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가는 검은 기차를 보며 브랜트는 팔짱을 꼈다. 본능적이었다. 빌어먹을 기차. 브랜트는 기차에 대해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기차가 레일을 따라 지나쳐가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때 쯤, 약하게 울리는 진동에 브랜트는 핸드폰을 꺼냈다.


"또 왜요."

- 이젠 안녕하시냐, 여보세요, 뭐 이런 말도 안 하나?

"그냥 당신이 전화를 했다는 건 또 시킬 일이 있다는 것 같아서 불쾌하거든요."

- 이봐, IMF에 있으면서 어째 성격이 더 더러워진 거 같아. 바튼.

"당신 닮아가나 보죠."


하, 기가 차다는 듯 웃는 퓨리의 목소리에 브랜트도 똑같이 따라 웃었다.


- 12년 전.

"망할 기차."

- 뭐?

"어쩐지 오늘 제 눈 앞으로 새까만 기차 한 대가 지나갔거든요."

- 자네, 괜찮나?

"아마도. 그래서, 12년 전, 그게 왜요."

- 짐 스트릿을, 볼 수 있겠나?


짐 스트릿, 스트릿, 갬블, 스왓. 브랜트는 제 머리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러가지 단어들을 곱씹었다. 그 사이 또 다른 검은색 기차가 브랜트의 시야에 들어섰다. 시끄럽게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아마 무슨 말을 했더라도 들리지 않았겠지만, 브랜트는 한참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시금 기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을 때, 브랜트는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니라 그 녀석이 못 보겠죠."


그 말을 끝으로 브랜트는 통화를 종료했다. 





2.

"...시발."


브랜트는 뇌를 다 찢어버릴 듯 울리는 이명에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시트를 쥐며 이마를 짚고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명은 사그라들었고, 곧 평온함을 되찾았다. 이래서 기차가 싫다고. 엿 같아. 


"브랜트?"

"...미안."


단단하게 제 허리를 감아오는 이단의 팔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담은 브랜트는 곧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끝까지 덮었다. 


"난 기차가 싫어."

"왜?"

"너도 기차에 한 번 머리를 치여봐. 싫어하게 될거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떨었을 테지만, 이단은 브랜트의 말이 순수하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의 완벽하다 싶이 지워졌지만, 브랜트의 관자놀이에는 희미한 흉터가 남아있다는 것을 이단은 알고 있었다. 


"누구야."

"누구? 아니야. 이건 미션중에-"

"멍청한 소리하지 마, 브랜트. 네가 스스로 기차에 뛰어들었을리가 없잖아."


똑똑한 애인을 둔 것도 괴롭군. 브랜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누군지 말하면, 어쩌게."

"발이라도 걸어 넘어트릴까?"

"하, 네가 넘어트리는 놈은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


피식, 웃으며 이단의 이마에 입을 맞춘 브랜트는 그대로 이단의 품을 파고 들었다. 오늘이랬는데. 부디 이단이 짐을 어떻게 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브랜트는 미리 스왓 쪽에서 당할 청구소송을 걱정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3.

"이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망할, 이럴 줄 알았다고! 브랜트는 진심으로 짐을 향해 달려드는 이단을 뒤에서 그 못지 않은 힘으로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그를 말렸다. 퓨리, 이자 혼도는 그 상황이 퍽 웃기다는 듯 방관하고 있었고 산체스와 박서는 브랜트를 따라 이단을 막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단, 그만!!"

"내가 말했잖아. 발이라도 걸어 넘어트린다고."

"Shit, 이단. 나 봐, 나 보라고."

"......"

"나 살아있잖아. 기차에 치였어도 살아있고, 너 대신 총에 맞은 적도 있지만 살아있고, 또..."

"브랜트."

"어쨌든, 나 안 죽었다고."


이단은 짧게 숨을 내쉬고는 브랜트의 뒤로 물러났다. 명백하게 그 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현 중 하나였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조직과 함께 협력하여 맡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봉변을 당한 짐은 터진 입가를 손등으로 훑으며 이단과 브랜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산체스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항변했고, 그녀를 진정시킨 것은 혼도였다.


"저번에도 느낀거지만 화끈한데?"

"오늘 한 번 만이에요, 다음에도 이거 가지고 놀리면 국장이고 뭐고-"

"워, 워. 이봐요, 당신들끼리 이야기 하지 말고 이 상황 좀 설명해보라구요. 이 자식은 갬블이잖아요, 브라이언 갬블."

