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하 뉴트 x 연상 민호

* 뉴트 성은 편의상 브로디. 개인적으로 생스터도 예쁘지만 뉴트 브로디라는 이름이 참 예쁜 거 같아서욥...

* 한국 학력 기준()






새벽 같이 일어난 뉴트는 벌써 일어났냐는 엄마의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하느라 집 안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어제 얼굴에 올리고 잤던 팩이 바짝 말라 퍼석,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돌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뉴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지 자신을 죽도록 괴롭히던 콧등에 난 새빨간 뾰루지가 거짓말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뉴트의 기분은 이미 하늘을 뚫고 날아갈 것 같았다. 오늘이 무슨날인데. 그런 흉한 꼴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샤워를 끝마치고 - 그래도 평소보다 세 배는 더 열심히 씻었다. - 팩을 하나 얼굴에 더 올린 뉴트는 어제 밤부터 한 쪽에 고이 모셔두었던 정장을 침대위에 펼쳐보였다. 먼지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수트에 뉴트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을 위해, 오늘만을 위해 엄마한테 조르고 졸라 마련한 것이다. 새하얀 자켓, 새하얀 바지, 새하얀 조끼에 그것만큼이나 새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비죽 튀어나와있는 검은색 넥타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얘는 무슨. 대체 어떤 여자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거야?"

"여자아이? 아니지, 엄마. 난 태어나서부터 점 찍어 놓은 사람이 한 사람 밖에 없다고."

"못 말린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민호나 민호 엄마 얼굴 보기가 얼마나 민망한 줄 아니?"

"-아, 왜."


말은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정성스레 뉴트의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에 뉴트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애교를 부렸다. 그러자 짝,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때리는 그 매서운 손길에 뉴트는 찔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 엄마!"

"어유, 고소해."

"금쪽같은 아들 얼굴에 생채기 나면 어쩌려고!"


그 말을 하자마자 얼굴에 쏟아지는 옷가지들에 파묻힐 뻔한 뉴트는 한 번 익살스럽게 웃어보이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몸에 딱 맞춘 듯 완벽하게 들어맞는 핏에 뉴트는 거울을 보며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아들이 왕자병만 좀 없으면 정말로 완벽할텐데."

"어때?"

"좋아, 최고야."

"그럼, 그래야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브로디 여사의 아드님인데."


얼씨구, 기가차다는 듯 웃어보인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뉴트는 얌전히 침대 위에 앉았다. 아직 파티가 시작하려면 시간이 한참 남기는 했다. 뉴트는 초조하면서도 긴장되고, 동시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대망의 프롬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뉴트의 졸업을 축하하는 파티. 물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컸지만, 오늘은 뉴트에게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날인 것이다. 괜히 몰려오는 긴장감에 자꾸 넥타이를 만지작 거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민호, 와주겠지. 와줄까? 와줬으면 좋겠는데.


프롬 파티라 하믄, 물론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유일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 허락되는 날임과 동시에, 모두가 있는 곳에 자신의 짝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게 뭐냐고 예의 '어른들'은 헛웃음을 칠 지 몰라도 딱 뉴트 나이의 십대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라는 것이다. 그간 여러 자리에서 하나 같이 옆구리에 애인을 끼고 와서는 자랑질이나 해대는 친구들 사이에서 뉴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뉴트의 짝은 뉴트보다 나이가 많은, 예의 그 '어른'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아주 특별한 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뭐가 특별하냐면 그 애인이 남자 애인이라는 것이 특별하다는 것이다. 물론 뉴트도 할 수만 있다면 그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제 것이라고 온 동네 방네 소문을 내고 싶었지만, 그는 어른이었고 뉴트는 아직 십대였다. 

'학교'라는 사회 생활도 겉돌기 시작하면 무척이나 힘들어지는 것이 그 '사회 생활'이라는 것인데, 뉴트는 그에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하기에는 자신의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뉴트는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드디어 십대에서 벗어나는 첫 관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뉴트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기에.


"뉴트, 가자."

"아, 응!"


뉴트는 여전히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제 자신을 이끌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



"세상에, 뉴트! 너 오늘 완전 최고야!"

"그런 말은 애인한테 해주는 게 어때, 트리샤?"

"시끄러워, 토마스."


와, 진짜 너무하네. 토마스는 고개를 저으며 뉴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뉴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토마스의 어깨에 자신도 팔을 올렸지만 시선은 아까부터 계속 파티장의 입구를 보고 있었다. 그런 뉴트의 시선을 느낀 토마스가 뉴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괜찮아, 3학년들 무대는 맨 나중이잖아. 근데, 확실히 오기로 한거야?"

