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장르 온리 소설 커미션> 받습니다 :D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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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은 총 2개입니다. (비었음: ○ / 진행중: ●)
▩ 장르
여성향 위주, 그 외 장르는 딱히 가리지 않습니다.
- 클로저스: 제이세하 리버스 불가 외 제한없음
- 마블: 어벤져스 위주 바튼 오른쪽 리버스 불가
- 사이퍼즈: 티엔하랑, 토마스 오른쪽 등 캐릭터가 많은 만큼 조건이 있을 수 있으니 원하시면 문의 주세요:)
- 쿠로바스: 황립 위주 / 카사마츠 위주
- 메이즈러너: 민호 오른쪽 리버스 불가 외 제한없음
그 외 가능한 장르는 제 프로필을 참조해주시면 빠르게 진행 가능합니다.
▩ 작업
- 기본 2천자(공백미포)내외 짧은 단편 한 편 기준 5,000원. 2천자 이후 추가 분량에 대한 금액 변동 없이 최대한 진행하려 노력하겠지만,
기본 2천자+2천자 이상 분량이 늘어날 경우 금액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수위에 따른 추가금액도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신청하시는 분에 한하여 신분증 검사합니다.)
- 작업기간은 최소 2일~최대 10일정도 걸립니다.
- 기본적으로 가볍고 부담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커미션을 지향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컨펌없이 바로 진행합니다.
▩ 신청양식 (보내실 곳: waw5210@naver.com)
신청하시는 분 성함(닉네임/입금자명 등):
연락처(트위터, 메일 등):
장르(커플링):
의뢰사항(소재, 분위기등 자세하게 제시해주시면 작업이 빠르게 끝날 수 있습니다.):
수위 유무:
문의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기타 주의사항
- 본 소설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용도의 사용을 금합니다.
- 작업이 끝난 커미션은 A5 PDF 형식으로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 커미션이 끝나면 일부 본 티스토리에 올라옵니다. 전문 비공개를 원하시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 의뢰가 저와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거절할 수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 샘플
[스팁바튼]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스팁바튼 의 연성 키워드
::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사랑스럽게요.
http://kr.shindanmaker.com/451541
시작은 무척이나 담담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스티브는 처음 바튼에게 고백했던 날을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데에는 이골이 났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이젠 기다림을 참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적어도 스티브 로저스에게는 말이다.
처음 바튼에게 가졌던 감정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런 감정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지낸 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스티브는 자신에게 있어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 고혹적이고 아름다웠던 그녀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혹은 자신이 얼마만큼이나 사람 사이의 애정에 목마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준 순간 스티브는 참지 않았다.
"바튼."
"네, 캡."
스티브는 그의 입에서 호명된 자신의 호칭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봐야 했다. 캡틴, 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었지만 그것 마저도 '캡'이라 짧게 줄여 부르는 것은 순전히 귀찮음의 표현인지, 아니면 아주 조금이라도 애정이 담긴 호칭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지 말이다. 바튼은 그 짧은 찰나 스티브의 얼굴에 지나친 수십개의 표정을 다 읽지 못했다. 그저 전투가 막 시작하기 전의 것과 같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의 표정에 덩달아 자신의 어깨도 굳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
"자네를."
"...네?"
"좋아하는 것 같네."
스티브? 바튼은 정말 답지않게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어쨌든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사실 바튼이 스티브가 고백했던 그 날 바로 고백을 받아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백을 한 스티브는 얼마나 멍청하게 고백을 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바튼은 스티브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새겨들어야 했기에 부끄러워했다. 오죽하면 토니가 두 사람을 발견하자 마자 서로 싸우기라도 했냐는 말까지 했었다. 대충 토니를 얼른 쫓아낸 바튼은 스티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한참이나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스티브는 한참이나 붉어진 얼굴로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는 변명을 생각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머리와 달리, 스티브는 오늘 바튼의 앞에서 못 볼꼴은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 아니. 미안하네. 내가 자네를, 그...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러니까 단순히 호감의 의미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이렇게 볼품없이 고백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니, 이게 아니지. 신경쓰지 말게. 난 자네를 곤란하게 만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스티브."
캡, 혹은 캡틴. 그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 것은 거진 처음있는 일이라 스티브의 얼굴은 또 다른 표정을 띄었다. 바튼은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이 거절의 의미인지 승낙의 의미인지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무척이나 담담한 그의 제안에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그 다음날 결과적으로, 스티브와 바튼은 연인이 됐다.
