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랜트, 요새 무슨 일 있어?"


자신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러자 벤지가 자신의 얼굴과 거울을 번갈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네 얼굴을 좀 봐, 반쪽이 되다 못해 창백해서 귀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래?"


브랜트는 가만히 벤지가 가르킨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딱히, 달라보이는 게 없는데, 하며 중얼거리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요 며칠 전 임무를 끝내고 기념이라며 찍은 사진들을 브랜트의 눈 앞에 펼쳐보였다.


"이것보라고. 적어도 이 때의 네 얼굴은 괜찮았다고?"

"그래서 지금 내 얼굴 보고 뭐라 그러는거야?"

"아니, 아니! 그게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 나 멀쩡해."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얼굴이 그다지 밝지 못해 뭐라고 한 마디 더 덧붙이려던 벤지는 결국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삼켰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무슨일이 더 있으랴. 그보다 이 인간은 어디있어? 벤지의 물음에 브랜트는 한숨을 뻑뻑 내쉬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그 대상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빨간색의 깜빡이는 점을 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러니까 얼굴이 저 모양일지도 몰라. 스스로 납득하며.





2.

집으로 돌아온 브랜트는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인해 굳어버린 목과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세월은 세월인가보네. 발써 예전같지 않은 몸 상태에 브렌트는 절로 인상을 썼다. 그 와중에 뒤로 살금살금 느껴지는 인기척에 브랜트는 아주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라니까.


"오늘은 또 뭘 했어요?"

"뭐긴. 너랑 헌리가 말한 테러리스트 집단을 와해시켰지."

"나랑 벤지는 장식이에요? 통신 끊지 말라고 했죠."


그러거나 말거나, 브랜트의 짜증을 아주 자연스럽게 흘려보낸 이단이 슬쩍 브랜트의 손목을 쥐자 브랜트는 그제야 이단과 시선을 맞췄다. 이단은 사람 좋은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브랜트는 마주 보며 웃을수가 없었다.


"내 얼굴이 좀 창백해졌대요."

"누가?"

"벤지가."


브랜트의 대답에 이단은 아주 조금,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만 금새 무슨 말이냐는 듯 모르겠다는 뻔뻔한 얼굴로 브랜트의 손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러니까 작작 좀 마셔요. 아니, 애초에 몸을 좀 사리란 말입니다."

"쉿. 식사할 때는 개도 안 건들인다잖아."

"이단, 나는 당신의 식사가-"

"로맨틱이라는 거 몰라?"

"...얼어죽을 로맨틱."


미약한 숨결이 피부에 닿자 브랜트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쌍방의 협의하에 이루어지는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몇 번을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군.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피부를 파고 들어오는 느낌은 정말이지 기가 찰 정도로 소름끼쳤다. 익숙한 냄새에 브랜트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그런 브랜트를 달래듯 손목을 핥았다.


"아, 좀. 그게 더 소름끼치는 거 몰라요?"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당신은 행동을 하고 난 뒤에 생각을 하니까 문제죠."


손목에 닿은 입술이 그가 짓는 웃음에 따라 슬며시 떨리자, 브랜트는 저도 모르게 손목을 뒤로 빼려 했다. 물론 그가 자신의 손목을 세게 쥐고 있는 터라 브랜트의 행동은 미수에 그쳤지만 말이다. 


"브랜트."

"왜요."

"미안, 나 오늘 총 맞았어."

"네?!"


콱, 브랜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3.

이단 헌트가 '이단 헌트'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남들이 할 수 없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일들을 우습다는 듯 그럴싸하게 성공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같은 인간이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해내는 미션들은 그만큼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처음 이단이 했던 일들의 리스트를 받아본 브랜트는 그저 소문일 뿐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두바이의 고층 빌딩 건물을 올랐을 때 그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졌다. 흠, 미안하군요. 나는 그게 다 소문인줄로만 알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이단과의 관계는 딱 그 쯤이었다. 비록 그에게 숨기고 싶은 과거가 하나 있긴 했지만, 굳이 그걸 밝히지 않는다면 이단에게 자신은 그저 우연히 국장의 옆에 있었던 분석 요원이며, 우연히 한 팀이 되었을 뿐인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현장 요원이었던 사실을 들키고 사실은 자신이 크로아티아에서 당신의 경호 임무를 맡다 실패했다는 과거를 -사실은 실패한 사실 모두가 조작이었지만- 털어놓고 나서도, 이단 헌트와 윌리엄 브랜트와의 관계는 그냥 딱 그 쯤이었을 것이다. 한번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때, 브랜트가 우연히 그 곳에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면.


