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그답지 않은 행동에 처음에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온 건지, 끌어안은 몸이 차디 찼다.
"제가 죽었어야 하는데."
차마 바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왜였을까. 그의 표정이 너무 아파보여서, 어떻게 무슨 말을 해보려고 시도는 했으나 그것은 시도에 그쳤다. 아마도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그에게는 다 소용이 없을 것이리라.
"그 애는 너무 젊었어요. 아직 어른도 되지 못했는데."
"바튼."
자네도 충분히 젊어. 아직은 말이지. 그 말들을 꼭꼭 다시 깊은 곳으로 묻어둔 채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안겨 있는 등을,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어루만져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고 싶게 될 줄은 몰랐네요."
픽, 웃는 그 웃음 소리가 무척이나 슬프게만 들렸다.
젠장. 무슨 일만 일어나기만 하면 이 꼴이야.
바튼은 슬슬 죄어오는 숨통에 점점 숨을 쉬는 것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더욱 싶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주 단단히 붙잡힌 모양이라 잘근, 잘근 씹어대는 입술은 벌써 상처 투성이가 다 됐다. 가라앉으며 느낀 것은 온 몸에 뚫려있는 여러 개의 구멍이었다. 뻥, 뚫려 있는 그 곳으로 바람이 통하는 아주 기괴한 감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피 한방울 나지 않는 그 구멍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존재감을 과시한다.
"왜요, 이건 예상 못했어요?"
그래. 못했어.
"멍청한 얼굴이네, 노땅."
닥쳐. 그러는 너는 스무 살도 안 된 주제에, 서른은 족히 넘어 보여.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속으로만 말하는 자신의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소년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러면 꼭 10대 같아 보이긴 하지. 잠시 숨 쉬는 것이 괴롭다는 고통은 잊어버린 채로, 바튼은 소년의 얼굴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지 마요."
어디를.
"더 깊은 곳으로."
왜?
"아직 올 때가 아니잖아요."
나는.
"내 동생, 잘 부탁해요."
나는, 베이비시터가 아니라고. 이 멍청아.
짝, 한 번의 박수소리와 함께 가라앉기 급급하던 몸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바튼은 꿈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눈을 뜬 자신의 모습에 당황이라도 한 모양인지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상대를 제압하려 했지만, 곧 뚜렷하게 보이는 시야에 바튼은 그대로 어정쩡하게 다시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여기서 뭐하냐."
"...악몽이라도 꾸나 해서요."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완다의 말에 바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귀신 같은 놈. 이 말을 듣고 있더라면 또 욕이나 한다고 비웃었을 건방진 꼬맹이를 떠올리며 바튼은 자신의 옆자리와 완다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과 함께 그래도 그 자리를 거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바튼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잠이 안 와서 온 거 아냐?"
"뭐-"
"너는 내가 싫지 않냐?"
"왜요?"
"내가-"
"그랬으면 제가 여기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도 충분히 자기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잖아요. 악몽 같은 건, 안 꾸게 도와줄 수 있어서 와 본 거예요. 이미 소용 없었지만."
"악몽 아니었어."
"......"
별로 믿을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완다를 보며 바튼은 기가차다는 듯 웃었다. 언제부터인지 이 건방진 쌍둥이가 자신과 맞먹으려 든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히 세상에서 제일 가는 백만장자가 비웃을 것이 눈에 선했다. 바튼은 조심스럽게 완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이미 충분히 어른스러워, 이런 행동을 하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이비시터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그랬는데."
"그랬죠."
"보호자는 해야될 거 같아."
"누가 해달래요?"
"네 오빠가."
"......"
그러니까 악몽 아니었다고. 뒤늦게 덧붙이는 바튼의 말에 태연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원래 모름지기, 여자가 우는 것은 모른 척 해줘야 한다는 나타샤의 말을 기억해냈지만 지금은 모른 척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바튼은 조심스럽게 완다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12분 먼저 태어났다고 생색내기는."
그러게 말이다. 바튼이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여러분 저랑 같이 막시모프x바튼 파지 않을래요?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ㅜㅜㅜㅜ?????