▣
스티브와 바튼. 바튼과 스티브는 무척이나 닮은 구석이 많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둘은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연애 사실을 어벤져스 외 다른 모두에게 숨기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 (사실 스티브는 조금 불만이 있었지만 바튼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러나 은연중에 스티브의 눈길이 바튼이 있는 곳에 닿아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은 나타샤에게 처음으로 들킨 날, 스티브는 웃고 있었고 바튼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 때도 조금 서운해했다. 왠지 모르게 나타샤가 있어야만 아주 조금 더 솔직해지는 바튼이 섭섭했고, 자신과의 연애사실을 나타샤에게 들킨것이 그렇게 싫은 것인지 하는 부분에 대해 서운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스티브의 삽질과 마찬가지였다.
"아주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네, 클린트."
"냇..."
"걱정 마세요, 스티브. 이 녀석은 단순히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하, 웃겨."
"...냇."
그러니까 나타샤의 이야기에 따르면 단지 바튼은 자신들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싫었다기 보다는 부끄러워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티브는 그 날 사랑스러운 연인의 옆에서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자신이 그에게 빠질 수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바튼은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그런 편이었다. 웬만한 다른 일에는 토니 뺨 치는 능청스러움을 뽐내다가도 이야기의 주제가 자신에게로 향하면 한 없이 조용해지는 사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농담도 잘 하고, 입도 꽤 험한 편이라 가끔은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바튼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스티브에게는 사과를 하곤 했다.
스티브는 한참 회의중인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작전을 설명하고 있는 바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잘 하는 남자는 굉장히 멋있다고 했던가. 딱 그 짝이었다. 스티브는 바튼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고, 그의 능력에 기회만 주어진다면 찬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바튼의 능력을 높이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바튼에게 임무에 대한 주제는 대화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도 어찌보면 둘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었다.
"캡틴?"
한참 작전의 진입 경로와 함께 퇴로를 같이 설명하고 있던 바튼이 자신의 위치를 지정하며 괜찮겠습니까, 하며 동의를 구하기 위해 스티브를 불렀다. 그러자 놀랍도록 딱 마주친 시선에 바튼은 스티브가 살며시 웃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클린트."
스티브의 말에 토니와 배너는 단숨에 바튼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바튼이 자신의 이름을 허락한 상대라고는 나타샤가 전부라고 알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타샤는 그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웃겨 당장이라도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담았다. 사실 놀란 것은 바튼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브는 딱히 바튼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나?'하면서 종종 물었을 뿐이지 자신이 괜찮다는 허락을 내렸음에도 그는 한동안 자신의 이름을 부른적이 없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겠나?"
이게 무슨 소리야, 토니가 놀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달아오른 바튼의 얼굴과는 다르게, 스티브는 활짝 웃고있었다.
[토니바튼] For Wedding
바튼은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괜찮을 거 같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어떻게든 타워에 기어서라도 올라왔다. 마음같아서야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바로 윗층인 자신의 둥지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꿀같은 단잠 뒤 찾아올 후폭풍이 귀찮았다. 무섭다기 보다는 명백히 귀찮았다.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주제에 어찌나 사람을 그렇게 귀신같이 피곤하게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어찌됐든 꽤 오랜만에 만나는 하나뿐인 연인의 얼굴이니, 바튼은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도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스타크씨."
언제부터인가 스타크의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 바튼을 보며 자비스는 어서 오라며 당연하다는 듯 인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답이 없는 텅 빈 공간을 두리번거리던 바튼이 결국 자비스를 불렀다.
"스타크씨는?"
- 잠시 할 일이 있으시다며 나가셨습니다, sir.
분명 그라면 자신이 오늘 돌아온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냈을텐데. 바튼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있는 뉴욕시의 광활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주먹으로 한 번 치면 와장창 다 부숴져버릴 것 같은 유리벽은 바튼이 그의 집, 그의 타워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바튼이 화살을 박아야 구멍이 뚫릴 정도로 고밀도 강화유리였다.)
기다려볼까, 아니면 그냥 위로 올라갈까. 찾아왔는데 없는 것은 그 쪽이었다고, 나름 변명할 거리도 있으니 위로 올라갈법도 했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지친것도 지친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토니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남아 바튼은 그대로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화살통에 몇개 남아있던 화살들이 서로 부딪히며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언제 온다고 말은 하고 나갔어?"
- 아뇨. 정말 급하시다며 아머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아머를?"
아마 지금 자비스에게 부탁해 최신 뉴스나 sns에 아이언맨을 찾으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바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간단하게, 전화 한 통화면 그가 어디있을지 알 수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바튼은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바쁜 일이라면 바쁜 일일 것이고, 혹시라도 괜한 전화 한통으로 그를 방해하기는 싫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안다면 그런 것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아무때나 전화를 하라는 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럼 난 이만 올라가볼게, 자비스."
- 조금만.
"......?"
