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컨대 클락은 배트맨의 정체를 함부로 훔쳐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슈퍼맨의 투시 능력은 납을 사용하면 막을 수 있다는 정보를 구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카울에는 얇지만 납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평생을 배트맨만큼 철저하고 완벽한 사람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만큼 클락은 그의 주변 것들에 더 감각을 곤두세우고는 했다. 예를 들면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는 발차기의 지축이 되는 발의 부츠 밑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라던가-. 별 쓸데없는 것에 절로 쫑긋 세워지는 감각의 촉을 어떻게 해도 도무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배트맨이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슬금슬금 자신의 곁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아는지 궁금해지려던 찰나, 클락은 그와는 전혀 어울릴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희미한 단내를 맡았다. 그 달콤한 향기는 절로 입 안에 군침이 돌게 만들 정도로 향긋했다. 초콜릿? 그러나 분명 초콜릿의 향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달게 느껴지는 향에 클락은 굉장히 의외라는 얼굴로 배트맨의 어깨를 붙잡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나. 단 내가.”


배트맨과 만난 지 약 4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가 당황하는 것을 느낀 클락 또한 그 못지않게 당황하여 횡설수설할 동안 슈퍼맨이 배트맨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한 사건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지고 말았다.

그 뒤로 배트맨은 이상한 무리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상한 무리라 하면은, 대표적으로는 그린랜턴과 플래시가 있었고, 샤잠과 사이보그도 퍽 궁금하다는 얼굴로 배트맨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으나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짜증과 한숨이 섞인 꾸짖음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슈퍼맨은 반경 5m 안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으며, 혹 그것을 어길시 휘황찬란한 초록빛 세상을 구경시켜주겠다는 그의 협박 아닌 일방적인 통보에 천하의 슈퍼맨도 얌전히 꼬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클락의 코끝에는 여전히 배트맨에게서 느껴지는 달콤한 향이 선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린랜턴은 달콤한 냄새는커녕 쓸데없이 향이 짙은 향수 냄새만 풀풀 풍기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플래시는 그 향수가 보통의, 일반적인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것을 눈치 챘으나 입을 다무는 것을 택했다.





최근 클락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데일리 플래닛에 퍽 상큼한 소문이 돌았다. 요새 들어 클락의 자리에서 단 내가 며칠 째 빠지지 않고 풀풀 풍긴다는 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락의 자리에는 이곳저곳의 수많은 간식거리들이 책상 한 가득 쌓여있었다. 비단 클락의 자리뿐만이 아닌 그 주변 동료들의 책상에도 가득했다. 도넛부터 시작해서 쿠키, 케이크, 마카롱…. 그 종류도 워낙 많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은 ‘기자’들의 사무실에 아주 조금이나마 웃음꽃이 폈다. 거의 매일같이 군것질을 사오기 시작하는 클락을 보며 로이스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원래 클락은 단 것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하루에 다 먹기도 벅찬 양의 디저트들을 사오는 것이 궁금할 수밖에. 심지어 클락은 그 많은 것들 중 한 두 개 정도 먹을까 말까했다. 디저트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갔고, 클락은 그저 그 디저트가 담겨있던 상자를 빤히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클락이 사온 디저트의 맛은 훌륭했고, 로이스는 체중이 2kg이나 늘었다며 푸념을 내뱉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늘어난 체중이 아슬아슬하게 3kg을 채우기 전에 로이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클락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여전히 클락의 자리에는 새로운 케이크 박스가 놓여있었고, 클락은 유심히 그 상자를 들여다볼 뿐이었다. 물론 그 안에 들어있던 케이크는 벌써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뭔가, 좀 더…….”

“더?”

“달면서 달지 않은 듯한 냄새가 나는 게 뭘까?”

“클락?”

“초콜릿은 아니었는데.”

“클락.”

“응?”


로이스는 클락의 앞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었고, 클락은 그제야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도수가 너무나도 높게 맞춰져있는 안경알에 비친 그의 새파란 눈은 전에 없던 호기심에 깊게 잠기어 더욱 반짝였고, 로이스는 그 사실 자체를 꽤 흥미롭게 여겼다.


“어떤 걸 찾는 거야?”

“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적당히 달지만 그렇다고 코끝을 찌를 정도로 달지는 않아. 그 향이 너무 은은해서 금방 잊혀져버릴 것 같다가도 익숙하게 계속 맴돈단 말이지.”

“정말 어려운 걸.”

“그렇지?”


요컨대 클락은 그 자신이 설명한 그러한 향기를 내는 종류의 디저트를 찾고 있었고, 벌써 며칠 째 동네의 모든 디저트 전문점을 뒤졌지만 그 향기의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 며칠 클락이 사온 디저트는 모두 한두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상표가 있는 집의 것이었고, 로이스는 손뼉을 치며 클락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담으로 향하는 다리 끝에 있는 가게는 가봤어?”

“음?”

“팬케이크 집말이야.”


아, 아아. 클락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장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다. 그 가게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가게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었다. 클락은 자신의 편견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왜 그라면 좀 더 크고,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곳의 향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는가.

클락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반동 때문에 덜컹거리는 의자를 대신 잡아준 로이스의 뺨에 입을 맞추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클락의 눈은 방금 로이스가 발견했던 것보다 더욱 더 반짝이고 있었다.





가게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익숙하게 코끝을 간질이는 향은 분명히 그의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곁에서 머물던 희미한 그 달콤한 향기였다. 클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로 들어섰고, 가게 안은 확실히 바깥에서 느껴지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진한 향이 클락의 전신을 휘감았다.

겨우 한 두 자리 있을까 한 아주 조그마한 가게에는 보통의 가게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설탕이나 크림의 향기에 더해져 독특한 시럽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시나몬? 클락은 비로소 너무나도 희미했던 그 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향수와 뒤섞여 은은하게 그를 감싸고 있던 공기 중에 퍼져있던 것은 명백히 시나몬 향기였다. 너무나도 희미하지만 꾸준히 자신의 향기를 어필하던 그의 정체를 알아내자 클락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아, 음……. 모카 시럽으로 주세요. 크림은 빼고.”

“드시고 가실 건가요?”

“네.”


다행히 자리가 있었기에 클락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 앉았고, 주문한 팬케이크가 나오는 동안 연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인지라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느긋함에 푹 젖어있을 때 쯤, 클락은 아주 의외의 인물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터 웨인?”


그 이름조차 입에 담기가 생소한 남자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발걸음을 했다는 생각이 들 때 쯤, 클락은 본능적으로 그대로 가게를 나가려는 브루스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웨인…… 배트……?”

“주문하신 케이크 나왔습니다.”


주문 대를 앞에 두고 오묘한 신경전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고, 브루스는 클락 대신 그의 접시를 받아들며 말했다.


“항상 시키던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시나몬 시럽 크랜베리 팬케이크 맞으시죠?”


브루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클락은 여전히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다시금 회상하게 될 그들의 첫 번째 데이트가 된다.


'D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뱃] 첫 키스  (0) 2016.05.16
[슨뱃] 죽음의 냄새  (0) 2016.05.16
[숲뱃] 공중산책  (0) 2016.05.16
[딕뎀] 꿈  (0) 2016.05.16
[클락브루스/숲뱃] 인간의 세계  (0) 201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