아 진짜 진심으로 쌍둥이+바튼이 너무 좋다... 정말 좋다는 것이다.. 사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바튼은 유부남도 아니고 애도 없고 자라나라 호게모이!! 이러면서 파지만 실제로 영화에서는 애들한테 쏘 스윗하게 굴어서.. 뭔가 쌍둥이도 진짜 잘 챙겨줄 거 같은 그런... 그러니까 쌍둥이바튼 조합 최고최고!!ㅠㅜㅜㅜㅜㅜㅜ
내 피에트로 돌려줘 ㅅㅂ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
와 진짜 처음에 피에트로가 바튼 넘어트렸을때 내가 정말 이 주식 대박이다를 내내 외치며 영화를 봤는데 그런데 왜 어째서 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뭐... 내 덕질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냐지만... 으흡흡 ㅠㅜㅠㅜㅠㅜㅠㅜㅜㅠㅜㅠㅜㅜㅜㅜㅜㅜㅜ
암튼 이번에 최애 나오는 책 사러 마블온도 갈 거 같구... 흑흑 재덕통 하자마자 1주일 후에 통합 마블온이 있다는 건 진짜 운명같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아 암튼 모두 쌍둥이+든 x든 쌍둥이바튼 파주세요 핥핥
그보다 첫번째 글에서 바튼을 안아준 남자는 누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누구든 괜찮을 거 같아서 따로 언급은 안했다.
처음에는 스티브를 생각했으나 토니도... 내가 생각하는 토니는 말로는 징그럽게 굴지 말라느니 하면서도 할 건 다 해줄 거 같고 일단 나는 토니바튼이 최애컾이기 때무네..! 그치만 그냥 x바튼이 좋은거니까(존
* 그냥 이것저것 다 주의. 설정&세계관 파괴는 기본이요, 크로스오버라니 한강에 뛰어들 준비가 되었나이다. 가볼까!
* 로키갬블/토니바튼/이단브랜트인데 이브는 거의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표기를 따로 안 해뒀어요.
"네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어리석고 두려운 짓이었는지 이제 알겠느냐?"
위대한 신, 오딘. 또 다른 말로는 자신의 아버지. 아스가르드를 지배하고 있는 위대한 신의 눈 앞에서 로키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할 필요도 없었고,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 어떤 표정도 얼굴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라.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일은 실패했다. 산산조각이 나 부숴져 버렸고, 자신은 자유를 빼앗겨 구속되는 처지에 이르렀지만 분노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무함과 허망함. 그 어떤 말로도 로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아니, 아니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로키는 지금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위대한 신은 무척이나 관대하게도, 로키의 능력의 일부를 거두어가고는 근신, 이라는 이름하에 사실상 자유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판결에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모두 경악을 하며 그에게 항의를 하려 한 마디씩 덧붙였지만, 위대한 신의 결정에 결국 모든 이가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오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누가 뭐래도 소중한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신이 구태여 다른 벌을 주지 않더라도, 이미 그에게는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1분 1초가 괴롭기만 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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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한 비린내에 절로 얼굴이 구겨지고 만다. 분명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이 감각들은 퍽, 현실을 닮아있었다. 갬블은 서둘러 이 꿈 속에서 나가고 싶었으나,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 사건 이후로, 갬블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악몽을 꾼다. 종류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꿈의 결말은 하나다.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채로, 자신만이 칙칙한 암흑속에 남겨져 서서히 죽어간다. 차라리 심장이나 머리에 한 방, 총을 맞고 죽어버리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죽었어야 했는데. 갬블을 괴롭히는 것은 악몽 뿐만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귀를 찢어버릴 것처럼 울리는 기차의 경적소리는,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하긴, 기차에 머리를 부딪힌 게 어디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기나 하는 일이랴. 갬블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브라이언 갬블. 이 이름으로 살아온 게 20년이 넘었다. 언제나, 늘, 혼자였고 의지할 가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친구' 혹은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 뿐이었다. 기차에 머리를 부딪힌 이후, 살아남았으니 이제라도 좀 잘 살아보지 않겠냐고 눈을 뜬 갬블에게 처음으로 생겼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20년 만에 생긴 '가족'이었다. 얼마나 웃기고 기구한 일인가. 생천 처음으로 만나본 가족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꿔놓기에 충분하고도 넘칠반큼, 과분했다.
