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꿈은, 그 날은 나의 숨을 막아버린다. 숨을 쉬는 행동 자체가 괴롭다는 것을 느끼며 무력해진 몸뚱이가 가라앉음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괴롭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괴롭다는 건 사치나 다름이 없다. 그걸 내가 누릴 자격이나 있나.
브랜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약한 인간이었나. 자존감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자존심이 무너진 거겠지. 브랜트는 가만히 제 옆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이단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그럼에도, 브랜트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무너져 내린 성을 다시금 쌓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 브랜트는 가만히 이단의 옆에 눕고는 숨을 들이켰다. 고요하게 울리는 숨소리가 브랜트의 귓가에 울렸다. 그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새근, 새근. 브랜트는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심장을 간지럽히는 그 소리에 브랜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저 멀리 다 무너져버린 성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브랜트는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너져내린 성과 브랜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브랜트는 그 미소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
그는 대답이 없다. 브랜트는 이것이 자신의 꿈 속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단은 말 없이 브랜트의 손에 권총 한 자루를 쥐어준다. 브랜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와 권총을 번갈아보았다. 브랜트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제 관자놀이에 겨눴다. 그러자 이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지, 브랜트. 브랜트는 또 다시 왜, 라는 물음을 하지 않았다. 브랜트는 이단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렇게 하라고? 그러자 이단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브랜트는 그런 이단을 보며 따라 웃었다.
"잔인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브랜트는 기가 찼다. 아무리 내 무의식이지만, 너무하는 걸. 이단은 천천히 브랜트의 앞으로 걸어왔다. 총구가 정확히 그의 심장을 향해 있었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손이 떨렸다. 내가 정말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어쩌려고 그래. 브랜트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단의 얼굴에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쏴."
"싫어."
"쏴야만 해, 브랜트."
너도 알잖아, 그래야만 한다는 걸. 이단의 말에 브랜트는 심장이 철렁이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지. 브랜트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여전히 이단은 웃고 있었고, 브랜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브랜트가 고개를 저었지만 이단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쏘라는 말도, 쏘면 안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브랜트는 그런 이단이 미웠다. 그는 자신이 해답을 알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이 성을 무너트렸기 때문에?"
"그래."
"나는 너에게 복수를 해야하는 거고."
"그렇지."
"그리고 다시 성을 쌓아야만 하지."
브랜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단은 여전히 브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브랜트는 방아쇠를 당겼다.
"엿이나 먹으라지."
허공에 쏘아진 총알이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열음이 귓가에 울려퍼졌다. 한 없이, 더욱 한 없이. 브랜트는 이단에게 쥐고 있던 권총을 던져버렸다. 다시 안전장치를 했던가,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얼떨결에 총을 받아든 이단은 살풋 미간을 찌푸리며 브랜트의 이름을 불렀으나 브랜트가 한 발 빨랐다. 순식간에 이단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춘다.
"네가 이 성을 무너트렸지."
"그렇다니까."
"그럼 네가 다시 세워. 나보고 세우라고 하지 말고."
브랜트는 이단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웃었다.
"힘들고 귀찮은 일은 왜 다 내 몫이야? 네가 직접해."
"네 성이잖아?"
"알게 뭐야. 내 거, 네 거해."
마치 브랜트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도 돼?"
◈
삑, 삑. 빌어먹을 알람시계. 브랜트는 신경질을 부리며 눈을 떴다. 누구야, 토요일 아침에도 알람 켜둔 사람이.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 브랜트는 서둘러 한 팔로는 눈을 가리고, 반대쪽 팔을 길게 뻗어 알람시계를 찾았다. 허공에서 헤매는 브랜트의 팔을 붙잡은 것은 이단이었다. 이단은 피식, 웃으며 브랜트 대신 알람시계를 꺼주었다.
"일찍 일어났네."
브랜트의 물음에 이단은 그냥, 이라 말하며 브랜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브랜트가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징그러워."
"왜 일어나자마자 날 갈구는 거야?"
잠자리가 사나웠어? 브랜트는 제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는 이단의 허리를 다리로 감아 꽉 붙잡았다. 딸려온 이불이 이상하게 감기고 나서야 이단은 브랜트가 여전히 잠에 취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단."
"왜?"
"난 절대로 널 쏘지 않을 거야."
이단은 브랜트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브랜트의 눈을 손으로 덮어주었다.
"네가 쏜다고 해도 내가 피할거니까 걱정 하지 마."
풋, 브랜트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고는 팔을 휘둘렀다. 이거 떼, 앞이 안 보여. 늘어지는 브랜트의 목소리에 이단은 미소 지었다. 이제 기분이 좀 풀렸나보네. 이단은 브랜트의 허벅지를 가볍게 쳤다. 얼른 일어나. 헌리가 불렀어. 아, 왜 또. 이단의 허리를 기둥삼아 감은 다리에 바짝 힘을 주며 허리를 일으킨 브랜트는 잔뜩 표정을 구기며 한탄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그럼 쉴래?"
"허, 또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브랜트는 다리를 침대 밑으로 떨구며 고개를 흔들었다.
"커피."
"네, 네."
거실 한 켠으로 사라지는 이단의 등을 바라보며 브랜트는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여있던 총을 집어들었다. 하나의 총알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브랜트는 미소 지었다.
이걸 스코치 스포라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말 완전히 내용을 싹 다 바꾸지만 거의 의식의 흐름이나 마찬가지라 스포 주의
아니 뭐 사약이 어때서? 원래 이 세상에서 제일 달고 맛있는게 사약인 거 몰라?ㅋ....
그냥 내 최애 둘이 꽁냥꽁냥 붙어먹는 거에서 가지를 치고! 그렇게 크로스오버를 한다!
브랜트랑 민호랑 바로 위아래 형제는 아니고, 브랜트가 민호의 사촌 형 쯤? 그런 포지션으로.
대충 위키드랑 플레어랑 등등 있기는 있는데 플레어가 전 세계를 다 태워먹은 건 아니고 어느 나라, 어느 구역 뭐 이렇게만 태워먹었다고 하자. 개연성이고 뭐고... 그냥 내 최애끼리 부둥부둥하는 거 보고 싶어서 쓰는 썰이니까 그런 건 접어두자.
