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랜트가 처음 했던 예상과는 달리 이단과는 여느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평범하고,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브랜트는 스스로와의 내기를 했었다. 이단이 알면 꽤 실망할 것 같아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와의 관계는 길어봐야 3개월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홧김에 이단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게 벌써 4개월 전이니까-. 이제 곧 있으면 반년을 바라보는구나. 다른 사람들과 연애를 할 때도 이렇게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했는 지 세고 다니는 버릇따위는 없었다. 이건 오로지 지금 자신의 상대가 이단이기에 브랜트가 실행하고 있는 행동 중 하나였다. 처음 골대로 공을 찬 것은 브랜트였지만 그 공을 골대로 차 골을 이루어낸 것은 이단이었다. 브랜트는 고백과 동시에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이단에 대한 마음을 접겠노라 선언했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골대를 빗겨 공을 찼지만 그는 정말 불가능한 것이 없는 남자였는지 골대 밖으로 굴러갈 공을 기어코 골대로 집어넣었다. 브랜트는 환호를 해야 하나 절망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단과 브랜트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연애를 해온 게 벌써 5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2.

아주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브랜트는 이단이 '이단 헌트'라는 게 너무 싫었다. 그는 타고난 것이 원래 완벽하게 태어났기에 늘 불안했다. 원래 좀 잘난 사람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자는 늘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주 좀 잘난게 아니라 무척이나 많이 잘난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브랜트에게 이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브랜트에게 있어서 제일 두렵고 무서운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사라진다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죽는 것과 종적을 감추는 것. 브랜트는 이단이 아무도 모르게 몸을 숨기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마음을 접겠다고 선언한 것은 어디의 멍청이인가. 우습기도 하지. 브랜트는 스스로 생각하길 감정을 토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단에게 쌍욕을 날리며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브랜트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브랜트가 이단의 애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디 그것 뿐이랴, 말도 없이 이단의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사람도 브랜트 뿐이고, 또-.


브랜트는 이단이 '이단 헌트'라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이단은 브랜트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죽을만큼, 싫었다.





3.

오, 이런 젠장.

완전 글러먹은 애새끼같잖아.





4.

브랜트가 도착했을 때, 이단은 이미 깨어 있었다. 브랜트는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그를 보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짓 좀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망할 이단,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수십가지의 문장이 브랜트의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동안 이단은 그저 가만히 브랜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녕, 브랜트."


브랜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브랜트는 그 자리에 있던 팀원이 벤지나 루터 뿐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다면 브랜트가 이 다음에 한 행동이 IMF 대서 특보로 그 다음날 바로 헤드라인에 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이단은 굳이 브랜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더 안심했다는 듯 브랜트의 키스에 응했다.





5.

다행은 개뿔, 꺼져버려. 이단 헌트.

한번만 더 인이어 던져버리면 당신과 내 사이도 끝이야.





6.

그래도 브랜트는 이단이 '이단 헌트'임에 감사한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는 남자였다. 브랜트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브랜트의 아주 커다란 착각일 뿐이었다. 이단은 신이 아니다. 신과 같은 존재라 불리지만 신이 아니었다.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고, 다치면 피가 나고, 치명상을 입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미안하다고 한게 기껏해야 몇 주 밖에 더 됐다고 그럽니까.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용서해줄게요. 화도 안 낼게.


그 날, 브랜트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란 것을 해봤다.





7.

이단 헌트는 무사히 깨어났고, 비록 치명상을 입어 당분간 움직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기어코 사흘 째에 못참겠다며 탈출을 감행했으며, 브랜트에게 '지금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1개월 동안 당신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겁니다.' 하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고 나서야 얌전히 이빨을 숨기고 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또 참지 못하여 다시 병원을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결과적으로 이단이 온 곳은 브랜트의 집이었다. 올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이단을 맞이하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쉽게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뭐해요?"

"미안해."

"......"

"진심이야. 정말 미안해, 브랜트."