세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형제의 얼굴은 아주 똑 닮아 있었다. 다른 두 사람도 딱히 갬블과 처지는 그렇게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20년이 넘도록 혼자, 가족도 없는 채로 살아오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자신을 찾아낼때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서로에게 형제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살아온 만큼 이름도 제각각이라, 세 형제는 성이 같지 않았다. 원한다면 한 사람의 성으로 통일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싫다면 지금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도 된다고 했었다. 갬블은 아주 가끔, 그 때의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그냥 자신도 바튼이나, 브랜트로 이름을 바꿀 것을 그랬다. 그럼, 브라이언이라고 불리며 살았을텐데.
전생에 우리의 부모는 전쟁의 신이라도 됐던 것이 아닐까, 하는 헛소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세 사람은 정말 평범, 혹은 일반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째인 윌리엄 브랜트는 국가소속기관의 요원이었으며, 둘째인 클린트 바튼은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 집단에 속한 요원이었고, 자신은 한 때 특수기동대 일을 맡은 군인이었으니 이런 말이 농담으로라도 안 나올 수가 있겠는가. 이러다, 좀비한테 쫓겨 다니는 사람이나, 정부에서 실행했던 인체 실험의 참여자 같은 사람까지 있으면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요 며칠, 갬블은 도통 마음을 편히 놓고 다닐 수가 없었다. 악몽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기껏 만난 두 명의 형에게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초조함에 견딜 수 없는 날도 많았다. 뭔 우리족? 치마우리족? 이름은 정확히 기억도 안나지만 몇 주 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외계인 침공 사건에 세간에는 '어벤져스'에 대한 이슈로 난리도 아니었다. 그 날 TV생방송을 보면서 갬블은 몇 번이고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게다가 맏형까지 핵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겠다고 맨몸으로 오븐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고 하니, 어찌 걱정이 안될수가 있겠는가.
이제는 한낱 민간인에 지나지 않은 갬블은 늘 두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딱히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인만큼 거액의 보수를 받는 두 형 덕분에 사실 그들은 벌써부터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있었다. 정 불안하면 둘 중 한 명만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기만 해도 괜찮은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고, 갬블은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브라이언 갬블'이라는 이름에는 벌써 빨간 줄이 그어졌을 것이다.
갬블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무사히, 무사히 두 사람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억만장자의 남자 애인이나, 끝장나게 잘 생긴 남자 애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왜 둘 다 남자 애인을 사귀는 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
▣
오늘은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들었으니, 최대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 입으며 모자까지 둘러 쓴 갬블은 소액의 비상금만 들고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걷는 기분이라는 것은 꽤나 상쾌한 축에 속했다. 그냥 화창한 날씨가 마음에 들어서 인지는 몰라도 썩 나쁘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공원에 도착한 갬블은 한가로운 주변을 바라보며 벤치에 주저 앉았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그 흔한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갬블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곤란했으니 말이다. 벤치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평화로워라. 외계인과의 전쟁이 어쩌고, 핵폭발이, 고스트 프로토콜이 어쩌고.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에만 파묻혀 살아왔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두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갬블은 눈을 느릿느릿 깜빡였다.
"...에이전트, 바튼."
갬블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 무척이나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한참이나 올라가는 시선에, 눈부시도록 새하얀 피부의 남자는 적당히 기른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는, 날씨와 장소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수트에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갬블은 눈 앞의 남자를 두고 말을 골랐다. '바튼'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요원직에 있는 남자가 함부로 자신의 정보를 여기저기에 흘리고 다닐리가 없었다.
"누구십니까?"
"......"
"제 이름이 바튼이 아닙니다."
"...클린트 바튼이 아닌가?"
남자의 입에서 둘째 형의 이름이 나온 순간, 갬블은 아주 조금이지만 경계심을 허물었다.
"바튼은, 제 형 이름이죠."
"형?"
"네, 형이요."
남자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묘했다. 복잡하다고 해야할까. 묘하게 그 남자의 특유의 분위기라는 것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제 형의 이름을 아는 겁니까?"
그러자 남자는 말 없이 갬블에게로 다가와서는 비어있는 벤치의 옆자리에 앉았다. 가까이서 본 남자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냥 단순히 이국적이라는 느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로키."
"......"
