을 열자마자 자신과 함께 집으로 들이닥치는 남자를 보며 총을 꺼내려 했지만 너무나도 쉽게 제압당했다. 평소에도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는 그 때도 틀림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두 배는 더 빠르게. 리드는 소리를 지르거나 거칠게 몸부림을 치며 반항하지는 않았다. 그 어느때보다 침착하게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온 남자를 살폈다. 남자는 아주 쉽게 리드를 제압하고는 그의 총과 가방을 저멀리 던져버리고는 그대로 리드를 침대 위로 처박았다.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려 드는 남자를 보며 이제는 진심으로 몸부림을 쳐야한다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남자와의 덩치차이는 흡사 모건과 자신의 차이쯤이었다.
리드는 모건에게 호신술 몇 개를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모건을 상대로 연습을 한 일들이었으니. 무릎을 세워 남자의 배에 있는 힘껏 내리꽂은 후 남자의 팔에 다리를 걸어 있는 힘껏 몸을 뒤집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을 보며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는 남자의 위로 손에 잡히던 걸 있는 힘껏 쥐고는 갈겼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며 박살이 나는 작은 상자를 보며 리드는 혀를 찼다. 아끼던 거였는데.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남자에게 있는 힘껏 몸을 부딪힌 리드는 그가 곧 벽에 머리를 박으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나만 보면 그러는 지 모르겠네요. 이건 통계학적으로도 설명이 안 된다고요. 으, 아파라..."
"네, 스펜서 리드..."
- 당장 그 집에서 나와.
"하치, 전 괜찮..."
- 당장.
리드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금방 도착한 경찰관에게 FBI 신분증을 보여준 리드는 미소를 지으며 기절해있는 남자를 무단가택침입 및 상해죄로 넘겼다. 조용히 처리하길 원해요, 라는 부탁아닌 압박을 슬그머니 밀어넣으며 리드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1, 2, 3... 정확히 3초만에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 당장 그 집에서 나와.
"하치, 전 괜찮..."
- 당장.
조용히 처리하길 원한다는 건, 이런 소식이 하치의 귀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었으나 실질적으로 그것은 불가능에 더 가까웠다. 신고자가 스펜서 리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BAU팀의 모두가 알게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리드는 가방을 챙겨들고는 집에서 나왔다. 문을 잠그는 것 또한 잊지 않고.
리드는 하치의 집으로 향하며 올해 비슷한 사건이 몇이나 있었는지 속으로 가늠해보았다. 벌써 이번달에만 오늘로 3번. 리드는 저도 모르게 매고 있던 가방의 끈을 꼭 쥐었다. 리드는 쇼윈도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키는 크나 깡마른 체구에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못한 얼굴을 보며 리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들어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에게 공격을 많이 받는지에 대해 도저히해도 납득이 불가능했다. 적당히 돌려말한 표현이 공격을 받는다는 거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성적인 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껏 한 번도 순순히 당한 적은 없다. 처음에는, 거의 당할 뻔 했지만. 그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리드는 얼른 하치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치, 저예요."
"그래."
순순히 하치의 집으로 발을 들인 리드는 소파에 가방과 총을 내려놓고는 곧장 하치의 침대로 향했다. 마치 제 것인양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아 걸치고 있던 모든것을 벗어내는 리드를 보며 하치는 의외로 당황한 기색을 여실히 내보이며 리드의 손을 붙잡았다.
"리드?"
"답답해서요."
어느새 셔츠 한장만 덜렁 남겨놓고 모든 옷을 방바닥으로 밀어낸 리드는 그제야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갑자기 밀고 들어왔어요. 총을 꺼내려고 했는데 금방 놓쳤고요. 소리를 지르는 건 소용이 없으니 잠자코 있다가 그 남자가 절 침대로 밀어서 넘어트렸을 때, 그 때..."
"쉿, 리드."
"괜찮다니까요."
"괜찮다는 사람은 그렇게 떨지 않아."
하치는 천천히 리드의 옆에 앉아 리드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투박하면서도 전혀 따뜻하지 않은 손에 오히려 리드는 빠르게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여전히 당신 손은 차네요, 하며 웃는 리드를 보며 하치는 천천히 리드의 뺨을 쥐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호신술이 유용하긴 하더라구요."
"팔을 비틀었다고?"
"네, 그리고 늑골에 무릎을 찍었어요."
"그건 좀 많이 아플 거 같은데."
"모건이 그러랬거든요. 그리고 손에 집히는 대로 남자의 얼굴에 집어 던졌는데..."
"그런데?"
"하필 하치가 선물해준 수납장이었어요. 그거 엄청 아끼는 거였는데."
"또 만들어줄게."
오늘 들었던 말 중에 최고로 좋은데요. 활짝 웃는 리드를 보며 하치는 리드의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리드는 가만히 하치와 눈을 맞췄다. 분명히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아있는 듯 했으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듯 했다. 퍽 하치답지 않은 행동이었으나, 리드는 하치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순전히 자신의 편의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난다면..."
"일어난다면?"
"그 땐, 제가 이 집에서 살게요."
리드는 하치에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그 말에 하치는 드물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드의 새끼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처음 리드가 하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벌써 반년전이었다. 그 말은 곧 리드가 첫번째로 사고를 당한 것이 반년 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리드는 아주 단호하게 하치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게 어떻냐는 말은 단순하게 끝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꼭 사고가 일어나길 바라는 것 같은 얼굴이네요."
"네가 이렇게 만든거야."
오, 리드는 개구지게 웃고는 얼른 베개맡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문득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을 해보이며 물었다.
"그보다, 왜 다들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뭐가?"
"하치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키득거리는 리드를 보며 하치는 꽤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팔짱을 단단히 꼈다. 금방 침대위로 올라온 하치는 여전히 장난스레 웃고 있는 제 연인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