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에게는, 이름이 없다. 보통의 평범한 이름이 아닌 각인이라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드물게 자신의 운명, 혹은 인연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고는 하는데 세간에서는 그것을 각인이라고 불렀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제법 로맨틱한 소재가 아닐 수 없었으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장밋빛이지는 않다. 정작 찬호도 그랬다. 각인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으니까.

어떻게 사람이 단 한 사람만의 인연을 가지고 살 수 있는가. 만약 그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데 정말로 최악의 최악을 달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각인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 난 백마 탄 왕자님을 믿는 타입은 아니라서.”

역시 그렇지?”

 

하나에게는 각인이 있었다. 어깨에 자그맣게 나 있는 각인은 뚜렷하게 누구의 이름 석 자가 아닌 이니셜로만 새겨져 있었는데, 한참을 그걸 가지고 외국인이니 아니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었더란다.

 

아무튼 잘 모르겠어. 나도 아직 이 각인의 주인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하나의 말에 찬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 지금이나 각인이 있는 사람들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체적으로는 다들 알맞은 짝과 함께 꽤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니까.

 

그렇게 또 몇 년을 각인이 없이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

 

송 주임, 커피.”

커피 좀 작작 드시라니까요.”

그러면서도 타줄 거잖아. 그냥 타 줘.”

 

최근 또 무슨 일을 하다가 다친 건지는 몰라도 - 어쨌거나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 가슴과 배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을 때는 꽤 놀랐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그는 자신의 상사였고, 회사의 주인이었으니까. 찬호가 처음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신경 쓰는 것은 다름 아닌 회사에 출근한 사람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결근을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들. 사실 그런 것들을 자신이 신경 쓴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지점장님, 커피…….”

, 들어올 때 노크 좀 하고 들어와라. 요새 아주 기가 빠졌다 이거지?”

……아니요, 죄송합니다.”

 

방금 막 붕대를 간 모양인지 답지 않게 급하게 셔츠를 주워입는 그를 보며 찬호는 떨떠름하게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피가 묻어있는 붕대를 보는 찬호의 시선에 부러 붕대를 소파 뒤로 멀찍이 집어 던져 버리는 그다.

 

그렇게 다치셨는데 커피 마셔도 되는 겁니까?”

나한테는 이게 약이야.”

…….”

가서 일이나 하지, 송 주임.”

……, .”

 

자리에서 일어난 찬호는 조심스럽게 소파 뒤에서 나뒹구는 붕대를 집어 들었다. 방을 나갈 때까지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애써 모르는 척 하며 겨우 문을 닫기 전에 한 마디 덧붙인다.

 

이건 제가 빨게요. 나중에 갈 때 쓰세요.”

사면 되잖아.”

삽 들고 땅 판다고 돈 나옵니까? 저희 회사 장부 제가 관리하거든요.”

 

, 소리를 내며 닫힌 방문을 보며 그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최근에 와서 오 사장이라던가 문성구와의 일 이후로 어째 잔소리가 더 늘었단 말이지.

 

거 되게 박박 긁네, 진짜.”

 

신류하는 허리에 감겨져 있는 붕대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검은색 글자를 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송찬호. 선명하게 새겨져있는 세 글자가 영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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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신...ing

- 스포일러 포함(2화에 20화 스포일러 이야기가 나오고 그럴 수 있어요) / 개인적, 주관적 감상문

- 동인성향 有

-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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