평소라면,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단은 내심 초조함을 느꼈다. 단순히 자신이 하는 사과에 브랜트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단은 반드시 브랜트의 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것은 둘의 암묵적인 약속이었으며, 브랜트와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몸을 사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그에게는 미안한 일 중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자신은 언제나 늘 브랜트의 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더 이상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요."


이단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것 같았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없는 세상을 대비한다는 거, 진짜 무섭다고요."

"......브랜트."

"그러니까, 내가 부르면 최대한 빨리와요. 이번처럼 늦장부리지 말고. 다음에도 늦으면 그 때는 진짜..."


무심코 붙잡은 브랜트의 손이 마치 불에 데인 것 처럼 뜨거웠기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똑똑히 느꼈다. 이단은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겠다는 대답만 계속 들려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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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괜찮은 거죠?"


브랜트의 물음에 이단은 그저 말 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브랜트는 마침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커다란 돌덩어리를 언덕 밑으로 굴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브랜트는 쉽사리 눈 앞에 놓인 초대장을 들지 못했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그래도 되는걸까, 하는 끊임없는 물음을 하며 브랜트는 애써 이단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그렇지만, 그건 받을 수 없어요. 애써 뒷말을 삼킨 채 핸드폰을 들지 않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브랜트를 붙잡은 것은 이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브랜트를 한 번 잡았을 뿐, 핸드폰을 가져가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브랜트를 보며 한참을 말 없이 웃더니 브랜트의 팔을 이끌며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네?"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그 정도도 같이 못 해?"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에라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브랜트는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생각 없이 무작정 행동해보자고 생각했다. 큰 돌덩이가 굴러가다 또 다른 돌부리에 걸린 것 같았다. 그 돌부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브랜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단 헌트. 이 남자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머리부터 발 끝까지 완벽으로 무장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브랜트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둘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량이 약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이단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 같았다. 벌써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술병을 보며 브랜트는 혀를 찼다. 축축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빳빳하게 허리를 세워 앉아 그를 바라보니, 아까부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자신이 무어라 내뱉은 말에 간간히 대답을 하거나 호응을 해주거나 하는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술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떠들고 있는 것은 브랜트 혼자라는 말이었다. 


"당신은 뭐 할 얘기 없어요? 이래봬도 당신에 대해서 궁금한 게 꽤 많아요."

"나에 대해서 말인가?"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브랜트는 쓰게 웃었다. 아직도 그 때의 일이 눈 앞에 선선했다. 벌써 꽤 오래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눈 앞에 아무렇지 않게 그 일의 장본인이 있음에도 자꾸만 브랜트의 눈 앞에는 과거의 이단 헌트가 아른거렸다. 그의 사랑스러운 부인과 함께. 이제와서 그 일이 사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한 속임수였으며, 이단은 또 다른 새로운 임무 때문에 일부러 교도소에 들어가야만 했다, 라는 얘기를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국장이란 사람도 너무하지 싶었다. 자신이 그 일 때문에 어떤 개고생을 해야만 했는데. 죽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그랬으면 지금 이 일에 대해서 개 같이 따지고 이딴 직장 때려치는 건데. 쓸모없는 소모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동안 이단은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조금."

"하긴, 조금 과묵한 이미지긴 해."


그래도 그녀의 앞에서 웃을 땐 참, 근사했는데. 브랜트는 드디어 자신이 취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벌써 시계는 자정을 넘어 새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술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슬슬 추태를 보이기 전에 일어나야 하는 게 정답이다. 이번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으니, 술 한잔 못사주겠냐는 생각에 지갑을 꺼내며 일어서려던 찰나, 처음으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브랜트."


그는 그 말만 툭 던지고서,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브랜트는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한 매우 어정쩡한 자세로 이단을 바라보았다. 점차 지갑을 쉰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이나 한건지, 브랜트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신은, 끝까지..."


순식간에 온몸을 지배한 오한에 다리가 풀려 다시금 제자리에 주저 앉자 미친듯이 웃음이 나왔다. 비록 깔깔대며 웃지는 못했지만 브랜트의 어깨는 그 여파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브랜트는 그제야 조그마한 돌부리에 걸린 커다란 돌이 아주 힘차게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단 헌트. 그는 참,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온전히 내버려두질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실컷 브랜트가 마련해 놓은 깜깜한 작은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는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어지럽히고 유유히 떠나버린다. 최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 정점을 찍는 날인가. 실실 웃고 있는 브랜트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굳이 애써서 떠날 필요 없어."


