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할까?" 

브랜트의 한숨에 드물게 이단이 얼굴을 구겼다. 뭘? 너무나도 뻔한 물음에 브랜트가 한껏 미소 짓고는 이단의 가슴팍을 검지로 꾹 찍어 눌렀다. 

"뭐긴 뭐야. 너랑 나지." 
"브랜트." 
"지쳤어, 나." 

생각지도 못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각하려고 애쓴 적이 없는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단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싫어. 안 돼. 그러자 브랜트가 얼굴을 구기며 빈정거리며 쏘아붙였다. 

"이제 와서 나한테 뭐라도 생겼어?" 
"이제 와서라니." 
"이제 와서, 지." 

계륵이야? 남 주자니 아깝고. 이단은 브랜트의 말에 저도 모르게 화를 내며 브랜트의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여전히 단단한 팔의 근육은 그대로였지만 처음 그 팔을 잡았을 때보다는 얇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단은 눈을 치켜떴다.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이단-" 
"뭐가 문제야." 

브랜트는 이단의 팔을 아프지 않게 정중히 떼어내고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까지야. 이 이상은 묻지도, 알려고 하지 마. 명백한 거절에 이번엔 눈앞이 새하얘졌다. 
신은, '이단 헌트'라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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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 쓴지 너무 오래돼서 재활치료라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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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들어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무심코 브랜트의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를 발견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보고서의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벤지가 봤더라면 아무리 이런 광경이 익숙한 요원일지라도 질색을 하며 보고서를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단도 그다지 그 보고서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I사로 위장해있던 테러리스트 집단 살인. 서른 명이 넘는 건장한 남자들이 죽어나갔지만, 그 누구도 이 사건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없었다. IMF라고 완벽하게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FBI나 CIA보다는 더 비밀스러운 편이었다. 이단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 많이 죽인 거 아냐?"


브랜트는 천천히 이단을 올려다보았다. 브랜트의 책상 위에는 그와 비슷한 보고서가 여럿이었다. 죽은 사람만 합쳐 백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것을, 이단은 알고 있었다. 브랜트가 이 모든 일을 벌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막연한 직감이었다. 이단은 브랜트가 그 모든 사람을 죽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딱히 브랜트에게 그들을 왜 죽였느냐 물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만약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면 진작 헌리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글쎄."


브랜트의 대답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로는 이 모든 살인을 그가 인정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어쩌면 이 일은 이단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단은 브랜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어떠한 종류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 그에 관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추천을 해줄 수는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단은 곧 그런 생각도 접었다. 브랜트에게는 아마 그런 것조차 필요가 없을 것이니라. 


"적당히 해."

"그러는 너나 적당히 좀 해. 내 위장을 좀 지켜달라고."

"약 사다 줄까?"

"퍽이나."


그러자 이단이 빙긋 미소 지었다. 브랜트는 그런 이단의 표정이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단은 그 길로 약국으로 향했다. 브랜트를 위해서 위장약 한 포쯤 사다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살인. 사람을 죽이는 행위. 

이단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면서 동시에 살인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딘가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자신은 사형을 면치 못하는 이 세계 최고의 사형수일 것이라 자신했다. 으으, 어딘가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대체 누가, 왜 이러는 거야?"

"음?"

"누가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냐고."

"왜? 무슨 문제라도?"


이단의 물음에 벤지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이단을 돌아보았다. 이단의 시선은 브랜트를 향해있었다. 원래 이단과 벤지는 눈 앞에 널부러져 있는 수많은 시체들과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우연히 자신들에게 할당된 임무를 모두 마치고 복귀하는 도중 벤지가 이 광경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 처리팀과 함께 브랜트가 그곳에 도착했다. 이단은 브랜트가 헐리우드의 대스타에 버금가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 확신했다. 그 수많은 시체를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조심스레 브랜트에게 다가가 말했다.


"왼쪽 셔츠 소매 안 쪽."

"...아."


브랜트는 이단이 말한대로 셔츠의 소매를 한 번 보고는 이단과 시선을 교환했다. 브랜트의 시선에는 그런 물음이 담겨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이단은 브랜트를 보며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브랜트의 셔츠 소매에는 핏방울이 딱 다섯개가 찍혀있었다. 