암튼 브랜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애는 민호밖에 없고, 민호도 그랬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거의 브랜트가 민호를 키우다싶이 했는데 한참 일하고 바쁠 때 위키드가 민호 잡아간거임. 플레어가 발병한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은 정말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브랜트가 민호를 찾으러 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는 거. 그게 브랜트가 거의 20대 초중반일때의 일. 아무튼 그래서 브랜트가 CIA든, IMF든 들어간 걸로. 그렇게 악착같이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었던 브랜트가 애 써서 IMF에 들어갔고, 브랜트는 조용히 위키드의 뒤를 파기 시작했음.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높은 직급이 필요했고, 브랜트는 단기간에 치프 요원이 되었지.
시점은 대략 로그네이션 끝나고라고 하자. 한참 신디케이트랑 이단이랑 CIA 때문에 브랜트는 당장에라도 콱 죽어버릴 것 같이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위키드가 면역인 애들을 모아서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데이터는 어떻게해서든 구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죽었다는 증거도 잡아내고 꼬리도 밟고 진짜 별 짓을 다했는데 이제와서 이걸 다 뒤집어 엎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브랜트는 정말 구멍 뚫린 위장을 쥐어짜가며 어떻게든 IMF를 복구시켰고, 그리고 드디어 위키드를 짓누를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었음. 그 때 쯤이면 위키드도 예전같지 않아서 인권 위원회니 뭐니 등등 열심히 갈구고 와해시키고 있던 중이라 부국장의 위치만 되어도 충분했지. 그리고 브랜트는 이단이랑 벤지랑 애들 모아서 보고서랑 자료들 등등 나누어주고 계획 실행할 준비를 하기로 했음.
"처음으로, 딱 한 번만... 부탁할게. 도와줘."
딱히 브랜트가 그들에게 이렇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만장일치로 승낙했지. 친구의 일인데! 최우선 사항은 아이들의 생존, 구출. 그리고 딱 계획 시작하기 전날, 이단은 브랜트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음.
"브랜트."
"만약, 그 애가..."
날 기억 못하면 어떡하지. 이단은 어렴풋이 읽었던 보고서에서 실험에 투입된 아이들의 기억은 전부 소거된 것으로 추정됨, 이라는 문장을 기억해냈음. 사실 민호가 살아있는지 아닌지 여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브랜트는 민호가 살아있다고 믿었으니까. 이단은 브랜트를 위로해줬어. 괜찮을 거야, 기억 못하면 네가 기억나게 해주면 되는 거잖아. 브랜트에게는 그 작은 위로도 크게 느껴졌지.
그리고 계획 실행 당일. 거의 황폐해진 도시를 내려다보는 브랜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어. 실제로 브랜트도 플레어 바이러스가 터진 곳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니까. 이번 작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면역인들이 투입되었고, 설사 면역인이 아니더라도 장비만 갖추면 플레어에 걸릴 일이 없었음. 실제로 플레어의 진원지인 도시에서 사는 게 아닌 이상 바깥세상은 평화롭기만 했음. 제한 구역 외의 지역은 공기 중으로 감염되는 일은 없었고, 크랭크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혈액으로 감염이 된다거나 했을 때만 증상이 나타났지.
브랜트는 면역인이었음. 이단도 그렇고. 그래서 이번엔 브랜트가 직접 현장으로 투입되었음. 컨트롤 타워는 벤지에게 맡기고. 그래도 크랭크라는 존재가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니니까 모든 무력진압이 가능한 준비 작업을 마치고 단숨에 쳐들어갔지. 브랜트는 정말 눈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쏴죽일 기세였고, 이번에 브랜트의 행동에 제동을 걸어야 했던 건 이단이었지
영화에서 나오는 위키드의 기지에 쳐들어간 브랜트는 이단과 함께 아이들을 찾아내서 구출하기 시작했음. 다른 요원들과 함께 그 안에 있던 위키드의 사람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며. 브랜트는 민호를 찾아다녔지. 그러다 아이들이 실험체로 쓰이고 있는 방에 도착했을 때 아주 약간이지만, 절망스러웠어. 혹시 이 중에 민호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와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에 브랜트는 단숨에 뒤를 돌아 총을 겨눴음.
"워, 워. 자, 잠깐만요!"
브랜트는 신에게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던 건, 민호였음. 뉴트도 있었고. 그러나 브랜트는 곧 알아차렸겠지. 민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브랜트는 침착하게 무전으로 타겟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음.
"먼저, 난 위키드가 아니야."
"그럼요?"
"IMF라고, ...풀네임이 조금 웃긴조직이 하나 있어. 너희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바깥 세상은 많이 달라.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가자. 너희를 구하러 왔어."
"우리가 당신을 믿어도 될 만한 근거는?"
그 말을 한 건 민호였음. 토마스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했고, 다른 아이들은 어리둥절해보였음. 그리고 그런 민호의 옆에는 뉴트가 브랜트를 바라보고 있었지. 브랜트는 픽 웃었지. 짜식, 많이 컸네. 나보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지고.
"날그런 변태새끼랑 똑같게 보지 말아줘."
그리고 그런 브랜트의 눈 앞에 잰슨이 나타났겠지. 빠밤. 잰슨은 총을 겨누고 있었고, 브랜트는 아이들을 제 뒤쪽으로 숨기며 동시에 총을 겨눴음.
"변태새끼라니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사실이잖아."
그렇게 브랜트랑 잰슨이랑 기싸움하다가 이단이 오고, 브랜트는 시원하게 잰슨에게 총알을 박아줬으면 좋겠다! 그럼 화면에 페이지 박사가 뜨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면 브랜트는 부국장의 이름으로 말해주겠지!
"위키드는, 끝입니다. 닥터 페이지. 더 이상 손 놓고 구경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들은 순전히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때문이라는 것을 당신이 제일 잘 알텐데요."
"위키드는-"
"옳습니까? 그랬다면 내가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윌리엄 브랜트, 요원."
"신기하네요. 날 어떻게 알죠?"
"당신의 등 뒤에 있는 소년이, 당신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군요."
페이지의 말에 브랜트는 원래 직장인이 그런 거 몰라요? 하면서 화면을 쏴버렸겠지. 쩍쩍 갈라진 화면 사이로 페이지를 바라보던 브랜트는 그럴거야.
"도망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닥터 페이지."
나 말고 이 사람이 잡으러 갈겁니다. 브랜트는 키득키득거리며 이단을 바라봤고, 이단은 어깨를 으쓱여보일뿐. 그리고 잰슨은 구속되었고, 브랜트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제 나가려는데 뉴트가 브랜트를 멈춰세웠음.
"누구 때문에 온 건가요?"
"너에게는 그게 의미가 있는 질문인지 잘 모르겠는걸?"
"우리가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인가요?"
"그래. 내가 누구 때문에 온 건, 중요하지 않잖아. 중요한 건, 구해냈다는 사실이지."