남자의 입에서 이름이 호명된 순간, 시선이 교차했다. 투명한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니 그 이질감이 마음 속에서 더욱 커졌다. 로키, 로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그것도 아주 최근. 갬블은 머리를 굴렸다. 휙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저편, 어느 시점에서 브레이크가 딱 걸리자 갬블은 그대로 생각을 그만두었다.
- 할 수만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었어.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그 녀석이나, 나 자신이나.
머릿속에서 클린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뇌리에 비수같이 꽂혔다. 로키. 그래, 로키. 아스가르드의 로키. 어벤져스와의 대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바튼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갬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저히 진정을 할 수가 없어 그를 있는대로 쏘아보는 갬블의 두 눈에는 경멸과 분노만이 가득 차 있었다.
"왜 나를 그렇게 보는거지?"
"네가 바튼에게 한 짓을 몰라서 물어?"
"......"
"전지전능하신 신, 엿이나 먹으라 그래. 너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할 수만 있다면 대가리에 총이라도 박아줄텐데."
"어째서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거지? 넌 바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갬블은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대체 이 빌어먹을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거지. 그러나 갬블은 로키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한번 더 숨통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맙소사, 왜. 왜, 네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건데. 갬블은 그제야 로키가 자신을 도발하거나, 화를 돋구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클린트를 조롱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바튼은 내 소중한 사람이니까 당연하잖아. 가족이라고! 가족이 그런 엿같은 짓을 당했다는 데 화가 안 나냐?!"
"토르가 그런 일을 당해도, 화는 나지 않을 것 같은데."
"뭐?"
"소중하다는 게 뭐지?"
갬블은 벌써 세 번째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로키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상대를 어이없게 해 미쳐버리게 만드는 재주. 자신을 꿰뚫어볼 정도로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갬블은 당황스러웠다. 소중한 것이 뭐냐니, 갬블은 그 말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그 말의 사전적 의미를 물을 정도로 멍청해보이거나 무식해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 말투, 표정. 그의 모든 것을 천천히 되새겨 본 갬블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자 익숙한 감각이라도 되는 듯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 갬블은 그 감각이 어떤것인지, 지금 그의 상태가 어떤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사이렌이 픽, 꺼져버렸다. 전의를 상실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었다. 갬블은 누구보다 그의 상태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으니 어련하겠나. 갬블은 로키가 전혀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어벤져스와 필적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외계군단을 이끈 장군이든 뭐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지금'의 로키는 전혀 무서울 게 없었다.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그 자리에 마치 구멍이 생긴 것처럼 뻥 뚫려 텅텅 비어버린 사람이 뭐가 무섭우랴.
"어째서 바튼을 고른건데?"
"...글쎄. 우연히 만난 사람 치고는 굉장히 깨끗하고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몸놀림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머리는 비상한 남자였다."
대답해 줄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줄줄이 칭찬을 읊어대는 로키의 모습에 갬블은 기가 찼다. 아주 조금, 귀 끝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특히 그 눈이. 그리고 그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꽤 즐거웠어. 모든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는 듯 했지."
"...당신."
"......"
"바튼을, 좋아하기라도 했어?"
아차, 갬블은 자신이 무슨말을 한 건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없었다. 하여튼 이놈의 입이 방정이다. 그와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클린트에 대해 얘기하는 이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단 한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갬블은 로키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클린트가 이 사실을 안다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가족의 연을 끊는다고 하면 어쩌나. 그러나 그 모든것을 제쳐두고서, 갬블은 단순히 로키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것이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이라고 해도 할 말 없었다.
"...잘 모르겠다."
갬블은 그의 대답에 얼음 같이 굳었다.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거다, 그 대답 이전에 그냥 툭 하고 던진 물음에 대답을 예상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더욱이 망설임에 가까운 대답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갬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것과 소중한 것은 비슷한 거잖아. 아니, 비슷한 거야."
"......"
"미안, 형한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왜 네가 사과하는 건가?"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갬블은 정신이 들었다. 지금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아니, 애초에 로키는 클린트에게 있어서 천하의 쳐 죽일놈이랑 같은 놈인데 왜 자신이 클린트의 입장을 빌어 애인이 있다는 말로 사과를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갬블은 괜히 속으로 로키에게 욕을 퍼부었다. 외계인의 능력일 것이다. 해도 될 말, 안 될 말 전부 다 지껄이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거는 것일테다.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갬블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키가 아주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갬블의 손목을 잡았다.