"이 자식이라니? 말 좀 예쁘게 하지 그래요. 이래봬도 우리 IMF 부국장님이라고요."


산체스의 말을 맞받아치는 제인을 보며 브랜트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짐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브랜트와 - 이번에는 - 혼도를 번갈아보았다. 브랜트는 머릿속으로 한 번 정리를 마친 후 입을 열었다.


"좋아요, 일단 오랜만이고 반갑습니다. IMF의 분석 요원이자 부국장 윌리엄 브랜트, 쉴드 소속 어벤져스의 호크아이 클린트 바튼, 전 스왓이자 사망 처리된 브라이언 갬블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셋 다, 동일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브라이언 갬블은 사망처리 되었으니, 바튼이나 브랜트라고 불러주시면 되는데 이왕이면 브랜트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은퇴했거든요, 호크아이."


간단하죠? 하며 웃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난 호크아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라며 거들었다.





4.

회의는 순조로웠다. 그들이 납득했을지는 몰라도 - 아마, 납득 못했겠지만 - 어쨌든 그들의 눈 앞에 놓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브랜트는 회의를 주도해 나가는 데 앞장섰다. 여전히 짐의 시선은 브랜트를 향해 있었고, 이단은 이미 회의실 안에 없었다.


"그럼 일단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저희 IMF가 스왓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거죠. 특수요인이 아닌 일반인은 저희 관할이 아니거든요."


끝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종료하고 서류를 정리하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와 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을 가리키며 사인을 보내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벤지와 제인이 나간 후, 스왓 요원들만 남아있는 테이블을 보며 브랜트는 넥타이를 한 번에 잡아 뺐다. 거칠게 넥타이를 테이블에 던진 브랜트는 짐의 맞은 편에 앉고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좋아, 이제 다들 나갔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하지?"

"......"

"내가 착각한거야? 할 말 없나보네. 그럼 이만 가보고. 퓨리, 아니 혼도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다면 그에게 직접 물어봐. 아마 다 말해줄거야, 그렇죠? 이제 와서 내빼지 말고."

"내가 먼저 자네에게 헬프 요청을 했을 때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거긴 한데."

"그렇다네."

"...어떻게, 어떻게 살았어?"


기껏 묻고 싶은게 그거야? 브랜트는 픽, 웃으며 짐을 바라보았다. 브랜트는 딱히 짐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감정보다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 때 당시, 브랜트는 퓨리의 명령에 따라 브라이언 갬블이라는 사람으로 스왓에 임시로 파견되었다. 장장 5년을 스왓에 있었던 브랜트는 슬슬 파견 임무를 종료하고 복귀하라는 퓨리의 명에 차근차근 모든 준비를 했다. 브라이언 갬블의 사망 신고 준비를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평범하게 술에 찌들다가 자기 삶을 방관하며 자살, 이라는 방법으로 죽었겠지만."

"하필 그 때 스왓에서 날 호출했고, 알렉스 몬델이라는 강력 범죄자가 나타난거지."

"내가 너희들의 차를 습격하고 알렉스를 구출해낸 것은,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브라이언 갬블은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매장될 예정이었고 알렉스는 그에게 넘기기로 했어. 그게 원래 계획이었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너, 짐 스트릿. 브랜트의 말에 짐이 그게 무슨 뜻이냐며 고개를 저었고 브랜트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가 날 그렇게 악착같이 쫓아올 줄은 몰랐지."

"내가 쫓아가라 그랬는데."

"당신이 그랬었어요?"

"아니, 뭐. 내가 그렇게 지시를 하지 않았어도 널 쫓아갔을 거라는데 100불 걸지."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브랜트는 속으로 신음하며 머리를 굴렸다. 짐의 얼굴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고, 그나마 산체스나 박서의 얼굴은 어느정도 이해를 한 모양인지 조금 나아보였다.


"죽었었어."

"짐."

"내가 널, 널 찼어."

"헤이, 지미."

"내가 널 밀어서 네가 그대로 기차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테이블을 내려치는 짐을 보며 브랜트는 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이 붉게 물든 눈가가, 테이블을 내려친 손이 떨리는 것을 보며 브랜트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지미, 난 네가 날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거야. 모르겠어? 너와의 몸싸움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네가 날 밀친것도 당연한거야. 그러다 기차에 치인 것은 피하지 못한 내 책임이지."

