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일어난 민호는 조심스럽게 뉴트가 자고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상하게 잠이 없는 아이들이 몇몇 일어나 있었기에 민호에게 인사를 건넸고, 민호는 눈짓으로 아이들에게 답했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것 같은 뉴트의 모습에 민호는 어딘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제 나갈 준비를 하려 뒤를 돈 순간, 팔목을 잡은 손에 숨을 삼켰다.


  “…그렇게 귀여운 짓 하고 어딜 가려고?”

  “깨있었냐.”


  싱긋 웃는 뉴트의 얼굴에 민호는 꽤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 표정을 싹 지워버렸다.


  “민호.”

  “…왜?”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뉴트.”

  “내 곁에 있어줘.”


  민호는 뉴트의 부탁 아닌 부탁에 진심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뉴트의 눈에도 뻔히 보였는지 뉴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농담이야. 얼른 가서 도시락도 싸고….”

  “뉴트.”

  “…응?”

  “곁에 있어달라고 하면, 있어줄 수 있어.”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는지 진작 웃고 있던 뉴트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민호는 그런 뉴트가 안쓰러웠다. 많은 아이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녀석들은 알게 모르게 제 진심을 숨겨야만 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비슷하거나 같은 위치에 있는 녀석들에게까지 속내를 다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들 중, 뉴트는 그게 제일 심한 아이였다. 민호는 원체 말이 없고 무뚝뚝해 보이는 성미라 티가 덜 났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오늘은 그것이 정점을 찍는 날이라 생각한 민호는 아침부터 뉴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오늘은, 뉴트가 글레이드로 온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뉴트.”


  민호는 얼른 뉴트를 데리고 지도 보관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오늘은 미로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민호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글레이드가 뒤집어졌지만 알비가 얼른 아이들을 통제해주었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뉴트는 가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현저히 낮아진 체온에 민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도보관실에 들어가자마자 민호는 대충 근처에 있는 천을 아무거나 집어 뉴트에게 덮어주었다. 딱히 민호는 뉴트가 나약한 인간이라거나 하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인간은 언제든 강해질 수 있고, 약해질 수 있는 존재였다. 민호는 충분히 그런 뉴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알고 있었구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

  “그래. 그리고 두 달 뒤면 나도 똑같을 거야.”


  뉴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가만히 민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심장 고동소리를 느끼고 싶다는 듯,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뉴트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핏 본 뉴트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가끔 민호는 뉴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짝이었다. 민호는 조심스럽게 뉴트의 뺨을 감싸 쥐었다. 작은 얼굴이 투박하고 거친 손 한편에 딱 들어왔다.


  “무슨 생각 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뉴트의 얼굴을 보며 민호는 엄지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뉴트의 눈 밑을 쓰다듬었다. 꼭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이 발갛게 부은 눈가가 안쓰럽기만 했다.


  “민호.”

  “응.”

  “나, 살 수 있을까?”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밑 빠진 독처럼 뉴트의 감정이 쏟아지다 못해 흘러 넘쳐 오르는 것이 민호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민호는 서둘러 뉴트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까도 느꼈던 거지만 꼭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서늘하기만 한 체온에 오한이 드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기어 올라왔다.


  “왜 못 살아. 네가 왜 죽어. 내가 그렇게 내버려둘 거 같아?”

  “여기 온 지 벌써 3년이야. 3년이라고, 민호. 나 살고 싶어. 이딴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뉴트.”

  “…그런데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


  뉴트는 부드럽게 민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애정 어린 연인의 행동이 아닌 서로의 호흡과 온기를 나누려는 그 행동에 민호는 가만히 뉴트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너한테서 잊혀지는 거야.”


  기어코 눈물을 참아내고는 억지로라도 환하게 웃는 뉴트의 얼굴에 민호는 본인이 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럴 때마다 항상 뉴트에게 해주던 말이 있었다.

절대로 이곳에서 널 데리고 빠져나갈 거야, 내가 널 잊을 일은 없을 거야. 민호는 새삼스레 그런 말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3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었다.


  “오늘은 말 안 해줄 거야?”

  “…….”

  “날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날 절대로 잊지 않을 거라고. 난….”

  “오늘은 좀 다른 말을 해볼까 하고.”

  “민호….

  “약속해. 여기서 빠져나갈 때도 함께 빠져나갈 거고, 죽더라도 함께 죽을 거라고.”

  “…….”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게.”


  민호의 말에 뉴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은 그런 말을 바란 게 아니라는 듯, 짐짓 화를 내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가끔 비겁해, 뉴트.”

  “…내가?”

  “네가 죽고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겁해.”

  “…….”

  “약았어.”


  마지막 말은 진심으로 내뱉은 말인 것 같아 뉴트는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민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자신의 것보다 한층 따뜻한 온기가 손으로 스며들어오는 기분에 어깨가 한 층 가벼워졌다.


  “내가 살아야 너도 사는구나.”

  “그렇게 되지.”

  “…진짜 약은 게 누군데.”


  뉴트의 말에 민호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뉴트는 가볍게 민호의 뒷목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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