"이름이 뭐지?"
이거 봐, 이게 다 마법이라고. 오, 세상에, 맙소사. 클린트가 알면 날 화살에 매달아 쏴버릴지도 몰라. 그러나 그런 머리속과는 별개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브라이언, 갬블."
사실 이 글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2년에 어벤저스 처음 입덕했을 때 클린트 바튼에게 제대로 치여 한참 철매를 파던 시절에 쓰여진 글로...
어디에도 올린 적 없이 텍파로만 써져 있던 것을 리메이크를 하여... 다시 써본 2015년판 입니다. 이게 1편쯤이고 뒤로 2, 3편 쯤 더 있는데 그래도 미완이더라고요. 한 5편까지 구상해뒀었나, 싶은.
아무튼 클린트 바튼 덕질하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미임4를 보고 브랜트 덕질도 하다가 스왓도 보고 갬블을 파는 것은 진짜 그냥 공기의 흐름과도 같은...
네 뭐 암튼 그렇습니다.
스트릿갬블도 좋은데 영화 결말이 애초에 음 그래 음 ㅅㅂ 여서 ㅋㅋㅋㅋㅋㅋㅋ 갬블은 그냥... 그냥 갬블로 좋아. 토니갬블도 괜찮고...
제레미 필모 3형제, 진짜 좋아하는 설정입니다. 사실 월시라던가, 애론이라던가 더 있기는 하지만... 적당히 감당하기에는 3명이 딱 좋은 거 같아서요.
아마 종종..이 아니라 거의 많이 대부분 이 설정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얏호^0^
울트론 보고 뽕이 팍팍 다시 차서 3년만에 재덕통 루트를 달리고 있으니 열심히 달리도록..!
그보다 스스로 종잇조각으로 만들어 날려버린 퀵바튼 주식 다시 삽니다... ha....(깊은한숨 그럼 그렇지 개뿔 내가 안 팔리가 없지... 어휴... 어휴.....
나 지쳤어, 진심으로 외치는 바튼을 보며 그 자리에 바튼과 같이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논제에 대한 반응 A가 터져나왔을 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청스럽게 대구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다들 놀라서, 혹은 할 말을 잃어버려서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바튼은 시원찮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응 한 번 시원찮네. 아무튼 진짜로요. 그간 고마웠어요."
그제서야 그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나타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꽤 그녀 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차마 다른 사람들 눈 앞이라 더 친근하고 날카롭게 캐묻지는 못하겠는지, 아니면 말을 고르는 건지 한참을 바튼의 손목을 꼭 붙잡은채로 가만히 눈을 마주치는 나타샤를 보며 바튼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나타샤가 바튼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벌써부터 어두웠다.
"클린트, 요원을 그만둔다는 건-"
"나를 이 세상에서 지우는 거지. 나도 알아, 냇."
"......"
바튼의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슈퍼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동네 건방진 꼬맹이처럼 음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건 활이랑 눈 뿐인데 사실 얼마전부터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 같아. 흐릿해졌어. 그래서 느낀거야. 이제 이 몸은 한계구나, 하고."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임무 중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스티브마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때때로 그는 능청스러움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토니와 아주 가끔 견줄 정도의 능청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지만, 이럴 때는 정말 칼같은 남자가 되어버리곤 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쏘는 화살과 같은 남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번에 날아가 그대로 꽂혀버리는, 그런 사람.
그 동안 고마웠다며, 이제 등 뒤를 더 조심하라며 시시콜콜 바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던 나타샤는 건너편에 앉아있는 토니를 바라보았다. 뭘 그리 골똘히 고민하는지 평소의 그였다면 벌써부터 레골라스가 은퇴라니, 하며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던져야 할텐데. 토니, 당신은 뭐 할 말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으며 덥석 클린트를 끌어안은 나타샤는 진심으로 서운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은 해줄 줄 알았는데."
"미안해, 냇. 진심으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지난번에 화살 한 번 빗 맞춘 것도 못 본 척해줬잖아."
자신의 또 한번, 움찔거리는 스티브의 어깨를 모르는 척 바튼은 되려 자신의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어디서 살지는 정했나?"
"뭐... 이 타워보다는 아니지만 적당히 좋은 곳에서 잘 살겠죠."