한번쯤은, 브랜트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지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단은 브랜트를 잘 알면서, 동시에 잘 몰랐다. 브랜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가 어디에 사는지, 그의 가족은 몇 인지. 이단은 어느 날 브랜트의 책상에서 보았던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충동적인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단은 브랜트가 무척이나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여라도 꼬리가 밟힐 일은 없도록 설계해놓은 현장은 매우 그럴 듯 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사람을 다 처리하고도 브랜트는 한 번도 들키지 않았으며,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은 적이 없었다. 이단은 후자의 사실을 더욱 놀라워했다. 하긴, 아드레날린은 종종 사람이 할 수 없을 법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단은 보고서를 전부 파쇄기에 넣었다. 복사본이긴 하지만 가지고 있기에는 찜찜했다. 찜찜하다? 그래, 이건 명백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단은 자신이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가에 대해 아주 잠깐의 시간을 들였다. 결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어졌다. 요 며칠 이단은 아주 눈에 띄게 브랜트의 뒤를 쫓고 있었으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이 쯤되면 브랜트가 모를 리 없을 거라 확신했다. 음, 이단은 또 다시 고민한다. 더 다가가야 하나, 그만해야 하나. 경쾌한 소리를 내며 조각조각나는 보고서들을 보며 이단은 미소 지었다. 왜? 내가 다가가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건 없잖아. 이단은 분명 브랜트가 싫어하는 목록 즈음에 자신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브랜트가 하는 일에 절대로 터치하는 법이 없는 이단이었지만, 그건 오롯이 브랜트가 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길따위는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벽했기에. 그러나 이단은 눈 앞에 서 있는 브랜트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고쳐나갔다. 이제는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브랜트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관해 이단은 여전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 브랜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단을 덮쳤다. 사실 그건 첫번째 보고서를 읽었을 때부터 은연중에 이단의 그림자에 섞여 있는 것이었지만 별로 깊게 생각한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랬던 것이 단숨에 이단을 집어 삼켰다. 피투성이로 또 다시 널부러진 시체들 사이에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 이단은 브랜트의 옷이며 피부에 묻어있는 붉은 액체가 브랜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브랜트를 저 꼴로 이 곳에서 내보내기에는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너 답지 않은 걸, 브랜트."


그 말에 브랜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선 이단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생각해 본 적 있어? 내가 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이유."

"생각을 해 본적은 있지."

"말해봐."

"생각을 해 본적은 있지만, 결론을 내린 적은 없어."


너무 어렵거든. 이단의 말에 브랜트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럴 수 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 첫 번째 살인은 어머니였어."

"......"

"두 번째 살인은 여동생이었고, 세번째 살인은 아버지였지."

"브랜트."

"내가 이 사람들을 죽이는 이유? 사실, 네가 맞아.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했지? 그거야 당연하지.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죽이는 거야. 내가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면서도 IMF에 붙어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곳이니까. 그 어떠한 것에도 발목 잡힐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니까. 이 나이에 교도소에 가는 건 사양이야. 난 아직 해야할 일이 많아."


브랜트는 정장 자켓을 벗었다. 그러고는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 중 가장 체격이 비슷해보이는 남자의 옷을 집어 들었다. 비교적 브랜트의 것보다는 깔끔한 정장 자켓을 보며 브랜트는 그것을 입었다.


"나 먼저 갈게."

"그래."


멀어져가는 브랜트의 뒷모습을 보며 이단은 브랜트가 했던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살인과 사람을 죽이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말. 이단의 눈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네 어머니는 너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어렸을 적 교통사고. 그리고 아버지는 자살하셨지."

"이젠 내 뒷조사까지 해?"

"브랜트, 우린 그걸 살인이라고 부르지 않아."


브랜트는 어제 일어난 집단 살인 사건의 보고서를 파쇄기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이단은 브랜트에게서 보고서를 채가듯 빼앗고는 손으로 직접 찢었다. 


"내가 어떻게 네가 이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

"지금 나 놀려?"

"대답해봐."


이단의 말에 브랜트는 입을 열었다 닫는 행위를 반복하였다.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하고 나서야 브랜트는 귀찮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너도 나랑 똑같으니까."

"그래, 맞아."

"그럼 네가 죽인 사람은 누군데."

"줄리아."