- 조금만 기다려보심이 어떠십니까?
"이미 한계라고. 나 정말 피곤해."
- 제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검색해서 들려드릴까요?
자비스의 말에 바튼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급박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자신의 착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은, 먼저 기다려볼까. 바튼은 스스로가 무정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토니 스타크의 눈에 클린트 바튼은 조금 무덤덤한 인간이라는 결론이 지어진 것 같았다.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해 평소에도 몇 배는 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정표현을 하는 토니가 딱히 싫은 것은 아니라 그냥 지켜만 봤을 뿐이었다.
언젠가 토니가 녹화해 둔 쉴드 내부의 동영상을 보면서 바튼은 새삼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꼭,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정말 어린애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퓨리한테 들키면 이번에야 말로 호되게 욕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아니, 아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비스. 10분 안에 안 튀어오면 나 정말 그냥 간다 그래. 아니, 아니지. 어디서 듣고 있으면 빨리 튀어오라고요."
- 흠, 미안해. 레골라스. 나 정말 방금까지 바빴어.
바튼은 씰룩이는 입가를 주제할 수가 없었다. 대체 수년간 훈련 받으며 스파이를 해온 사람은 어디 갔나, 할 정도였다. 바튼은 천천히 일부러 뜸을 들이며 뒤를 돌았다.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저를 놀래켜주려나. 그렇게 뒤를 돌아본 바튼은 자신이 그렇게나 좋아라 하는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공중에 떠 있는 아이언맨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하얀 색으로 뒤덮여진 아머를 입고 있는 아이언맨은 바튼에게 있어 가히 환상종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눈부셨다. 눈에 훤히 보일정도로 감정을 내비치는 바튼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스타크는 얼른 손짓 하나로 유리창을 제끼고는 자신의 타워로 들어왔다.
- 어서 오십시오, 스타크 씨.
"그래, 아빠 왔다. 나 어때, 자비스?"
- 멋지십니다.
"레골라스는? 어때? 내가 좀 멋있어?"
"이게, 대체..."
"너한테 보여주려고. 오늘 돌아온다길래 부랴부랴 도색 좀 하고 왔어."
새하얀 아머를 뒤집어 쓰고 있는 스타크는 바튼의 눈에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스타크는 가끔 그럴 때 바튼이 토니 스타크를 보고 있는 건지, 아이언맨을 보고 있는건지 아주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뿐인 연인이 마냥 아이같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결혼식때는 새하얀 옷을 입어야하잖아?"
"네?"
"그러니까, 너랑 나."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과 그를 번갈아 가리키는 토니를 보며 바튼은 결국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스타크는 자신에게 꽤나 깜찍한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기함을 칠 표현까지 들먹일 정도로, 바튼의 눈에 토니 스타크의 행동은 정말, 며칠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축에 속하는 애정표현이었다. 바튼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평소대로 팔을 부여잡으며 소름이 돋았다며 장난스럽게 그의 팔을 칠 것인가, 아니면-
"좋아요, 하죠."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황립]
"선배!"
오늘도 어김없이, 냐. 모리야마는 자기가 다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는 교실 뒷문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여자아이들을 바글바글 모아와서는 어쩌자는 거냐. 아, 부럽네.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딱 봐도 네가 지금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코보리가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웃지 마, 내가 쓰레기 같아지잖아."
"풉, 아니, 뭐?"
"알긴 아냐?"
"너무한 거 아니야, 카사마츠?"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하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리야마를 거침없이 내치는 것도 벌써 3년째인 터라, 카사마츠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시끄러운 뒷문을 바라보았다.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그러면서도 실실 웃고 있는 바보 같은 얼굴을 - 카사마츠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 하고 있는 후배를 슬슬 빼올까, 하던 찰나 가까스로 스스로 빠져나온 키세가 쏜살같이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달려왔다. 여기까지오면 세이프. 키세는 스스로 오케이 사인을 해보인다. 워낙 카사마츠가 교내에서 엄격하다는 평이 많은 터라, 다들 가까이 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넌 선배, 하면 카사마츠밖에 안 보이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럴리가요!"
"그렇게 주인이 보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쳐다봐도 안 믿기니까 그런 줄 알아.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일이야?"
그 질문에 꼭 무슨일이 있어야만 올 수 있습니까? 하며 천연덕스럽게 구는 후배의 모습을 본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난 터라 카사마츠는 별 대구없이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지를 보며 샤프를 굴렸다. 참 죽이 잘 맞는 건지, 모리야마와 키세는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며칠 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어느새 10분이라는 쉬는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키세가 언젠가부터 자신의 교실에 온 순간부터, 인가.
"그보다, 너 진짜로 우리 교실에 왜 오는 거야? 1학년 교실이랑 3학년 교실은 꽤 멀잖아."