바튼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건 이후로 어쩌다보니 스타크 타워에 - 이제는 어벤져스 타워가 되어버린 - 자신의 공간을 배정받아 얹혀 살고 있는 처지가 되어있던 터라 정이 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번은 더 손에 꼽을 정도로 부숴졌다 다시 완벽하게 복원되는 참 대단한 건물이라며 농담처럼 던지곤 했던 게 벌써 몇년 전의 일이라니.
"물건은 알아서 다 치울테니까 그냥-"
"냅 둬."
그제야 처음으로 이 곳에 들어오고 난 후 입을 여는 토니의 첫 마디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되물었다.
"몇 개 있지도 않은 물건 그냥 냅두라고.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게."
"토니, 전-"
전, 지금 당신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채로 바튼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 스타크는, 웃고 있지 않았다.
고된 임무를 마치고 둥지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져 버린 바튼은 차마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한 두번 당한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참 세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임무는 정말, 더럽게 힘들고 짜증나고 신물이 난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수도 없는 것이 임무다. 아까부터 코 끝을 간지럽히는 알싸한 향이, 자신의 피인지 누구의 피인지 모르는 것의 냄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씻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감기려 드는 눈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또, 냇한테 잔소리 한 번 거하게 듣게 생겼군.
그리고 어쩌면, 오늘 이 타워에 그가 없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벤져스 타워에 얹혀 살고 있는 어벤져들 중 가장 만만하고 쉬워보이는 상대가 저인 모양이었는지 이 타워의 주인이자,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 따라올 사람이 없는 억만장자인 토니 스타크는 뺀질나게 제 둥지에 발을 들였다. 본디 짐승이라는 생물이 자신의 거처에 발을 들이는 타인을 좋아라 하는 생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튼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이 바튼의 둥지이기 이전에 그의 타워이니 그를 바로 내쫓지 못하는 것은 저의 미련함 때문이니라.
어느새 머릿속을 장악한 그의 얼굴에 바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자신과는 단 하나의 접점도 없을 사람이었을텐데. 사실 바튼이 토니를 무척이나 냉담하게 내쳐내지 못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묻어두고 싶기만 한 저 과거의 끄트머리에, 기껏해야 초등학교 졸업반이나 되었을 법한 그 시절에 토니 스타크는 이미 바튼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가 그 때 주었던 몇 십푼의 돈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에 자신은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꽤나 자존심이 상할 법하기도 한데, 바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됐든 살아있게 해준 건 사실이니 말이다.
딱히 그것을 은혜라고 여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삶에 몇 번 없을 재수가 좋았던 날,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 보다 토니에게 자신이 조금은 덜 모질게 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쓸데없이 과거까지 떠올리며 그를 생각했다는 사실에 바튼은 아주 쉽게 제 몸에 이상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피의 주인이 오늘 쓰러트렸던 어떤 놈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었나 보다. 후, 짧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쥐며 제 몸을 일으켜주는 손에 바튼은 깜짝 놀라 바르작거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워, 워. 나야, 나. 토니."
"스타크씨-"
"놀래켜주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냥 자네가 활통도 벗지 않고 침대에 엎어져 있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는, 이런, 무슨 일이 있군."
어느새 짙게 물들어 버린 아이보리색 시트를 바라보며 토니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피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큰일이네요. 시덥잖은 농담을 건네는 자신의 말에도 영 그의 표정은 딱딱하기만 했다.
"스타크씨?"
"빨래는 무슨. 그냥 하나 더 사면 되는거지. 빨리 일어나."
아니, 아니지. 자비스, 의료팀 호출. 당장. 그러자 그의 말에 Yes, sir, 이라 대답한 자비스에 바튼은 뒤늦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렸지만 다 소용없었다.
"스타크씨도 참,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 같습니다."
"너나 나나 냉동실에서 나온 초인은 아니니까."
"......"
"간수 잘 하라는 말이야, 들리나, 바튼?"
어떻게 된게, 당신은 참으로 하나부터 열 까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토니 스타크는 겉보기와는 달리 꽤나 선한 인간에 가까웠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 어설프게 행동하는 것이라 삐딱하게 보이는 것일 뿐. 적어도 바튼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이 알려주니까 아픈 거 같습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그러나?"
"의료팀 오면 불러주세요."