"...사실, 모르겠어."

"뭐?"

"그야 오늘 프롬 파티 있다고 한 달 전부터 얘기하긴 했는데, 막상 어제 일 때문에 못 만나서..."


뉴트는 의기소침한 표정과 목소리로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런 뉴트의 모습에 토마스는 어, 음, 하는 말을 반복할 뿐 딱히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종잡을 수 조차 없었다. 사실 뉴트의 베스트 프렌드인 토마스조차, 뉴트의 애인인 민호라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뉴트가 은근슬쩍 자랑하듯 토마스에게만 보여준 사진이 전부였다. 애초에 뉴트가 남자 애인을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토마스를 포함해봤자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뭐, 혹시라도 못 오면 내가 대신 춤 춰줄게."

"뭐? 푸하, 말이라도 고맙네. 네 애인이나 챙기세요."

"내 애인은 다른 놈이랑 춤 춘다."

"너희 사귀는 거 맞냐?"

"아마."

"저런."

"괜찮아, 그래도 마지막 엔딩은 우리 거 거든."


뉴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트리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 토마스의 뒷 모습을 보며 뉴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엔딩, 내가 가지고 싶은데. 뉴트의 목적이자 프롬 파티의 진면목이며 모든 커플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간단하게 말하자면 졸업생인 3학년들 중 가장 돋보이는 커플이 제일 먼저 파티장의 문을 나서며 지나갈 수 있는 명예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지금 가장 유력한 커플은 토마스와 트리샤인 건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학교 공식 커플이라고 소문이 자자할 정도인데, 토마스가 자신 만만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뉴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민호와 만나기 전까지는.

얼른 트리샤의 곁으로 다가간 토마스는 예의 그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트리샤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던 남자의 발등을 구두굽으로 찍어내렸다. 차마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남학생을 보며 멀리서 바라보던 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트리샤의 옆을 꿰차며 중앙 홀로 나간 토마스는 능숙하게 트리샤를 에스코트했다. 


"....."


어느덧 시간은 흘러 드디어 졸업생의 차례가 왔다. 다소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며 순식간의 파티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너도나도 화려한 옷자락을 자랑하며 자신의 파트너의 손을 잡고 중앙 홀로 향하는 것을 보며 뉴트는 아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무리였을까.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뉴트는 그 무엇보다도 민호의 사정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역시, 가장 빛나는 것은 토마스와 트리샤였다. 중앙 홀의 정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보며 뉴트는 혼자 가볍게 와인잔을 허공에 흔들며 건배를 했다. 


"이상하다, 이 학교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너라며?"


미치도록 듣고 싶었던 그의 목소리에 뉴트는 한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그가, 민호가 있었다. 뉴트와 짝을 이루듯 깔끔한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고, 유난히 튀는 새하얀 넥타이를 하고 있는 그가.


"그런데 왜 여기 있을까?"

"파트너 없이 혼자 춤 추는 사람이 어디있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이봐요, 민호씨. 그 쪽 진짜 늦었거든요, 그것도 엄청."

"으음, 미안. 진짜 미안. 늦잠잤어."


뭐?! 한순간 경악을 띄는 뉴트의 표정에 민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늦잠을 잔 건 어느정도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늦을 정도로 자진 않았다. 비록, 오늘 하루 회사를 빠지기 위해 어제 오늘일을 어제 몰아서 하느라 밤을 꼴딱 세고 와서 피부고 뭐고 가장 최고의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봐주라, 이틀치 일 다하고 왔단 말이야."

"...무리했어?"

"조금? 그치만 오늘 빠질 수는 없잖아. 네 프롬 파티인데."

"그럼, 늦은 만큼 잘 해야 해? 저기서 춤추는 저 잘난 것들 찍어 누를 수 있을 만큼."

"음, 저기 보이는 토마스 말하는거 맞지?"

"이 프롬 파티의 엔딩은, 우리 거야."


뉴트는 최고로 자신감에 가득찬 미소를 지어보이며 민호의 손을 붙잡고는 홀로 달려나갔다. 갑작스러운 뉴트의 등장에 환호 반, 술렁거림 반이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섞여 나왔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민호가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뉴트를 바라보았지만 뉴트는 그런 것은 상관 없다는 듯 민호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다른 데 보지마. 나만 봐."

"그-래, 좋아."