"아, 그, 음-"
갑작스런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키세의 얼굴이 금방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참, 시합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단 말이야. 카사마츠는 쓰게 웃으며 샤프를 내려놓았다.
"딱히 여기 온다고 화를 낸다거나, 혼을 내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귀찮지 않나 싶어서. 잘도 온다고, 너."
"...네가 이해해라, 키세. 이 녀석은 정말 무심하고, 둔한 멍청이니까."
"뭐야?"
기
둔한 멍청이라니, 카사마츠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졌지만 모리야마는 뻔뻔한 얼굴 그 자체였다. 갑작스럽게 그런 욕을 왜 먹었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은채로, 쉬는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종이 쳤다. 키세의 어깨를 두드리며 얼른 돌아가보라는 답지 않게 다정하게 구는 모리야마를 한 번 쳐다봐주자 자기가 뭘 어쨌냐는 얼굴에 카사마츠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키세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를 발견한 카사마츠가 키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뒷문을에 반 쯤 걸쳐진 키세가 뒤를 돌아봤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습니까?"
"넌 모델이라는 녀석이 그게 뭐냐?"
픽, 웃은 카사마츠가 팔을 뻗어 뻗쳐있던 키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자, 키세는 아주 약간 다리를 굽혔다.
"키는 무식하게 커서는, 짜증나네."
그런 키세의 행동에 꽤나 험악한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웃으며 노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가볍게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이따 보자, 그 말에 키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이야, 이야. 우리의 카사마츠는 정말로 둔한건지, 아니면 선수인지 모리야마는 모르겠습니다, 코보리군."
"뭔 헛소리야, 넌 또. 코보리 좀 그만 괴롭혀."
"시끄러워, 넌 빨리 우리의 모델군 곁으로 가버려."
"뭐? 수업시간 종 쳐서 자기 교실로 돌아간 녀석한테 내가 왜?!"
"...선수는 무슨. 그냥 둔한거지. 됐다, 됐다."
그러면서 휙,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리야마를 보며 카사마츠는 진심으로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녀석 왜 저래?"
"심술 난 건지도 몰라."
"심술? 왜? 누구한테?"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말뜻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코보리에게 모리야마 닮지 마라, 라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카사마츠를 보며 코보리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어보였다.
[티엔하랑]
“하랑 군! 학교 늦겠어요!”
“아이, 알았다고!”
흔히들 말하는 참 좋은 시기,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창창한 고등학교 2학년 17세, 이하랑의 하루는 소란스럽게 시작한다. 이번 기회에 말하는 거지만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12시 이전에 자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며, 하물며 새벽 2시전에는 자라, 라는 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새벽 3시 넘어서까지 잠도 안자며 놀다가 매일 아침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시작하는 고등학생이야 말로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어제 학교에 잔나비라도 깔고 올 걸, 에이씨. 쓸데없는 머리를 굴려가며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간 하랑은 겨우 지각을 면했다. 참으로 아쉬워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여 괜히 괘씸해진 그가 킬킬 거리며 자리에 앉자 흔히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시시콜콜한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야, 오늘 짱깨 한 명 새로 오는 거 아냐?”
“짱깨?”
“그래! 왜 저번에 이번 달 안으로 이사회에서 중국어 수업 가르치겠다고 완전 졸리는 연설해댔잖아.”
“아, 그거 진짜였어? 헛소리 아니고?”
“그 곰 같은 이사장이 잘도 헛소리를 하겠다.”
“와, 누가 외국인 아니랄까봐.”
“곰 같은 교육의 힘이여~!”
한 놈이 이사장의 흉내를 내니 하랑이 배를 움켜쥐며 자지러졌다. 흔히 그 아이들의 입버릇이 그러하듯, 별 뜻 없는 욕설과 함께 하지 말라며 웃는 목소리가 수업 종소리에 묻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첫 교시 수업이 영어수업인데. 마틴은 지각이나 안 했나, 몰라. 하랑은 오늘도 자신의 짜증스러움을 한껏 받아주면서도 자상하게 자신을 깨워주는 다섯 살 연상인 형의 얼굴을 그렸다. 이 학교가 남학교가 아니라 공학이었으면 정말 마틴에게 줄줄이 꿰일 여자애들이 한 트럭으로 실어도 모자랄 텐데. 아니, 사실은 하랑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지만 이미 마틴에게 꿰인 녀석들이 많다고 했다.
종소리가 들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로 들어오는 마틴을 보며 하랑은 자연스레 턱을 괴고는 싱긋 웃었다. 다행이네, 지각은 면한 모양이야.
“마틴쌤! 오늘 오는 짱… 아니 중국어 쌤 누군지 알아요?”
