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렉 AU. 전편격인 '별이 빛나는 밤에(http://biyu04.tistory.com/46)' 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 ...는 진도가 확 나가버림.
* 아주 아주 눈꼽만큼의 뉴트갤리.
“그니까 왜 안 된다는 건데요!”
“싫다니까 그러네?”
아서라, 그래봤자 오늘도 너는 질 것이다. 뉴트는 갓 식당에서 구워온 팝콘을 씹으며 함장과 일등항해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온 건지 트리사도 뉴트의 옆에 앉으며 뉴트의 손에 들린 팝콘을 먹었다.
“나는 당신을 정말 너무 너무….”
“함장님.”
“……윽.”
“자리로 돌아가시지요.”
“맨날 이럴 때만 함장이래.”
“그게 일등 항해사의 특권이니까요.”
“그거 알아요? 난 당신이 날 함장님, 하고 불러줄 때가 그렇게 섹시…….”
것 봐. 내가 뭐랬어. 오늘도 너브 핀치 - 목과 어깨 사이 존재하는 일종의 점혈을 강하게 눌러 상대를 제압하는 벌칸식 전투 기술 중 하나. - 맞고 쓰러질 거라고 했잖아. 뉴트가 고개를 젓자 트리사는 못말린다는 한숨을 쉬며 마지막으로 남은 팝콘을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래서? 저 둘은 맨날 뭐 때문에 싸우는 건데?”
“몰랐니?”
“응.”
손에 묻은 팝콘 가루를 탁탁 털어내며 뉴트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Please, Kiss me. My Lover.”
"오…."
“그렇다는 거지.”
일찍이 토마스가 민호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이미 스타플릿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고,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민호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 어언 3개월. 우주함선 ‘The Glade’는 오늘도 평화롭게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3개월이면, 어디 보자. 나랑 갤리는 첫 날에 손잡고, 둘째 날에 키스했고, 셋째 날에…. 그리고 지금까지 문전박대 당하고 있고…. 세삼 생각해보니 토마스가 퍽 불쌍할 법도 했다. 사실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것이 민호는 아무리 혼혈이라고는 해도 그 몸속의 흐르는 피의 일부는 벌칸의 것이었다. 자고로 벌칸인은 타인에게 쉽게 감정을 내비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종족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거에 비하면 민호는 유난히 다른 사람에게 감정일 잘 내비치는 편이었지만, 그것이 ‘연애 감정’이라면 또 이야기는 아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벌칸인이 먼저 스킨십을 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상대가 사랑스러워서 견디기 힘들 때나, 폰 파 때가 아니면 구경조차 못할지도 모르는 판이니, 토마스의 속이 오죽하겠냐만은. 그리고 장담하건데, 벌칸도 벌칸이지만 그 중에 민호는 민호이기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뉴트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근데, 잠깐만. 나 쟤네 키스하는 거 봤는데.”
“그건 주로 인간들의 스킨십이잖아.”
“아아, 그걸 원하는 거구나?”
뉴트가 웃으며 검지와 중지,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붙이며 벌칸식 특유의 인사법을 흉내 내자 트리사도 똑같이 그 손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Live Long and Prosper.”
"장수와 번영을."
그리고 서로 가볍게 손가락을 마주 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떼어낸 후 서로 두 손가락만을 맞대며 옅게 미소지었다. 그걸 또 그새 본 토마스가 뉴트와 트리사를 가리키며 나도! 저거요! 하며 징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흉흉한 기세로 다가온 민호가 뉴트와 트리사의 손을 떨어트려 놓았고 뉴트는 그저 그런 민호의 행동에 싱긋 웃어보였다.
“우리 일등 항해사님 쑥스럽구나?”
“그런 건 가서 기관장님이랑 마음껏 하세요, 군의관.”
“차갑게 시리.”
이유를 알고 보니 뉴트는 토마스가 저렇게 난리를 부릴 법한 것도 나름 이해가 갔다. 방금 자신이 트리사와 한 행동은 벌칸들에게는 서로 키스를 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인 것이다. 예로부터 벌칸인은 반려자로 맞을 법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손도 잡지 못하게 했다는 말도 있을 만큼 그들에게 있어 이것은 꽤 중요하고 의미가 큰 애정 표현이라는 말이었다. 딱 한번, 실제로 뉴트는 민호와 손가락을 맞대어 본적이 있다. 이건 죽어도 토마스한테도, 갤리에게도 비밀이었다.