"......"

"그러니 이제 그만, 브라이언 갬블에게서 벗어나. 내가 널 놓아줄 때 스스로 물러나라고."


모르고 있었다면 웃길 것이다. 원래 브랜트는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은 못됐다. 적어도 그 때는 그랬다. 퓨리가 억지로 브랜트에게 원활한 교우관계를 가지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었고, 적당히 알아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 브랜트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짐이었고, 브랜트는 자신과 친하게 지내려고 먼저 다가올 짐을 차갑게 내칠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고 나서야, 브랜트는 그 때 차라리 짐을 차갑게 내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래."

"아까 날 친 사람, 이름이... 이단?"

"맞아, 이단 헌트."

"무슨 사이야?"


브랜트는 그 질문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집어던진 넥타이를 다시 집어들고는 매듭을 지은 브랜트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2년 3개월쯤 됐어."


진지하게 만난 거. 브랜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퓨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짐은 그뒤로 한참이나 브랜트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5.

밖으로 나가자마자 비틀거리는 몸을 받아준 것은 차가운 벽도 아닌 이단이었다. 회의실 밖을 나간 이후로 계속 문 앞을 지켰던 모양인 듯 했다. 브랜트는 너도 참 못말린다며 웃어보였으나 이단의 품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브랜트에게는 지금 이단이 필요했다. 그 누구보다도 더.


"미안해, 사고 안 치려고 했는데..."

"됐어."


잘했어. 더 쉽게 포기할거야. 브랜트는 이단에게 가볍게 속삭였다. 이단은 브랜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나 굳이 브랜트를 질책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가서 한숨 잘래?"


브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같이 가주면. 이단은 여부가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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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부터 잘못됐어. 속된말로 말하면 존나 잘못됐다고. 브랜트의 몸이 주르륵,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브랜트는 발치에 흩어진 서류 종이들의 수를 가늠해보았다. 발을 헛딛으며 제 손으로 직접 허공에 뿌려버린 서류들이 엉망진창으로 섞여버렸다. 브랜트는 그 중에 제일 글자가 많이 적혀있는 서류 한 장을 집어들었다. 정말 쓸데없이 빼곡하게 적혀져 있는 글자 사이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코발트, 핸드릭스, 러시아. 이게 첫 단추는 아니지만. 그래도 첫 단추에 이어진 일이긴 하지. 망할, 여기는 왜 추운거야. 각종 서류를 보관해 놓은 창고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구식이었다. 모든 자료와 정보를 빠짐없이 암호화 작업을 거쳐 데이터베이스에 1차로 저장 후, 2차로 종이 문서로 된 자료들을 보관실에 저장해놓는다. 중요도는 이 쪽이 훨씬 높은 편이었다. 편집 작업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원본이 대부분인 곳이다. 

편집 작업을 거치지 않은 '원본'이라는 것은 줄리아가 살아있다는 정보가 이 곳에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내가 이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 일이 있고 나서 3년이 지나서야 브랜트는 이 곳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오늘이 그 감격스러운 첫 발걸음이었는데. 핸드폰은 도통 쓸모가 없고, 내부에는 열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전선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컴퓨터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 온다고 한 마디라도 하고 올 걸. 브랜트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생각인지 깨달았다. 엉망진창으로 섞였다 한들, 그 모든 서류를 정리한 것은 브랜트 본인이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서류를 모두 정리한 브랜트는 엉덩이를 털었다. 먼지는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크로아티아. 브랜트는 할 수 있다면 그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브랜트에게 있어 일이 꼬이기 시작한 원인이자, 시발점. 하지만 쉽게 그 이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지금의 브랜트가 있는 것이니. 한 마디로 말하자면 흑역사지, 흑역사. 브랜트는 어느샌가부터 크로아티아의 일을 그런식으로 치부하고는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일은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순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꽤 뻔뻔해졌다. 그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브랜트는 상당히 뻔뻔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단에게.


브랜트는 이단에게 딱히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흔한, 동경이라거나 존경심마저도. 모두들 이단을 존경하고 우상시한다. 지금까지 전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랜트는 스스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랬다. 그러면 더, 특별해보일까.


"헛소리도 늘었지."


