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미네는 푸르기 그지 없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흔한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옥상 하늘은 한산하기만 하다. 자신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농땡이를 피운다는 소문이 언젠가 퍼진 후로,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가끔 소꿉친구라고 하나 있는 소녀가 오는 것 빼고는 정말 다른 사람의 발걸음은 뚝 끊긴 지 오래다. 그런데 그 소문이, 오늘 끊길 모양이었다.


"오, 찾았다."

"......"


꽤나 의외의 얼굴에, 아니 어쩌면 의외의 얼굴이 아닌 그의 얼굴에 아오미네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러자 그의 인상도 똑같이 구겨진다. 그 후에 망설임없이 들어오는 주먹은 꽤 사나워 뎅, 하고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프다고!"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내가 왜 때리냐? 사람 얼굴 보고 얼굴을 팍 구기는 건 어디서 배워먹었어?"

"이봐, 당신-"


아, 진짜 아프다고. 곧이어 이어지는 두번째 일격에 아오미네는 허리를 잔뜩 구부리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 싸맸다. 저 사람은 정말 쓸데없이 팔 힘이 세다. 자신만큼이나 꽤 오랜시간 농구에 힘을 쏟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정말 쓸데없이 팔 힘이 세다. 차라리 농구가 아니라 격투기 쪽으로 진로를 바꿔보면 어떠냐고 넌지시 말한 적도 있으니 할 말 다했다. 그 말을 하니 옆에 있던 여우 선배가 비죽 웃으며 그것 참 어울린다, 말했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대 맞은 건 당연한 수순이 된 정도였다.


"버릇없게 당신이 뭐냐, 당신이."

"......"

"한 번 더 맞을까?"

"아, 알았다고. -카사마츠 선배."

"잘 알고 있잖아."


아마 이 자리에 사츠키가 있었다면 아주 기겁을 했을 것이라고, 아오미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한번도 누구를 선배라는 호칭을 붙여 불러본 적이 없을 것이다, 라고 자부할 수 있는 만큼 아오미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는 그런 남자였다. 사실 폭력을 써서라도 그 버릇이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던 몇몇과는 다르게 아오미네는 은근히 까고 보면 꽤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많은 남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말에 일리도 있긴하다. 다른 사람의 이름 따위는 금방 잊어버린다. 유난히 카사마츠의 이름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연습하러 오라고 까지 하진 않겠지만."

"-않겠지만?"

"역시, 건방진 애송이. 쯧, 내려와서 연습이나 도와줘."

"앞뒤가 안맞잖아.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농구부 연습 말고-"


아오미네는 순간 자신에게로 던져진 농구공을 한번에 잡았다. 역시, 반사신경 하나는 끝내주게 좋네, 라며 감탄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 연습, 도와달라고."

"...농구, 할 거야?"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그 시선을 차마 피하지 못한채로, 카사마츠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한순간, 아주 미묘하지만 조금 굳어버리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아오미네는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 같은 놈한테 부탁하는 거 아냐."

"거, 나 같은 놈이라니.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그래, 내가 미안하다. 어쨌든 진심이야. 1년이나 지났으니 몸이 많이 굳어버렸을 거 같지만."


이제, 저 정도로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나. 안타깝게도 아오미네는 완벽하게 카사마츠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는 절대로 그른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야?"

"나는..."


그것이 순전히 그의 이름을 묻는다거나,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따위가 아니었다. 농구에 관해서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두 살이나 어린 후배 녀석을 보며 카사마츠는 긴장을 달래보려 깊은 심호흡을 해본다.


"토오의, 카사마츠다."

"좋아. 도와줄게."


단순히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냥 그가 마음에 들었다. 아오미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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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피스톨즈 기반 AU

- 원작과 설정이 다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딱 한 번, 인생에 딱 한 번 뿐이지만, 키세는 자신이 인어를 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키세 료타는, 아오미네 다이키를 동경했다.

동경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그 단어를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키세 료타는 아오미네 다이키를 동경하면서도 질투에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미워하기도 했다. 