가볍게 민호의 콧등에 입을 맞춘 뉴트는 그대로 민호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당당하게 홀을 누비며 춤을 추는 둘의 모습에 토마스는 조금 기가 질린 듯 트리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떻게 생각해, 트리샤?"

"아쉽지만 우리가 진 거 같은데?"


트리샤의 경쾌한 대답에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는 듯 토마스가 웃으며 트리샤를 안아들고는 뉴트와 민호에게 중앙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 토마스의 모습에 뉴트는 이 세상에 두 번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민호를 홀 중앙으로 이끌었다. 음악은 계속 흘렀고, 중앙에 자리를 잡은 뉴트와 민호의 주변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뉴트는 타이밍을 재듯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다 곧 춤을 추던 발을 멈추고는 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할 말 있는데."

"춤 추는 걸 멈출 정도로 중요한 거야?"

"응."


어깨를 살짝 으쓱여보인 민호의 앞으로 뉴트가 천천히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흐르던 음악이 조금 느린 템포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랑 앞으로도 남은 평생을 같이 해주지 않을래?"

"-지금 프러포즈 하는거야?"

"음, 아마?"


팔짱을 끼고 자신의 턱을 매만지던 민호는 조금 아리송한 얼굴을 짓고는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뉴트는 분명히 보았다. 셋, 둘, 하나. 숫자를 세는 민호의 입을. 하나, 라는 민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티장의 주변으로 형형색색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환희에 찬 함성 소리가 파티장을 가득 매웠고, 민호는 가볍게 뉴트의 몸을 일으켰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으켜진 뉴트의 무릎을 털어준 민호는 뉴트와 파티장의 문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서, 대답은?"

"저 문 나가면 말해줄게."

"약속했다?"

"응."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민호를 보며 뉴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내밀었고, 민호는 가볍게 뉴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 손을 잡아당겨 손등에 입을 맞춘 뉴트는 그대로 민호와 함께 파티장의 문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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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드파. 현재 위키드 서부 A 지역 전체를 접수하고 있는 일당으로, 현재 점차 동부 쪽으로도 세력을 넓히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이 흔히 사창가라 불리는 메이즈 구역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다 어느 순간 지금의 보스인 토마스가 그 때 당시 보스였던 에어리스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꿰찬 순간부터 글레이드파의 위용이 드세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부 지역을 접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 어느 소속에도 들지 못한 쓰레기들의 집단인 광인 세력을 전부 제거하고 아예 그 지역에 자신들의 깃발을 세운 것이 고작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거야?"

"얼간이."

"진짜 이럴 땐 완전 바보 같아, 보스."

"둘이 나 놀리는 데 재미 들렸지? 거봐, 그러니까 여기 이런 말이 써 있잖아."


전 보스인 에어리스를 제거하고 실질적인 보스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토마스지만, 글레이드파의 진짜 실세라고 불리는 이들은 따로 있는데 이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코드네임 뿐이라고 전해진다.


"코드네임 Angel. 세상에, 존나 오그라들어."

"나도 그 이름 싫다."

"네가 하는 짓 보면 절대로 천사님이라고 할 수 없는데. 너한테 이빨이고 손톱이고 눈까지 뽑힌 애들이 몇인데."

"그래서 천사인가 보지. 왜, 천국으로 인도해주잖아."

"...네, 네."


굉장히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는 뉴트를 보며, 토마스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마저 손에 들린 서류를 읽었다.


"코드네임 Black Wolf. 음, 이건 천사님 보다는 좀 낫네."

"하긴, 그거 만큼 잘 어울리는 별명도 없을거야. 그치?"

"그걸 지금 본인한테 묻는거야?"


가볍게 어깨를 돌린 민호는 토마스의 발에 밟혀 잔뜩 구겨져버린 한 남자의 머리끄댕이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제복 같아 보이는 셔츠는 사정 없이 구겨지고 찢겨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였고, 얼굴은 그것보다 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내가 네 보스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는 물리기 싫소."

"그럼 좀 평소에도 에어리스인지 에어레스인지, 그 새끼 목 땄을 때처럼 행동하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처럼 실실 쪼개긴."

"이해해줘, 민호. 그랬다가는 모두가 토마스를 무서워할거야."


민호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걸치며 담배에 불을 붙힌 뉴트가 느긋하게 민호의 얼굴 위로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그런 뉴트의 행동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민호는 그대로 손에 쥐고 있던 머리를 벽에 내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핏자국이 퍼지자 토마스가 질색을 하며 민호의 뒤로 숨었다.


"구두에 묻잖아, 더럽게."