그래, 그렇다. 뻔뻔해진 건 좋은데 이상한 헛소리까지 늘었어. 브랜트는 신음하며 머리를 짚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브랜트는 그런 종류의 것을 싫어했다. 같은 이치로 사실 이단 헌트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별 호감은 없어야 했다. 없었어야만 했다. 나와는 다르기 때문인가. A라는 뻔한 답이 보이는 문제에 대하여 브랜트는 A라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고, 이단은 A'라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아니, 혹은 B라는 대답을 내놓겠지. 


"그게 매력적인가."


글쎄, 매력적인가? 음, 그럴수도. 브랜트는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이단 헌트, 기혼. 아마 자신의 사무실이라면 빨간펜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쳐야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게 더 매력적인 부분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고? 브랜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순간 온 몸을 덮쳐오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애써 잊으려 했던 사실이 기억났다. 춥네. 창고는 하나의 커다란 냉장고나 다름 없었다. 얇은 셔츠 바람인 브랜트는 양 팔을 감싸쥐었다. 확, 이 서류들을 다 태워? 그랬다가는 헌리에게 쫓겨나가는 건 물론이고, 무슨 일을 당할지조차 모르지만.


브랜트는 다시금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사실 원래 이곳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브랜트가 이단의 옆에서 그를 본 것은 사실 몇 년 되지 않았다. 간간히 전해져 오는 소문 따위로 그를 접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브랜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이단이 해온 일을 전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죽였단 말야?"


장난 아니네. 요원으로 스카우트해도 될 수준인데. 브랜트는 자신이 지금 영화의 각본을 읽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들의 삶이 영화와 비슷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다른 점이라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아무도 죽지 않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는 바닥을 드러내었고, 브랜트는 하얀 숨을 내뱉었다. 졸려. 브랜트는 고개를 저었다. 총을 맞아 죽는 건 생각해 본 적 있지만 얼어죽는 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브랜트는 다시금 문을 열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모든 사단이 난 것은 순전히 브랜트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잠금장치를 건드린 것이다. 원래 이 문이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라면 문제지만.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렸지만 택도 없었다. 소리를 치는 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기력 마저 소실시키는 일이니 일찍이 할 생각을 접었다.


그 날도 꽤 추웠는데. 브랜트는 물에 빠진 생쥐꼴로 기차를 쫓던 밤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면 이단과 같이 함께한 임무에서 브랜트는 숱하게 물에 빠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기에, 이단은 그것을 꽤 즐기는 것 같았다. 브랜트는 유독 추위에 약했는데 세 겹이나 겹겹이 입은 정장이 물을 먹으면 그렇게 무겁고 차가울 수가 없었다. 


- 일부러 그러는 거지?

- 글쎄.

- 이단!


아, 주마등이다. 이건 주마등이야. 브랜트는 손을 비볐다. 따뜻해진 두 손이 볼에 닿자 또 다른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이단이 즐기는 것은 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지고 난 후다. 


- 뭘 그렇게 봐?

- 브랜트, 하얀색보다 검은색이 더 야해.

- 나 좀 그만 놀려. 네가 애야? 좋아하는 여자애 괴롭히듯 굴지 말라고.


그 말에 이단은 허리를 제껴가며 웃었다. 이단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질수록 브랜트의 얼굴은 구겨졌다.


- 들켰네.


"미친."


아니야, 이건 안 좋은 기억이야.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다시 차가워진 손에 브랜트의 기분도 팍 식었다. 이래서는 무슨, 뻔뻔하다고나 할 수 있나. 브랜트는 무릎을 세우고는 다리를 모아 끌어안았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더라. 어떻게 되긴. 그냥, 그런거지. 그 뒤로 딱히 변한 건 없었다. 무언가 더 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하나, 한 가지 변한게 있다면.


"추워."


내가, 널 기다린다는 거겠지.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다. 브랜트는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브랜트."


갑작스럽게 열린 문 덕에, 문에 등을 기대고 있던 브랜트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바닥과 충돌하기 전, 먼저 브랜트의 등을 단단히 받쳐주는 팔 덕에 브랜트는 꽤 편한 자세로 이단에게 몸을 기대고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와주니까 그러는 걸지도."

"요새 책상에만 앉아있으니까 진짜 바보가 되어버린 건 아니지?"

"흐응."

"이봐, 브랜트. 농담 아니야."


몸이 차잖아. 감기 걸리겠어. 팔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브랜트의 몸을 끌어안은 이단을 보며 브랜트는 옅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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