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의 얼굴은 아주 보기 불편할 정도로 구겨져있었다. 평소에도 잠을 그리 충분하도록 많이 자는 편은 아니었기에 어느정도 다크서클이 눈두덩이 가득 퍼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BAU 팀의 막내였으며 유일하게 서른을 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말은 곧, 그가 그들 중 제일 어리고 제일 활기차야하며 제일 건강해야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로시보다 더 늙어보였고 - 말이 그렇다는 거다. -, 연약해보이는 것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이니 이는 그의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걸 뜻했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하면 열에 아홉꼴로 리드는 아무렇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표현을 했다. 리드는 퀭한 두 눈으로 모건을 보며 말했다.
"65시간 하고 12분 52초... 동안 자지 못했어요."
"아, 그렇구나, 65시간... 뭐?! 65시간?"
"이틀 넘게 잠을 못잤다는 말이야?"
기겁을 하며 달려온 가르시아를 보며 리드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게, 그렇게 돼서. 푸스스, 부서지는 웃음소리에 가르시아는 알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다. 절대로 이대로 비행기는 못 타."
"하지만 오늘, 아까 사건..."
절대 안된다며 고개를 젓는 가르시아를 보며 모건도 합세하였다. 리드에게 잠을 자지 않는 일은 꽤 보편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법이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두시간 꼴로 쪽잠이라도 자는 편이었다. 리드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며 협박조로 말하는 모건을 보며 리드는 어깨를 움츠렸다.
"네가 필요하면 연락할 테니까, 우리가 연락할 때 까지 잠 안 자면 가르시아한테 말해서 널 병원에 입원시킬거야."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은 왜 가요?"
"리드,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아픈 거야."
평소에도 무섭게 들이닥치는 두 사람의 맹공을 더 이상 이겨낼 자신이 없던 리드는 두 손을 들며 항복선언을 했다.
"하치는-"
"걱정 마. 하치도 알고 있을거야. 네 컨디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별로라는 거."
가르시아의 말에 리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사실은, 중얼거리는 리드의 목소리는 빨리 모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로시의 말에 묻혔고 가르시아는 얼른 하치에게 리드의 부재를 알리기 위해 모건의 뒤를 쫓아갔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던 리드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상하게 속이 쓰렸다.
▩
"좋아, 이 천재 마법사가 네 고민을 들어줄게. 뭐든 얘기해봐."
"네?"
"아로마 향초에 허브티, 푹신한 담요와 베개. 그 무엇도 너에게 단잠을 가져다주지 못했잖아. 결국 그 조그마한 머리가 또 마구마구 꼬였다는 말이니까. 얼른, 말해봐."
"으, 그게..."
"연애고민?"
"네?!"
"진짜?"
동그랗게 커진 리드의 눈을 보며 리드 못지 않게 크게 떠진 눈을 도르륵 굴리며 가르시아가 중얼거렸다. 지니어스 키드가, 지니어스 어덜트가 된다니. 오, 세상에. 가르시아는 차디찬 리드의 두 손을 꼭 쥐었다. 파르르, 어깨를 떤 리드는 당장이라도 가르시아의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래, 그래서. 뭐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는건데?"
가르시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다짜고짜 리드의 연애 상대를 캐물을만큼 하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리드는 입을 앙 다물어 버렸다. 일자로 다물어진 리드의 입을 보며 가르시아는 미소 지었다. 그 때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리는 벨소리에 가르시아는 아쉬운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리드가 가르시아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외쳤다.
"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응?"
"가르시아만... 알아달라구요."
"그럼 나한테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줄거야?"
"윽, 그건..."
- 헤이, 베이비 걸.
"헤이, 안녕, 마이 보이. 글쎄, 우리 지니어스 키드에게..."
- 리드? 리드가 왜?
"가르시아! 아,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아니, 아직 잠을 못 자는 거 같아서 고민이라구. 초콜릿이라도 가져다줄까? 자기를 닮은 달콤한 초콜릿말이야."
- 스피커폰이야, 가르시아.
- 리드는 괜찮나?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신지 벌써 6시간이 지났으니, 우리 박사님이 잠을 못 이룬지 75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말이네요. 그래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슬쩍 뒤를 돌아본 가르시아는 간이 침대에 바짝 몸을 둥글게 말고는 담요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리드를 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자는 척 하기는.