키세는 치타인 아버지와 공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중종이었다. 공작의 아들이라 그런지 유독 키세는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키세의 어머니는 굉장히 잘 나가는 여배우였고, 그 미모를 쏙 빼닮은 키세는 어렸을 때부터 그 이름 하나만으로 벌써 유명인이었다. 이 사회는 모름지기 아름답고 힘이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그들이 손에 넣는 것의 이름은 다양했다. 누군가에게는 권력, 누군가에게는 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모두 중종의 것이었다. 어중간한 중간종들은 딱 그들의 위치에 맞게 중립을 유지했고, 경종은 적당히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살아갔으며, 원인은 원인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키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 그게 바로 키세 료타였다.


그런 키세의 인생에 느닷없이 뛰어든 것은 아오미네였다. 아니, 정확히는 키세의 호기심이 불러 일으킨 결과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학교 부활동 따위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참으로 웃기게도, 혹은 신기하게도 기적의 세대 여섯명 모두가 중종이었다. 키세는 그 사실을 아주 쉽게 납득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게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중종도 중종따라 급이 분류되기도 하지만, 워낙 중종이 귀하기는 귀한 것이라 그냥 중종이라는 하나의 무리로 분류되었다. 그 귀한 중종이 여섯이나 모인 무리라니.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심지어 아카시는 중종 중에서도 환상의 동물이라 일으켜지는 가문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키세에게 있어 인생의 활력소, 그 비슷한 것이었다. 그들과 있으면 단조로운 삶에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아오미네의 존재다. 이제껏 키세는 자신에게 필적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을 고스란히 깨버린 것이 아오미네다. 아오미네가 과연 키세에게 필적하기만 했는가. 아니, 아니다. 그는 언제나 키세를 뛰어넘었다.


"치사하네요, 진짜. 그래서 정말 안 가르쳐 줄거예요?"

"거 참, 귀찮은 녀석이네."

"한 판만 더 해요. 이기면 당신이 무슨 종인지 가르쳐 주는 거예요!"

"퍽도 네가 나한테 이기겠다."


분하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껏 키세는 아오미네한테 단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었다. 키세가 기적의 세대에서 그 종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 몇 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어떤 종인지 다 알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건 굉장히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혼현을 함부로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그건 또 다른 의미로, 타인에게 자신의 혼현을 보이거나 자신이 어떤 종인지 밝힌다는 것은 신뢰의 지표이기도 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말해줄게요."

"흠,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데."


아오미네가 자신을 밝히지 않은 것처럼, 키세도 아오미네한테 자신을 밝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기적의 세대 중 키세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카시와 쿠로코 뿐이었다. 아카시는 그의 존재가 초 희귀종인 만큼 그만큼 감이 발달해 있는 것이었고, 쿠로코는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지도록 소설이나 동화 속 이야기들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쿠로코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쿠로코의 눈은, 사람의 혼현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었다.


"나부터 밝힐테니까. 대신 아오미넷치도 밝힌다고 약속해요."

"알았어."

"치타요, 고양이과."

"뭐야, 너도 고양이과야?"

"네?"

"난 표범."


같은 포유류, 같은 고양이과에 대한 친근감이었나. 어쩌면 동질감. 키세는 유독 아오미네에게 끌렸던 이유를 이제야 안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몇번이나 아오미네에게 도전했지만 그럴 때마다 왕창 깨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키세는 정말로 털을 바짝 곤두세운 고양이 같았다. 자존심이 없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를 동경하고 있지만, 수백번씩 깨지는 것은 키세의 성미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같은 고양이과라면서. 사실을 있는대로 말하자면 아오미네는 좀 더 야생의 짐승다운 고양이었고, 키세는 우아한 귀족같은 고양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런 키세의 발치에 농구공이 채인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한 여름 아닌가? 보는 사람이 다 더워보일 정도로 온 몸을 꽁꽁 감싼 작은 체구의 소년을 보며 키세는 머리보다 더 빨리 말을 뱉었다.


"저기, 나랑 농구하지 않을래요?"

"네?"


어쩌면 아주 단순히, 아오미네에게 진 울분을 토해낼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좋아요."



"엄청 잘 하시네요."


그건 이쪽에서 할 말이다. 키세는 어느새 턱 끝에 맺혀있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을 삼켰다. 그냥 농구 좀 하는 일반인, 에서 어느새 농구를 좀 많이 잘하는 사람으로 승격한 소년을 보며 키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오미네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 뿐이지, 그냥 실력으로 따지자면 키세도 모자라진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래, 순전히 전적으로 보자면 지금까지 키세가 더 많이 이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으나, 뭔가가 달랐다. 이기고 있는데 전혀 이기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영 찝찝했다.


