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세하] 동백꽃

 

주변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동백꽃을 보며 누군가는 순수하게 감탄을 자아냈으며, 누군가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꽃향기가 코를 찌르듯 몰려와 결국 게임기를 집어넣은 세하는 무심코 동백꽃을 꺾어보았다. 순간 순식간에 오그라든 동백꽃이 다시금 활짝 피며 그 자리에서 꽃잎을 휘날리며 소멸해버렸다. 혹시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여 그 즉시 부리나케 달려온 제이가 세하의 손에 들려있던 동백꽃을 쳐내자마자 꽃은 사라져버렸다. 꽃이 잔뜩 만개하여 펴 있는 주변보다 꽃잎을 흩날리며 사라지는 그 광경이 몇 배는 더 아름답다고, 세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심코 서 있던 제이의 머리 위로 빨간 꽃잎이 내려앉았다. 세하는 그게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새하얀 머리가 금방이라도 짙은 붉은색을 머금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이 감상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아마도 꽃향기에 취했기 때문이리라.

차원종에 의한 오염 때문에 피어난 동백꽃은 무더운 여름날에도 싱그럽게 피어있었다.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것 말고는 딱히 위험한 점을 감지해지 못하여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물러나기로 하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곳에서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짙은 꽃향기가 온 몸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서둘러 자신을 빼내오는 제이 때문에 세하는 금방 꽃향기를 지워낼 수 있었다.

아저씨.”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이는 딱히 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좋아하는 축에 속했다. 가만히 앉아 은은하게 풍기는 꽃향기를 맡고 있으면 그 날 하루는 꽤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온 사방에서 진한 꽃향기를 풍겨대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제이는 딱히 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는, 붉은 꽃이 아닌 다른 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붉은 꽃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크게는 트라우마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아주 간단한 이치였다. 제이는 새하얀 꽃이 새빨간 피로 물들어버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순전히 그 기억 때문에 붉은 꽃이 싫었다. 그러나 또, 모순적이게도 붉은 꽃을 좋아할 때도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그가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이니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단순한 이유다. 제이가 좋아했던 그녀는 무척이나 붉은 꽃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풍성하게 아름다운 꽃잎으로 자신을 뽐낼 줄 아는 꽃과 같았으며, 강하고 아름다웠고, 눈이 부셨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찌 보였을지 몰라도 제이의 눈에는 그랬다. 그랬기에 그녀를 더욱 지켜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웠기에 그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싶었다. 제이에게 그녀는 말 그대로 꽃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제이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가 붉은 꽃을 싫어하게 만든 트라우마는 바로 그녀에게서 비롯됐다. 새하얀 꽃잎을 붉게 물들인 것이, 그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그녀 스스로 그 꽃을 꺾으며 웃어보였다. 참 예쁘지 않아? 그녀의 말에 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제이는 자신의 그런 버릇이 싫었다.

 

 

꽃밭에 다녀왔니?”

세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미 진득하게 배어 있는 꽃향기는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흘끗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색함을 느낀 세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동백꽃에는 안타까운 전설이 하나 있다고 하지.”

.”

재킷을 벗다말고 꽤나 멍청한 목소리로 물은 세하는 정말로 놀라움을 숨길 기색도 없이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동백꽃인 건 또 어떻게 아신 걸까. 그런 물음을 차마 하기도 전에 세하는 지수가 건네는 우유 잔을 받아 들었다.

옛날에 아주 사이좋은 부부가 있었지. 금슬이 아주 좋았다고 해. 어느 날은 남편이 육지에 볼일이 있다면서 배를 타고 밖으로 나섰단다.”

그거 사망 플래그…….”

남편은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 한참이 지나고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 몇 년이 지나도 말이야. 기다림에 목이 타던 아내는 기어코 앓아누웠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지. 그런데 아내가 죽은 바로 그 날, 남편이 돌아온 거야.”

…….”

남편은 통곡했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무덤으로 가 울었단다. 그러자 곧 그녀의 무덤에서 조그마한 나무가 자라더니 빨간 꽃을 맺었는데, 그게 바로 동백꽃이었다고 하는 구나.”

그 눈물은, 피눈물이었을 거야. 살며시 웃으며 말하는 지수의 목소리에 세하는 깔끔하게 비워져있는 우유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에 만족스럽게 웃은 그녀는 싱크대에 잔을 담갔다.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직도.”

지수의 말에 세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말도 없이 뒤돌아 나가는 세하를 보며 지수는 코끝에 스미는 동백꽃의 향을 맡으며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두르렴.”

 

 

문제의 동백꽃밭에 도착한 세하는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한참이나 골라야만했다. 미친 듯이 뛰어오느라 폐가 터질 것 같은 이 시점에 짙은 꽃향기가 숨을 탁, 막아버리는 것 같아 괴로웠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곳이 생각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는데,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금방이라도 꽃향기에 집어 삼켜질 것 같아 그 곳을 나오려던 찰나, 그곳으로 들어오던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세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하?”

저는 말이에요.”

?”

기다리는 건 싫어요.”

…….”

그리고 누굴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싫어요.”

자신의 팔 옆으로 비죽 솟아있는 붉은 꽃을 바라보던 세하는 그대로 그 꽃을 손으로 짓눌렀다. 순간적으로 방출해낸 위상력이 꽃에 불을 붙였다. 불타는 정원, 그 속에 사람이 서 있는 기이한 광경을 연출해냈지만 세하나 제이 둘 중 아무도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하의 위상력에 꽃이 하나 둘 씩 타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짙은 향기만이 퍼질 뿐이었다. 이윽고 깔끔하게 타버린 꽃밭을 내려다보며 세하는 살며시 웃어보였다.

붉은 색 꽃, 전 싫어요.”

불쑥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제이를 보며 세하는 그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세하의 머리카락에 붙은 붉은 꽃잎을 손수 집어 떼어줄 뿐 화는커녕 그 어떠한 꾸짖음도 하지 않았다. 세하는 그가 어떤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걸쳐지는 것을 본 순간, 세하는 자신이 웃고 있는지 아니면 표정을 구기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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