▩
굳이 의무실이나 병원을 찾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리드는 병원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가르시아가 곁에 붙어있어주는 편이 훨씬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돌봐주는 것에 대한 성의를 조금이라도 보이기 위해 리드는 잔뜩 몸을 웅크렸다. 이제 90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맑지 않다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빠르게 들리는 키보드 타자음에 오히려 기분이 안정되었다. 리드는 한 시간도 빠짐없이 가르시아의 사무실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봤자 또 책이나 읽고 있을 자신의 모습이 훤했고, 사건은 이제 막 종결을 향해가고 있으니 그냥 사무실에 남아있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 사이 가르시아를 새벽이 넘으면 집으로 보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날도 있었다.
"좋아, 범인은 잡았다고 하네. 다들 무사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다행이네요."
"여전히 잠은 자지 못했구나."
"미안해요, 가르시아."
"대체 무슨 고민이 잠을 못 이루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거야?"
리드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잠을 못 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정신은 멀쩡했다. 가르시아라면, 가르시아한테라면. 리드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크게 한숨을 내쉰 리드는 가르시아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비밀, 지켜줄거죠?"
"그래, 뭐든 말해봐!"
"사실 제가 하치에게 고백한지 오늘로 딱 21일하고 2시간이 되어가는데..."
"아, 네가 하치에게 고백을... 뭐?!"
"가르시아."
"하치? 하치너? 내가 알고 있는 우리 BAU팀의 팀장인 특수 선임 요원 애런 하치너?"
"가르시아가 말하는 하치너라는 사람이 전직 검사에, 잭이라는 귀여운 아들이 있고 매일 이 사무실에서 제일 늦게 나가는 프로파일러라면 맞아요, 그 사람."
오, 세상에. 가르시아는 방방 뛸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발을 굴렀다.
"그래서? 지금 너랑 하치랑..."
"...사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 하치가 받아줬거든요."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아직까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치가 저 같은 걸 받아줬을까요? 저는 헤일리처럼 예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불론디도 아니고 키만 멀대같이 큰데...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하는 자기비하에 가르시아는 그막하라며 빽 소리를 질렀고 리드는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리드. 내가 여러차례 말했지만 너는 정말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널 사랑하지. 넌 사랑받을 자격도,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도 충분해."
"...고마워요, 가르시아."
"그래서 우리 꼬마 지니어스가 하치와 연애를 한다는 아주 놀랍고도 특별한 사실을 알았으니. 뭐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거야? 불안해서? 아니면 이 상황들이 믿기지 않아서?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게 꿈일까봐?"
"역시 지혜의 여신은 다르네요."
희미하게 웃는 리드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워 가르시아는 리드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리드가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관계를 맺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들 말이다.
"누구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길 원하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고민하는 건 당연한거고, 그것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는거지."
"가끔 나는 내가 정말 이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멍청이는 아닐까 고민해요. 사실 내 IQ는 87이라던가."
리드의 말에 가르시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 가르시아는 여전히 리드가 자신이 건네준 분홍색 쿠션을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며 좋은 생각이 났다며 리드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무런 저항없이 끌려오는 리드를 보며 가르시아는 당찬 걸음을 내딛었다.
"가르시아?"
"내 생각엔 여기라면 네가 잠을 잘 수 있을 거 같아."
"하치의 사무실이요?"
가르시아는 하치의 사무실에 리드를 덩그라니 남겨두고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것들을 양 손 가득 들고 왔다. 여전히 쿠션은 리드가 들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하치의 책상에 아로마 향초를 올려두고는 리드를 소파에 앉혔다. 얼른 누워보라는 가르시아의 말에 리드는 일단 고분고분 가르시아의 말을 들었다.
"하치랑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한 게 언제야?"
"데이트요? 둘이서 사건 조사 하러 같이 다니는 거요?"
"오, 리드. 물론 그것도 일종의 데이트가 될 수 있겠지만 둘이서 같이 식사를 했다거나, 같이 단잠을 즐겼다거나?"
"......"