너는 그냥, 여기 있으면 돼. 아무도 너를 탓할 사람은 없으니까. 작지만 강하게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브랜트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마신 것도 브랜트가 마신것과 같이 술은 술인 모양이었는지 아까보다는 꽤 말이 많아진 이단이 툭툭 무어라 말을 뱉었지만 그게 온전히 들리지는 않았다. 이미 브랜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말보다, 제일 듣고 싶은 말을 이미 들었기에 귀를 막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줘요."

"...뭐?"

"핸드폰, 달라고요. 그거 내 거 잖아요."


자신의 말에 드물게 활짝 미소를 짓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손에서 검은색 휴대폰을 받아 후드 주머니에 넣고는 비어있는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대신 나랑 한 가지 약속해요."

"약속? 뭔데?"


그의 술잔에 술이 가득한 것을 확인한 뒤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가득 따른 브랜트가 술잔을 들자 이단도 얼떨결에 술잔을 들어 잔을 부딪혔다. 청아한 소리와 함께 잔의 표면을 넘칠듯 말듯 아주 꽉 차게 담긴 술을 한 입에 털어넣은 브랜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기로. 그 어떤 거짓말도."


이단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브랜트는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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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시스가 다니는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선생님 하얀 마법사x키네시스가 보고 싶다...에서 이어지는 조각글들.






1.

최근 키네시스는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키네시스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그냥 말 그대로 머리가 너무 아파 꼼짝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키네시스."

"...그래서 오늘은 뭘 하고 있대?"

"2학년 B반 영어 수업하다 말고 다들 데리고 나가서 피구했대."

"......"


아, 머리야.

유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키네시스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넓은 운동장이 바로 보이는 창문 덕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이 보였고, 그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영 거슬리기만 했다. 그냥 확, 뭐라도 저질러버리면 좋으련만. 한참이나 그렇게 그 뒷모습을 노려봤을까. 무심코 뒤를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치자 키네시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담스럽습니다.'


그의 입모양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고, 키네시스는 하마타면 실수로 염동력을 쓸 뻔했다.




2.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해가 서쪽에서 뜰 예정일까. 교과서에 빼곡히 쓰여 있는 지렁이 같은 글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용한 교실에는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산만한 아이가 볼펜을 굴리는 소리 등 여러 잡다한 소리가 많이 들렸지만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딱 한 사람의 것밖에 없었다.

그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며, 보통의 평범한 학생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키네시스는 그의 목소리가 꽤 듣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테지만, 그가 누구인가. 지난 몇 달 간 자신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은 장본인이 아니던가. 키네시스는 지금 당장에라도 교내 방송으로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학교에 새로 온 영어 선생이, 사실은 메이플 월드와 서울을 하나로 합쳐 제 손에 놓고 굴려 먹으려는 끝내주는 악당이다- 하고.





3.

"목적이 뭐야?"

"그래요. 뭐하러 온 거예요?"


자신의 목소리보다 훨씬 날이 서 있는 유나의 목소리에 키네시스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긴, 유나도 그와의 기억은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닐테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평소에 즐겨입던 긴 블랙 롱코트는 벗어버린채 깔끔하게 하얀 와이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걸친 그는 누가 봐도 한창 꿈을 꾸는 여고생들에게는 참 좋은 먹잇감일테지만, 키네시스와 유나에겐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속은 시꺼멓게 문드러져, 겉만 새하얀 사람처럼 꾸미고 다니니 그 거부감이 더한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소개하셨죠. 오늘부터 이 학교에 새로 온 영어선생이라고."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키네시스와 유나의 반응이 내심 재밌는 모양인지 그는 빙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그렇게 예민한 고양이처럼 굴지 않아도 됩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저는 아무짓도 하지 않을 겁니다."

"......"