"하, 이단. 그녀는-"

"내가 죽였어."


단호한 이단의 말에 브랜트는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나오면 이제 어떠한 변명도 소용이 없었다. 이단은 알고 있었다. 브랜트가 말하는 살인의 정의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저로 인해 그 사람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라는 걸. 이단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브랜트의 감정의 둑을 나몰라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 둑을 무너트린 것은 본인이었으니. 


"맞아. 내 인생에서 내가 저지른 살인은 세 번 뿐이야. 난 그 테러리스트들을 죽인 걸 살인이라 부르지 않지."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정당방위 혹은 과실치사."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정당방위, 정당방위라. 브랜트다운 걸. 이단의 웃음에 브랜트도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 브랜트의 행동은 정당방위라 할 수도 있다. 총을 든 것이 브랜트만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정당방위라 명하기에는 브랜트가 사람을 죽인 행위는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거 좋은데. 그럴듯해."

"그러니까 내가 네 번째 살인을 저지르지 않게 해달라는 말이야."


이단은 브랜트와 시선을 맞추었다. 깊게 가라앉은 옅은 갈색의 눈이 똑바로 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단은 순식간에 브랜트의 넥타이를 잡아 당겨 입을 맞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브랜트가 제 멱살을 잡아채는 것을 본 이단이었지만 그것따윈 상관없이 브랜트에게 키스하는데 집중했다.


"이단."

"미안하지만, 너한테 죽어줄 생각이 없어서."


이단의 말에 브랜트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이단은 장난스레 웃으며 브랜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르며 펴주었다. 브랜트의 표정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다양하게 변했다. 이단은 브랜트에게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참이나 제 입술을 매만지던 브랜트는 이단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긴, 네가 내 손에 죽으면 이단 헌트가 아니지."


브랜트는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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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가 브랜트에게 그 일을 부탁한 것은, 순전히 브랜트를 놀리기 위함이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딱히 나쁜 뜻으로 그를 골려먹기 위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그 일은 이단이 하기로 하였고, 은근슬쩍 벤지가 브랜트에게 장난을 건 것뿐이다. 네가 해보는 게 어때? 벤지는 당연히 브랜트가 질색을 하며 이단에게 다 맡길 것이라 생각했다. 


"알았어."

"응, 그래. 역시 이단이... 뭐?"

"내가 한다고."


벤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고, 브랜트는 태연한 표정으로 넥타이를 쭉 잡아 빼냈다. 이단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브랜트를 보며 웃어보였으나, 브랜트는 딱히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브랜트가 타겟을 꼬시는 걸로..."


브랜트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커피를 홀짝였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파티장, 이단은 손에 든 샴페인 잔을 슬며시 돌렸다. 맑은 액체가 찰랑거리며 잔 안을 회오리 치며 출렁였다. 상큼한 과일향이 목 뒤로 넘어가면서 이상하게 보드카보다 씁쓸한 맛을 풍기는 탓에 이단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 이단의 손에서 부드러운 손길로 샴페인 잔을 거둬가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쓰게 웃었다. 


"한 눈 팔아도 돼?"

"아직 타겟이 안 왔잖아. 뭐, 곧 오겠지만."


브랜트의 말 대로 곧 환호성이 터져나오며 이 파티를 연 주인공이 행차하였다. 브랜트는 목을 축였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아 올린 브랜트는 뒤를 돌아 이단을 바라보며 개구지게 웃었다. 이단이 끼고 있는 안경의 렌즈 너머 벤지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지어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성공하면 다음 미션 때 군말않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약속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내기지. 이단은 가볍게 브랜트의 어깨를 두드렸고 순간 브랜트의 눈빛이 변했다. 단정하게 셔츠깃을 정돈하는 손길은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듯 부드러웠고, 다시 한번 손목 근처에 은근하게 풍긴 향수의 향이 코를 간질였다. 순식간에 타겟을 싸고 도는 많은 사람들의 한 발자국 뒤, 브랜트는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은근하게 시선을 던졌다. 마치, 그 모든 곳의 사람을 하나, 하나 바라보는 듯. 그리고 곧 타겟과 시선이 맞닿는 것을 보았다. 브랜트는 한참을 타겟을 바라보다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시선을 먼저 돌린 것은 브랜트였다. 봤네. 브랜트의 말에 벤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지만 이단은 타겟이 브랜트에게 다가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브랜트는 천천히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타겟과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렸고, 제 근처로 다가온 인기척에 놀란 척 돌아보며 샴페인잔을 확실하게 기울였다.