브랜트는 애써 민호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음. 그냥 민호가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며 총을 다시 홀더에 집어넣고 가는데 그런 브랜트를 붙잡은게 민호였으면 좋겠다.
"윌리엄 브랜트."
나, 그 이름 알아요. 결국 민호의 말에 브랜트는 민호를 꼭 끌어안으면서 길고 긴 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었어, 민호."
이 다음은 zip zip해서 민호는 브랜트와 같이 살게 되었음. 결과적으로 민호는 브랜트의 사촌동생이었고, 형제였고, 가족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님을 찾았다는 거였음. 그리고 실험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장례식을 국가에서 치뤄주기도 하고 이래저래 바쁜 나날이 흘렀음. 토마스는 부모님을 찾았다고 하자. 뉴트는 부모님을 찾지 못했는데,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걸로 나와서 브랜트가 뉴트도 같이 데리고 갔으면. 민호가 부탁했음. 뉴트도 같이 살게 해달라고. 브랜트는 당연히 승낙했지.
민호의 기억은 그냥 부분 부분만이 남아있을 뿐, 브랜트에 대한 건 이름 밖에 기억하지 못했음. 브랜트는 그거라도 어디냐는 듯 다행이라고 그랬고 두 사람은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음.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이제껏 하지 못했던 걸 하라고. 브랜트는 두 사람에게 그랬겠지.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요즘 세상에 학교 안 가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희 먹여 살릴 만큼은 되니까 놀고 싶으면 실컷 놀아. 아, 대신 어디가서 놀건지는 전화하고. 아직은 조금 불안하니까 뭣하면 경호원을..."
그런 브랜트를 보며 뉴트와 민호는 그랬겠지.
"IMF는?"
브랜트는 미치고 팔짝 뛸 거야 이것들이 뭐라는거야.
이 썰의 최종 목표는 그거였다. IMF에 들어가게 되는 민호랑 뉴트. 브랜트는 극구 말렸지만 민호는 브랜트한테 자기도 형 처럼 되고 싶다고 막 그러는데 몇년 만에 재회한 동생의 애교아닌 애교에 브랜트는 끙끙거리며 앓고... 무엇보다 브랜트가 걱정하는 것은.
"총 배운 적 있어, 민호?"
"딱히 배우지는 않았는데..."
그러고는 총을 몇번 살펴보더니 빵 하고 쏘는데 정가운데 명중한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보면서 많이 놀랐다눈..ㅇㅇ 이단이나 벤지나 브랜트나 오... 하면서 놀라는 와중에 엥간한 요원들은 한 번 씩 거쳐가는 피지컬 테스트에서 s랭크 찍는 민호보며 브랜트는 당장 잰슨을 죽여버리겠다고 날뛰었으면 좋겠다. 아니 애한테 뭘 했길래 애가 병기가 돼서 온 거냐고!! 악!!! 하는데 이단이 민호랑 악수하면서 어서와 IMF에, 이러면 브랜트 억장이 무너지고...
뉴트는 천부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브랜트가 혹시나 할 겸으로 준 정보분석 테스트를 만점으로 통과했으면 좋겠다. 일부러 거짓 정보와 진짜 정보를 섞어 범인을 추정하는 테스트 같은 거였는데 한 번에 범인을 집어내는 뉴트의 관찰력과 분석력에 감탄 또 감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둘 다 디지털세대가 아니라 장비들은 까막눈이라는 거? 그래도 어리니까 금방 익힐거야.
이쯤되니 거의 민호와 뉴트의 IMF 입사는 기정 사실화되어가고.. 브랜트는 다 좋으니까 민호한테 이단이랑 너무 친해지지 마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랬으면. 네가 그러다 나중에 뉴트 위장에 구멍을 뚫을지도 몰라... 절레절레... 하면 뉴트는 민호가? 그럴 일 없을 걸요? 하고 웃는데 브랜트는 왠지 부러웠다.
그 뒤로 브랜트는 열심히 벤지랑 이단이랑 같이 병원 다니면서 치료도 꼬박꼬박 받고 약도 잘 먹고 해서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었음. 못 고치는 병은 아니니까! 그러던 어느날에는 집에만 있기 싫다고 오랜만에 IMF로 출근 도장을 찍고 싶다고 말하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랑 이단이 질색하며 말리겠지.
"윌리엄, 의사선생님이 스트레스 받으면 안된다고 그랬잖아."
"벤지 말이 맞아, 브랜트."
"오호라, 그렇다는 건 내가 이제까지 너희 둘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지?"
하니까 둘 다 침묵. 음, 그건 아닌데, 아니 아닌게 아니라... 하다가 결국 브랜트의 바람대로 IMF에 같이 출근도장을 찍겠지. 브랜트가 아픈 이후로 벤지는 거의 자택업무를 봤고, 이단도 좀 쉬엄쉬엄 현장에 나갔음. 솔직히 이단은 이제 은퇴해도 되지 않냐... 싶었는데 그냥 현장일이 좋으니까 있었던거고 아직 세상은 이단 헌트를 필요로 하니까 있었을 뿐. 브랜트나 벤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은퇴 도장 찍고 나올 수 있었지.
브랜트는 허겁지겁 나오느라 자기 후임 분석요원한테 제대로 인수인계도 못해줬다는 사실이 좀 마음에 걸려서. 오랜만에 옷장에서 정장 꺼내 입는데 이단이 그거 보고는 벤지한테 셔츠 빌려달라고 하자, 했으면. 근육도 빠지고 살도 빠져서 원래 사이즈가 너무 넉넉하게 남는거야. 그래서 벤지 셔츠가 얼추 들어맞을 정도가 되었지. 그 사실이 못내 씁쓸하면서도 얼른 옷을 갈아입은 브랜트는 이단이랑 벤지랑 사이좋게 IMF로 출근을 했음. 그리고 지옥을 봤겠지(?
헌리의 위장병은 심각할 수준이 되었고, 후임은 나름 잘해보려고 하는데 워낙 이단이랑 벤지가 마이 페이스다 보니 두 사람을 어려워하는 느낌이고. 브랜트는 실컷 이단이랑 벤지를 까고는 정리에 들어가기 시작했지. 다들 수근수근 했을거야. 세상에, 그 이단이랑 벤지 요원을 꾸중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헌리에게 커피도 사주고 하면 헌리는 브랜트를 엄청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브랜트가 아프다는 사실은 얼추 이단과 벤지가 얘기해줬다고 하자. 국장님인데 알아야지.