"그보다 키네시스. 당신의 성적은 확실히 우수하긴 한데- 출석이 그다지 좋지 못하더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학교에나 나오시죠."

"뭐야?"

"감시해도 좋다고요."

"......"

"선생으로서 충고입니다. 유급은 하면 안되잖아요."


키네시스는 그 때 통감했다.

완전히 그의 페이스에 말렸다는 사실을.





4.

그는 생각보다 착실했으며, 인기가 많았고, 정말 무척이나 완벽한 모두의 선생님이었으며, 키네시스의 적이었다.


"와, 이번 인기투표 1위 자리를 내줄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지금 할 소리야?"

"그러게나 말이다."


소꿉친구의 한숨 또한 깊어졌다.





5.

오늘은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다. 이게 모두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전부, 모두, 모든것이, 다. 좋아, 그래 인정해. 

그는 정말로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미행도 해보고 유나와 돌아가며 열심히 감시했지만 건진것이라고는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결과들 뿐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멍청이라며 깔아 뭉갤 것 처럼 굴더니 사근사근 다른 선생님들과 원만한 교류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이요, 어지간해서는 학생들의 미움을 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니 그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마디 하려고 하면 도리어 대체 왜 그렇게 그를 싫어하냐는 물음을 받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게 그의 목적이 아닐까.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뒷통수를 치려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오늘도 키네시스는 두통에 시달렸고, 더 나아가 속도 뒤집히는 것 같아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유나가 걱정할까봐 얼른 먼저 교실을 빠져나왔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옥상으로 올라왔다. 점심시간은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고 고대하는 시간이다. 바글바글 몰린 급식실을 내려다보며 키네시스는 살풋, 미소 지었다. 이것도 평화라면 평화다. 보통의, 평범한, 평화.


"여기 있었습니까?"


그리고 아주 쉽게 깨질 평화. 키네시스는 난간에 기댄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특별한 힘을 가진자를 찾아내는 것도 제 능력이죠."

"그럼 왜 왔어?"


키네시스의 물음에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딱히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라 가만히 있었지만 언제든지 능력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는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키네시스의 앞에 선 그는 주머니에서 적당한 크기의 알약과 함께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주스병을 키네시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급식은 왜 안 먹었습니까?"

"......"


내밀어진 것을 쉽사리 받지 못해 어정쩡한 그의 팔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키네시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 챙겨줘서 뭐 어쩌려고?"


그는 아무말없이 다른 손을 뻗어 키네시스의 팔을 집어 들었고, 곧 키네시스의 손에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건내주었다. 시원한 주스병의 표면이 피부에 닿자마자 키네시스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시원하다못해, 차가울 정도로 얼음장같은 표면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내, 키네시스는 그 주스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이 높습니다."

"...그런가보네."


주스병을 내려다보고 있는 키네시스의 이마에 그가 천천히 손을 올려놓자 신기하게도 온몸에 잔뜩 올랐던 열이 말끔하게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끈거리던 두통 또한 물러가는 것 같은 기분에 키네시스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피곤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질문을 다시 해보지 그래."

"능력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그러니 머리가 아픈 거겠죠. 피곤한 몸에 분에 넘칠만큼 힘이 흐르고 있으니까요."


거짓말처럼 그의 손이 닿자마자 말끔해지는 몸상태에 키네시스는 순간 불쾌함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이 고통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앞장섰다. 어느정도 정신이 온전히 들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이 학생 챙겨주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키네시스는 딱히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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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게 부부사기단의 마수에 걸려든 듯 하다.

8월 8일에 2차 뛰러 갑니다 얏호








2.

두고 보라고 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는지 이단은 정말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마냥 브랜트의 손을 노리는데 정말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브랜트가 전직 현장요원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 지금은 이것도 불행인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었다. 전직 현장요원 답게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제 손을 지켜내는 브랜트를 보며 지나가던 요원들이 박수를 치며 탄성을 자아냈지만 브랜트의 귀에는 다 비웃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대체 언제부터 IMF 전 부서에 이 웃기지도 않는 내기가 다 펴졌는가. 뛰어난 분석요원의 판단이고 뭐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언젠가 벤지가 아끼는 게임의 데이터를 모조리 리셋해버릴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음모를 품고 있는 브랜트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어찌됐든 이게 다 망할 이단 헌트 때문이다. 서로 이 웃기지도 않는 짓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브랜트의 고집은 황소 고집보다 더 하다.