"자면 안 돼, 자지 마."
"안 죽습니다. 엄동설한의 날씨도 아니고 제 방에서."
"안 돼, 그래도 자지 마."
"그럼 무릎이나 빌려주십쇼."
"뭐?"
"베고 있게요."
적당히 농담으로 던진 말에 저 혼자 킬킬 거리며 웃자, 토니는 고약하다며 쓰게 웃었다. 침대 위를 손으로 더듬어 베개를 쥐려고 하자 조심스럽게 제 옆으로 내려앉은 그를 보며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섹시한 걸들에게도 빌려준 적 없는 무릎이라고. 잘 써."
"저 좀 웃어도 됩니까?"
"안 돼, 상처 터져. 웃지 마."
"-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대답과는 다르게 벌써부터 웃음을 참느라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툭, 주먹으로 치는 손길에 바튼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곤란하다기 보다는... 조금 어려워요.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아직 그렇게 파장이 잘 맞는 무기를 본 적도 없고요."
자신의 대답이 딱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어머니는 고민에 잠겨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장이 잘 맞는 무기가 없다는 말은 조금 거짓이 섞인 말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만난 무기들의 대부분이 무리하고 애써 자신과의 파장을 맞추려고 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사신님의 하나뿐인 아들이어서 그러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입 안이 쓰게만 느껴졌다.
세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신전의 주인이자, 모든 장인과 무기들의 선망인 사신님의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 부터 모든 이들에게 관심과 선망을 한꺼번에 받으며 자란탓에, 세하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신전의 깊숙한 곳, 사신의 거처에서 대부분의 시절을 지냈다. 어머니는 그게 조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본인도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계셨던 터라,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었다.
드디어 세하가 18살이 되었을 때, 세하는 스스로 사신전의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나오자마자 한 말이, 스스로의 무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받을 예정이었던 세하는 특별히 사신의 무기인 데스사이즈를 친히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8년 만에 세상에 나온 아들이 나오자마자 한 말이 그것이었으니, 어머니는 기꺼이 그 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언 3개월이 지났으나 데스사이즈의 'ㄷ'는 커녕 평범한 무기 하나 고르지 못한 세하에게 어머니가 한 소리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한 명의 장인에게 맞는 단 하나의 특별한 무기를 찾는 것이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신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음이 맞는 무기만 있어도, 사신은 그들과 영혼의 파장을 맞추는 일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신은 다른 장인들과 다르게 여러 무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신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란 사실을 자신의 아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단순히 첫 무기를 고르는 것이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첫 무기요...?"
"그래. 어떤 무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처음처럼 신중한 것이 없는 법이지. 그리고 처음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것이고."
혼자 무슨 생각을 그리 재밌게 하시는 지,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웃는 어머니를 보며 세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곧 어머니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붉은 글씨가 그려졌다.
"...좌표인가요?"
"찾아가보렴."
"......"
"한 때 나의 무기였던 사내란다."
"어머니, 전-"
"유일하게 나의 무기 중, 데스사이즈로 만들어지지 않은 원석같은 무기지."
사신의 무기면서, 데스사이즈가 되지 않았다고? 세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어머니를 올려다봤지만, 그녀는 그것이 더 재밌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래. 그는 그런 남자야."
"......"
"네가 그를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네게 물려줄 수도 있단다."
세하는 딱히 사신의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방금 어머니의 말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대체 그 남자가 어떤 무기길래 사신인 어머니까지 마다하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얼굴 가득 티가 난 모양인지 그녀가 얼른 세하의 등을 밀어버렸다.
"가, 간다구요. 가요."
"사실 나도 그의 얼굴을 꽤 본지가 오래돼서 말이야. 정 안되면 나한테 인사라도 하라고 데리고 오렴."
"......"
"내가 널 믿지 못하는 건 아니란다, 아들.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돼. 다만, 그 녀석은 좀 고집이 세거든. 벌써 반 세기 동안 새로운 주인을 맞은 적이 없어."
"50년이나요?"
"그는 특별해. 네가 그렇게 질색하는 엑스칼리버만큼이나 특별하지."
엑스칼리버.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세하는 벌써부터 질렸다는 얼굴을 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해했다. 그녀는 세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엑스칼리버와 만났던 사람 중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의 이름은요?"