"이름이 뭐예요?"

"그건 왜 물어요?"

"내일도 나와요."

"뭐요?"

"내일도 나와서 나랑 농구하자구요. 소년씨."

"허-."


그래도 소년은,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 소년의 이름은 카사마츠였다.



"요새 키세군의 플레이가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아카시의 물음에 쿠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기운차게 아오미네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키세는 확실히 어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플레이가 좀 더 정교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오미네에게 너무 많이 깨져서 이제야 감을 잡은 것인지 아오미네의 행동을 따라잡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끈질기게. 아오미네는 제 상대를 할 수 있는 키세의 성장이 반가운 모양이었고, 키세는 확실히 예전보다 더 잘 보이는 아오미네의 플레이에 텐션이 더 오른 모양이었다.


"키세군, 요새 뭐 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저요? 농구요."

"그건 맨날 하는거잖아."

"아니, 여기서 하는 부활동말고요."

"그럼?"

"그런게 있어요."


그러면서 혼자 웃어보이는 키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사뭇 달라보여, 쿠로코가 슬며시 물었다.


"좋은 선생님이라도 두었습니까?"

"선생님이요? 흠, 선생님이라..."

"널 가르칠 사람이 있다고?"

"뭐, 선생님이라. 그거 좋네요. 그 사람, 나보다 나이도 두 살 더 많고. 일단은 선배니까."

"어디 다니는데?"

"네?"

"학교 말이야."


그 질문은 생각치도 못한 것이었는지 키세의 얼굴이 조금 미묘한 티를 냈다.


"그걸 몰랐네요. 오늘 물어볼까."



"학교?"

"네. 우리가 벌써 농구하고 지낸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교복이라도 입었지. 카사마츠는 교복도 안 입었잖아요."

"이게 그러면서 은근히 반말하네."

"에이, 우리 사이에."

"꺼져. 우리 사이가 뭔데. 아무튼, 그거 알면 뭐하게. 학교까지 찾아와서 농구해달라고 그러게?"

"아니, 뭐. 나도 그 학교 갈까 하는 그런거죠!"

"뭐?"


아, 방금 좀 놀랐다. 키세는 그와 꽤 친해졌다고 생각한 요 며칠동안 꽤 카사마츠의 얼굴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치타가 누구 눈치를 보다니. 공작이 웃겠네, 공작이. 첫만남과는 다르게 카사마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얌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농구를 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농구를 참 잘하는 농구부의 부원이었으며, 두 살 연상의 사람. 승부욕이 자신 못지 않게 강하며 체력은 어찌나 강한지. 지구력이 부족한 쪽은 항상 키세쪽이었다. 그와 이렇게 농구를 하면서 체력이 많이 붙은 것은 사실이었고, 상황을 보는 능력이 생긴 건 사실이었으니 어쨌든 카사마츠는 키세에게 있어 선생님이긴 했다.


"안 가르쳐 줄건데."

"왜요?!"

"네가 진짜로 우리 학교 올까봐."

"그게 뭐 어때서요!"

"나 따라서 고등학교를 정한다니 바보냐? 넌 그렇게 안 생겨서 꽤 멍청한 짓을 자주한단 말이야. 오늘도 그래. 마지막 원 온 원에서 내가 쓴 페이크에 걸렸지?"

"아니, 그건 선배 시선이-"

"그러니까 그런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페이크에 걸린다는게 말이 되냐?"

"아, 그, 그건- 아니 그보다, 은근슬쩍 말 돌리지 말아요?"

"바보던지 천재던지 하나만 하라고, 임마."


쓸데없이 눈치는 빨라. 혀를 차는 카사마츠를 보며 키세는 진심으로 상처 받았다는 얼굴로 카사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카사마츠를 관찰한 결과 중 하나였는데, 카사마츠는 자신의 이런 표정에 조금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럴 땐, 어머니에게 감사를 하게 된다. 


"...?"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카사마츠를 따라 하늘을 보았지만,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이 맑음 그 자체였다. 또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건가, 하려 따지려는 순간 카사마츠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사마츠 선배?"

"가야 돼."

"네?"

"비가 올거야. 너도 얼른 들어가."