이단 헌트?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3.

그 내기가 꽤 빨리 종결이 될 줄은 두 사람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다. 


꽤 오랜만에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라는 현장 임무를 받은 이단은 익숙하다는 듯 자신의 팀원들을 하나 둘씩 끌어들였고 그 안에는 브랜트도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벤지는 브랜트의 앞에서 반짝 반짝 작은별, 하는 노래를 부르며 두 손을 흔들어 보이는데 루터나 제인이 적당히 하라고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벤지의 얼굴이 꽤 보기 좋을 만큼 부어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이단은 브랜트의 손을 노리고 있었다. 솔직히 이쯤되면 이단도 포기할 법 했건만, 순전히 브랜트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인지 포기를 못하겠다. 이게 솔직한 이단의 심정이었다. 이런 이단의 솔직한 심정을 알면 브랜트는 그 날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딱히 분석요원으로서의 할일이 별로 많지 않아 용의자들의 신상과 계획 등을 간단히 정리한 보고서를 팀원들에게 나누어주고 백업을 위해 후방에 머물러 있던 브랜트의 인이어로 꽤 고풍스러운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오늘 용의자들의 목표는 세계의 갑부들이 모이는 무도회였다. 꽤나 유명한 인사들만 모아 놓은지라 각국의 악명 높은 기관이나 부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굳이 IMF까지 나설 이유가 있나, 싶었으나 아직 신디케이트의 모든 세력을 잡아들인 것은 아니라 확인차 온 것이었다. 


한 두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일이 없어 슬슬 지루해지려던 찰나, 벤지가 입을 열었다.


- 그래서, 이단은 아직 미션 컴프리트를 하지 못한거야?

- 천하의 그 이단 헌트가.

"임무? 벤지, 무슨 소리야?"

- 뭐긴 뭐야. 특명 윌리엄 브랜트의 손 잡아보기, 지.

"...벤지."

- 그보다 이유나 물어보죠. 이단은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맞아. 왜 그래요?"

- 그러는 브랜트 너는 왜 그러는데?

"벤지, 너 누구 편이야."

- 나? 내 편.


그러자 루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지금 척 봐도 벤지는 이단 편이고, 제인은 브랜트의 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둘이 또 돈 내기라도 했겠지. 브랜트는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지만 별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몰라요."

- 뭐?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괜히-"

- 브랜트, 너 지금 어디야?

"나? 나야, 바로 백업 가능한 벤에 있는데?"

- 지금 당장 나와!


루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와 동시에 폭발음과 함께 벤의 문이 뜯겨 나가고 곧 총을 든 남자들이 문 앞에 우뚝 서서는 브랜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 브랜트!

- 브랜트, 대답해!

"...후."


이단만큼 어마어마할 정도로 뛰어난 현장 요원은 아니지만 윌리엄 브랜트가 누구인가. 그래도 꽤 유능한 요원이다. 빠르게 적을 훑은 브랜트는 그 수가 그닥 많지 않음을 파악했지만 섣불리 행동을 개시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 좁은 벤을 탈출하는 게 먼저다.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다리. 다리에 총을 맞으면 그 순간 끝이야. 그 무리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까딱이며 벤에서 나오라는 신호를 했고 브랜트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천천히 벤의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래, 적어도 밖으로 나가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브랜트는 두 손을 든 채로 천천히 밖으로 나갔고 발이 지면에 닿은 순간 날아오는 발길질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순간 어깨에 박힌 총알에 고통은 당연하다는 듯 찾아왔다.

젠장, 한 사람에 다섯은 너무한 거 아냐? 그런 브랜트의 마음을 알리가 없는 적들을 바라보며 브랜트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이단 헌트는 어디있지?"