"아까 이 새끼 면상 밟고 있던 새끼가 할 말은 아니신데요, 보스."

"하하, 그런가. 그리고 뉴트. 민호한테 그러지 마. 넌, 네 거 있잖아."

"내가 물건이냐, 이 새꺄."

"에이, 말이 그렇다는거지. 어쨌든 내 거 맞잖아."


뉴트는 민호와 만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곧 죽어도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토마스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장난스레 웃으며 이번에는 토마스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그러자 토마스가 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제대로 맡은 모양인지 사레까지 걸린 모양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너도 내 취향이야, 토마스."

"-정말 못 말린다니까."


토마스는 살풋 웃어보이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갈기갈기 찢고는 널부러져 있는 남자의 몸뚱아리 위로 뿌렸다. 그런 토마스를 보며 미련 없이 돌아선 뉴트와 민호가 먼저 시내로 나가자 토마스도 그 뒤를 쫓아가려다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널부러진 남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찰이신데, 뭐 재밌는 거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음, 진압봉. 이건 씨알도 안 먹힐 거 같은데. 그나저나 이 아저씨 경찰 맞나, 흔한 소총 하나 없어. 셔츠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토마스가 이내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들고는 활짝 웃으며 민호를 불렀다.


"자기야!"

"-."

"이거봐! 내가 재밌는 거 찾았어! 내 로망!"

"......"


토마스의 손에 들린, 멀리서 봐도 딱 수갑 같아 보이는 것을 보는 민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민호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뉴트는 지금이 피해야 할 때라는 것을 감지한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손목에 끼우는 부분을 손가락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민호를 바라보던 토마스의 얼굴이 뉴트를 보며 싸하게 굳어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 잘 가, 토마스.


이런 젠장.


"로- 망-?"

"아니, 저기, 민호, 그러니까-"

"오냐, 그 로망 오늘 내가 질릴 정도로 들어주마. 네 손모가지 부러질 때까지 어디 한 번 해 보자."

"내 로망은, 내 손목 말고 네-"

"오늘부로 글레이드는 내가 접수한다. 토마스인지, 호마스인지 호구 새끼는 얼어 뒤졌다고 전해, 뉴트."

"네, 보스."

"야!!"


힘 없이 떨어진 수갑이 땅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이렇게 잔인하게 들리는 것이던가.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악!! 사람 살려!!!"


나, 이러다 진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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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캇 x 스타일즈. 스카일? 이라고 부르나. 아니면 스키틀즈가 맞나. 암튼 그러하다.

* 스포있음(시즌3, 시즌4). 특히 특정인물에 대한 대형 스포 있으니 주의 요망.

* 번호가 붙어있지만 이어지는 건 아님







01.

"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한참 컴퓨터를 뒤적이고 있던 스타일즈는 말 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리암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빨리, 할 말이 있으면 해 봐, 라는 제스쳐에도 리암은 한참이나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피하다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스타일즈의 시선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형은 그냥 보통 인간이잖아요?"

"그렇지?"

"근데 어떻게 이 무리에 있을 수 있는거죠?"

"뭐?"

"...음, 뭐. 둘이 어렸을 때부터 베스트 프렌드라서... 라는 그런 뻔한 이유 말고."

스타일즈는 요 맹랑한 꼬맹이가 대체 무슨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리암의 말을 아주 무시해버리지 못하는 것이, 리암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스캇도 처음엔, 그러니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비컨 힐즈에서 제일 강한 늑대인간이다. 그런 스캇의 무리에는 스캇의 베타인 리암은 물론이고, 키츠네인 키라, 벤쉬인 리디아, 코요테인 말리아 등 이 세상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들 사이에 딱 하나, 스타일즈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물론, 스타일즈도 인간이 아니었을 때는 있었다. 지긋지긋한 노기츠네에게 씌여 스타일즈 본인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들을 벌이고 다녔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의 스타일즈는 명백히 인간 스타일즈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내가 만약 스캇 형이었다면, 내가 알파였다면 난 스타일즈형을 내 무리에 두지 않았을 거예요."

"...뭐야?"

"잘 생각해봐요. 물론 형이 똑똑하다는 거, 그거 나도 인정해요. 그리고 다들 스타일즈형을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물론, 지금 나도 그렇구요."

"근데."

"너무 위험하니까."

"......"

"인간이어서."


처음 리암의 말을 듣고 발끈했던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스타일즈의 안에는 리암이 던진 물음이 팍,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굳이 대답을 하자면, 스타일즈는 리암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몰라, 라고. 