“아, 네. 오늘 교직원 회의에서 뵀어요. 보자, 우리 반은…. 4교시 수업이네요. 중국어.”
“여자에요?”
“아뇨, 아주 잘생긴 남자 선생님이에요.”
마틴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야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아우성을 쳤다. 마틴은 그럴 줄 알았다며 학생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상냥한 미소를 보였다.
“남자가 잘생기면 뭐해, 우린 여자쌤 언제 보나.”
“꿈 깨, 곰 같은 이사장님이 잘도.”
“아, 쌤. 그거 알아요? 우리 학교 금녀의 구역이라고 소문 파다하다고요!”
“왜요? 나이오비 선생님도 계시고, 레나 선생님도 계신데….”
“품절녀는 당연히 제외죠!”
그제야 아이들이 말한 의미를 파악한 모양인지 마틴은 크게 웃어보았다. 정말 못 말리는 학생들이군요. 마틴의 인기 덕분인지 ‘영어’ 라는 최대 난관의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구열이 꽤나 높은 반 덕에 50분이라는 수업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1교시 영어수업이 끝이 났다. 마틴은 교실을 나가기 전 하랑에게로 와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저녁은 다른 길로 세면 안 돼요.”
“왜?”
“중요한 손님이 오시는 날이니까.”
“릭 아저씨라도 와?”
“물론 릭 씨도 오고. 곧 알게 될 거에요.”
그럼 이따 집에서 봐요, 하며 교실을 나가는 마틴 덕에 아이들의 시선이 쫙 제게로 쏠린 것을 깨달은 하랑은 그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딱히 하랑은 수업시간에 조는 불량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어서 잘 수 있는 시간은 이 쉬는 시간뿐이었다.
다음 시간은 과학시간이었는데, 어김없이 유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드렉슬러를 보며 하랑은 또 자연스레 턱을 괴었다. 의외로 그런 이야기가 재밌는 모양인지 아이들은 몇 날, 몇 시 어느 나라에서 쏟아진 유성우에 대한 논문을 풀어놓는 드렉슬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사실 속셈은 따로 있는 모양인지 그 집 조카뻘 되는 샬럿이나 학교에 데려오라고 조르다 날아온 창 모양 분필에 맞아 기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분필 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교내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로라스 선생님뿐이려나.
그리고 이어서 수학시간. 이 학교의 곰 같은 방침에 따르면 수학은 세 명의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홀든 선생님즈였다. 그 주의 수학시간이 어떤 홀든 선생님이냐에 따라 면학 분위기가 바뀌는데 이번 주 수학 시간을 맡은 선생님은 벨져로, 아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하나 둘 쓰러져갔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귀신이었다, 귀신. 조는 학생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큰일 나는 선생님이었다. 오죽하면 이글이 보고 싶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다 들켜 천영섬을 맞은 경우도 허다했다.
3교시가 끝난 뒤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이른 점심시간을 보내고, 학교 옥상에서 낮잠을 자던 하랑은 제 소매를 잡아끄는 령의 기운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교실로 내려갔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 마리의 개… 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강아지인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니 아주 난장판이었다. 열일곱 남학생들의 교실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난장판인지 아주 잘 알 것이다. 얼마나 험한 말뚝 박기를 한 것인지 이러다 자손도 못 보겠다며 우는 놈들 여럿, 보나마나 브뤼노 교감한테 빌려왔을 것이 뻔한 -삐- 같은 잡지. 저 놈들 저러다 타라 선생님한테 걸려 유성낙하 한 번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며, 아이들은 소란스러움을 잠재우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게 중에, 가장 호들갑을 떠는 녀석의 말이 하랑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그 짱깨 내가 봤거든? 근데 완전 포스 쩔어. 갑빠가, 어우.”
“진짜? 다이무스 선생님보다?”
“장난 아니라니까! 거기다 중국에서 무술 전공했대. 덤비면 척살 당할지도 몰라. 거기다 우리말 완전 잘함. 마틴쌤이랑 얘기하는 거 봤는데 둘이 친한가봐. 그 쌤 웃는 것도 봄! 아, 솔직히 같은 남자가 봐도 좀 멋있더라.”
“헐.”
다이무스 선생님과 견줄 정도의 덩치, 중국에서 무술 전공. 우리말을 참 잘하며 마틴과 친한 듯 얘기할 수 있는 중국 남자. 하랑은 무의식적으로 욕을 뱉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는 마틴의 말. ‘중요한 손님.’