가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질문 같은데. 순간 스쳐지나가는 헌리의 목소리에 브랜트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 웃긴단 말야. 왜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한테 이단 헌트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해서 안달인가. 


"이단, 지금 어디있어요?"

- 정문이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방금 당신들이 벤의 문을 날려버린 덕분에 통신이 끊어졌는데, 이를 어쩌지?"


브랜트는 활짝 웃어보였다.




4.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벤지의 얼굴에 브랜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마자 땡기는 피부에 어지간히 얻어 맞았나 보구나, 하며 벤지의 이름을 나즈막이 부르자 벤지가 호들갑을 떨며 브랜트의 이름을 외치는 덕분에 병실 밖에 있던 제인이나 루터가 서둘러 병실로 들어왔다.


"브랜트, 정신이 좀 들어?"

"안 아픈 곳이 없는 걸보니 살긴 산 것 같네요."

"어디까지 기억해?"


브랜트는 기억 저편,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을 떠올려보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우습게도 그 잘난 이단의 얼굴이라는 것 뿐이었다.


"이단이 온 것 까지는 기억 나요. 그 뒤로는 기절한 거 같은데."

"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 역시 우리 분석요원이야. 팔은 당분간 못 쓸거야. 네가 왼손잡이라 다행이지."


그 말에 브랜트는 얼굴을 돌려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그래, 제일 처음으로 총을 맞은 곳이지.


"그럼 당분간 서류에 파묻힐 일은 없겠네요. 잘 됐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거야?"

"뭐가요?"

"까딱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벤은 왜 지켜?"

"...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브랜트는 흐릿한 기억 속, 갖은 협벅과 폭력 속에서도 벤 앞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긴, 이 세상 최고의 멍청이상을 수상한다면 받을 수 있을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브랜트에게는 그 일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 속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현재 그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팀원들의 모든 신상 정보와 자신들의 계획 전문등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단은?"

"너도 이단 닮아가지마. 못들은 척 말 돌리기는. 아까까지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어. 곧 올거야."

"깨어났으니 다행이긴 한데, 좀 더 쉬도록 해. 우린 국장한테 잔소리 폭탄을 맞으러 가야 하거든."


정말로 싫다는 얼굴을 해보이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가 푸흐, 웃자 그제야 벤지도 슬며시 웃어보였다. 푹 쉬라며 병실을 나간 세 사람을 보며 브랜트는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살아있는 거겠지? 그보다, 그 상황에 들이 닥친 이단이 모든 사태를 수습했다는 이야기는 꽤 놀라웠다. 역시 이단 헌트는 뭔가가 달라도 조금 다른 사람인가봐. 혼자 수긍을 하던 찰나 병실의 문이 열리며 그 장본인이 들어왔다.


"왔어요?"

"깼다는 말을 들어서."


침대 옆 의자에 앉는 이단은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적잖이 당황했다. 혹시 그도 어디가 다친 것은 아닌지 싶어 물어보려던 찰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가웠어."

"...네?"

"네 손, 차가웠다고."


아직도 그거에 연연하는 거냐고 장난스럽게 웃어 넘기기에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의 말에 숨어있는 말을 알아챈 브랜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안 따뜻해요, 내 손."

"......"

"안 믿기면 만져 봐요."


그래요, 내가 졌어요. 브랜트는 붕대가 감겨 있지 않은 오른팔을 내밀어 이단의 손에 올려놓았다. 제 손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단의 손에 브랜트는 실없이 웃어보였다.


"그러는 당신 손이 더 따뜻하네요."

"...따뜻하네."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감싸며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추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앞에도 썼지만 정말 훌륭하게 부부사기단이 펼치는 공작에 넘어가서... 이렇게 저렇게...