그 뒤로 브랜트는 후임 요원, 이름은 제이미라고 하자. 제이미한테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나 이단과 벤지를 다루는 요령 등등을 열심히 가르쳐 주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서류 정리는 도와주기도 했지. 그냥 너무 오랜만에 오니까 그 지긋지긋했던 직장도 반갑고 하는 마음에 브랜트는 나름 열심히 일을 했어. 때마침 브랜트가 있으니까 헌리는 이단과 벤지에게 큰 건수를 넘겼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팀 이단 헌트! 출격 뭐 이런 비슷한 상황이 되었지.
그리고 이단은 여전히 사고를 쳤고, 벤지도 전보다 더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브랜트는 저녁치 약을 미리 먹어야만 했음.
원래 이렇게까지 통제가 안되던 인간들은 아니었는데... 내가 현장을 너무 떠나있었구나... 브랜트는 한숨을 쉬며 비장의 수를 쓰기로 했지. 브랜트는 컨트롤 타워의 모든 마이크의 전원을 내리고는 말했음.
"지금부터 내가 뭘 해도 그건 다 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제이미, 넌 나 좀 도와줘."
"저요?"
"그래, 내가 싸인을 주면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거야. 꼭 내가 바로 죽을 사람인 것 처럼."
"어, 어떻게 그래요?"
"너도 저 두 악마한테서 벗어나고 싶을 거 아냐. 그 절실함을 목소리에 녹여내봐."
"해보이겠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 자세야. 브랜트는 마이크의 전원을 넣어두고는 다급하게 이단과 벤지의 이름을 불렀음. 그리고 막 뭔가가 터지는 소리 박살나는 소리 등등을 들으며 제이미와 눈을 맞춘 브랜트는 마이크에 대고 심장을 부여 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음.
"아윽, 으...!"
"브, 브랜트 요원님!!"
괜찮으세요? 요원님! 분석요원님!! 막 이런 말들 사이로 갑자기 모든 소음이 사라지더니 이단과 벤지의 목소리만 들렸음.
"브랜트!!"
"윌리엄!!"
브랜트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인거야. 그리고 두 사람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 더미들을 일부러 바닥으로 떨어트렸지. 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엄청 절절하게 들리니까 장내가 숙연해졌음. 그리고 브랜트는 마이크의 전원을 꺼버렸지. 그리고는 깔깔거리며 웃었어.
"요원님, 연기 진짜 잘하시네요."
"너는 몸 조심하도록 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니까. 돈 벌어서 병원비로 다 써버리면 아깝잖아."
제이미는 브랜트가 정말로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겠지.
그리고 정확히 1시간 29분 뒤 헐레벌떡 이단과 벤지가 본부로 들어왔고, 컨트롤 타워에서 유유히 녹차 티백을 우려먹고 있던 브랜트가 싱긋 웃으면서 말하길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지?"
"스트레스..."
"스트레스..."
"잘 아네?"
이단과 벤지는 하하,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락가락 투닥투닥 하다가 일주일에 한 두번 브랜트가 연기하면 벤지랑 이단은 또 시작이다, 하면서도 불안하니까 쏜살같이 미션 끝내고 달려오고 그랬음. 브랜트는 뭐, 이 두 사람이 현장에 있는 한 그 뒤는 자기가 지켜주고 싶었지.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똑같이 벤지와 이단의 능률을 향상 시켜 주기 위해(?) 준비하는데 이번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아픈거야. 제이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음. 그런데 브랜트가 사인을 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쓰러지는거야. 헉, 숨 넘어가는 소리에 제이미는 오늘 따라 요원님의 연기가 너무 리얼한데...? 하고 있다가 브랜트 주머니, 주머니에- 하면서 제이미 바지 붙잡으니까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거지. 브랜트가 원하는대로 브랜트의 자켓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준 제이미는 당장 이단과 벤지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브랜트가 말렸음. 마이크가 켜져있어서 차마 말은 못하고 고개만 도리질 칠 뿐이었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이단과 벤지가 무슨 일 있냐며 물었지만 브랜트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평소와 같아. 그러니까 오늘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와, 하는게 보고 싶다. 그 말을 겨우 뱉고는 그 정신에 마이크도 철저하게 꺼놓고는 정신을 잃겠지. 제이미는 당장 의료팀을 호출할 거고 브랜트는 의무실로 실려갔음.
벤지랑 이단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 날따라 브랜트가 정말 아픈 것 같아서 얼른 미션을 끝내고 왔더니 제이미가 안절부절 떨고 있겠지.
"브랜트는?"
"그, 의무실에..."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채 두 사람은 의무실로 달려갔지. 그리고 문을 부술 듯 안으로 들어갔더니 브랜트가 침대 위에 반쯤 누워서 초콜릿바 먹으며 두 사람을 반겨줬으면 좋겠다.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
"괜찮은거지?"
"괜찮아, 정말로. 그냥 빈혈이래."
"빈혈?"
"그래. 어디 사는 누구씨들 덕분에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자?"
사실, 의무실로 실려오던 도중에 브랜트가 속을 다 게워내서 억지로라도 칼로리바를 먹고 있었다는 건 비밀.
사랑받는 브랜트가 좋다. 막 셋이서 한 침대에 누워서는 브랜트는 이단 어깨에 기대고 있고, 벤지는 브랜트 허벅지 베고 누워있다거나 하면서 셋이 영화보고. 셋 다 취향이 비슷하면서 달라서 어느날은 로맨스, 어느날은 공포, 액션.. 막 섬렵하고 다녔으면. 그리고 시시콜콜하게 같이 다녔던 미션들 떠올리면서 영화보다 우리가 더 영화 주인공 같다, 하면서 킥킥대고. 하필 슬픈 멜로 영화하는데 여주가 불치병 걸려서 죽어가지고 벤지랑 이단이랑 서둘러 티비 꺼 버리니까 브랜트가 웃으면서 왜 이래? 멋대로 사람 죽이지 마, 하면서 농담하는 분위기도 좋을 거 같은.
그러던 어느 날, 심야영화를 보는데 아니 그래도 건장한 남자 셋이니 야한 영화도 보고 막 그럴텐데.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근데 딱 영화를 보면서 이단이 그 완벽한 얼굴로
"허리 좀 더 들어봐, 빡빡하잖아, 라니. 완전 AV 대사잖아. 안 그래?"
"......"
"......"
"둘 다 얼굴이 왜 그래?"
