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의 하루 일과는 다른 글레이드의 아이들에 비하면 꽤 단순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문이 열리는 미로 안을 토마스와 함께 하루 종일 달리고 온다. 그리고 문이 닫힐 때쯤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호의 하루 일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었다. 달린다. 어쨌든 그는 러너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는 것과는 다르게, 민호의 하루 일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줄기차게 미로 안을 뛰어다니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저녁 식사 시간 이후 웬만한 아이들은 출입하지 못하는 지도 보관실에 드나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런 민호의 곁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바로 뉴트였다.
민호와 뉴트의 사이는 참으로 각별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알비와 갤리를 포함한 ‘최초의 글레이더’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제일 먼저 글레이드 안에서 혼자 끔찍한 한 달을 보낸 것은 알비였지만, 다섯 명 까지는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머지 한 명은 이미 글레이드에는 없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미로에서 돌아온 민호는 그대로 초원을 가로질러 뉴트가 일하고 있는 밭으로 뛰어갔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뛰어가는 민호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냐며 기겁을 했다. 그런데 밭에 도착하자마자 뉴트의 모습을 확인한 민호가 크게 한숨을 쉬며 숫자를 툭, 뱉는 것이 아닌가.
“3.”
“…음, 6.”
“뭐?”
“6. s.i.x.”
누가 봐도 눈이 부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 뉴트의 얼굴에 민호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정말이야?”
“방금 생각이 바뀌었어. 8.”
민호는 뉴트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며 숲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
“씻으러.”
“음, 민호. 나 또 생각이 바뀐 것 같아. 10!”
“작작해라! 14!”
민호의 외침에 뉴트가 삽을 떨어트리고는 꺄르르, 하고 웃는데 근처에 있던 아이들은 대체 저 둘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당최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시선을 느낀 건지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뉴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더니 바구니를 들고 민호의 뒤를 쫓아 본부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로도 민호와 뉴트의 알 수 없는 숫자 놀음은 계속 되었다. 저녁을 먹을 때에나, 잠에 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 숫자는 점점 커져만 갔고, 곧 100을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토마스는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묻고 싶은데, 뭔가 묻기 꺼려지는 기분이랄까. 오묘한 느낌을 받으며 그 날 하루가 저무는 것을 본 글레이드의 아이들은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120.”
“오, 꽤 높은데? 137.”
“…가자, 토마스.”
토마스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민호의 뒤를 따라 미로로 들어갔다. 한참을 달리던 도중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기로 한 토마스는 그제야 민호에게 이제까지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대체 뉴트랑 뭐 하는거야?”
“…뭐?”
“얼굴 마주칠 때 마다 외치는 숫자 말이야. 점점 커지기만 하던데.”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문 민호는 토마스의 말 중, ‘커진다.’ 라는 말이 들려오자 목이 막혔는지 기침을 하며 컥컥댔다. 깜짝 놀란 토마스가 얼른 민호에게 물을 건넸고, 민호는 다행이도 샌드위치에 의한 질식사는 면할 수 있었다.
“알아서 뭐하게.”
“궁금하잖아.”
“뉴트한테 물어봐. 그 녀석, 진짜….”
말을 하면서 무언가를 떠올린 모양인지 얼굴이 확 달아오른 민호는 얼른 고개를 휙휙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신참.”
“어? 아직 반도 못 먹었는데…!”
토마스의 큰 한숨이 미로 안에 울렸다. 참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
주린 배를 문지르며 글레이드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둘을 반긴 뉴트는 어김없이 민호를 보며 숫자를 말했다. 그 숫자는 벌써 200을 넘었다.
“205. 됐어?”
“아니, 부족한 거 같아. 민호. 214.”
“뉴트…. 내 몸은 하나라는 걸 알아둬.”
“그럼, 물론이지.”
민호가 먼저 씻기 위해 숲속을 향해 가자, 토마스는 결국 뉴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붙잡았다.
“대체 그 숫자들, 뭐야?”
“응?”
“민호랑 주고받는 거. 민호한테 물어보니까 너 보고 물어보라고 그러던데.”
“민호 표정은 어땠어?”
“썩 좋았던 것 같진 않은데.”
토마스의 말에 뉴트가 눈을 찌푸리며 웃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좋아 보이는 그 웃음에 토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긴 뭐야, 내가 그와 밤을 보내고 싶은 횟수지.”
“……뭐?”
“이봐, 토마스. 어린애같이 굴 거야?”
“…….”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쉿, 하는 제스처를 보인 뉴트는 금세 민호의 뒤를 쫓아갔고 방금 들은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던 토마스는 미로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척에게로 달려갔다. 분명 뉴트가 말하는 주체는 그가 아닌데 창피함은 그의 몫인지, 토마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그런 토마스의 얼굴을 보며 척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디 아파? 라고. 토마스는 차마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척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토마스의 입이 뻥 뚫린 순간은, 다름 아닌 다음 날 아침 민호에게 건넨 뉴트의 숫자가 300을 넘어갔을 때였다. 토마스는 꼭 봐선 안 될 것을 훔쳐본 어린 소녀처럼 귀를 붉히며 비명을 지르고는 미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왜 저러냐는 민호의 말에 뉴트는 그저 웃으며 민호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글쎄, 소년이 남자가 되려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뉴트를 바라본 민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뉴트가 무어라 속삭이자, 아까의 토마스와 비슷한 얼굴로 미로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민호의 등 뒤로 뉴트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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