임무 중 실수로 베가 행성에 떨어져서 얼어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민호가 비슷한 방법으로 뉴트를 저승길에서 이승으로 다시 끌어올려줬다. 그만큼 신경세포를 건드리는 자극이 엄청났다. 솔직히 그거 아니었으면 아마 뉴트는 지금 쯤 이 세상 사람도 아니었을 테니까. 뭐, 이런 건 예외로 치자.
“민호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죠, 함장님.”
“진짜 단호박이시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인 거 하루 이틀 아셨습니까? 저런.”
“한번만요, 응?”
“이번 주말 돌아오는 월말 함장 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으시면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와, 진짜 치사해. 나 이미 최우수 평가 못 받는 거 알면서 그래요?”
“그러니까요.”
조금 더 했다가는 토마스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 기세라 민호가 먼저 말을 그만두었다. 오늘 싸움의 승자도 역시 민호구나. 뉴트는 이미 텅 비어있던 팝콘 봉지를 구겨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은 마무리 되어가는 듯 보였다.
*
“나 진짜 좋아하는 거 맞아요?”
“내가 그런 거 물어보면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생명유지장치 1분짜리 우주복 입혀서 글레이드호 바깥으로 던져버린다고 했어요.”
“참 잘했어요, 토마스 생도.”
“…함장입니다.”
“예, 함장님.”
와, 정말 이 사람한테는 못 이기겠다. 토마스는 괜히 입으로 바람을 불어 자기 앞머리를 건드려보았다. 토마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침대에서 일지를 쓰고 있던 민호는 옆에서 계속 바람만 후후, 불어대는 토마스를 보며 결국 펜을 내려놓았다.
“넌 내가 그렇게 좋냐?”
“당연하죠!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내가 이렇게 맨날 험하게 구는데도?”
“그게 당신 매력이니까.”
“닭살 돋았어요, 함장님.”
“…거 너무하시네.”
진심으로 상처받았다, 라는 표정을 짓는 토마스를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웃어 보인 민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스탠드 옆에 올려놓고는 자신의 옆 자리를 툭툭 두드리자 얼른 토마스가 민호의 옆 자리로 파고들었다. 말은 꼭 그렇게 해도, 토마스도 다 알고 있었다. 민호가 얼마나 자신을 생각해주는지, 또 얼마나 아껴주는지. 그걸 알기에 항상 어린애처럼 조르다가도 과하지 않게 멈추는 것이다. 어쩌다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느냐, 라고 묻는다면 토마스는 그런 건 하루에 다 말 못한다며 손사레를 칠 것이다. 나란히 마주보며 앉자 민호가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
“……. 진짜요?”
“그래, 손.”
어쩐지 꼭 강아지 취급을 받은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토마스는 지금 당장에라도 쩌렁쩌렁 방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오, 세상에. 드디어. 벅찬 가슴이 주체를 못하고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조심스럽게 손을 든 토마스의 손을 보며 민호는 가볍게 토마스의 이마에 키스하고는 천천히 토마스의 손가락 위로 자신의 손가락을 맞춰갔다. 마침내 모든 손가락이 다 맞닿았을 때 민호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T'hy'la.”
토마스는 지금 당장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행복에 취해 있었다. 도저히 공부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벌칸들의 말 중에 유일하게 토마스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항상 자신이 먼저 민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오늘은 먼저 들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좋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맞닿아진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그 달콤한 감정에 토마스는 절로 미소 지었다. 토마스는 단순히 그들만의 키스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토마스는 민호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감정을 직접 느끼고 듣고 싶었던 것이다. 벌칸이란 본디 자신의 감정을 말해주는 종족이 아니라 느끼게 해주는 종족이기에.
“진짜, 진짜 좋아해요. 민호.”
살며시 손가락을 틀어 아예 그의 손을 깍지를 낀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민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으로 토마스는 가슴이 무척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런 토마스를 가만히 바라보던 민호가 속삭여주었다.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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