:] 하면서 웃는데 브랜트랑 벤지랑 악! 악! 아무것도 아니거든!! 하면서 꺄아아 거렸으면 좋겠다. 근데 뒤에서는 서로 합심해서 그런 점잖은 얼굴로 그런 말이라니 반칙이야 꺄아아 하면서 짝짜꿍 하면서 놀았으면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단이 장난끼 돌아서 벤지랑 눈을 맞추더니 그대로 브랜트 밀쳐서 엎어트리니까 벤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브랜트 두 팔 잡고... 브랜트는 헤이, 이봐, 친구들...? 하면 이단이 그랬으면 좋겠다.
"이봐, 브랜트. 따지고 보면 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 그랬나?"
"이제와서 내빼기 없어, 윌리엄."
그리고 브랜트는 정조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꼈겠지.
사실 장난만 치고 말려고 그랬는데 tv에서는 야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분위기가 갖춰지니까 이단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벤지를 바라봤음. 벤지는 진심이야? 미쳤어? 아픈애한테? 이러면서 도리질 치는데 이단이
"그럼 안 해?"
하니까 브랜트가 놀라가지고는
"뭘 해!"
하는데 벤지는 안 돼! 안 해! 하다가 이단이 그렇게 바라보면 ㅎ, 해! 할 거 같다. 사실 삼각수위썰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벌건 대낮이다. 흠.. 흠흠... 내 안에서는 뭐 이미 했..겠지.(ㅋ
사랑받는 브랜트 2
브랜트가 샤워하려고 욕실 들어가려니까 이단이랑 벤지가 윗옷 벗을 준비하고는 브랜트 바라보는데 브랜트가 어이없어서 됐거든? 내가 애냐? 꺼져! 하면서 욕실로 쏙 들어가버렸음. 멍청하게 서 있던 이단이랑 벤지가 서로 마주보고 웃더니 우리가 좀 그랬나? 하면서 실실 거릴 때 브랜트는 욕조에 물 받아놓고 누워서 똑같이 실실거리겠지. 그냥 이단이랑 벤지가 자기한테 애정을 주는 그 행동 자체들이 너무 기쁘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데 브랜트가 씻으러 들어간지 1시간이 지났는데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해서 후다닥 욕실로 들어갔더니 브랜트가 그대로 잠들어버려서 얼른 이단이 브랜트를 욕조에서 꺼내서 옷도 입혀주고 난 다음에 벤지는 이불로 꽁꽁 싸서 안고 있었으면. 이단은 계속 브랜트 손 주물주물 해주고. 그리고 딱 눈을 뜬 브랜트가 옅게 웃으면서
"미안, 깜빡 잠들었네."
하면 이단이란 벤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을듯. 그냥 갑자기 브랜트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이 확 와닿아서 무서워졌으면 좋겠다. 브랜트는 정말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고,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병은 정말 차츰차츰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임. 솔직하게 의사도 100% 완치는 장담하지 못했는데, 거의 반 이상은 치료가 됐다고 해도 무방할정도. 그래도 가끔 이러면 이단이랑 벤지는 더더욱 브랜트에게 헌신하자 생각할거야. 브랜트는 그런 두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음. 두 사람 다 브랜트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싫어함. 특히 벤지가. 그럴거면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좋아한다고 해주라고 그래서 브랜트가 알았다고 그럼ㅎㅎ
더블링? 맞나? 암튼 그런거 두 개의 링이 하나로 되어있는 그런 디자인으루!! 그래서 셋이 똑같은 더블링 끼고 다녔으면 좋겠다. 이단이랑 벤지는 목걸이로 하고 다니고 브랜트는 손에 끼고. 그래서 막 IMF 사람들이 우리 수석 분석요원님이 품절남인거야? 하면 제이미는 언젠가 이단과 벤지도 똑같은 반지를 가지고 있던 걸 생각해내겠지.
아무튼 이렇게 해피해피 꽁냥꽁냥하는 이단브랜벤지 보고 싶다.
셋이서 그들만의 세상에 푹 빠져 영원히 행복한채로. 매일 매일 식사당번을 정하고, 청소당번을 정하며 씨름하다 소파랑 침대에 널부러져 tv도 보고 수다도 떨고 가끔 산책도 나가고. 드라이브도 가고. 커플짓 같은 거 셋이서 트리플짓 하고 앉아있고 ㅋㅋㅋ 브랜트의 병은 정말 100% 완벽하게 완치되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좋아. 의외로 병약 속성이 브랜트한테 넘 잘 맞는 거 같음... 아픈데 아픈 티 하나도 안내고 오히려 더 강하고 꿋꿋하게 사는 게 브랜트한테 잘 어울림.
프러포즈는 이단이랑 벤지랑 동시에 해줬으면 좋겠다. 브랜트는 나 여기서 누구 거 받을 지 고민해야해? 하고 물어보면 둘 다 말 없이 웃겠지. 장담하는데, 브랜트는 둘 다 받을거야.
브랜트는 이단을 좋아함. 고백도 했었음. 이단은 그런 브랜트를 정중하게 거절했고, 브랜트는 알았다고 그렇게 돌아섬. 팀 내에서 문제 일으킬만한 건 만들지 않겠다고 평소와 다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브랜트를 보며 이단은 괜찮아보이네, 할 뿐 별 다른 마음은 없었음.
벤지는 브랜트를 좋아함.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음. 이단에게 한 번 고백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준 것도 자신이고, 고민상담은 물론이고 조언까지 열심히 해줬음. 브랜트를 좋아하니까, 브랜트가 이단이랑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단이 거절을 한 거지. 그 뒤로 벤지는 뒤에서 브랜트를 많이 챙겨줬음. 보나마나 브랜트는 여전히 이단을 좋아하고 있을거고, 포기하지도 못하겠지. 그렇지만 거절당했으니 더 나서지는 못할 거고. 그게 그냥 다 안쓰러워 보였음. 솔직히 자기 아니면 챙겨줄 사람도 없고, 브랜트 성격에 열심히 곪고 곪기다 썩어문드러질 거 같아서 그게 걱정인 것. 그래서 굳이 식사 안하겠다는 브랜트 데려다가 밥도 먹여주고, 기분전환 하자고 드라이브 가자 그러고 브랜트를 열심히 챙겨줬음.
브랜트는 벤지의 마음을 모르지 않음. 알고 있으나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거야. 언제 한번은 술을 잔뜩 마시고는 벤지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음.
"넌 내가 이단을 좋아하는데, 그래도 날 그렇게 챙겨줄 마음이 들어?"
"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아니잖아."
"벤지."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내가 이렇게 한다고 네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야. ...후,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는 널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강요는 안 해. 네가 이단에게 네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바보네."
