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가 브랜트에게 그 일을 부탁한 것은, 순전히 브랜트를 놀리기 위함이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딱히 나쁜 뜻으로 그를 골려먹기 위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그 일은 이단이 하기로 하였고, 은근슬쩍 벤지가 브랜트에게 장난을 건 것뿐이다. 네가 해보는 게 어때? 벤지는 당연히 브랜트가 질색을 하며 이단에게 다 맡길 것이라 생각했다. 


"알았어."

"응, 그래. 역시 이단이... 뭐?"

"내가 한다고."


벤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고, 브랜트는 태연한 표정으로 넥타이를 쭉 잡아 빼냈다. 이단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브랜트를 보며 웃어보였으나, 브랜트는 딱히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브랜트가 타겟을 꼬시는 걸로..."


브랜트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커피를 홀짝였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파티장, 이단은 손에 든 샴페인 잔을 슬며시 돌렸다. 맑은 액체가 찰랑거리며 잔 안을 회오리 치며 출렁였다. 상큼한 과일향이 목 뒤로 넘어가면서 이상하게 보드카보다 씁쓸한 맛을 풍기는 탓에 이단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 이단의 손에서 부드러운 손길로 샴페인 잔을 거둬가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쓰게 웃었다. 


"한 눈 팔아도 돼?"

"아직 타겟이 안 왔잖아. 뭐, 곧 오겠지만."


브랜트의 말 대로 곧 환호성이 터져나오며 이 파티를 연 주인공이 행차하였다. 브랜트는 목을 축였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아 올린 브랜트는 뒤를 돌아 이단을 바라보며 개구지게 웃었다. 이단이 끼고 있는 안경의 렌즈 너머 벤지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지어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성공하면 다음 미션 때 군말않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약속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내기지. 이단은 가볍게 브랜트의 어깨를 두드렸고 순간 브랜트의 눈빛이 변했다. 단정하게 셔츠깃을 정돈하는 손길은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듯 부드러웠고, 다시 한번 손목 근처에 은근하게 풍긴 향수의 향이 코를 간질였다. 순식간에 타겟을 싸고 도는 많은 사람들의 한 발자국 뒤, 브랜트는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은근하게 시선을 던졌다. 마치, 그 모든 곳의 사람을 하나, 하나 바라보는 듯. 그리고 곧 타겟과 시선이 맞닿는 것을 보았다. 브랜트는 한참을 타겟을 바라보다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시선을 먼저 돌린 것은 브랜트였다. 봤네. 브랜트의 말에 벤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지만 이단은 타겟이 브랜트에게 다가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브랜트는 천천히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타겟과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렸고, 제 근처로 다가온 인기척에 놀란 척 돌아보며 샴페인잔을 확실하게 기울였다.


"아-."

"이런,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잔을 떨어트린 제 잘못이죠."


검은색 자켓과 회색빛 셔츠를 적시는 샴페인을 보며 브랜트는 곤란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타겟에게 샴페인을 뿌리는 건 구식이 됐지. 조심스럽게 샴페인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브랜트는 자켓의 단추를 풀러내었고, 그 안에는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살짝 몸을 숙인 브랜트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향수와 적당히 섞인 과일향에 타겟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브랜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웃으시는 건가요?"


그러자 타겟이 장난스레 웃으며 브랜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너무 뻔한 수법 아닙니까? 그의 말을 들으며 브랜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당신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브랜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며 타겟의 넥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끼워넣고 한 번에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딱 봐도 고가의 제품으로 보이는 것으로 거침없이 샴페인이 묻은 제 셔츠를 문질렀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한 발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단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브랜트를 바라보고 있는 타겟의 시선은 명백했다. 브랜트는 적당히 제 셔츠를 닦아낸 넥타이를 타겟의 자켓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웃었다.


"다음엔 손수건 먼저 건네주시죠."


넥타이가 아깝잖아요. 브랜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뒤를 돌아 그 곳을 빠져나왔다. 이단은 끝까지 브랜트의 뒤를 쫓아가는 타겟의 시선을 지켜보며 웃었다. 제법인데. 미션은 성공적이었다.





이단은 발코니로 나섰다. 또 다른 샴페인잔을 난간 위에 올려두고는 등을 기대고 있던 브랜트가 이단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었다. 무슨 지시사항이라도? 그의 말에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타겟은 자신에게로 또 다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바빴지만, 이단은 그가 종종 파티장을 두리번 거리며 브랜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단은 브랜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의 다 마른 셔츠에서는 여전히 샴페인 향이 희미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저런 사람을 꼬시는 일은 쉬워."

"쉽다고?"

"그래, 보통 저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일테니 거꾸로 행동해주면 되거든. 내가 왜 당신에게 관심이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 지 설명해봐, 하면 거의 넘어와."

"흠."

"그렇다고 너무 비싸게 굴어서도 안 되고, 너무 싸게 굴어서도 안 되지만."

"어려운데?"


어깨를 으쓱여보이는 이단의 멱살을 단번에 움켜쥔 브랜트가 이단의 입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넌 싼 얼굴이 아니라서 그래."


이단은 브랜트의 시선이 명백하게 자신이 아닌 그 건너편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브랜트는 여전히 이단을 끌어당긴 자세 그대로 속삭였다. 


"그리고 자기가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하지."


나한테 키스해. 브랜트의 말에 이단은 진심이냐는 눈짓을 한 번 보냈을 뿐, 웬일로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 얕지도, 깊지도 않은 입맞춤이 끝나고 브랜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곧 발코니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이단의 귓가에 머물렀을 때, 이단은 순간적으로 브랜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빼앗으려고 들거야."

"한참이나 찾았는데, 여기 계셨군요."


브랜트는 슬쩍 이단의 팔을 쓸어내리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기울인 브랜트가 그에게 물었다.


"저를요?"

"손수건, 가져왔거든요."


그의 말에 브랜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웃는, 나름 순수한 의도의 웃음이었다, 꽤 귀여운 짓도 하는 걸. 이단은 분명 브랜트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브랜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단에게서 시선을 떼내어 그에게 붙였다. 제 옆으로 오길 바라는 눈치에 슬쩍 발을 들였다. 그는 브랜트에게 쇼핑백을 하나 건넸다. 브랜트는 그 안에 든 흰색 드레스셔츠를 보며 그에게 물었다.


"비싼 건가요?"

"부담 갖지 말아요. 나 때문에 셔츠가 그렇게 되었으니까."

"내가 두 개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럼 두 개 드리죠."


브랜트가 또 다시 웃는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타겟과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난간 위에 있던 브랜트의 샴페인 잔을 바라보았다. 반 조금 넘게 차있는 샴페인을 한 번에 마신 이단은 그대로 샴페인 잔을 난간 밖으로 떨어트렸다. 


"됐어, 확실하게 물었어."


이단은 딱히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거나,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어 이런 호사스러운 파티를 열 수 있을 만한 재력가는 아니었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빼앗으려 든다, 라."


그거 나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이단이 물었고, 인이어를 통해 브랜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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