"그래도 역시 베스트 프렌드라서, 일까나."

 

별 의미 없었다는 듯 눈을 굴리는 리암을 보며 싱겁다며 리암의 머리를 헝클어트린 스타일즈였지만, 여전히 스타일즈의 안에는 그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것은 곧 다른 물음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스타일즈는 본인은, 왜, 어째서, 이런 비정상적인 무리에 함께 행동하며, 그들을 돕고 있는가. 리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스타일즈가 그들과 함께 다니기에는 스타일즈는 너무 약한 존재였다. 물론 스타일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죽을 힘을 다해 스타일즈를 구하려고, 도우려고 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스타일즈는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보면, 자신은 그들이 늑대인간들이나, 사악한 드루이드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멀리 떨어져서 머리를 굴리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이, 이 논점의 결론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타일즈는 결국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스타일즈를 보며 리암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 나는 너희들이 늑대나, 다른 어떤 것들과 싸울 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네."

"아, 그,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런 생각 하는거라면 그러지 말아요. 난 단지 그냥..."

"알아. 스캇은 너의 알파고, 너는 그의 베타니까. 너에게 있어 너의 무리를, 그의 무리를 그 어떤 위험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게 본능이라는 것쯤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살풋, 웃어보인 스타일즈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리며 한참을 고민하며 말을 골랐다.


"그럼에도 역시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 려나? 진부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스캇은 내 최고 베스트 프렌드고, 리디야는 내가 단 한번도 좋아해보지 않았던 적이 없는 소중한 여자아이고, 데릭도, 키라도, 말리아도. 그리고 너도. 솔직히 이 녀석들은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라는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고. 흐음, 인간은 베타가 될 수 없나..."

"...그럼 왜, 늑대인간이 되지 않는거예요?"

"...어?"


어느새 부쩍 스타일즈의 앞으로 다가온 리암은 지긋이 스타일즈의 어깨를 누르며 스타일즈와 눈을 마주쳤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게 하나가 있다면, 스타일즈에게서는 그 자신의 체취와 함께 진동하는 알파의 향이 알게 모르게 리암의 후각을 건드렸다. 늑대를 포함한 모든 짐승들에게 있어, 체취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무기이자 방패였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스타일즈에게서 잔뜩 흘러나오고 있는 이 체취의 의미는 분명.


"난 알파가 아니니까, 형을 늑대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스캇형은 다르죠. 알파니까."

"이봐, 리암? 너 왠지 아까랑 분위기가 좀-"

"내가 알파였으면, 그랬을텐데."


순식간에 스타일즈의 턱을 잡아 돌린 리암은 말끔하게 드러난 스타일즈의 목을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보름달이 떴을때와는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딱히 스타일즈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스타일즈에게서 진득히 묻어나오는, 자신의 알파인 스캇의 체취 때문일 것이다. 본능이다. 무리에서 제일 약한 짐승이, 그들의 우두머리와 같은 체취를 가진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스타일즈는, 단순히 무리에 껴 있는 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모르는 건 스타일즈 본인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 이것은 어떻게 비춰질까.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본능적인 호기심과 질투,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우두머리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 욕심이 안 난다면 짐승이 아니란 것이다.


"리암, 이봐, 잠깐만!"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형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으니까."

"-야!!"

"난 물어도 형이 늑대인간으로 변할 일은 없으니까, 괜찮겠죠?"

"...뭐? 이봐! 리암, 하지마. 그러지 말라고! 네가 물면 난 죽어!"


한낱 인간의 힘으로 늑대인간의 완력을 이기는 것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파인 스캇이 스타일즈를 문다면 죽지 않는 이상 스타일즈도 똑같이 늑대인간이 된다지만, 알파가 아닌 그냥 보통 늑대인간이 스타일즈를 문다면, 그것은 스타일즈에게 있어 그냥 먹히는 것과 다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인간 고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스타일즈에게서 떨어져, 리암."


오, 신이시어. 스타일즈는 탄성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득한 숨소리 끝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위협적으로 들리는 스캇의 목소리에 리암은 어깨를 으쓱이며 스타일즈의 턱을 놓아주었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던 모양인지 스타일즈는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려보았다.


"그냥, 난, 궁금했어요."

"...."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미안해요, 스타일즈형."

"...어, 어. 그래, 잘 가라."


스타일즈에게서 손을 떼고 난 후 교실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저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쏘아보는 스캇의 눈초리에 리암은 정말로, 진심으로 오한이 들었다. 처음 늑대인간이 되어서 그의 말을 전부 무시하고 혼자 돌아다녔을 때 제압당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때보다 뭔가 좀 더, 위협적인. 리암은 뒤통수를 긁으며 교실을 빠져 나오며 생각했다. 