"아-."

"이런,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잔을 떨어트린 제 잘못이죠."


검은색 자켓과 회색빛 셔츠를 적시는 샴페인을 보며 브랜트는 곤란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타겟에게 샴페인을 뿌리는 건 구식이 됐지. 조심스럽게 샴페인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브랜트는 자켓의 단추를 풀러내었고, 그 안에는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살짝 몸을 숙인 브랜트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향수와 적당히 섞인 과일향에 타겟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브랜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웃으시는 건가요?"


그러자 타겟이 장난스레 웃으며 브랜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너무 뻔한 수법 아닙니까? 그의 말을 들으며 브랜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당신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브랜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며 타겟의 넥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끼워넣고 한 번에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딱 봐도 고가의 제품으로 보이는 것으로 거침없이 샴페인이 묻은 제 셔츠를 문질렀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한 발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단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브랜트를 바라보고 있는 타겟의 시선은 명백했다. 브랜트는 적당히 제 셔츠를 닦아낸 넥타이를 타겟의 자켓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웃었다.


"다음엔 손수건 먼저 건네주시죠."


넥타이가 아깝잖아요. 브랜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뒤를 돌아 그 곳을 빠져나왔다. 이단은 끝까지 브랜트의 뒤를 쫓아가는 타겟의 시선을 지켜보며 웃었다. 제법인데. 미션은 성공적이었다.





이단은 발코니로 나섰다. 또 다른 샴페인잔을 난간 위에 올려두고는 등을 기대고 있던 브랜트가 이단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었다. 무슨 지시사항이라도? 그의 말에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타겟은 자신에게로 또 다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바빴지만, 이단은 그가 종종 파티장을 두리번 거리며 브랜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단은 브랜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의 다 마른 셔츠에서는 여전히 샴페인 향이 희미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저런 사람을 꼬시는 일은 쉬워."

"쉽다고?"

"그래, 보통 저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일테니 거꾸로 행동해주면 되거든. 내가 왜 당신에게 관심이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 지 설명해봐, 하면 거의 넘어와."

"흠."

"그렇다고 너무 비싸게 굴어서도 안 되고, 너무 싸게 굴어서도 안 되지만."

"어려운데?"


어깨를 으쓱여보이는 이단의 멱살을 단번에 움켜쥔 브랜트가 이단의 입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넌 싼 얼굴이 아니라서 그래."


이단은 브랜트의 시선이 명백하게 자신이 아닌 그 건너편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브랜트는 여전히 이단을 끌어당긴 자세 그대로 속삭였다. 


"그리고 자기가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하지."


나한테 키스해.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진심이냐는 눈짓을 한 번 보냈을 뿐, 웬일로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 얕지도, 깊지도 않은 입맞춤이 끝나고 브랜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곧 발코니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이단의 귓가에 머물렀을 때, 이단은 순간적으로 브랜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빼앗으려고 들거야."

"한참이나 찾았는데, 여기 계셨군요."


브랜트는 슬쩍 이단의 팔을 쓸어내리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기울인 브랜트가 그에게 물었다.


"저를요?"

"손수건, 가져왔거든요."


그의 말에 브랜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웃는, 나름 순수한 의도의 웃음이었다, 꽤 귀여운 짓도 하는 걸. 이단은 분명 브랜트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브랜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단에게서 시선을 떼내어 그에게 붙였다. 제 옆으로 오길 바라는 눈치에 슬쩍 발을 들였다. 그는 브랜트에게 쇼핑백을 하나 건넸다. 브랜트는 그 안에 든 흰색 드레스셔츠를 보며 그에게 물었다.


"비싼 건가요?"

"부담 갖지 말아요. 나 때문에 셔츠가 그렇게 되었으니까."

"내가 두 개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럼 두 개 드리죠."


브랜트가 또 다시 웃는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타겟과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난간 위에 있던 브랜트의 샴페인 잔을 바라보았다. 반 조금 넘게 차있는 샴페인을 한 번에 마신 이단은 그대로 샴페인 잔을 난간 밖으로 떨어트렸다. 


