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바튼'의 인생 최대의 실수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티는 나지 않았을 법한 자살시도를, '토니 스타크'에게 들킨 것이다.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죽고 싶다, 라는 말을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들 속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아마 나타샤가 알면 일단 뺨부터 한 대 갈기고 시작하고 나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아무짓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편이 자신에게 다행인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바튼은 그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자신의 자살 의사를 들킨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클린트 바튼은 무척이나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타샤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스파이라는 이름이 울지 않을 정도는 한다. 사실 바튼의 연기 스승은 나타샤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쉽게 들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또 아닌 모양이었다. 그 말은 즉, 클린트 바튼의 자살 의사는 굉장히 명확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진심이기에, 진심이니까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필사적인 연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바튼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단 몇 초만에 숨통이 끊어질 수 있는가, 에 대한 방법을 수십가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굳이 그 시도를 하진 않았다. 같잖게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 꽤 모양있게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그렇기에 바튼은 굳이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어벤져스의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명령이라면 명령이고, 아니면 아닌 집합에 단 한번도 불참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바튼이 바란 것은, 어벤져스로 빌런들과 싸우다 죽는 최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어떻게 하면 티가 나지 않게 높은 건물에서 발을 헛딛을 수 있을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재빠르게. 평소에 활을 쏘는 건물의 높이 정도 되면 아마 한 번에 즉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두 번 떨어지게 만드는 참상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동맥이라도 자르리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제일 중요한 것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이언맨과 헐크, 그리고 토르가 몰라야만 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수백미터나 되는 곳을 뛰어다닐 줄 알고, 한 남자는 아예 공중을 제멋대로 날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바튼은 저멀리 아득해보이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쯤이면, 가능할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쉼없이 쏴대는 활은 쏘아지는 족족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기계들을 맞추고 있었다. 건물의 벽을 기어 올라오는 기계들을 하나씩 제거하던 바튼은 옥상 턱에 발을 올렸다. 천둥신은 저 쪽, 헐크는 더 멀리 있는 거 같으니 괜찮으려나. 아이언맨은- 보이지 않았다. 


"토니?"

- 불렀어, 레골라스?

"어디 있어요?"

- 웬일이야. 내가 보고 싶어졌다니.


허, 바튼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네, 뭐. 당신이 지금은 제 눈에 보이는 게 좋거든요. 뒷말은 삼키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노라니, 순식간에 등 뒤로 내려앉은 기체에 바튼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거기서 뛰어내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 바튼."

"......"


언제 마스크를 벗어 올린 건지 정면으로 보이는 토니의 맨 얼굴에 바튼의 미간이 아주 조금, 찌푸려졌다. 지금은 그가 한 말을 신경쓰기 보다는 인이어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혹시라도.


"뭘 걱정하는 건지 알겠네. 걱정마, 다른 사람에게는 안 들릴테니까."


어떻게, 혹은 왜. 아마도 지금 상황에는 어떻게, 라는 물음이 더 알맞지 않을까. 그러자 그가 무척이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신 말해주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자비스가 가르쳐줬어. 내 아들은 무척이나 똑똑해서 말이야. 내가 보지 못하는 곳까지 봐주거든."

"...쓸데없이 똑똑하군요."

"그리고 혹시라도 궁금해할지 모르니까 말해둘게. 왜, 신경을 쓰냐면. 나는 그렇게 착한 남자가 아니거든. 죽고싶어하는 사람을 편히 보내줄만큼 독한 놈도 아니야.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생겼지? 어떻게 내가 네가 죽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을까? 간단해.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게 더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 그 때의 내 얼굴이랑 비슷했다고 해두지, 뭐. 더 궁금한 점 있나?"

"...쓸데없이 말이 많네요, 당신."


그러자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반동에 끼익, 끼익 거리는 아머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쯤, 돌연 그가 웃음을 멈추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바튼의 어깨를 쥐었다. 아머를 입은 사실을 자각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잡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상상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오자 바튼은 조심스레 그의 팔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아픕니다, 스타크."

"그걸 느끼는 사람이 그러지 마."

"저는,"

"나는, 자네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불만은 집어 넣어, 호크아이."

"네? 뭐- 자, 잠깐만요. 스타크!"


그 날, 바튼은 토니에게 억지로 매달려 아주 대단한 공중 활극을 펼쳤다며 나타샤에게 찬사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들고 있던 활로 그를 진심으로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아머에는 흠집 하나 생기게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 토니는 죽기살기로 바튼의 뒤꽁무니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바튼이 조금이라도 불만을 터트리려 할 쯤 자신의 인이어를 가르키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지능적인 플레이를 서슴치 않았으며, 종국에는 아예 바튼의 옆자리를 꿰찼다는 소문이 쉴드 안에 쫙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토니가 원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바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죽고 싶다'라는 말은 정말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다', 가 아닌 '토니 스타크가 클린트 바튼의 인생에서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 라는 의미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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