어쩌면, 스타일즈를 이 무리에 계속 잡아두고 있는 사람은, 스캇이라는 것을.


"맹랑한 꼬맹이. 물리면 난 최소 과다출혈이라고."

"대체, 무슨, 스타일즈. 너-"

"헤이, 스카티.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다친 데는 없어?"

"리암이 적이야? 아니잖아."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스타일즈를 보며 스캇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느끼기 시작한 건데, 스타일즈의 이런 점은 피곤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는 꼭꼭 숨기려 들고, 혼자 앓으려 하고 결국 썩어서 골병이 날 때까지 끌어 안아 버린다. 친구로 지낸 게 몇 년인데, 그걸 이제서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스캇이 스타일즈를 예전과 같지 않게 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타일즈는 알기나 할까.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뭐? 늑대인간이 되는거? 싫어."

"스타일즈."

"스캇."

"......"

"난 네 하나뿐인 '인간' 베스트 프렌드로 족하다고. 보름달이 뜨는 날에 미쳐 날뛰는 것도 사양이고. 솔직히 말해서 늑대인간으로 변하면 그 눈썹이라던가, 구렛나루라던가 좀 구린 것 같아. 음, 금색 눈동자는 좀 멋있을 거 같기도."

"뭐야?"

"아니, 아니. 그냥 그렇다, 이거지."


서둘러 책상을 정리한 스타일즈는 바리바리 싼 가방을 들고 스캇의 앞에 섰다. 스캇은 스타일즈에게 뭔가, 더 진지하고 핵심적인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관뒀다. 그라나 교실을 둘러보는 스타일즈의 목에 얼핏 남은 붉어진 자국은 스캇의 신경을 건드리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마 리암은 다 알고서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에 나갈때 저와 스타일즈를 번갈아 보던 그 시선에는 명백하게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혼 좀 내줘야 하나. 가만히 있던 스캇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스타일즈가 스캇의 이름을 차마 다 부르기도 전에 스캇은 스타일즈의 턱을 옆으로 돌려 아까 리암이 하지 못했던 짓을 했다. 


"스캇! 뭐하는...!"

"쉿."

"...스캇?"

"늑대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말이야, 스타일즈."


가볍게 스타일즈의 목에 입을 맞춘 스캇은 눈을 접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자기 걸 뺏기는 걸 용서 못해."







02.



어두컴컴한 지하실.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 갇힌 스타일즈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군가가 스타일즈를 이곳에 가두거나, 끌고 온 것은 아니었다. 스타일즈 본인 스스로 이런 곳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은 하얗게 넘실거리다 곧 사라져갔고,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은 피부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추위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곳은, 꿈 속이니까.

스타일즈는 이 곳에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꿈에서 깨는 것을 원치 않았다. 스타일즈가 무사히 이 곳에서 나가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다. 스타일즈는,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캇을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노기츠네에게 씌여있었다고 해서 스타일즈가 아예 자신을 놓아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스타일즈는 알고 있었다. 노기츠네가 자신의 몸을 빌어 비컨 힐즈에 했던 수많은 악행을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스타일즈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무자비하고도 아주 간단하게 사람들을 죽이며 혼돈과 공포를 먹는 노기츠네의 감정은 매 순간, 순간 스타일즈를 덮쳤다. 스타일즈는 사람이 죽을 때, 그들의 눈에서 생기가 없어졌다는 게 보이기까지의 그 짧은 순간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들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노기츠네를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악감이 스타일즈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할 수만 있었다면, 스타일즈 자신도 노기츠네와 함게 사라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 남은 사람에게 남은 것은 살아 남았다는 희망이 아니라, 왜 살아 남았을까, 하는 절망이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해보기에는, 스타일즈는 너무 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굉장히 모순적이게도, 스타일즈를 그 지하실에서, 그 구덩이에서 꺼내주는 것은 스캇이었다.


"...일즈, 스타일즈!"

"...스캇?"

"다행이다, 다행이야, 스타일즈."


스타일즈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냈다. 스캇 뿐만이 아니라,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뿐인 아버지, 리디아, 스캇의 어머니, 앨리슨의 아버지, 데릭, 키라 그리고 스캇. 그들의 얼굴을 천천히 한 명씩 바라보다, 스타일즈는 자신의 시야가 흐릿해졌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터져나왔다. 다들 왜 우는거냐며, 울지말라며 스타일즈를 달래보았고, 괜찮다며, 이제 안전하다며 한 마디씩 건냈지만 스타일즈는 통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몇몇은 그 눈물의 의미가 긍정적이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스캇과 데릭은 그렇지 않았다.