"됐어, 확실하게 물었어."


이단은 딱히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거나,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어 이런 호사스러운 파티를 열 수 있을 만한 재력가는 아니었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빼앗으려 든다, 라."


그거 나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이단이 물었고, 인이어를 통해 브랜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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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편은 그냥 편하게 음슴체! 썰!!

사실 그 임무에 대해서 별로 생각없이 써서 그렇습니다 뉘예...





그 뒤로 짐은 브랜트를 갬블이 아닌 브랜트라고 부르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아서 그냥 브랜트를 아예 부르지 않기로 했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알고 있겠지. 스트릿의 시선이 자꾸 은연중에 브랜트에게 닿는다는 걸. 브랜트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뭐 어쩌겠어, 그러지 말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계속 그렇게 두기에도 뭐하고 애매한 관계가 되었지만 여전히 브랜트는 짐을 차갑게 내쳐버릴 수 있을만한 위인은 못됐지. 이단은 그런 브랜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사실 자기도 비슷한 짓을 브랜트에게 했던 적이 있으니까 그냥 그것에 대한 약간의 속죄와 동질감, 뭐 그런 비슷한 거. 그래도 꼭 브랜트의 옆에서 브랜트의 곁은 자신의 것이라는 걸 은근히 표하고 다니겠지. 

산체스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갔지만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음. 알고 봤더니 혼도도 결국에는 다 한통속이고 이건 뭐 믿을 사람이 있어야지.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능력 하나 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그냥 자기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로 했음. 은근히 산체스랑 제인이랑 엄청 잘 통할 거 같다. 별 거 없는 남자들보다 훨씬 잘 나가는 그녀들ㅋㅋ 


미션은 그냥 테러리스트 진압 같은 거였는데, 그 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스왓과 합동임무를 하게 되었고 퓨리가 먼저 브랜트에게 헬프를 했는데 명목상 IMF가 스왓에게 협력 요청을 한 것이다, 라고 미리 말을 맞춰두었음. 어벤져스까지 합류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진다. 그냥 일반 테러리스트라고 하자. 브랜트는 오랜만에 컨트롤 타워가 아닌 현장에 나가기로 했지. 스왓에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평범하게 폴라티와 간단한 장비들만 챙기는 브랜트를 보며 짐은 조끼도 안 입어? 하면서 거들거 같다. 그럼 브랜트가 난 원래 그런 거 필요 없거든, 하면서 소매 걷어 올리는데 짐이랑 눈 마주쳤으면 좋겠다. 흐릿해지긴 했지만 갬블이라는 자기 이름이 아직 찍혀있는 팔에서 스트릿은 눈을 뗄 수 없었고, 브랜트는 아차 하며 다시 옷을 내렸지.


"지미."

"왜?"


아니, 아니다. 브랜트는 그냥 아무 말 없이 탈의실을 빠져나갔는게 이단이 문 앞에 딱 있는 걸 보면서 망설임없이 이단을 끌어안았음.


"내가."

"그래."

"내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


이단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음. 뭐랄까 그 구남친st 같은 건 아니라도 그냥 브랜트가 스스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는 걸 이단은 알고 있었음. 브랜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어떨 때는 정말 바보같이 우직하기도 했고, 유연하기도 했고. 이단은 그저 말 없이 브랜트를 안아주었음. 브랜트는 몰랐겠지만 미처 닫히지 못한 문을 사이에 두고 이단과 짐의 시선이 부딪혔음. 이단의 시선은 딱히 도발적인 것도 아니었고, 짐의 시선도 그와 비슷하거나 훨씬 담백했지. 

브랜트는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 어중간한 태도는 이단에게도 짐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거였으니까. 그치만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롭기도 했음.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지. 짐은 모르겠지만 브랜트는 그 때 기차에 머리를 치인 이후로 거의 1년 가까이 정상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음. 정신과 상담은 물론이요, 모든 감각이 망가졌고 그걸 재활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음. 그 1년 사이에 크로아티아 일도 터졌고 이래저래... 그러다 이단을 만나서 지금에 이르렀다! 까지.