짧은 한 마디만을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카사마츠를 보며 키세는 어이가 없어져 조금 화가 나려했다. 아니, 학교 하나 알려주기 싫어서 저런 말까지 하면서 가야하나? 투덜거리며 가방을 집어들고 천천히 집으로 향하던 키세는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 손으로 만져보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맑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거센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뭡니까? 카사마츠 선배는."



그 뒤로 비는 한참이나, 한참이나 내렸다. 

장마인가, 라고 고민할 틈도 없이 아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키세는 원래부터가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감성적이라고 했지만, 어쩌랴. 깃털이 젖는 것을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성미를 빼다 닮은 것을. 그나마 다행인것은 부모님 중에 파충류나, 수중계 반류가 없어 비오는 날이 딱히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비오는 날엔 연습을 하지 않기도 한다. 부모님이 둘다 파충류에 수중계인 무라사키바라를 배려한 것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빠짐없이 공원으로 가보았지만 카사마츠는 없었다. 키세는 마음 속으로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의 부모님 중에 파충류나 수중계의 반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집에 박혀서 체온 조절을 해야만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서운해질 줄 누가 알았는가. 키세는 가만히 자신의 핏줄을 되새겨봐야 했다. 자신은 엄연히 고양이과지, 개과는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비가 그치던 날, 키세는 아주 활짝 핀 얼굴로 공원으로 달려나갔지만 그는 없었다.

카사마츠는 그 뒤로 단 한번도, 공원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쿠로콧치는 혹시 반류들의 특징들을 다 알고 있어요?"

"어느정도는요. 꽤 특이한 종이 아니면 잘 모르지만요."

"비가 오는 날을 아주 기가막히게 알아차리는 반류가 혹시 있을까요?"


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쿠로코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키세는 정말 주인을 찾는 강아지처럼 굴었다. 옆에서 보는 고양이과 망신 당하게 하지 말라는 아오미네의 핀잔에도 키세는 꿋꿋하게 그 태도를 고수했다. 그래서 혹시나 곧 졸업을 앞둔 예비 고등학생의 심란함같은 섬세함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라는 말은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쿠로코였다.


"비를, 알아차리는 반류, 말입니까..."

"카사마츠 선배가 그랬어요. 선배가 곧 비가 온다고 하니 정말 기가막히게 딱 비가 왔다니까요."


키세는 조금 절박해지기까지 했다. 그가 뭐라고 자신에게 이런 기분까지 안겨주는 건지,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이젠 화까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사마츠에게 직접 가서 따지고 싶었다. 갑자기 제 인생에 끼어들었던 주제에,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려도 되는거냐고. 카사마츠는 키세의 인생에서 아오미네라는 존재 외에 자신을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카사마츠의 가치는 키세에게 그만큼이나 높았다. 혹시 무슨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적도 있다. 이렇게 줄줄이 늘어놓으니 꼭 사랑에 빠진 18살 소녀같지만 그런 건 지금 키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이 료타라는 걸 알아간 주제에 자기는 이름도 안 알려줬다. 정 떨어지게 카사마츠가 다 뭐냐. 이름도 한 번 불러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혼자 한참이나 삽질을 하고 있었을까, 쿠로코가 입을 열었다.


"키세군."

"네?"

"키세군은 아직 진학할 고등학교를 고르지 않았죠?"


쿠로코의 말에 키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사마츠에게 했던 말은 그냥 스쳐지나갈 빈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키세는, 기적의 세대가 찢어질 것이라는 것쯤 옛적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카사마츠를 따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변화가 생긴 시점부터 변화가 생긴 것은 비단 키세만이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오미네부터 시작했지만 키세는 그게 딱히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기적의 세대 전부가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혹시 마음에 둔 학교가 딱히 없으면."

"......"

"바다가 보이는 학교로 가보세요."

"바다가, 보이는 학교요...?"

"그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쿠로코의 말을 끝까지 들을 여유도 없이 짐을 챙겨 교무실로 달려간 키세의 뒷모습을 보며 쿠로코는 섭섭하면서도,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바다, 바다라. 쿠로코는 키세가 그를 만나길 바랬다. 카사마츠가 있었기에, 키세는 그대로인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쿠로코에는 그 사실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언젠가, 쿠로코도 카사마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인어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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