"스타일즈, 너-"

"...내가 죽였어."

"스타일즈!"

"앨리슨은 내가 죽였다고!!"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터져나오자마자 스캇이 스타일즈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익숙한 그의 체취에, 스타일즈는 자신이 현실에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깨달은 만큼 스타일즈는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얌전히 스캇의 품에 안겨 그의 티셔츠가 다 젖어버릴 정도로 계속 눈물을 쏟고 있던 스타일즈는 결국 제 풀에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다. 발갛게 부어버린 두 눈가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저, 혼자 있을게요."

"스캇."

"혼자 있고 싶어요."


고집스러운 스캇의 태도에 다들 알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거기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스캇에게 있어 앨리슨은 어떤 존재였으며, 또한 스타일즈는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병실에 홀로 남아 스타일즈의 깡마른 손을 들어올린 스캇은 스타일즈의 손등 위에 가볍게 이마를 맞대었다.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스캇도 마찬가지였다. 눈 앞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 고통이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들 중 하나였다. 이미 스캇은 그런 고통을 겪었다. 정말로, 두 번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다.


"스타일즈 이 멍청아, 이러다 너까지 잃으면... 난, 난 어떡하라고."







03.


"넌, 내가 밉지 않아?"

"뭐?"

"생각해봐. 말은 더럽게 많지, 하는 말마다 헛소리지, 쓸데없는 말 투성이에다가 싸움이 일어나면 도움도 안 되고, 죽음을 예견해줄 수도 없고."

"스타일즈."

"그리고 네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내가, 밉지 않아? 스카티."


스캇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스타일즈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장난스럽게 짖궂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웃는 그 얼굴에 스캇은 저도 모르게 울컥, 울분이 터져나왔다.


"너 대체 왜 그러는거야? 문제가 뭐냐고."

"...스캇?"

"왜 너는, 네가 나한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 아닌 것 처럼 말하는 건데. 앨리슨? 그래, 사랑해. 사랑했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라.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만큼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

"그렇지만, 스타일즈. 너라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내가 감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안 돼?"

"-스캇."

"죄책감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스타일즈. 너에게 아주 잘못이 없다고 하지 않을게. 네가 그 말을 원하는게 아니란 걸 난 알아. 그래, 평생 그녀를 잊지마. 그렇지만, 이것 또한 잊지마. 그녀를 잊지 말아야하는 사람은 너 뿐만이 아니야. 그리고 그 어떠한 것보다, 나를 위해 살아줘."


그걸 잊지 마.







04.


"늑대가 개과던가?"

"응."

"흐응, 역시나."

"왜?"


스캇의 물음에 스타일즈는 대답 없이 작게 미소 지으며 스캇의 윗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불과 몇일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네 모습에 놀라서."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뭐?"

"그 잘난 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이제까지 몰랐던 내가 다 한심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며 모르는 척 시선을 피하는 스타일즈를 가볍게 들어올린 스캇은 그대로 그의 침대 위에 스타일즈를 내려놓았다. 애정 어린 다정한 스킨쉽에 스타일즈는 괜히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간지러워, 스캇. 핥지는 마, 푸흐, 흐-"

"개과잖아?"

"개과인 늑대지. 문 잠궜어?"

"오늘 엄마 야간 근무라 괜찮아."

"으응, 그래? 그래, 그럼."


가볍게 스캇의 손을 잡아 당겨 손가락 하나, 하나에 입을 맞추며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인 스타일즈가 과장된 억양과 목소리로 말했다.


"늑대로 변신할 준비 됐어?"

"-언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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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보는 민호와 그런 민호의 집에 얹혀 살게 된 토마스, 갤리, 뉴트 이야기.

* 갤리 편

* 토마스 편과 이 글 이후의 갤리 편 및 뉴트 편은 메이즈러너 온리전에서 확인하세요 ^^(???





민호는 종종 예지몽을 꾸고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형의 존재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가끔씩 정말 현실과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비슷한 꿈을 꾸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꼭 그런 예지몽의 결말은 민호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예지몽이고 뭐고, 다 상관없었는데 이거 하나가 정말 불쾌했다. 최근 아귀를 하나 옆에 들여서 인지는 몰라도 예지몽을 꾸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도 민호는 그 예지몽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는데 아마도 자신은 곧 죽지 않을까, 하는 참 거지같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현실과 동 떨어진 것 같이 느껴지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지는 몰라도 예지몽을 현실 감각과 비슷하게 설계한 새끼는 반드시 조져버릴거야. 