이단은 다 좋은데, 그거 하나만은 이해하기 싫었음. 순전히 사고였다고 해도 짐이 브랜트를 거의 죽음까지 내몰았긴 했으니까. 그리고 그 뒤로 브랜트가 얻은 후유증은 또 어떻고. 브랜트는 가끔 그 일로 악몽을 꾸고 두통을 호소하면서 구토도 하고 막 그러니까... 그래서 만나자마자 주먹을 내지른거고. 나중에 사과하기는 했는데, 진심은 아니었지. 


이거 너무 길어진다.... 암튼 그래서 이제 미션 당일이 왔다고 치자. 이단과 브랜트, 산체스와 짐이 전방에서 지휘하고 먼저 진입하는 역할을 맡았음. 빠르게 zip zip해서 스왓에서도 보면 그 장면 진짜 좋아하는데 갬블이 헬기 저격시켜서 추락시키는 장면 최고. 아무튼 브랜트의 눈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는 것임. 진짜 망설임없이 총을 쏘는데 쏘는 족족 저 멀리서 다가오던 적들이 쓰러지니까 짐은 입이 쓰게 느껴졌음. 그냥 그의 옆자리는, 그가 지켜주는 등은 자신의 것이었는데 하는 과거의 상념 같은 거지. 그렇게 전진하다가 짐이 갑자기 이단과 브랜트를 뒤에서 잡아당겼는데, 바닥을 보니까 지뢰가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브랜트가 웃었지.


"그래서 그 때 폭탄이 안 터졌군."


그러고는 천천히 폭탄 해제 작업을 하는데 짐이 괜찮겠어? 하면서 물었음. 그러니까 브랜트가 그 때 클레이모어를 설치한 건 나거든? 했지. 그럼 짐이 웃으면서 결국 그걸 터트린 사람은 나지만. 이럴거야. 무사히 폭탄을 제거한 후 다시 진입을 시작하는데 이단이 골목을 돌아가려는 순간 브랜트가 이단의 앞을 팔로 가로막으면서 품에 안았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총알이 날아왔지. 그러면 이단은 그대로 브랜트의 목을 손으로 받쳐 안으면서 능숙하게 총을 쏠거야. 마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편안하게. 


"브랜트, 평범하게 말로 해도 되는데."

"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르잖아."


이단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브랜트는 웃었고, 이단은 장난스레 브랜트의 뺨을 손으로 툭툭 쳤지. 그럼 산체스가 미션 중에 연애하지 말죠? 하면 이단이 선샤인하게 웃으면서 이게 우리 데이트야, 하고 웃으면 브랜트가 꼴깝떤다고 때릴거야. 그렇지만 부정은 안 할 거 같고. 암튼 그렇게 투닥투닥 하면서 무사히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그 조직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알렉스 때 처럼 돈을 제시하는거야. 그러니까 짐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변했지. 그것 때문에, 그 지랄 때문에 티제이를 잃었고, 박서는 총에 맞았었으니까. 그래서 그 놈한테 달려드는 걸 브랜트가 막았음.


"놔."

"짐."

"놓으라고!!"

"네가 이런다고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어."


대신 브랜트가 놈의 어깨에 총을 박아주겠지. 나도 돈 얘기는 좀 지긋지긋하긴 하거든. 그러고 이제 마무리 짓고 빠져나가려는데 수장 놈이 자살 테러를 했음. 입에 폭탄을 물고 있는 걸 보자마자 브랜트가 달려가서 그 놈을 걷어찬 것 까지는 좋은데 폭발에 휘말렸지. 건물 한 쪽이 무너지고 떨어지는 브랜트를 잡은 건 짐이었음. 브랜트는 자신의 팔을 잡은 짐의 손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지.


"흉터, 생겼네."


짐의 손에는 그 때 브랜트가 칼로 찌른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짐은 그게 지금 대수냐면서 브랜트의 몸을 끌어올렸지. 무사히 다시 건물 바닥을 밟은 브랜트는 갑작스레 자기를 덮치는 이명에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너무 괴로운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는 브랜트의 귀를 자기 손으로 막으며 브랜트를 달래는 이단을 보며 짐은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음.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기차가 달려드는 소리와 같아서 트라우마를 건드린 거야. 


"브랜트, 괜찮아. 괜찮아, 숨 쉬어. 천천히."