"그 반응 뭔지 알 거 같다. 해결사 가르시아가 말씀하시길, 오늘 넌 잠을 잘 수 있을거야. 그리고 일어나면 너에게 필요한 걸 찾을 수 있을거야. 그러니 이제껏 그래왔듯 날 믿고 한 번 눈을 감아봐."
리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무실은 정말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평소라면, 아니 혹시 어쩌면, 하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니 사각이는 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눈을 감고 있는 어두운 시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난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였다. 리드는 정확히 21일 전, 오늘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가르시아는 역시 똑똑하다. 리드는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
하치는 콴티코에 돌아오자마자 가르시아의 사무실을 찾았다. 텅 비어있는 그곳에는 어질러진 간이침대는 있었지만 정작 리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새벽 5시에 가까워진 시간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가 미안했다. 하치는 바쁜 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건 마지막에 든 생각이었다. 어째서 리드가 이 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하치는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을 열었고, 곧 쓴웃음은 아주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하치는 아주 조심스럽게 소파로 다가갔다. 긴 다리가 어정쩡하게 소파 바깥으로 튀어나와있었다. 하치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재킷을 리드에게 걸쳐주었다. 담요를 덮고 있어 딱히 추워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그리 깊게 잠든 것은 아닌 모양인지 뒤척이는 리드를 보며 하치는 그 자리에 못이 박힌듯 서있었다.
"...하치?"
"...이런, 깨워서 미안."
리드는 부스스한 머리를 애써 빗어넘기며 웃어보였다.
"가르시아는 정말 대단해요. 하치 사무실에서라면 어떻게든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리고 정말로 잠을 잤네요. 오랜만에, 아주 푹."
"머리가 아프다거나 그런 건 없고?"
"네, 아주 상쾌해요."
허리를 일으키고 난 후에야 자신의 어깨에서 툭 떨어져내리는 하치의 재킷을 보고 리드는 멍청한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었다.
"있죠, 제가 하치에게 고백한 날 기억해요? 정확히 3주 전, 이 사무실에서."
"물론이지."
"그 때도 똑같았어요. 하치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면서 86시간 동안 잠을 못잤어요."
"뭐?"
"화내지 말아요. 사실 이번에도 모건이랑 가르시아가 잠이나 자라고 하지 않았으면 쫓아가서 사건을 해결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리드."
"그 표정 뭔 줄 아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알았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으,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첫번째로 가르시아에게 모든 걸 말해버렸어요. 제가 하치에게 고백했고 하치가 받아줬고 어쨌든 우리는 연인 사이가 되었다는 걸요. 그러고 두번째로 가르시아가 모든 걸 알았기 때문에 저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줬죠. 가르시아가 저보다 천재일지도 몰라요."
"스펜서 리드."
"난, 난 당신이 필요해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절박함이 묻어있는 목소리나, 표정에 하치는 리드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나 불안하게 만드는 가에 대하여 하치는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쉽사리 넘겨짚을수는 없었다.
"내가 잠을 자기 위해서, 내가 스펜서 리드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애런 하치너, 당신이 필요하다고요. 그 날도 86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당신에게 엉망진창인 얼굴로 고백하고 당신이 그걸 받아줬을때 나는 그 날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오늘도 마찬가지에요. 또 수십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 당신의 사무실에서 잠이 들었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리 와."
하치는 단숨에 리드를 소파에서 일으키고는 단단한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분명 여성의 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른 체구가 한 품에 쏙 들어왔다. 하치는 천천히 리드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한 번 만 안아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네 얼굴에 그렇게 써있었으니까."
하치의 말에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린 리드는 천천히 그의 등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든든한 어깨와 등이 자신을 기대어주고 품어주는 것 같았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계획이요?"
"그래. 사건 보고서는 날이 밝으면 쓰는 걸로 하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같이 가겠어?"
"어, 어디를요?"
"우리 집. 가서 잠이나 자야겠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재킷을 도로 입고는 사무실을 나서는 하치를 보며 리드는 또 다시 멍청한 얼굴로 사무실에 덩그라니 서 있었다. 그는 알고 있을까. 연인 사이가 된 지 3주만에, 리드가 처음으로 그의 연인 타이틀을 달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게 오늘이 처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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