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시스가 다니는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선생님 하얀 마법사x키네시스가 보고 싶다...에서 이어지는 조각글들.






1.

최근 키네시스는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키네시스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그냥 말 그대로 머리가 너무 아파 꼼짝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키네시스."

"...그래서 오늘은 뭘 하고 있대?"

"2학년 B반 영어 수업하다 말고 다들 데리고 나가서 피구했대."

"......"


아, 머리야.

유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키네시스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넓은 운동장이 바로 보이는 창문 덕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이 보였고, 그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영 거슬리기만 했다. 그냥 확, 뭐라도 저질러버리면 좋으련만. 한참이나 그렇게 그 뒷모습을 노려봤을까. 무심코 뒤를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치자 키네시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담스럽습니다.'


그의 입모양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고, 키네시스는 하마타면 실수로 염동력을 쓸 뻔했다.




2.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해가 서쪽에서 뜰 예정일까. 교과서에 빼곡히 쓰여 있는 지렁이 같은 글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용한 교실에는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산만한 아이가 볼펜을 굴리는 소리 등 여러 잡다한 소리가 많이 들렸지만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딱 한 사람의 것밖에 없었다.

그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며, 보통의 평범한 학생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키네시스는 그의 목소리가 꽤 듣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테지만, 그가 누구인가. 지난 몇 달 간 자신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은 장본인이 아니던가. 키네시스는 지금 당장에라도 교내 방송으로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학교에 새로 온 영어 선생이, 사실은 메이플 월드와 서울을 하나로 합쳐 제 손에 놓고 굴려 먹으려는 끝내주는 악당이다- 하고.





3.

"목적이 뭐야?"

"그래요. 뭐하러 온 거예요?"


자신의 목소리보다 훨씬 날이 서 있는 유나의 목소리에 키네시스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긴, 유나도 그와의 기억은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닐테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평소에 즐겨입던 긴 블랙 롱코트는 벗어버린채 깔끔하게 하얀 와이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걸친 그는 누가 봐도 한창 꿈을 꾸는 여고생들에게는 참 좋은 먹잇감일테지만, 키네시스와 유나에겐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속은 시꺼멓게 문드러져, 겉만 새하얀 사람처럼 꾸미고 다니니 그 거부감이 더한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소개하셨죠. 오늘부터 이 학교에 새로 온 영어선생이라고."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키네시스와 유나의 반응이 내심 재밌는 모양인지 그는 빙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그렇게 예민한 고양이처럼 굴지 않아도 됩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저는 아무짓도 하지 않을 겁니다."

"......"

"그보다 키네시스. 당신의 성적은 확실히 우수하긴 한데- 출석이 그다지 좋지 못하더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학교에나 나오시죠."

"뭐야?"

"감시해도 좋다고요."

"......"

"선생으로서 충고입니다. 유급은 하면 안되잖아요."


키네시스는 그 때 통감했다.

완전히 그의 페이스에 말렸다는 사실을.





4.

그는 생각보다 착실했으며, 인기가 많았고, 정말 무척이나 완벽한 모두의 선생님이었으며, 키네시스의 적이었다.


"와, 이번 인기투표 1위 자리를 내줄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지금 할 소리야?"

"그러게나 말이다."


소꿉친구의 한숨 또한 깊어졌다.





5.

오늘은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다. 이게 모두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전부, 모두, 모든것이, 다. 좋아, 그래 인정해. 

그는 정말로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미행도 해보고 유나와 돌아가며 열심히 감시했지만 건진것이라고는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결과들 뿐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멍청이라며 깔아 뭉갤 것 처럼 굴더니 사근사근 다른 선생님들과 원만한 교류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이요, 어지간해서는 학생들의 미움을 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니 그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마디 하려고 하면 도리어 대체 왜 그렇게 그를 싫어하냐는 물음을 받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게 그의 목적이 아닐까.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뒷통수를 치려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오늘도 키네시스는 두통에 시달렸고, 더 나아가 속도 뒤집히는 것 같아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유나가 걱정할까봐 얼른 먼저 교실을 빠져나왔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옥상으로 올라왔다. 점심시간은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고 고대하는 시간이다. 바글바글 몰린 급식실을 내려다보며 키네시스는 살풋, 미소 지었다. 이것도 평화라면 평화다. 보통의, 평범한, 평화.


"여기 있었습니까?"


그리고 아주 쉽게 깨질 평화. 키네시스는 난간에 기댄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특별한 힘을 가진자를 찾아내는 것도 제 능력이죠."

"그럼 왜 왔어?"


키네시스의 물음에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딱히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라 가만히 있었지만 언제든지 능력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는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키네시스의 앞에 선 그는 주머니에서 적당한 크기의 알약과 함께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주스병을 키네시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급식은 왜 안 먹었습니까?"

"......"


내밀어진 것을 쉽사리 받지 못해 어정쩡한 그의 팔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키네시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 챙겨줘서 뭐 어쩌려고?"


그는 아무말없이 다른 손을 뻗어 키네시스의 팔을 집어 들었고, 곧 키네시스의 손에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건내주었다. 시원한 주스병의 표면이 피부에 닿자마자 키네시스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시원하다못해, 차가울 정도로 얼음장같은 표면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내, 키네시스는 그 주스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이 높습니다."

"...그런가보네."


주스병을 내려다보고 있는 키네시스의 이마에 그가 천천히 손을 올려놓자 신기하게도 온몸에 잔뜩 올랐던 열이 말끔하게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끈거리던 두통 또한 물러가는 것 같은 기분에 키네시스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피곤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질문을 다시 해보지 그래."

"능력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그러니 머리가 아픈 거겠죠. 피곤한 몸에 분에 넘칠만큼 힘이 흐르고 있으니까요."


거짓말처럼 그의 손이 닿자마자 말끔해지는 몸상태에 키네시스는 순간 불쾌함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이 고통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앞장섰다. 어느정도 정신이 온전히 들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이 학생 챙겨주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키네시스는 딱히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마키네] School Life 6-7  (0) 2015.08.09
[제이세하] 동백꽃  (0) 2015.06.26
[제이세하/황립]  (0) 2015.05.17
[클로저스] 아이돌 AU 썰  (1) 2015.04.04
[클로저스] 틴울프 AU 설정  (0) 201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