괴로운 듯 얼굴을 구기며 이단의 옷을 잔뜩 쥐며 몸을 웅크리는 브랜트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이단은 말했음.


"너에게 거짓말을 한 대가는 똑똑히 치르고 있어."

"그게 무슨, 대체...!"

"네가 진심으로 브랜트를 위한다면, 이제 그만 그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소리야."


이단은 그 길로 브랜트를 안아 올리고는 그 건물을 빠져나갔고,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보던 짐을 보며 산체스는 아무 말 없이 짐의 어깨를 두드려줬어.


"내가 못 살아! 폭탄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죽을 수는 없잖아."

"말이라도 못하면. 자, 약 먹어. 이럴 줄 알고 챙겨왔어."


브랜트는 떨리는 손으로 벤지에게서 약을 받았음. 진통제와 비슷하고 브랜트의 환청, 환각, 이명 증세를 보완해줄 수 있는 약이었음. 브랜트는 그 약을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자기가 그런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증명해주는 거니까 싫었음. 브랜트는 대충 약을 삼키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지. 결국 또 짐에게 안 좋은 꼴만 보인 거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음. 벤지가 보고 대신 해주겠다며 나가고 브랜트는 그렇게 홀로 회의실에 남아있었음. 그 때 짐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지.


"괜찮아?"

"어."


그렇게 말하며 약병을 얼른 주머니에 넣는 브랜트를 보며 짐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말했음.


"딱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브랜트는 짐의 성격상 그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나온 말인지 알 수 있었음. 원래 짐은 진짜 순하고 착해서, 고지식한면도 있었음. 이단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부탁을 하는거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을정도로. 브랜트는 아무 말 없이 먼저 짐을 안아주었음. 이상하게 짐의 키가 더 큰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지. 


"마지막으로, 이제 다시는 그 이름 안 부를테니까."

"알았어."

"갬블."

"왜 불러, 이 머저리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넌 그런 말 들어도 싸."


짐은 브랜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면서 소리내어 웃었어. 표정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보여서 브랜트도 따라 웃게 되었지. 


"자주 연락할 거지?"

"내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

"맥주 마시러 가자고 했잖아."


하, 그게 언제적이야기야. 브랜트는 스왓을 떠났던 날을 떠올렸지. 그 때 분명히 브랜트는 짐에게 한 잔 마시러가자고 권했고, 짐은 거절했었으니까. 브랜트는 알았다고 대답했음. 번호 줄거지? 아, 알았다고. 약하게 신경질을 부리는 브랜트를 보며 짐은 뭔가 다행이라는 듯 웃었지. 이제야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함과 동시에, 그냥 그 사실만으로 너무 기쁘니까.


"윌리엄이라고 불러도 돼?"

"굳이?"

"브라이언이라고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어."


한 번 불러볼걸. 뒤늦게 이어진 짐의 말에 브랜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음. 이제 브랜트도 알겠지. 짐이 갬블을 놓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징그러워, 하면서 갬블처럼 굴어주기도 할 거야. 브랜트는 그냥 개인적으로 짐 스트릿이라는 좋은 친구를 잃기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 비록 완벽하게 예전처럼 그런 사이가 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이제 그만 가지? 바람 폈다는 오해 받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소리 하면 더 있고 싶은데."

"까분다."


짐은 웃어보이더니 브랜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뒷걸음 쳤음.


"다음에 보자, 윌리엄."

"잘 가, 지미."


그렇게 짐은 회의실을 나섰고, 그걸 다 지켜보고 있던 이단에게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이면서 자기 입술을 가리키겠지. 주먹질, 갚아줬습니다, 하며 가는 짐을 보며 이단은 픽 웃어보이고는 다음에 술 한 잔 하자며 너스레를 떨었고 짐은 좋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팀으로 돌아갔음.

회의실로 들어오는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장난스레, 요새 널 문 앞에서 너무 자주 보는 거 같다. 하면 이단은 착각이야, 하면서 웃어줬으면. 


"고마워."

"뭐가?"

"이해해줘서, 기다려줘서."


브랜트는 손을 뻗었고, 이단은 그런 브랜트의 손을 꽉 쥐었음. 이단은 고개를 끄덕여보았고 브랜트는 이단의 손을 들어 제 이마를 이단의 손등에 맞대고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음.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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