"-그에겐, 이름이 아주 많아. 나는 그 중에서도 그를 제이라고 부른단다."
어느새 워프를 열어버린 어머니를 돌아보며 세하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두고보세요. 제가 꼭 데려올테니까요."
그녀는 말 없이 웃고 있었다.
"선배!"
오늘도 어김없이, 냐. 모리야마는 자기가 다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는 교실 뒷문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여자아이들을 바글바글 모아와서는 어쩌자는 거냐. 아, 부럽네.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딱 봐도 네가 지금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코보리가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웃지 마, 내가 쓰레기 같아지잖아."
"풉, 아니, 뭐?"
"알긴 아냐?"
"너무한 거 아니야, 카사마츠?"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하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리야마를 거침없이 내치는 것도 벌써 3년째인 터라, 카사마츠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시끄러운 뒷문을 바라보았다.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그러면서도 실실 웃고 있는 바보 같은 얼굴을 - 카사마츠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 하고 있는 후배를 슬슬 빼올까, 하던 찰나 가까스로 스스로 빠져나온 키세가 쏜살같이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달려왔다. 여기까지오면 세이프. 키세는 스스로 오케이 사인을 해보인다. 워낙 카사마츠가 교내에서 엄격하다는 평이 많은 터라, 다들 가까이 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넌 선배, 하면 카사마츠밖에 안 보이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럴리가요!"
"그렇게 주인이 보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쳐다봐도 안 믿기니까 그런 줄 알아.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일이야?"
그 질문에 꼭 무슨일이 있어야만 올 수 있습니까? 하며 천연덕스럽게 구는 후배의 모습을 본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난 터라 카사마츠는 별 대구없이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지를 보며 샤프를 굴렸다. 참 죽이 잘 맞는 건지, 모리야마와 키세는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며칠 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어느새 10분이라는 쉬는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키세가 언젠가부터 자신의 교실에 온 순간부터, 인가.
"그보다, 너 진짜로 우리 교실에 왜 오는 거야? 1학년 교실이랑 3학년 교실은 꽤 멀잖아."
"아, 그, 음-"
갑작스런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키세의 얼굴이 금방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참, 시합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단 말이야. 카사마츠는 쓰게 웃으며 샤프를 내려놓았다.
"딱히 여기 온다고 화를 낸다거나, 혼을 내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귀찮지 않나 싶어서. 잘도 온다고, 너."
"...네가 이해해라, 키세. 이 녀석은 정말 무심하고, 둔한 멍청이니까."
"뭐야?"
둔한 멍청이라니, 카사마츠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졌지만 모리야마는 뻔뻔한 얼굴 그 자체였다. 갑작스럽게 그런 욕을 왜 먹었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은채로, 쉬는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종이 쳤다. 키세의 어깨를 두드리며 얼른 돌아가보라는 답지 않게 다정하게 구는 모리야마를 한 번 쳐다봐주자 자기가 뭘 어쨌냐는 얼굴에 카사마츠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키세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를 발견한 카사마츠가 키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뒷문을에 반 쯤 걸쳐진 키세가 뒤를 돌아봤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습니까?"
"넌 모델이라는 녀석이 그게 뭐냐?"
픽, 웃은 카사마츠가 팔을 뻗어 뻗쳐있던 키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자, 키세는 아주 약간 다리를 굽혔다.
"키는 무식하게 커서는, 짜증나네."
그런 키세의 행동에 꽤나 험악한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웃으며 노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가볍게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이따 보자, 그 말에 키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이야, 이야. 우리의 카사마츠는 정말로 둔한건지, 아니면 선수인지 모리야마는 모르겠습니다, 코보리군."
"뭔 헛소리야, 넌 또. 코보리 좀 그만 괴롭혀."
"시끄러워, 넌 빨리 우리의 모델군 곁으로 가버려."
"뭐? 수업시간 종 쳐서 자기 교실로 돌아간 녀석한테 내가 왜?!"
"...선수는 무슨. 그냥 둔한거지. 됐다, 됐다."
그러면서 휙,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리야마를 보며 카사마츠는 진심으로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녀석 왜 저래?"
"심술 난 건지도 몰라."
"심술? 왜? 누구한테?"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말뜻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코보리에게 모리야마 닮지 마라, 라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카사마츠를 보며 코보리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