아무튼 브랜트 블랙 수트는 진리... 능력만 되면 이단이 브랜트 수트 벗겨먹는게 보고 싶지만... 짜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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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가 무슨 일이냐는 듯 특유의 장난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브랜트는 여전히 입을 앙 다문 상태였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삐딱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고 있는 브랜트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언제나 그렇듯 IMF 최고의 분석요원-이 되어가고 있는- 윌리엄 브랜트는 자신의 팀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모든 것을 해주었다. 최고의 계획, 최선의 방법, 최선의 선택. 그 모든것을 밤새워가며 연구해 완성한 자료와 보고서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이 브랜트가 맡은 임무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팀은 늘 도박에서 최고의 상금을 얻은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브랜트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금이 아닌 몇 장이나 되는지 모르는 시말서와 상황정리 보고서였다. 늘 브랜트가 제시한 계획에 맞게 상부에 보고를 하고 예산을 얻어내어 작전을 개시하지만 그 계획이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맞은 적은 이제껏 단 한번도 없었으며, 배는 초과하는 예산에 대한 해명과 기물 파손 등 모든 잔소리를 떠맡아야하는 것은 다름 아닌 브랜트였다. 그들은 브랜트가 이런 처사를 당하는 줄 알고나 있는지 브랜트는 진심으로 묻고 싶어졌다. 그래, 이왕이면 자신이 사랑해 마다하지 않는 총과 함께.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분석요원이고 나발이고 때려치고는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모든 것들을 총으로 갈겨버리고 싶었다. 한 때는 진심으로 국장님에게 이러하니 현장요원으로의 복귀를 허락해달라 했지만 돌아온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었다.


"자네가 아니면 그 이단 헌트의 팀을 누가 관리하겠나? 현장요원은 그로도 충분하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브랜트."


F... 브랜트는 입 언저리에 계속 맴도는 욕을 뱉고 싶었으나 미래를 위해 참아야만 했다. 브랜트는 그 좋은 머리가 다 망가져버린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국장의 말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칭찬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을 마루타로 세우기 위해 입발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브랜트는 어찌하여 그 이단 헌트가 사무실에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마무리 작업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제발 통신은 유지해달라는 브랜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려 브랜트는 끊어진 통신기에 대고 상스러운 말을 마구 뱉어냈었다. 빛이 날 정도로 멀쩡하다 못해 하루가 갈수록 같은 남자가 봐도 더 잘생겨지는 그의 얼굴에 브랜트는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의 미간 사이 혹은 그 잘난 콧등에.


"내가 어쩌다 당신 팀의 엄마가 된 겁니까? 아니,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칠 거 같으니 나가요."


날이 잔뜩 서 있는 브랜트의 말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단은 아주 조금 당황했다. 브랜트가 까칠하게 구는 것이 하루이틀은 아니었지만 오늘처럼 까칠하다 못해 냉기가 풀풀 풍기던 적은 몇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단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어."


이단은 브랜트를 나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조금 까칠한 성격을 가지게 된것은 천성이 아닌, 분석요원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고 그의 본성은 순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지고 들 때면 제인보다 무서웠지만. 그래서 아무리 자신의 팀이 사건 사고를 주렁주렁 달고 와도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면 그의 화가 반 이상은 풀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단은 최대한 진심을 담아 브랜트에게 사과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 아니냐, 라고 누군가가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단은 정말 진심이었다.


"...하하."


그런데 오늘은, 그 이단 헌트의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 것 같았다. 브랜트는 영혼 없는 웃음소리를 억지로 내며 빙긋 웃어보이더니 당장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바튼?"

- ...윌?

"너 내가 인생에서 정말 간절할 때,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했던 거 기억해?"

- 무슨 소리야?

"...나 좀 살려줘, 제발."


삑. 브랜트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이단은 낯선 이름과 함께 브랜트가 내뱉은 말을 다 주워담지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브랜트는 그런 이단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빙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한 번 잘해보세요. 이단 헌트."


브랜트는 정말 진심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는 사실을, 본부 위로 거대한 비행항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얼굴 바로 옆으로 강철 화살이 날아온 직후에서야 이단은 깨달았다.








3.

"그래서 그 다음은?"

"좀 닥쳐, 벤지."

"내가 그 악당 녀석한테 끌려가서 이런 저런 몹쓸 짓을 당하는 동안 두 사람은 재미 봤다 이거지?"

"벤지!!!"


그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참아내려고 노력하는 루터의 얼굴을 보며 브랜트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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