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그르오그르

* 토민호기반 약간의 뉴트갤


  






  글레이드에는 세 가지의 규칙이 있었다. 

  첫째로는 남에게 빌붙지 말 것. 스스로 일하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둘째로는 절대 다른 아이들을 해치지 않을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협동심이 중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로 미로 건너편으로 넘어가지 말 것.

  하지만 이 세 가지 외에도 또 하나, 숨겨져 있는 규칙이 하나 더 있었다.

 

  “절대로 밤에 혼자서 숲 속을 돌아다니지 말 것.”

  “왜?”

  “토마스, 난 네가 호기심이 무척 많은 녀석이라서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곤란하기도 한 것 같아.”

 

  미묘하게 찡그린 웃음을 짓는 뉴트의 얼굴에 토마스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토마스에게 있어 뉴트는 꽤 괜찮은 선생님이었다. 뉴트나 알비가 없었으면 이 글레이드에서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뒤통수에 따갑게 달라붙는 시선의 주인이 갤리라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갤리는 대체 왜 날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글쎄.”

 

  토마스는 또 한 번 멍청한 물음을 할 뻔 했다. 뉴트는 참 괜찮은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토마스의 그 넘쳐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촉진제이기도 했다. 뉴트만 보면 이 글레이드에는 아직도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비밀이 많은 것 같단 말이었다.

 

  “넌 꼭 답을 알면서도 나한테 안 알려주더라.”

  “내가?”

  “응.”

  “오, 예리한데.”

  “뉴트.”

  “장난이야, 장난. 갤리 녀석이 질투가 많아서 그래.”

  “…질투?”

 

  뉴트는 가볍게 토마스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갤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던 도중 뒤를 돌아 다시 토마스 쪽을 본 뉴트는 짐짓 엄한 얼굴로 다시금 토마스에게 했던 말을 번복했다.

 

  “명심해, 토마스. 혼자 숲으로 기어들어갔다가 날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아. 그 녀석은 인내심이 좀 부족하거든. 절대로, 절대로 밤에 혼자서 숲 속에 가지마. 그러다, 잡아먹혀.”

  “…잡아먹힌다고?”

 

  의미심장하게 웃는 뉴트의 얼굴에 뒷목에 한기가 내려앉은 기분을 느낀 토마스는 조심스럽게 뒷목을 쓸어보았다. 토마스는 자신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인 호기심이 고개를 집어넣지 못하고 내밀기만 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민호에게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하는 의문을 품고 토마스는 프라이에게 달려갔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

 

 

  딱히 토마스는 뉴트의 경고를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그의 경고를 무시해야지, 하고 무시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단순히 그날따라 잠이 깨버린 걸 어찌하란 말인가. 잠은 통 오지 않고 미로는 굳게 닫혔으니 가서 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쥐 죽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토마스는 조심조심 숲 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냄새.”

 

  주위가 어두운 터라 시각 외의 감각들이 바짝 곤두선 것 같았다. 아침에는 통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속속히 느껴지곤 했다. 숲 입구에서부터 강렬하게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는 토마스의 신경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글레이드로 올라오고 나서 부쩍 많이 맡는 냄새였다. 토마스는 잔뜩 긴장한 채로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토마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무엇보다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던 비린내가 한층 진해진 탓에 토마스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곧 어둠에 적응한 눈에 사람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침을 삼키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뭐야, 신입.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민호?”

 

 토마스의 귀에 익숙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글레이드 안에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오로지 그 만이 쓰고 그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아까부터 설마 하던 토마스의 직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항상 미로를 같이 달리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익숙해진 시야 사이로 들어온 민호의 모습은 너무나도 색달랐다.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가 이상하리만치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금빛 눈동자는 토마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뉴트한테 못 들었냐? 밤엔 절대로 숲 속에 들어오지 말라고.”

  “…….”

  “그러다 잡아먹힌다고.”

 

  민호는 천천히 토마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단순히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머리로 이해를 못하는 상황에 대한 경외심인지는 토마스 자신도 몰랐다. 토마스는 바로 앞에 보인 민호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금빛 눈동자는 꼭 고양이의 것같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그의 입술 주변은 형편없이 더러워져있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땅에 등을 처박은 토마스는 능숙하게 자신의 위로 올라타는 민호를 보며 두 팔을 어린아이처럼 막 휘둘렀다. 간단하게 토마스의 두 팔을 제압한 민호는 토마스의 목덜미 언저리에 코를 박았다.

 

  “뭐, 뭐하는 거야…!”

  “네가 내 식사시간을 방해했잖아.”

  “아니, 그 나는 딱히 그러려던 게 아니고….”

  “토마스.”

  “…어, 어?”

  “시끄러워.”

 

  괜히 딸꾹질이 날 것 같은 기분에 토마스는 잔뜩 울상을 지었다. 이대로 정말 확, 잡아먹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토마스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는 민호의 얼굴에 토마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렇게 친절하게 - 토마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웃는 민호의 얼굴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먹게 해주면 기분 좋은 거 해줄게.”

  “뭐, 뭐?!”

 

  가볍게 손가락으로 토마스의 중심부를 가리킨 민호의 표정 없는 얼굴에 토마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용량 초과다. 그러니까, 이런 민호는 토마스가 생각하고 있던 민호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낮과 밤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토마스는 순간적으로 민호의 몸을 잡아당겨 순식간에 위치를 뒤바꿨다.

  

  “워, 진정해봐, 민호. 난 지금 머리가 터질 지경이거든?”

  “왜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니고… 가 아니라!”

 

  민호는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고 있는 토마스의 팔을 한손으로 쥐더니 입술 쪽으로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생경한 그 감촉에 토마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너한테서 좋은 냄새나.”

 

  게임 셋. 끝이었다.

 

 

  *

 

 

  “하하하, 그러니까 그대로 민호한테 홀랑 잡아 먹혔다, 이 말이지? 미치겠다, 하하!”

  “…….”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가는 뉴트의 모습에 토마스는 똥이라도 씹은 표정을 하고는 뚱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목이고 팔목이고 이리저리 붕대를 두른 토마스의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제대로 설명 안 해준 거야?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그래서 좋은 짓 했잖아.”

  “…윽, 그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뉴트의 말에 가볍게 한숨을 쉰 토마스는 한 쪽 눈을 찡그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너도 그거야?”

  “응.”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고 들으니 놀랍네.”

 

  토마스는 가볍게 목을 문지르고는 오늘은 어딘가 한층 부드러워진 것 같은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 시선의 끝에는 갤 리가 있었다. 그 잠깐의 틈에 토마스는 똑똑히 봤다. 갤리의 팔목에 감겨 있는 붕대를 말이다.

 

  “뉴트, 혹시 갤리는….”

  “내 거야.”

  “…….”

 

  원래부터 웃는 것이 웬만한 여자아이들 못지않게 눈부신 그였는데, 살며시 보인 그를 꼭 닮은 금빛 눈동자에 토마스는 갤리와 뉴트를 번갈아보았다. 왠지 지금 보니 꼭 갤리의 처지랑 자신의 처지가 똑같지 않은가. 가볍게 한숨을 쉰 토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흙이 묻은 바지를 털었다.

 

  “토마스.”

  “…응?”

  “어땠어?”

  “……. 뉴트.”

  “알았어, 안 물을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갤리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 뉴트의 등을 쳐다보던 토마스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어땠냐고?

  평생가도 어젯밤은 절대로 못 잊을 거다.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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