"누가 누구한테 바보라는 거야? 그럼 넌 이 세상 제일 가는 멍청이야."
브랜트는 그런 벤지가 너무 고마웠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 벤지는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었음.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는 이상 다른 애인을 만날 일은 없었고 - 그게 자신이 아니더라도 - 결과적으로 브랜트의 옆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벤지였음. 이단은 현장일로 바빴으니까. 벤지도 물론 현장요원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브랜트의 보조 및 팀 내의 서포트 역할을 하기로 했지. 그래야 브랜트의 옆에서 브랜트를 지켜볼 수 있으니까.
벤지가 브랜트를 좋아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였음. 그 전에도 호감은 차곡차곡 쌓였겠지. 같은 팀원으로서의 동료애? 같은.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 그 얼굴이, 이단의 존재 하나만으로 표정 변화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는 게 너무 신기했음. 그러다 문득 그게 왜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좋아지게 된 거임. 그러나 벤지는 브랜트가 이단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도, 고백하지도 않았음. 그러나 브랜트는 알겠지. 원래 같은 처지에 놓인 비슷한 사람은 다 알거야.
브랜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이 이단을 대했고, 이단은 그러려니 했을 뿐. 벤지는 그런 이단이 부럽고, 동시에 미웠지.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막상 이단과 브랜트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행인가? 같은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보였지. 그래도 그 모든 걸 다 억누를 수 있을 만큼 브랜트가 좋았음.
근데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잖아. 하루 하루 잘 버티던 브랜트가 어느 날 부터 부쩍 야위어가기 시작하고 술도 많이 마시기 시작했음. 술을 마실 때에는 벤지가 브랜트의 곁에 있어줬고, 벤지는 브랜트가 차라리 이단 욕이라도 하던가 뭐 그러길 바랬음. 그렇지만 브랜트는 아무 말 없이 정말 술만 주구장창 마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마신 거 같아서 벤지가 브랜트를 말리려고 하던 찰나 브랜트의 마음이 둑이 무너지듯 철철 넘쳐 흘렀어. 정말 너무 서럽게 모든 걸 토해내듯 우는데 벤지도 가슴이 먹먹한거야. 정말 너무 아프게 우는 브랜트를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음. 벤지는 차라리 내 마음을 받아주면 좋겠어, 라는 말도 하지 못했지. 이렇게 울 정도로 이단을 좋아하잖아. 브랜트가.
그렇게 떡이 되도록 마신 브랜트를 부축해서 침대에 옮겨 놓는데 일어나려는 벤지를 브랜트가 잡아당기고는 그 위로 올라탔음. 벤지는 그냥 브랜트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음.
"벤지."
"왜?"
"내가 하자고 하면 할래?"
벤지는 온 몸에 힘이 쫙 다 빠져버렸음. 사실 그건 브랜트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 중 하나였으니까. 자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는 실실 웃는 브랜트의 팔을 잡아 당겨서 순식간에 위치를 역전시킨 벤지는 브랜트의 입술에 그냥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을 뿐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브랜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굴었지만 벤지는 그냥 짧은 입맞춤만 하고는 브랜트의 옆에 드러누웠지. 마치 곰인형을 안듯이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술냄새 너무 많이 난다."
"벤지."
"브랜트."
"응."
"난 너와는 이런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아."
"무슨 관계?"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차라리 그럴바엔 네 연애 상담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베스트 프렌드가 좋아."
브랜트는 그제야 벤지의 품에 안겨서 계속 미안하다 말했음. 브랜트도 그제야 안 거지. 자신이 한 행동은 절대로 벤지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계속 미안하다 말하는 브랜트의 등을 토닥이면서 벤지는 괜찮다고 말했음. 괜찮아, 그러니까 그만 울어. 못생긴 얼굴 더 못 생겨질거야. 그런 말에도 묻어나오는 다정함에 브랜트는 너무 울어서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지.
"넌 왜 나 같은 걸 좋아해서."
"아니, 그건 아니지."
"뭐가?"
"내가 좋아하는 건, 멋지고 섹시하고 일 잘하는 IMF의 수석 분석 요원 윌리엄 브랜트라고. 여기 지금 내 품에서 질질 짜고 있는 울보가 아니라."
벤지의 말에 브랜트는 울음을 그치고는 힘 없이 웃어 보였어. 벤지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지.
브랜트는 그 날 이후로 다시금 일 잘하고 멋있는 IMF의 수석 분석요원의 모습을 되찾았음. 그리고 벤지와 더 돈독한 친구가 되었지. 벤지가 브랜트를 브랜트가 아니라 윌리엄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벤지가 브랜트를 윌리엄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브랜트는 그럴거면 윌리라고 부르지? 할 정도로 농담 따먹기도 잘 하고 여기저기 같이 놀러다니고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처럼 굴었지. 벤지는 그걸로 만족했고, 브랜트도 딱히 아무 말 하지 않았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이단은 둘이 많이 친해졌네, 했을 뿐.
그러다 어쩌다 벤지랑 브랜트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아니냐는 뭐 일종의 루머 비슷한 것이 돌았고, 이단은 그랬지. 잘 어울려. 브랜트는 이단의 말에 내가? 벤지랑? 그러면서도 좋은게 좋은거지, 이런식으로 말했는데 정작 벤지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어.
"웃기지마!"
"...벤지?"
"너는, 너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벤지."
화를 낼듯 말듯 애매한 벤지의 모습에 브랜트가 벤지의 손을 잡았고, 벤지는 겨우겨우 화를 삭혔지만 분이 가시지 않았음. 브랜트는, 널 좋아한다고. 내가 아니라, 이단 헌트. 바로 너 말이야!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 벤지는 이단을 만난이후 처음으로, 이단이 너무 싫었어. 그러나 브랜트를 위해서 그래서는 안됐어. 벤지는 열심히 속으로 화를 삼켰지. 그 때부터 이단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 뒤로 브랜트는 아주 천천히, 서서히 IMF에서 사라져갔으면 좋겠다. 벤지는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 다름아닌 자신이 도운 일이니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브랜트가 IMF를 떠나는 것에 대해 두 팔 들고 반대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브랜트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지. 그렇게 브랜트는 벤지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IMF에서 지워갔어. 부서 이동이라던가, 말이 은퇴지 사실상 탈주나 다름없는 모든 과정을 벤지가 옆에서 도왔고 퇴직금도 일찍 당겨받을 수 있도록 수를 다 써서 브랜트가 IMF를 뜰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주었지. 그리고 사라진 IMF의 수석 분석 요원의 자리를 대신할 분석 요원이 팀에 배정되었을 때 이단은 벤지에게 브랜트의 행방을 물었지만 벤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음.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며. 그건 브랜트의 부탁이었고, 벤지의 진심이었음.
