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건조한 숨을 처량하게 내뱉었다. 통산 34전 33패 1무. 단 한 번도 제가 아닌 민호의 입에서 먼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거나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1무라도 있는 것이 딱 한 번 해주긴 해줬는데 그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토마스는 듣고 싶었다. 낯간지럽게 사랑한다, 어쩐다, 이런 말이 아닐지라도 그냥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민호가 먼저 표현을 해줬으면 좋겠다.


  “땅이 다 꺼지겠다, 토미. 무슨 일이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좋아해, 라고 듣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나.”

  “그거야 당연하지.”

  “…당연하거야?”

  “애초에 우리가 어느 계집애들이랑 연애하는 줄 알아?”


  거기다 네 상대는 그, 민호라고. 뉴트의 지적 아닌 지적에 토마스는 더욱 큰 한숨을 쉬었다. 어지럽게 꼬인 토마스의 속과는 달리 글레이드의 날씨는 화창하기만 했다. 그걸 보자 속이 더 꼬이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라도 해 줄 자신 있는데….”

  “나도.”


  토마스의 옆에 다리를 모으고 앉은 뉴트는 주위에 널려있던 꽃과 풀을 꺾어 엮기 시작했다. 의외로 손재주가 좋은 뉴트는 금세 그럴듯한 화환을 만들어냈다.


  “너나 나나 무슨 고생이냐.”


  어린아이처럼 웃는 뉴트의 모습에 토마스는 뉴트의 쪽으로 몸을 돌려 뉴트가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했다. 뉴트는 제 것을 만드는 와중에도 토마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다.


  “이런 거라도 선물할까.”

  “그러다가 미로로 쫓겨날지도 몰라.”

  “역시 그럴까.”


  토마스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계속 손을 꼬물딱, 꼬물딱 움직였다. 뉴트는 그런 토마스를 보며 뭐가 그렇게 웃긴지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척한테 줄까, 뉴트에게 잠깐 배운 솜씨로 금세 그럴듯한 화환을 만든 토마스는 그래도 고맙다고 한마디라도 해줄 척의 얼굴에 웃음이 나왔다.


  “뭐하냐?”

  “으악!!”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란 토마스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화환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아차, 싶어 하늘로 높이 날아간 화환을 바라보던 토마스는 제 손이 닿기도 전에 민호가 그 화환을 잡아채는 것을 똑똑히 보고는 경악했다.


  “너도 뉴트 따라하냐?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뉴트.”

  “내가 뭘.”

  “아니, 그….”


  민호는 토마스를 흘끗 쳐다보더니 손에 쉬고 있던 화한을 토마스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모자란 감은 없이 들어가는 화환을 보던 민호는 슬쩍 웃으며 토마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 나쁘진 않네.”


  그러고는 뒤를 돌아 가버리는 민호를 보며 뉴트 또한 조금 당황한 모양인지 토마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 쟤 저러는 거 처음 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토미?”


  뉴트를 돌아본 토마스는 입에 풀칠이라도 한 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붙어있었다. 그런 토마스의 심정을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듯 뉴트가 고개를 젓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애정표현도 받고?”

  “나 지금 꿈 속인거지? 그치?”

  “정신 차려, 토미. 그거 하나 가지고 기절까지 하면 남자 체면이 뭐가 되냐!”


  이미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정신 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토마스는 미친 듯이 주변에 있는 꽃들을 꺾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 하는 뉴트의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았다. 토마스는 자신의 얼굴이 쉽게 붉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오늘에서야 천만다행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날 저녁, 좀 피곤했던 민호는 일찍이 해먹에 몸을 뉘였다. 쉴 때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도록 해주자는 글레이더들의 배려로 민호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조용한 곳에서 쉴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아 가만히 눈을 감은 민호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한 번 잠에 들면 다음 날 아침까지는 쉽게 깨지 않으려고 하는 민호는 잠결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굳이 눈을 뜨려하지 않았다. 아까운 수면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딱히 누군가가 깨워준 게 아니어도 매일 새벽 똑같은 시간에 일어난 민호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피부에 닿는 간지러운 감촉에 눈을 비볐다.


  “…미친.”


  해먹 가득 제 몸 위에 뿌려진 꽃과 꽃잎들에 민호는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글레이드의 들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민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녔다.


  “귀여운 짓 하기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린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꽃을 털었다. 가장 크고 예쁜 꽃을 셔츠 앞주머니에 보기 좋게 꽂은 민호는 그대로 해먹 가득 뿌려진 꽃을 양손 가득 안아 들었다. 서둘러 민호는 목적지로 가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민호는 비장한 듯, 그 앞에 섰다.


  “야.”

  “……. 민호?”


  잘 자다가 자신을 부르는 민호의 목소리에 눈을 뜬 토마스는 느릿느릿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 정도 시야가 깨끗해지자 토마스는 민호를 올려다보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양손 가득 꽃을 가득 안고 있는 그의 모습은 토마스의 말을 빼앗아 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잘 잤냐?”

  “어, 어….”

  “선물이다.”


  민호는 양손 가득 안고 있던 꽃을 토마스에게 떨어트렸다. 들판에 핀 꽃이란 꽃은 다 꺾어가지고 온 건지 한참을 떨어지는 꽃을 보며 민호는 토마스가 봤던 그 어떤 미소보다 환하게 웃어보였다.

 

  “깼으면 빨리 빨리 움직여, 곧 문이 열릴 거야.”


  뒤돌아가는 민호의 모습에 토마스는 지금 당장 온 동네방네 소리를 치며 뛰어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 됐네, 하며 웃어 보이는 뉴트를 한 번 끌어안아주고는 서둘러 민호의 뒤를 쫓아가는 토마스의 옷에서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