이윽고 교실 문이 열리며 오늘의 기대주, 중국어 수업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 하랑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모든 아이들이 하랑을 쳐다봤지만 하랑은 교실 안으로 들어온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업 시작했다, 앉아라. 이하랑.”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마틴한테 못 들었나? 오늘부터 이 학교 중국어 수업을 가르치게 된 티엔 정, 이라고 한다. 다들 잘 부탁하지.”
하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틴이 그렇게 싫어하는 별명 - 그래도 릭 아저씨는 심심찮게 부르더라. - 인 마틴 챌피그를 학교에 확 퍼트려버릴까, 라는 계획을 짰다. 물론 그랬다가는 한동안은 평안한 생활은 꿈도 꿀 수 없겠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자리에 계속 서 있던 하랑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분한 것인지 이상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하랑을 보며 근처에 앉은 아이들이 어디 아프냐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어떻게 수업이 끝나는 지도 모르게 폭풍 같은 50분이 지나고 티엔이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실을 나가자 아까와 같이 하랑에게로 수많은 시선이 쏠렸다.
“야, 너 저 짱깨 알아?”
“…알아.”
“너 이사장 아들이냐? 뭐 이렇게 쌤들이랑 잘 알아? 아, 참. 마틴 선생님과는 아예 같이 살고 있다며.”
“몰라, 대답해 줄 기운 없어.”
하랑은 오늘만은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서 푹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렴풋이 하랑의 머릿속에 티엔과 마지막으로 봤던 날 밤이 그려졌다. 개 같은 짱깨새끼. 하랑은 결국 답답한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봤자 갈 곳이 딱히 없어서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양호실로 왔다. 양호 선생님은 어딜 가고 없는 모양인지, 다들 본체 아니냐며 놀리는 선글라스만이 책상이 놓여있었다. 하랑은 흰 침대로 기어들어가 잔뜩 몸을 웅크리고는 잠을 청했다.
티엔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고작 3년 전의 일이었다. 아니, 벌써 3년인가. 그 말은 곧 하랑이 티엔에게 홧김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한 것이 벌써 3년이나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어쩌면 그냥 머리도 다 크지 않은 어린아이의 치기로 끝을 낼 수 있었겠으나, 티엔은 하랑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달 쯤, 사귀기도 했었다. 티엔이 하랑에게 얼마나 껄끄러운 사람인지는 이 말로 종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했던 사람. 지금도 좋아하냐, 라고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는데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 사람.
그렇게 첫 사랑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티엔은 하랑의 곁을 떠났다. 무슨 이유였더라. 잘 기억도 안 난다. 하랑에게 있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티엔이 말도 없이 떠났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연상의 연인에게 버려졌다는 것이 고작 열 넷 밖에 안 됐던 어린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알기나 할까. 하랑은 티엔이 떠났다는 말을 전해줬던 마틴의 얼굴을 아직까지도 기억했다. 설마 몰랐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던 그 얼굴.
그 뒤로 3년간, 하랑의 집에서 ‘티엔’은 금기어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억지로 그의 얼굴을 잊으려 노력했던 하랑이지만 3년이 지난 오늘 그의 얼굴을 다시 봤을 때, 하랑은 그를 잊으려 했던 그 3년이 얼마나 멍청하게 보낸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분위기가, 꽤 달라진 것 같았다. 다행히 잘 먹고 다닌 모양인지 얼굴을 말끔하니 잘난 그대로였고 확실히 3년 전 보다 좀 더 멋있어지고 남자다워졌을까. 그 짧은 시간에 그를 살필 만큼 얼마나 그를 쫓고 있던 건지 깨달은 하랑은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
가면 간다고, 돌아온다면 돌아온다고 한 마디도 없던 그 남자를 아직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신이.
“땡땡이치는 건가, 못 본 사이에 잔머리만 늘었군.”
“…….”
“이하랑.”
“…꺼져.”
“하랑아.”
하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을 향해 달렸다. 그래, 네가 안 꺼지면 내가 꺼진다. 슬리퍼가 바닥에 쓸려 나는 거친 소리가 몇 번 나지 않아 하랑은 그대로 다시 제 몸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랑아.”
“꺼져! 꺼지라고! 시발, 이제 와서 미안하다, 보고 싶었다. 이딴 소리 지껄일 거면 꺼지라고!!”
“얼굴 좀 보자.”
그 말에 억지로 이불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하랑이 악에 받쳐 저항했지만 기어코 이불을 벗겨낸 티엔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자 하랑은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복받쳐오는 것 같았다. …존나 잘나긴 잘났네, 짜증나게. 꽤나 붉어진 하랑의 얼굴에 티엔이 묘한 얼굴을 하며 재빨리 침대 옆 커튼을 치고는 하랑에게 키스했다. 헤어지기 전에도 딱히 이런 진한 스킨십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말 그대로 돌 같이 굳은 하랑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뺨을 감싸는 티엔의 두 손에 가만히 자신의 손을 얹었다.
