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다에는 전설이 하나 있어. 바로 인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지. 어라, 웃네? 하긴. 나도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내 눈으로 그 인어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갔어. 날씨는 끝내주게 좋았고, 산소통의 남은 산소는 충분했지. 수도 없이 바닷속을 헤엄쳐봤지만 그 날 처럼 아름다운 바다는 태어나서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어. 정말 이 세상의 그 어떤 바다보다 아름다웠지. 보기 귀하다는 바다거북도 보고, 평소에는 숨어서 잘 볼 수 없는 물고기들도 보고 정말 운수대통의 날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들은 별 거 아니었어. 나는 그 날 인어를 봤어. 민호, 인어 말이야. 진짜 인어!


  "구라 즐."

  "아씨, 진짜라고."

  "이 세상에 인어가 어디있어?"

  "아, 글쎄 있다니까?"

  "뭐, 금빛 웨이브 머리칼을 찰랑 거리며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에 오똑한 코, 빨간 입술? 장담하건데, 넌 그 날 암초에 머리를 부딪힌거야. 분명해."


  민호는 더 이상 말을 들어주는 게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호스를 물었다. 몇번 테스트 할 겸 숨을 내쉬고 들이쉬어봤다. 민호는 자신의 가방을 손가락질했고, 방금 전까지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남자는 민호에게 가방을 건냈다. 가방을 건네받은 민호는 그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었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조심해. 그럼 즐기고 오셔, 바다의 왕자님."


  오글거리는 별명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은 민호는 패기 있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고는 곧바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금 차가운 바닷물에 익숙해질 즈음, 수트의 부력을 조금씩 빼어냈고, 천천히 민호의 몸이 바닷속으로 잠겼다. 

  오늘 날씨는 최상. 바닷물도 잔잔하고 태양도 쨍하다 못해 눈이 다 부실정도다. 태양빛이 강할수록 바다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 푸른 속내가 더욱 반짝이며 감추고 있던 보물들을 꺼내보이기 때문이었다. 민호는 익숙하게 다리를 흔들며 항상 지나던 길을 지났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모인 산호들의 사진을 찍고 주머니에 있던 밑밥들을 뿌리며 물고기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던 민호는 저 멀리서 유유히 헤엄쳐오는 바다거북을 발견했다. 이 부근에서 바다거북은 꽤 보기가 힘든데.


  - 보기 귀하다는 바다거북도 보고!


  에이, 무슨. 민호는 서둘러 바다거북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거북의 곁으로 다가간 민호는 바다거북의 등딱지를 잡았다. 그에 놀란건지 거북이 발버둥치며 이내 쏜살같이 바다를 헤엄쳤다. 스스로의 다리로 헤엄치는 것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르는 거북의 등에 매달려 한참을 방황하다 이내 거북이 지친 모양인지 포기하고는 민호를 등에 태우고 여기저기 유유히 헤엄쳐갔다. 꼭 용궁으로 가던 토끼 꼴이 된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나왔다. 진짜 용궁으로 데려다 주면 좋으련만. 아, 그건 자라인가. 제 갈길을 가기 위해 민호는 가볍게 거북의 등딱지를 두드렸고, 이번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친구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명소. 제 키보다 더 큰 산호와 말미잘이 서식하고 있는 암초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민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까 너무 빨리 헤엄치느라 물안경에 물이 좀 차고 귀가 멍멍하자, 서둘러 이퀄라이징을 한 민호는 능숙한 손길로 물안경의 물을 빼내었다. 태양이 조금 기울기를 기다린 민호는 딱 산호에 태양빛이 쏟아져내릴 때 셔터를 눌렀다. 오늘도 포토왕은 내 차지지. 눈에서 카메라를 떨어트린 민호는 눈 앞을 휙 지나가는 검은 물체에 하마타면 물고 있던 호스를 뱉을 뻔했다. 


  '뭐, 뭐야, 방금?'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착각인가,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민호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의 형태에 민호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놀랍도록 침착하게 남자로 보이는 사람은 민호의 어깨위에 손을 올리며 민호를 진정시켰다. 


  "진정해요."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바로 전달된 것 같은 사람의 목소리에 민호는 놀란 눈으로 눈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옷으로 보이는 길게 휘날리는 천을 두른 남자의 웃음은 참으로 묘했다. 그보다, 여긴 수심 30m는 되는데, 장비도 없이... 산소통은? 혼란스러운 민호를 눈치챈 듯 남자는 천천히 민호의 입속에서 호스를 빼내었다. 순식간에 산소호흡기가 사라진 민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호스를 향해 손을 뻗자 남자가 조심스럽게 민호의 양 뺨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입을 맞췄다. 


  '...!'


  자신의 입 안으로 숨을 불어넣어지는 느낌이 너무 생소해 민호는 정말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미쳤냐?!"


  서둘러 남자를 떼어낸 후 인상을 바득바득 쓰며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를 지른 민호는 소리를 지르고 난 후 한참이 지나저야 온 몸을 덮쳐오는 위화감에 손으로 입술을 꾹 눌러보았다.


  "목소리, 가..."

  "안경도 안 써도 되는데."


  조심스러운 손길로 민호의 물안경을 벗겨내는 남자의 행동에 민호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꼭 감았다. 눈 떠봐요, 부드럽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민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말도 안 돼..."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흘러나오는 목소리, 선명한 시야. 민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진심으로 고민해야만 했다.


  "어때요? 좋죠."

  "...."

  "그러니까 이제 나랑 놀아요, 네?"

  "너 대체 뭐냐?"

  "토마스, 토마스라고 불러줘요."


  자신을 토마스라고 밝힌 남자는 개구진 소년의 얼굴로 활짝 웃으며 민호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