브랜트는 도시 외곽,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적당히 넓은 집을 구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신분 세탁이야 껌이고, 그것도 다 벤지가 도와줬고. 아예 벤지가 자기 사촌의 이름으로 집도 구해다주고 계좌도 깨끗하게 세척해주고 모든 걸 다 해줬음. 그리고 그 보상이라고 해야할지 벤지는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나 브랜트에게 올 수 있었고, 브랜트는 그런 벤지를 마다하지 않았음. 오랜만에 만나면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맞이하듯 벤지를 맞아주었고, 이틀 사흘 자고 가도 네 빨래는 네가 네 손으로 하라며 구박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지.
이단은 브랜트를 찾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해도 찾을 수 없었고, 벤지는 능청스럽게 모른다고 했지. 오히려 이제와서 왜 브랜트를 찾는건데? 라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음. 그 때쯤, 브랜트는 이상하게 야위고 말라갔지. 벤지도 이상함을 느꼈을 때 쯤, 브랜트는 고백했음.
"몰라, 무슨 병이래."
"뭐?"
브랜트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으나 벤지는 충격 그 자체였음. 병이라니? 무슨 병? 고칠수는 있대? 이것저것 물어보는 벤지를 보며 브랜트는 웃으면서 말했음.
"병원 잘 다니면 고쳐진대."
그래서 내일부터 병원 다녀. 예약도 다 해놨어. 으, 뼈 빠지게 돈 벌어놨더니 병원비로 다 날리게 생겼잖아? 라면서 투덜거리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너무 불안했음. 자기도 같이 병원에 가자는 벤지를 말린 건 브랜트였음. 싫어.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브랜트 때문에 벤지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음.
"진짜 괜찮다니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너한테는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 건강하고 섹시한 모습만 보여줘야지."
벤지는 당장에라도 병원 서버에 접속해서 브랜트의 의료 기록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브랜트랑 약속했음. 나 진짜 거짓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 거짓말 탐지기라도 받을까? 하며 말하는 브랜트를 보며 벤지는 브랜트를 믿기로 했음.
그러나 대부분이 그러하듯, 브랜트는 아주 아픈 병을 가지고 있었음. 병원을 열심히 다니면 나을 수 있는 병이긴 했지만 치료가 너무 힘들고 독한 병이었음. 환자 본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치료 조차도 시도해보기 힘들정도로. 처음에 브랜트는 자기가 그런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지. 브랜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던 일이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이단에게 혐오받는 것. 둘째로는 벤지조차 제 곁에서 사라지는 것. 셋째로는 윌리엄 브랜트가 더 이상 윌리엄 브랜트가 아니게 되는 것.
최근 브랜트는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자신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음. 여전히 이단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벤지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브랜트는 스스로를 경멸하다 싶이 했음. 벤지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최악의 등신이네, 상등신. 브랜트가 벤지에게 말한 것은 거의 다 사실이었으나 완벽하게 고치기 힘들다는 사실은 숨겼지. 그리고 엄청 고통스럽다는 의사의 말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어. 이제까지 벤지는 자기 때문에 얼마나 아팠겠어. 그래서 브랜트는 자기가 벌을 받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이왕이면 포기하지는 말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그렇지만 치료는 정말 너무 아팠고, 이게 병을 낫게 하는건지 병을 더 악화시키는 건지 모를정도였음. 하루 걸러 하루꼴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가 일쑤였고 잠도 많이 설치고. 그리고 기어코 벤지가 병실에 누워있는 브랜트를 발견했을 때, 브랜트는 웃었지. 들켰네.
"미안해."
"......"
"살아보려고, 널 위해서라도 살아보겠다고 노력했는데."
"윌리엄."
"진짜 너무 아프다."
그래도 브랜트는 치료를 계속 하겠다고 했고, 벤지는 매일같이 브랜트와 함께 병원에 왔음.
그러던 어느 날, 미션 때문에 어떻게 해도 브랜트가 있는 병원에 갈 수가 없게 되었음. 벤지는 브랜트에게 전화로 못 가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음. 브랜트는 나 너 없이도 치료 잘 받으러 다녔었거든? 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음. 그렇지만 벤지는 너무 불안한거야. 최근 브랜트의 상태는 좋다고는 절대 말 못하니까. 그리고 그 대화를 이단은 다 듣고 있었어. 전화를 끊은 벤지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단을 보며 말을 삼켰지.
"누구야."
"......"
"벤지."
이단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절실함마저 녹아있었지. 벤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이단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음.
"내가, 내가 이번 미션 반드시 성공시켜 보일테니까."
"......"
"윌리엄한테 가. 지금 당장."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은데, 지금 아니면 못볼지도 몰라.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음. 그저 제 손에 쥐어진 벤지의 핸드폰을 꼭 쥐어보일뿐. 그러나 이단은 가지 않았음. 빨리 가라니까!! 소리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말했지.
"브랜트가 기다리는 건 내가 아니야, 그렇지?"
"이단."
"가도 같이 가."
"늦을지도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빨리 끝내야지."
죽을힘을 다해서. 이단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고, 벤지는 그런 이단을 보며 자신도 각오를 굳혔음.
"그리고 일을 내팽개치고 갔다가는, 브랜트한테 엄청 깨질거야."
브랜트는 말 그대로 고비를 겪고 있었으나 그래도 어떻게든 그 고비를 넘기고는 병실에서 눈을 떴음.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피투성이의 인간 둘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며 웃었지.
"둘 다 꼴이 그게 뭐야?"
"미안해, 좀 급하게 오느라."
"나도 빨리 씻고 싶은데 냄새나도 좀 봐줘, 윌리엄."
브랜트는 이단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묻지 않았음. 그냥 오른쪽에 있는 이단이랑 왼쪽에 있는 벤지 보면서 실실 웃을 뿐이었음. 그 날 우선은 퇴원 해도 괜찮다는 의사의 허락을 맡고 브랜트는 이단과 벤지와 함께 집으로 왔음. 이단이 브랜트를 업고 가고 벤지가 브랜트의 짐들이랑 진단서, 약 등등을 챙겨서 갔음. 등에 업혀서 가는 브랜트는 거의 잠에 취에 있었고 이단은 너무 가벼운 브랜트의 몸무게에 벤지를 보며 물었음.