“이제 와서 미안하다는 소리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하구나.”
“…….”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컸구나, 정말 많이.”
“…당연하지, 이제 열일곱인데.”
“그동안 잘 지냈나?”
“지랄, 말 같은 소리를.”
못 본새 입도 꽤 거칠어졌구나, 하는 티엔의 입을 가만히 손으로 누른 하랑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하며 중얼거렸다. 티엔은 자신의 입을 누른 하랑의 손가락을 살며시 핥았다. 그 생경한 느낌에 하랑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 이거 범죄거든? 나, 아직 열일곱이거든?! 이 나라에서는 적어도 열아홉은 돼야…”
“…열 넷보다는 낫겠지.”
“어, 어…?”
“내가 왜 3년이나 네 곁에서 떠났다고 생각하느냐.”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등에 닿은 침대의 감촉에 하랑은 멀뚱멀뚱 티엔을 바라보았다. 꽤 진중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티엔을 보며 곧, 티엔이 하려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하랑은 얼굴이 폭발하듯 새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으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미친, 짱깨가 뭐라는 거야. 아냐, 몰라! 난 몰라!”
“이하랑.”
“아, 몰라, 몰라. 여기 학교야! 학교라고!”
“그래서?”
특유의 낮고 무거운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하랑은 티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이런 짱깨는 모르는데. 자신이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하랑을 보며, 티엔은 드물게 하랑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천천히 가르쳐주마.”
[토민호] 비오는 금요일 밤
비가 오지게도 오는 날이었다. 신기한 게 그렇게 비가 많이 오면서 기운이 우울하거나 착잡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교복 소매, 바짓단까지 너나 할 거 없이 잔뜩 말아 올리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신은 검은색 슬리퍼 차림을 한 토마스와 민호는 하늘만큼 칙칙한 검은색 장우산을 나눠쓰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민호의 어깨가 젖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우산을 기울이던 토마스를 보며 민호는 피식, 바람 소리를 내었다.
“꼴사나워, 저리가.”
“넌 내가 너 좋으라고 하는 짓도 막 욕하더라. 섭섭하게.”
“난 네가 지켜줘야 하는 계집애가 아니거든?”
“계집애는 아니지만 내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은 맞지.”
불만스럽다는 듯 토마스를 올려다본 민호는 알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토마스의 옆으로 한 걸음 더 바짝 붙었다.
“민호.”
“왜, 영화나 드라마 보면 다 이러던데. 싫어?”
“아니.”
“단호박 같은 새끼….”
구멍이라도 뚫렸나, 중얼거리는 민호의 말에 토마스는 가만 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때는 뉴트처럼 말주변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 도착지는 다가오는데 토마스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그 고민들은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에부터 비롯되었다. 오늘이 하필 금요일만 아니었어도 토마스는 생각조차 못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하필 금요일이라 그런다. 토마스는 내심 기대를 조금이라도 걸어볼 법 하지 않은가,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열여덟. 물론 성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인데. 혼자 푸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명색이 연인 사이라면 좀.
“…다 왔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민호의 집 앞에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우산은 원래 토마스의 것이었음으로 민호는 얼른 현관문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민호를 붙잡지도 못한 손이 처량하게 바닥으로 떨궈졌다.
“……그럼, 갈게.”
“…….”
침묵이 조금 길었나. 영 부자연스러운 자신의 행동에 토마스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상하게 보였을 거야. 이번 주도 처량하게 집에서 혼자 보내야겠구나, 아아, 트리사. 나 또 병신 짓 했나봐, 어쩌지. 축 처진 어깨를 들 생각도 못하고 토마스는 뒤를 돌았다.
“야.”
“…응?”
“자고 가.”
“…….”
안 그래도 큰 토마스의 눈이 더 크게 동그래졌다. 토마스가 예상한 대사는 두 가지였다. 전에 잠깐 봤던 tv프로그램에서 그러던데 집에서 라면을 먹고 가지 않을래, 라고 묻거나 비가 오는 날, 비가 너무 많이 오네… 하며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유도하는 것이 그린라이트라고 했었단 말이다.
“두 번 말 안 해, 병신아.”
토마스는 그대로 들고 있던 우산을 떨어트렸다.
그는 종종 착각할 때가 많았다. 사실 화끈하긴 저보다 그가 더 화끈했다.
*
대충 먼저 씻으라며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어진 토마스는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볼을 꼬집었다.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뺨이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으악!!!”
“…미친, 목소리는 존나 더럽게 커. 이거.”