작전에 쓰였던 장비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금 기차에 오른 브랜트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 곳에는 자신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으며, 이 곳에 올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벤지 뿐일것이다. 언제든 긴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춘 브랜트는 미약한 숨소리에 '그'라고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단?"

"......"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불도 안 켜고."

"켜지 마."


그것은 마치, 꼭 위협을 하고 있는 짐승의 목소리와 같아 브랜트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보였다.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이 분위기에서는 자신을 향해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단의 목소리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나예요. 윌리엄 브랜트라고요."

"나도 알아."

"그럼 당신이 나한테 왜 그렇게 구는 지 말해줄래요? 지금 꼭 두바이 빌딩에서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거든요."

"여긴 왜 온거야?"

"우리가 썼던 물건들 제자리에 돌려놓으려고 왔죠."

"...아무말도 못 들은거야?"

"무슨 말이요?"


어둠 저 편에서 그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름 아까보다는 많이 풀어진 분위기에 브랜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이제 불 좀 켜도 될까요? 하나도 안 보이거든요."

"......"

"...이단?"


그 순간, 천장에 불이 밝혀지는 것을 확인한 브랜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 눈 앞에 있는 이단의 모습에 비명을 내질렀다.


"오, 세상에. 어디 다쳤어요? 이 피는 대체..."

"......"

"총이라도 맞은-"


브랜트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다시금 천천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아니, 저럴리가 없어. 만약 이단이 총에 맞은 거라면 피가 저렇게 나올리가 없어. 브랜트는 내딛은 발걸음을 다시 돌려 뒷걸음질을 쳤다. 


"당신 거 아니죠?"

"-브랜트."

"......"

"오늘 여기서 본 것은,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내놓으면 안 돼."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망했다? 아니면 내 인생은 끝났다? 

그게 그건가.





4.

이단 헌트가 '이단 헌트'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생물학적으로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5.

그 뒤로 브랜트는 그 사실을 정말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평소와 똑같이 이단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단은 그런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브랜트를 대했지만 브랜트는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기하지는 못했다. 그 뒤로 딱히 이단이 그 일에 대해서 브랜트에게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브랜트는 이단이 그 때 대체 뭘 했는 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한 마디라도 물으려고 하면 그 때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보름 남짓이라는 시간이 지났을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을 거닐다 이단이 총에 맞은 것이다. 그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브랜트는 다급하게 이단의 이름을 불렀지만 통신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인지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긴급히 현장으로 나간 브랜트는 잔당이 보이는 족족 처리를 해나갔지만 이단의 모습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더욱 커진 긴장감 때문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꼭 다른 사람에게라도 들릴 것 처럼 커다랗게 귓가에 쿵쿵대며 울렸다. 


"이단, 들려요? 들리면 대답해요. 이단!"

"다 들리니까 그 심장 소리 좀 어떻게 해봐. 너무 커."

"shit, 놀랐잖아요!"


브랜트의 고함에 이단은 정말로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딘지 모르게 거동이 불편해보이는 것이 총에 맞은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야. 그보다 다른 녀석들은?"

"끝났어요. 처리팀한테 연락해뒀으니까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브랜트."

"네."

"미안한데 한 번만 봐줘."


뭐를요,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의 귀에서 인이어를 잡아 빼낸 이단은 그대로 브랜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치 총에 맞은 것 같은 고통에 브랜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6.

브랜트는 그 뒤로 한참이나 목에 붕대를 감고 다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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