"언제부터 이랬어?"
"반 년 전부터."
"너는 그걸 다 알고 있었고."
"너한테는 말하기 싫었어."
"왜, 라고 물어보면 말해줄거야?"
"나는 브랜트를, 브랜트는 너를 좋아하니까."
의외로 털털하게 말하는 벤지를 보며 이단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
"내가 이제와서 브랜트를 좋아한다는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아."
"......"
"너나 브랜트나,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래."
벤지는 이단과 브랜트를 번갈아볼 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음. 그 뒤로 브랜트는 이단과 벤지와 함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 벤지는 브랜트에게 네가 이단을 아직도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고 했음.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지. 브랜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 잘했어. 그리고 그런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을 보며 이단이 웃으며 말했지. 밥 먹을 사람? 브랜트, 너는 약 먹어야 하니까 꼭 먹어.
이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 브랜트가 자신을 숨기고 잠적했다는 사실도,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는 것도. 그저 벤지와 함께 묵묵히 브랜트의 곁을 지킬 뿐이었지. 브랜트는 그게 불편하다가도, 이젠 자포자기랄까. 식탁 왼편에 이단이랑 벤지랑 앉아있고 오른편에 자기가 앉아있는 상황이 너무 웃겨서 밥 먹다 말고 킬킬 거리면서 웃었는데, 벤지랑 이단도 따라서 웃었지.
"진짜 이상하다."
"그러게."
"이제 이단이 벤지를 좋아하면 완벽하네?"
"어우, 소름 돋았어."
브랜트는 전과 다르게 자신이 이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꾸밈없이 표현하였고 벤지도 자기가 브랜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지. 굳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도 없고, 외길에 서 있는 느낌도 없이 편안하게. 이단은 점점 더 브랜트에게 헌신하다 싶이 굴었고, 벤지는 그게 싫지 않았음. 원래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던 거니까. 셋이서 밥을 먹는게 익숙해질 무렵 벤지는 천천히 브랜트의 집으로 들이는 발걸음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음. 브랜트의 곁에 이단이 있는데 자기가 그 사이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다급한 얼굴로 이단이 벤지를 붙잡겠지. 빨리 브랜트의 집으로 오라고. 벤지는 브랜트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 건지 급한 마음에 헐레벌떡 달려갔음. 집으로 돌아가니까 브랜트의 얼굴이 정말 말이 아닌거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또 아파? 하니까 브랜트는 아프다고 그러겠지.
"너 안 오는 날에는 병원 안 갔어."
"미쳤어?!"
벤지는 브랜트와 이단을 번갈아보며 경악에 찬 얼굴로 물었고 이단은 꽤 어두운 얼굴로 벤지를 바라보았음. 저 얼굴은 진짜로 브랜트가 병원에 안 갔다는 소리였음. 벤지는 대체 브랜트가 왜 그런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브랜트를 바라보았고, 브랜트는 웃으면서 말했음.
"같이 가자."
"...왜?"
이제 나는 없어도 되잖아. 네 곁에는 이단이 있잖아. 벤지는 브랜트가 자신을 동정하지 않아줬으면 했음. 이제까지 자신이 브랜트에게 쏟은 헌신은, 순전히 브랜트를 좋아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에 보상을 바란 적은 기필코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세 가지가 있어."
"......."
"하나는 이단 헌트에게 경멸 당하는 것. 또 하나는,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것. 마지막 하나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
"윌리엄."
"벤지."
"그래, 말해."
"미안해."
벤지는 브랜트가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게 싫었음. 그럴 때 마다 브랜트의 마음은 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옆에 있어봤자 브랜트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게 만들었으니까.
"나, 너 많이 좋아해. 진심으로."
브랜트의 말에 벤지는 무심코 이단을 바라보았음. 이단은 웃고 있었고, 브랜트는 벤지를 타박했음.
"내가 너 좋아한다는데 이단은 왜 봐?"
"그, 그렇지만..."
"그래, 맞아. 나 아직 이단'도' 좋아해."
"......"
"최악이지?"
벤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지.
"정말 너 답다."
"그래?"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윌리엄 브랜트다워."
어느것도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런, 점이.
"난 너희 둘 다 좋아."
"아, 소름 돋았어."
벤지의 말에 이단의 표정은 정말 그러기냐며 일그러졌고, 브랜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음. 빨리 병원에 가자는 벤지의 말에 알았다고 말했음.
"오늘 저녁 당번은 네가 해."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래, 알았어."
이단의 등에 업혀서 한 팔로는 이단의 목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벤지의 손을 붙잡고 가는 브랜트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보였지.
트위터에서는 떠든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중심과 오른쪽, 왼쪽 양 날개의 균형이 잘 맞는 삼각관계를 참 좋아한다.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귈 수 있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잘 지내는 그런 그들만의 세상 같은 것.
브랜트를 중심으로 이단과 벤지가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삼각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꼭 이단의 적수일 필요는 없는거니까.
공존의 세상에서는.
브랜트에 대한 독점욕도 물론 있지만, 공생도 충분히 가능한 세 사람이 보고 싶었음.
벤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다정할 거 같다. 남들이 등신같다고 욕하는 다정함이라도. 그 사람이 제일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옳은 길을 제시해주고,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는 가슴 아픈 결과가 되더라도 그렇게 하라고 응원해주는 그런 사람.
벤지와 브랜트 위주라 이단의 감정선이 매우 애매한데, 처음 이단이 브랜트를 거절한 것은 그냥 보통의 평범한 이유임. 이단의 눈에 브랜트는 연애 대상이 아니었음. 그렇다고 지금와서 연애 대상으로 바뀐거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닌것... 그냥 어느 순간 브랜트가 사라지고,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 고백했던 브랜트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브랜트는 절대로 이단에게 제 마음을 강요한 적 없고, 질척거리게 남은 것도 아니고 담백하고 깔끔하게 멀어졌다면 오히려 이단이 다시금 브랜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함. 그리고 실제로 아픈 브랜트를 봤을 때 느꼈겠지. 이대로 끝내면 안된다고. 이게 연애감정이든 아니든 그런 건 하등 상관이 없는거야. 그냥 윌리엄 브랜트 라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 같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더욱 그렇기에 벤지와 공존할 수 있다고 봄.
뭔 속풀이가 이렇게 기냐...
암튼 그렇게 셋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이단브랜벤지 보고 싶다. 브랜트의 병은 앞서 충분히 풀어놨다싶이 충분한 치료를 통해 치료가 가능한 병이니까. 해피엔딩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