품으로 던져진 것을 받아든 토마스는 놀란 토끼눈을 한 채로 뒤를 돌았다. 새하얀 면 티와 검은색 바지는 모던하고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얼른 씻고 나온 토마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키는 토마스가 조금 더 클지는 몰라도 어깨라던가 몸집은 민호가 훨씬 …좋긴, 좋았다. 뭐, 이건 사실이니까. 토마스가 나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민호도 옷을 챙겨들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이미 tv가 틀어져 있었기 때문에 토마스는 민호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 심심함을 달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토마스는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내일은 토요일이고. 어차피 부모님은 일 때문에 바쁘셔서 집에 안 계시니까 전화할 필요 없고…. 온갖 이상한 생각을 하던 토마스는 그대로 양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리고는 소파 위로 엎어졌다. tv에서 뭐라고 지껄이는 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토마스가 민호의, 그러니까 애인의 집 소파에 앉아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민호의 집에 온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때랑 지금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달칵,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토마스는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에 수건을 얹고 나오는 민호도 토마스와 똑같이 하얀 티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끔 민호의 집에 놀러왔을 때 종종 봤던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라 보이는 분위기에 토마스는 침을 삼켰다. 달라 보이는 건 민호가 아니라, 민호를 보는 자신의 시선임이 분명함을 토마스 스스로도 자각은 하고 있었다. 자각만. 민호가 소파에 앉자 토마스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것 같았다. 이런 기세로는 마라톤도 거뜬히 뛰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민호가 쓴 것과 같은 샴푸나 비누를 썼을 텐데, 이상하게 민호에게서 나는 향이 더 진했다. 물론, 자신은 벌써 샤워를 한지 15분이나 지났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토마스는 민호의 머리 위 수건을 걷어 내었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뭐냐는 듯 쳐다보는 민호의 얼굴에 토마스는 수건으로 민호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거의 물기를 다 털어내고 나서야 토마스는 민호와 눈을 맞췄다. 쌍꺼풀 없는 장난기 넘치는 눈가 밑 두툼한 애교 살에 토마스는 절로 웃음이 났다.
토마스는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조심스럽게 민호의 뺨을 쥔 토마스는 그대로 민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그런 토마스의 행동에 민호는 살며시 눈을 감고는 토마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부드럽게 입을 가르고 들어온 토마스가 장난스럽게 민호의 혀를 건들이자 그런 토마스의 행동에 입 꼬리를 말아 올린 민호가 장난치지 말라는 듯 토마스의 손등을 쳤다. 나름 복잡한 마음과 설렘이 겹쳤던 첫 번째 키스와는 다르게 이제는 본능적으로 더 깊은 것을 원하는 토마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민호는 부드럽고 익숙하게 토마스에게 맞춰주었다.
그때 민호의 발에 툭 하고 뭔가가 닿았다. 귀찮다는 듯, 방해가 될 것 같아 차버린 그것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했던 예능프로그램의 재방송이 뚝 꺼지더니 큰 화면 가득 살색 가득한 스크린으로 가득 차는 것이 아닌가. 교태 가득한 여자의 신음소리에 토마스의 행동이 뚝 멈추고 말았다.
“…미안.”
민호는 리모컨을 차버린 자신의 발을 원망했다. 자연스레 민호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던 토마스가 저 멀찍이 멀어지더니 가장자리에 다리를 모으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삭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민호는 작게 시발을 외쳤다. 기껏 분위기 타나 했더니 빌어먹을, 다 말아먹었다.
“…미안합니다.”
“아니, …그 내가 미안해.”
조용해진 집 안에 신음소리는 여전히 흘러넘쳤다. 아니, 저걸 꺼야겠다는 생각은 들겠는데 지금 막상 움직이기가 영… 아, 모르겠다. 민호는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자존심도 자존심이고 한 번 보기 좋게 말아먹은 분위기 때문에 다시 뭔가 하기에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섣불리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
…섰다.
“…시발.”
보기 좋게 살짝 부푼 제 앞섬을 보니 민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다. 애인 새끼 눈앞에 두고 화장실에서 처량하게 처리해야하는 이 처지는 또 무슨 개 같은 처지인가. 민호는 신경질 적으로 토마스에게 리모컨을 던졌다.
“끄던가.”
민호의 목소리에 놀란 토마스는 동그란 눈으로 민호를 쳐다보았다. 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면 계속 하던가.”
검지를 까딱이며 저를 부르는 민호의 모습에 토마스는 딸꾹질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로 토마스는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혀로 입술을 축이는 그 모습에 토마스도 똑같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토마스는 긴 팔을 뻗었다. 순식간에 민호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린 토마스는 그대로 민호의 위에 올라타 그의 입술을 집어 삼켰다. 이젠 tv에서 뭐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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