지금 민호가 서 있는 곳은 집 앞 골목길이었다. 생긴 걸로 봐서는 어느 시골 구석에나 처박혀 있을 거 같은 굉장히 좋은 말로는 엔티크하다고 할 수 있고 나쁜 말로는 구린 집은 학교에서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꽤 괜찮은 집이었다. 단지, 학교가 있는 대도시의 마을과 집이 있는 마을을 사이로 큰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의 다리를 분기점으로 이쪽은 시골, 저쪽은 대도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려있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민호는 그것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그것과 비슷한 것 쯤 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부터 귀신 보고 살아봐라. 이런 생각밖에 안 하지. 

민호는 자신의 몸이 정처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민호가 스스로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닌, 땅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하게 흔들린다 싶더니 이제는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시멘트로 다 덮은 포장도로고 뭐고 쩍쩍 갈라지더니 귀를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다리가 막대과자처럼 부러져버렸다.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눈 앞에 있는 것이 부숴지고 갈라지고 무너져내리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 민호는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부터 접었다. 침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 소란의 주범을 찾으려고 애썼다. 


-산.


찾았다. 이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찾았다. 마을을 빙 두르고 있는 거대한 산맥. 여기저기서 깨지고 부숴지는 소리에 묻혀버린 목소리가 어림풋이 들려왔다. 애초에 이곳의 사람의 목소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민호 자신의 목소리 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이 구슬프게 울고 있는 비명과 같은 슬픈 목소리는 분명 이 소란의 주범이자, 원흉이 내는 비명일 것이다. 이윽고 다리가 완전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슬픈 목소리는 아예 성질을 바꿔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마을이 무너지는 속도는 거욱 거세지더니 이내 곧 민호는 자신의 머리 위로 무엇인가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과 자신 사이의 간격 단 20cm 뿐이었다.


또, 죽었다.


"...아! 이, 시발!! 죽여버릴거야!!"

"아씨, 깜짝이야!"


잘 자다, 아니 끙끙거리며 온 몸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꼴을 보아 하니 잘 잔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신음소리 한 번 안 지르다 일어나서는 욕질이라니. 토마스는 길게 자라 있는 아이비 줄기를 씹어먹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


토마스는 민호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입에 자크를 채우는 시늉을 하고는 한 걸음 멀찍이 물러나 아이비 잎사귀를 마저 씹었다. 민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실컷 머리를 헤집어버렸다. 깔려죽는 것도 기분 더럽게 나쁘네, 썅. 잔뜩 찌푸린 얼굴에 주름진 미간을 보니 이번에는 좀 아팠나, 싶어 토마스는 얼른 민호를 다시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는 가만히 옆에 앉아서는 민호의 머리를 끌어 안았다. 품에 가득 찬 민호의 생기에 토마스의 입가가 절로 미소 지었다. 민호 모르게 입맛을 다신 토마스는 아까보다 더욱 세게 아이비 잎을 짓씹었다. 민호한테 이 이상으로 뭔가를 더 저지르면 영락없이 강제 퇴치 당할 거야. 아님 봉인 당할 거야. 애초에 아귀한테 제일 먹고 싶은 것을 눈 앞에 두고 먹지말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공복과 고통을 불러오지만 어쩌랴. 민호인걸.


"뒷산에 가봐야겠어."

"지금?"

"...내일."

"왜?"

"...뒷산에는 까마귀가 살아."


까마귀? 토마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텐구."

"-흐응."


아까보다 더 끈적이게 붙어오는 토마스의 머리를 거친 손길로 밀어낸 민호는 창 밖, 정면으로 딱 보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분명, 민호의 기억이 맞다면 이 집을 중심으로 마을을 두르고 있는 산에는 까마귀가 하나 살고 있다. 그것도 보통 까마귀가 아닌 텐구가. 분명 꿈에서 들은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가 맞다. 귓가에 남은 그의 비명소리가 어렴풋이 맴돌았다. 


"텐구, 라."


민호가 결국 발길질을 하며 쫓아내서야 겨우 나가 떨어진 토마스는 까마귀? 먹는건가, 하며 중얼거렸고 민호에게서 바보, 멍청이, 라며 온갖 욕은 다 들었지만 민호의 웃는 얼굴을 봤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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